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과 '임을 위한 행진곡'
    2006년 11월 23일 05: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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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여고시절’이라는 SBS 드라마가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주인공이 과거 자신의 제자와 결혼해 살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희화적으로 그린 드라마였다. 탤런트 정보석이 소심하고 기 못 펴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역을 맡았었다.

부잣집 처가살이하랴 아내 눈치보랴 이래저래 주눅들 일 투성이인 주인공은 술에 취하면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 주인공은 한 때 운동권 주변에 있었던가 보다.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과 그가 부르는 노래의 기묘한 부조화는 이 장면을 더 없이 희극적으로 만들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런 식의 부조화가 커질수록 희극성은 배가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술취한 정보석

지난 8월 27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광주·전남 노사모 회원들과의 만남 행사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됐다는 기사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술 취한 정보석의 모습이었다.

   
 ▲ 노무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한미FTA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노대통령이 결연한 표정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은 희극적이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도 이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 3주년 기념식장에서였다.

양희은의 상록수를 배경으로 창당 3년을 담은 동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가운데 여당 사람들이 회한과 자기 연민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장면을 통째로 들어다 민중들 삶의 복판에서 연극처럼 상연한다면 얼마나 희극적일까, 생각했었다.

이런 식의 부조화는 왜 생기는 걸까. 노대통령이건 여당이건 자기들만의 폐쇄회로(보수 정치인과 관료, 전문가, 맹신적 지지자들로 짜여진)에 갇혀서 바깥 세계와 소통을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이 없으니 반성이 있을 수 없고, 반성이 없으니 자신들의 행태가 얼마나 희극적인지 깨닫지 못한다.

노대통령은 집권 이후 폐쇄회로 바깥의 삶과 제대로 소통한 적이 없다. 대화라는 형식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 적은 몇 번 있었다. 당연히 ‘참여’도 없었다. 참여라는 이름의 동원만이 있었다.

집회한 사람 잡아넣는다고 문제 풀리나

한미FTA를 반대하는 시위가 22일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시위는 격렬했고, 정부의 반응은 익숙한 것이었다.

김성호 법무장관은 23일 "이제 더 이상 관용조치는 하지 않겠다"며 "사법조치, 민사청구, 개별기관 징계 등을 총동원해 주동자나 적극 가담자를 엄정히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택순 경찰청장도 "채증을 통해 불법 시위자는 언제든지 처벌된다는 생각을 불어넣겠다"며 "집회를 주도한 단체에 대해서는 결과에 대해 민.형사상 손배소송을 추진하는 등 사법절차를 차질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FTA 범국본은 노대통령 면담을 요청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다. 설혹 면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폐쇄회로 바깥에 대한 노대통령의 경시는 폐쇄회로 안쪽의 고갱이인 관료에 대한 맹신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관료들이 자신의 지시를 대놓고 뒤집어도 아무런 제재를 취하지 않는다.

부동산 원가공개 문제가 대표적이다. 노대통령이 원가공개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재경부 관료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뿐인가. 박병원 차관 같은 사람은 공공연하게 원가공개를 반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 정권 내 부동산 원가공개는 물 건너갔다고 얘기한다. 급기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관료들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지만, 정작 당사자인 노대통령은 아무 언급이 없다.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승진시킨 과정도 기가 막힌다. 김 부위원장은 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감원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으로 론스타 자격문제와 관련해 ‘예외승인’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런 논란에 휩싸인 그가 부위원장으로 승진하는 것을 보고 지난달 27일 이용희 국회부의장이 어느 점심 자리에서 노대통령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봤더니 "일을 하다가 문제되고 언론에 얻어맞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김석동이란 사람을 승진시켜서 금감위 부위원장을 시켰다"고 ‘태연자약하게, 자랑스럽게’ 얘기하더라고 한다.

노대통령이 한나라당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그게 현 여권의 유일한 존재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둘 사이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모두 폐쇄회로 안 쪽에서 벌어지는 작은 다툼일 뿐이다. 노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했을 정도 아닌가.

그래도 한나라당 보다 낫다고?

외려 이 정부에서 소위 전문가들과 관료의 독재는 더욱 심화됐다. ‘정치’의 가치가 폄훼되면서 폐쇄회로의 안팎을 구분하는 벽은 더욱 단단해졌다. 노대통령은 자신이 관료들을 부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관료들의 생각은 정반대일 것 같다. 관료들, 그리고 그들과 직간접적 연계를 갖고 있는 주류 세력은 이 나라를 지배해왔고, 지배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유구한 흐름에서 노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차이’라는 게 얼마나 의미를 가질까. 그 ‘차이’의 크기보다, 그 ‘차이’에 대한 미련이 주는 해악, 폐쇄회로 바깥의 삶을 정치화하려는 노력이 ‘지연’되는 데 따른 해악의 크기가 더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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