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석 현상,
    '그것' 빼곤 말할 수 없다
    [기자생각] 과연 혁신과 새로움인가
        2021년 06월 17일 09:1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예능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서 소개하는 연애사의 기괴함은 거의 사랑과 전쟁의 2030버전이다. 역대급이라고 꼽히는 사연을 소개하면 이렇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남자친구가 어느 날 친구 결혼식에 간다더니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남자친구 본인의 결혼식이었다(!) 이 외에도 데이트 통장의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연인, 상습적인 거짓말로 바람을 피우는 연인, 회식 자리까지 들이닥치며 집착하는 연인, 이별 통보에 자살 협박을 하는 연인, 지속적인 언어폭력으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연인 등등 온갖 기상천외한 사연들이 소개된다.

    사연의 끝 무렵에 늘 MC들과 나와 같은 시청자들을 가장 허탈하게 하는 질문이 있다. “그것만 빼면 괜찮은 사람인데…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람피우는 것만 빼면’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라거나, ‘거짓말하는 것만 빼면’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거나, ‘화났다고 욕하는 것만 빼면’ 완벽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걸 왜 빼! 그걸 어떻게 빼!”라고 공허한 분노를 발사하고,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은 “너 자신을 존중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계속 만나라”라는 고급진(?) 충고를 한다. 헤어지라는 뜻이다.

    돌이켜 보면 굳이 연애사 아니어도 ‘그것만 빼면’이라는 말에서 ‘그것’은 빼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만 빼면”이란 말이 요즘 정치권에서도 많이 나돈다. 이준석 대표의 당선 전후로 “안티 페미니즘만 빼면”, “능력주의만 빼면” 이런 말이 많다. 아마도 ‘안티 페미니스트이지만 30대’, ‘능력주의자이지만 0선’이니까 여의도 정치엔 희소식이 아니냐는 거다. 세대교체를 갈망하는 이들에겐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보수정당에서 30대·0선의 정치인이 당 대표가 되는 건 아주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다.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 대표 선거에서도 현역 의원인 후보가 다른 후보의 ‘0선’을 공격하는 도구로 활용하거나, 이름 모를 당원 혹은 지지자가 청년 정치인의 sns에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라’는 댓글을 달지 않나.

    그런데 그것밖엔 없다. 어떤 지점에서 그의 당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지 아무리 떠올려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메갈리아 손가락 표식으로 불같이 화내며 언쟁을 벌이면서도 공군 부사관 성폭행 사건엔 입을 열 생각이 없는 이준석의 모습만이 눈에 선하다.

    그럼에도 이준석은 ‘현상’이 됐다. 보수진영은 그렇다 치자. 페미니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공정보단 불평등이 문제라고 말하는 다른 진영마저 이준석의 당선을 대단히 새로운 것으로 치켜세우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항간엔 이준석의 물리적 젊음을 코스프레하기 위해 래퍼 분장을 하고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노출시키는 데…정말 ‘안 본 눈’ 사고 싶을 정도다.

    정치인들의 ‘이준석 따라잡기’가 횡행하고 언론이 이준석의 당선을 혁신 돌풍으로 포장할 때, 그의 정치적 자양분이 된 안티 페미니즘, 공정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은 제대로 검증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경쟁의 분명한 성격을 애써 지우고, 본인이 만든 ‘공정 경쟁’의 장에서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 넣는다. 열심히 하면 다 성공할 수 있다고. (일부) 청년세대는 그의 말에 환호한다. 비트코인에 뛰어든 이들은 절대 다수가 쪽박 차는 현실은 지운 채 성공한 0.1%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영끌’한다. 그 근거 없는 믿음 외엔 부자가 될 방법이 없기 때문에 0.1%의 미세한 빛을 쫓는다. 이준석에 대한, 이준석이 만들 ‘공정경쟁’에 대한 지지와 비트코인 열광은 닮아 있다.

    이준석은 정말로 공정 경쟁이 이뤄지는 세계에서 살았을지 모른다. 열심히 공부‘만’ 하면 일류 대학에 가고, 생활비 걱정 없이 취업 준비‘만’ 하면 처우 좋은 정규직이 될 수 있고, 대학이든 직장이든 낙방하면 언제든 고민 없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세계 말이다. 그런 세계관엔 열심히 일했지만 300kg의 철판에 깔려 죽은 청년 노동자나 알바 뛰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경쟁’에 밀려나 정규직이 될 수 없었던 청년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럼에도 0선의 30대 제1야당 대표. ‘이준석을 계기로 정치의 세대교체가 이뤄진다면 좋은 것 아닌가’, ‘정치권이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면 좋은 것 아닌가’ 라는 찬사와 기대는 여지없이 이곳저곳에서 튀어 나온다.

    세대교체가 필요하다할지라도, 그 세대교체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사는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너무나 많이 해온 이야기라 지겨울 정도다.

    건물주가 아닌 무주택자와 세입자를 대변하고, 강남8학군에서 교육받아 명문대에 간 청년이 아니라 안전하지 못한 노동환경을 버텨내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사회의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 용기 있게 지적하고 실천한다면 나는 그 정치인이 80 먹은 노인이어도, 다선의 중진의원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억까’(억지로 까다) 따위가 무슨 뜻인지 몰라도 괜찮다.

    분명히 존재하는 성차별을 없다고 하는 안티페미니스트이자, 다수에게 피폐함과 자괴감을 각인시키며 낙오자에게 손내밀지 않는 능력주의 맹신자는 괜찮은 정치인이 아니다. 그가 제아무리 0선이고 30대여도 빼고 말할 수 없는 게 있다.

    애인이 상습적으로 바람을 피우기는 하지만, 그래서 가끔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모텔에 가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만날 때만큼은 다정하니 그 모든 걸 용서하고 다시 만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젊음보다 중요한 건 정치인의 가치관이고 메시지다. 현란한 말기술과 젊은 얼굴에 속아 그가 설파하는 보수기득권의 오랜 주장을 혁신인 양 부러워하거나 포장하진 말자.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