•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나를 부쳐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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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25일 10: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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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리집 문앞에서 매를 맞는데 왜 맞을까? 왜 맞을까?"

    대중가요 ‘빈대떡 신사’ 가사의 일부이다. 이 노래에서 밝히는 매를 맞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 이며, ‘돈’이 없을 때에는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며 친절하게 나름의 해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렇게 빈대떡은 돈이 없을 때 먹는 값싼 음식의 대명사로 불린다. 빈대떡 어원이 빈자(貧者)떡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은 이를 보다 심증가게 하는 대목이다.

    하여간 요즘 같이 으스스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날이면 빈대떡 하나 시켜놓고 소주 한잔 생각날 법도 하다. 특히 빈대떡 지져지는 그 고소한 기름 냄새에 입에서 연신 침이 고여 나면 시원한 막걸리 한잔 안 땡길 일 없을 터이다.

    박정희와 빈대떡

    내가 가본 곳 중 빈대떡 맛도 좋고 왁자지껄 분위기 좋은 집을 꼽으라 하면, 광화문 피맛골 열차집, 공덕동 빈대떡 골목, 광장시장의 빈대떡, 녹두거리의 황해도 빈대떡집을 들 수 있다. 낙엽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한번쯤은 이들 빈대떡 집에 가서 막 지져낸 따끈한 빈대떡에 친구와 소주 한 잔 하는 것도 괜찮은 계획일 듯 싶다.

       
     
     

    이들 집 가운데 광화문 피맛골에 있는 ‘열차집’이 특히 유명한데, 그 이름을 얻게 된 사연이 조금은 수상하고 의미심장하다. ‘열차집’은 예로부터 고관대작들이 행차하던 번잡스러운 종로통이 아니라 그 행차가 꼴 보기 싫었던 민중들이 다녔다는 그 좁고 후미진 피맛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열차집’ 내부는 비좁고 어두침침한데, 요즘말로 허술한 인테리어가 그 집이 자랑(?)인 것이다. 그렇게 위치도 내부 시설도 좋지 않은 집이 어떻게 유명하게 되었을까? 맛! 음식점이 이름을 얻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맛이다. 그런데 이집은 솔직히 내가 맛본 빈대떡 중 평균이상은 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뛰어난 맛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럼 왜 이름이 유명해졌을까? 그 이유는 옛날 한 유명인사가 어둠이 내리면 그가 사는 푸른 기와집에서 나와 이곳에서 빈대떡 한 접시, 막걸리 한 사발을 놓고 구슬픈 노래가락을 부르다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퍼지면서였다고 한다.

    바로 이 유명 인사가 1979년 궁정동에서 호화만찬에 시바스 리갈이라는 외국 양주를 즐기다 자신의 부하 총에 죽은 박정희이다. 오랜 동안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한 독재자가 서리가 내리는 밤, 이름 없는 허름한 선술집에서 값싼 빈대떡을 앞에 두고 홀로 유행가를 불렀다. 생각만 하더라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쯤 되면 수많은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의 서슬 퍼런 독재는 한 사나이의 고독과 쓸쓸함으로 전환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음식’ 하나가 한 인간의 역사적 과오와 행실에 대해 문제제기는 고사하고 대신에 친근함과 왠지 모를 연민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어쩌면 값싼 서민음식 빈대떡이 독재 권력을 유지하게 했던 한 장치였다면, 비밀스런 요정의 호화 만찬은 그 통치의 종말을 의미했던 것은 아닐까? 하여튼 음식을 사이에 둔 한 인간의 삶은 이렇게 드라마틱하다.

    권력자와 서민음식

    이렇게 권력자는 음식을 통해 그 자신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통치의 기술로 만들어 낸다. 만약 그 음식이 옆집 순이도, 아랫집 개똥이도 먹는 ‘서민음식’이라면 일반 대중들이 그를 대함에 있어 보다 친근감과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박정희란 권력자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가까이는 김영삼의 칼국수도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는 어떤 음식을 좋아할지, 음식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해갈지 그것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하여간 음식문화 역시, 하위계급이 지배계급의 문화를 모방하고 따라하는 다른 문화의 전파 방식과 비슷한 발전 경로를 가진다. 즉 음식이 권력자의 입맛에 의해, 지배계급의 식습관에 의해 재해석된 후 다시 서민의 문화로 확산, 재생산 되는 경우가 그렇다. 서양 지배계급에서의 ‘스시’문화가 대표적이다. 날로 먹는 것을 혐오했던 서양의 음식문화는 어느 틈엔가 ‘스시’를 먹지 못하면 하층계급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박정희는 빈대떡 외에도 음식과 관련된 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다. 그가 좋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음식이 유명해지는 경우도 많다. 수원의 농업진흥청에 방문한 길에 맛보았다는 이유로 유명해진 ‘수원 왕갈비’, 전라도 전주의 욕쟁이 할머니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어가면서 먹은 ‘전주 콩나물 국밥’이 그 예이다.

    물론 입맛이라는 것이 지배계급에 의한 강요나 모방 때문에만 전파되지는 않는 듯하다. 유전자에 각인된 입맛은 좀처럼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배계급이 서민의 입맛을 따라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 본질은 맛이다.

    백기완 선생댁에서 맛 본 황해도 빈대떡 

    지금껏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빈대떡은 백기완 선생댁의 것이다. 설이나 추석 때면 백선생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으레 음식 하나를 내오는데, 그것이 빈대떡이다. 빈대떡 몇 장, 동치미 국물, 김장김치뿐인 보잘 것 없는 상이지만 그 상에 올려진 빈대떡의 맛은 정말 일품이다. 때문에 명절 때면 그 맛을 보러 일부러(?) 인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었다.^^

    고향이 황해도인 백선생님댁의 빈대떡은 크고 두툼한 황해도 녹두 빈대떡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황해도 빈대떡은 순 녹두 간 것에, 숙주, 김치와 밑간한 돼지고기 등의 재료를 넣어 크고 두툼하게 부쳐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식물성 기름보다는 돼지기름을 둘러 지지면 훨씬 깊고 풍부한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녹두는 갈아 놓은 후 몇 시간이 흐르면 점성이 없어지고 흐물해져 제 모양과 맛을 유지 할 수 없다. 때문에 맛있는 빈대떡을 만드는 집은 대개 그날 장사할 양만큼만 녹두를 갈아낸다. 맛있는 집을 찾아 가기 위해서는 이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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