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의선공유지 운동의 탄생·전환·상상
    [책소개]『커먼즈의 도전』(박배균 외 엮음/빨간소금)
        2021년 06월 19일 01: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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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커먼즈 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
    경의선공유지 이야기

    서울 공덕역 1번 출구 옆, 경의선 철길이 있던 넓은 공터에는 한국의 다른 도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고 기이하며 색다른 느낌의 공간이 고급 고층 아파트 숲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의 26번째 자치구”란 도발적 표어로 자신을 규정하던 ‘경의선공유지’다.

    2015년부터 2020년 5월 초 ‘강제적인’ 자진 철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경의선공유지에는 예술가, 상인, 문화활동가, 빈민, 연구자 등이 각자 나름의 이유로 모여 벼룩시장, 문화공연, 세미나, 독서토론회, 어린이 놀이터, 체육대회 등을 통해 공간, 자원, 지식, 이익, 가치를 함께 만들고 공유하는 커먼즈(commons) 실험을 펼쳐왔다. 비록 이 실험은 국가권력의 압력에 의해 끝났지만, 경의선공유지에서 펼쳐진 실험과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상상이 한국사회와 도시에 던진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의미는 매우 크다.

    경의선공유지 운동은 한국사회 최초의 조직적이고 가시화된 ‘커먼즈’ 운동이었다.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회운동 가운데 경의선공유지 운동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이 운동은 민주화 이후 주거권 운동에서 발견되는 분화와 단절에도 불구하고 경의선시민행동이라는 연합 조직을 구성해 공동으로 점거 운동을 벌였으며, 공간 점거를 통해 개발을 막았다. 경의선공유지는 국유지이며 이미 계발 계획이 나온 곳이라서 공권력에 의한 진압과 해산은 충분히 예상되었다. 그러나 점거는 4년여에 걸쳐 이뤄졌다.

    이 책은 시민의 자율적인 점거 운동(스쾃)이자 대안적 도시 운동인 경의선공유지 운동에 담긴 의미를 커먼즈 차원에서 종합하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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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유지는 ‘국가 소유의 사유지’가 아니다

    경의선공유지 운동은 국유지인 경의선 철도 부지 개발 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국유지는 국유재산법상 ‘(제3조 1항)국가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게 사용되어야 하지만, 경의선공유지 철도 부지는 대기업이 쇼핑몰, 호텔 등으로 개발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 했다. 이는 한국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의 국·공유지는 합법적으로 대부, 매각, 개발을 통해 (공적)사유화에 사용되어왔다. 민자 역사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1987년부터 법의 최대 허용치인 30년 사용권을 대기업에 주었고, 사용권이 만료(2017년)된 뒤에는 법 개정을 통해 20년을 더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국유지가 총 50년 동안 한 대기업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국유지의 이용과 관리를 결정할 권한이 전적으로 국가에 귀속되어 있다는 사실은 경의선공유지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 중 하나였다. 경의선공유지는 국유지에 국가의 법적 소유권이 설정되어 있다고 해서 국가가 전적으로 국유지를 이용하고 변형하며 수익을 창출할 권한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유지는 ‘국가 소유의 사유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근대 패러다임의 주권 국가, 절대적 소유주 국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근대 주권 국가는 재산권을 가진 개별자로 구성된 세계, 곧 국유지와 사유지로 이분화된 세계를 구상하면서 국유지에 대한 유일한 주권자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근대 주권 국가의 틀에서 국가는 국유지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갖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수익성을 추구할 수 있고 언제든 처분(민영화)할 수 있다. 또 그에 반하는 공동체의 권리 주장에 대해 ‘불법’이란 딱지를 붙여 공동체를 주권 국가의 적으로 삼는다. 근대 주권 국가의 관점에서 경의선공유지는 국가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적이다.

    국유지에 대한 절대적 소유권을 갖는 근대 주권 국가 체계에서 국유지의 운명은 온전히 정부의 역량에 좌우된다. 그런데 경의선공유지에서 보기에 정부는 지역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대기업의 영리 활동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국유지를 이용하고 있었다. 국유지가 공익적 기능보다는 정부의 수익 창출과 자본의 축적 활성화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부터 경의선공유지는 경의선공유지추진위를 구성해 대기업 중심의 국유지 개발 계획을 대신하는 ‘대안 공유지 계획’을 서울시 및 마포구에 제안하고 협의하고자 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마포구가 본격적인 철거 압력을 행사하면서 무산되었다.

    국가의 소유권을 침해한 적으로서 경의선공유지는 2019년 7월 마포구에 의해 포위되었다. 마포구청 직원들로 구성된 인간 펜스가 경의선공유지 부지를 둘러쌌고, 철거 장비를 실은 차량이 경의선공유지 부지로 진입하려고 했다. 국가가 스스로의 소유권 영역을 확인하고 재영역화하는 작업이었다. 경의선공유지는 “펜스(fence) 말고 팬(fan)”, “마포구청 이제 그만 시민의 편이 돼주라” 등으로 대응하며 국유지의 소유주 국가의 의미를 넘어서고자 했다. 그러나 정부는 소유권을 행사하는 법적 대응을 취해 경의선공유지를 해산시켰다.

    경의선공유지 운동은 실패했는가

    2019년 정부는 국토교통부를 원고로 해서 36억 원에 달하는 소송을 경의선공유지에 건다. 대외적으로 모든 공간 내 시설물에 대한 처분권을 양도받은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뿐만 아니라 개별 공간 사용자들까지도 소송 대상에 포함되었다. 단체만 소송 대상이 되었다면, 정부가 주장하는 피해가 가상이며 오히려 국유지를 방치한 책임이 정부 측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우해 소송에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간 사용자까지 대상이 된 터라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결국 경의선공유지 운동은 2020년 5월 스스로 문을 닫았다. 한때 그 독특한 아우라로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상품화된 도시 공간에 질식되던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공기를 불어넣던 경의선공유지는 이제 철제 펜스로 가로막힌 삭막한 공간으로 변했다.

    현실적으로 경의선공유지에서 커먼즈 운동을 지속하는 것은 실패했다. 운동이 경의선공유지에서 지속될 것이라는 바람 또한 실패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실패로 볼 수 있을까? 경의선공유지 운동은 실패보다 긍정적인 부분들이 훨씬 더 많았다. 국유지 무단 점거라는 행위가 벌어진 경의선공유지에서는 이전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굉장히 새로운 화두가 많이 던져졌다. 토지의 사유화가 과연 옳은가, 도시 공간의 투기적 사유화에 대한 비판과 경종, 사유화 대신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같은 화두를 사회에 던졌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이 화두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되었던 것 같다. 국회의원, 정부, 그리고 연구자도 마찬가지였다.

    경의선공유지 운동은 한국사회에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준비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경의선공유지 운동과 같은 활동 때문에 최근 제도권에서도 커먼즈 정책이 다뤄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도시 커먼즈 개념을 적용한 도시 모델을 연구 중이고, 서울시에서도 3기 공유도시 기본 계획에 커먼즈 개념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비록 장소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운동의 가치는 오히려 더 멀리 퍼져나갔고 더 많은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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