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석 비판① 교육으로
    공정 사회를 만들겠다고?
    그의 현실 진단과 처방의 공허함
        2021년 06월 16일 1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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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은 합리적인 보수의 가치와 미래의 지향점을 ‘공정한 경쟁’으로 요약한다. 청년 정치의 핵심을 경험과 연륜에 두지 않고 ‘실력과 실력주의’에 맞출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세대가 정치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산업화 세대가 이룩해 놓은 경제 발전의 영광과 민주화 세대가 이끈 민주주의의 숭고함을 뛰어넘을 새로운 거대한 아젠다가 필요한데, 그것을 ‘공정 사회’로 보고 ‘공정한 경쟁’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정한 경쟁> 이준석 저/강희진 편 | 나무옆의자 | 2019년 06월 28일. 서문에서

    공정한 경쟁이라. 이준석을 사상가라고 부를 수 있는지 궁금하지만, 일단 그렇다고 가정하자. 우익이라 불리는 사상가들의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은 대개 관념적이라는 점이다. 관념적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그들은 복잡하게 연관된 세상사에서 어떤 것을 분리하여 그것만을 바라보고, 그러면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교육 문제는 교육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왜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대학 입시에 매달릴까? 그것은 근원적으로는 경제적인 것이다. 부모 세대는 이 사회에 만연하는 차별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고, 어린 고등학생들도 그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교육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저기 어딘가에서 건물주들이 비웃고 있다. 서초동의 어떤 건물주는 열심히 움직이는 변호사들과 검사들과 판사들을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며 아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쟤들이 우리 머슴들이란다.”

    바다 건너에서, 이준석이 유학 가서 그들의 사상을 수입했던 그 나라에서, 패리스 힐튼이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스타에 사진만 올려도 너희들보다 천 배는 벌어.”라고 그는 말할지 모른다. 패리스 힐튼이 인스타그램에 사진만 올려도 하바드 대학 나온 젊은 청년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그가 힐튼 호텔 소유주들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만일 성관계를 하는 모습이, 소위 섹스 비디오가 유출되면, 노출된 여성의 삶은 대개 완전히 망가진다. 그러나 이 돈 많은 집안 출신은 그런 일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기화로 더 많은 돈을 챙겼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제가 정치를 하는 목적은 그것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를 어떤 경우에도 낮추지 말고, 모든 국민이 교육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공정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 꼭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어떤 선동가가 교육의 기회를 잃어가는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나중에 그들이 뒤처졌다는 이유만으로 매달 10만 원을 주는 것이 복지정책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저는 완강하게 거부하겠습니다. 그 10배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그들을 다시 공정한 경쟁의 장으로 복귀시킬 수 있도록 국가가 교육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해법입니다.”

    – 2021 국민의 힘 대표 선출 과정의 한 유세에서

    역시 그는 나의 예상대로 교육 얘기를 꺼냈다. 그는 우선, 말하는 방식부터 공정하지 못하다. 남의 의견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어떤 선동가가 교육의 기회를 잃어가는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나중에 그들이 뒤처졌다는 이유만으로 매달 10만 원을 주는 것이 복지정책이라고 이야기한다면”과 같은 발언을 하면 안 된다. 그것은 논리학에서 ‘우물에 독 풀기(poisoning the well)’이라고 부르는 오류이다.

    그는 게다가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다. “그 10배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그들을 다시 공정한 경쟁의 장으로 복귀시킬 수 있도록 국가가 교육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해법입니다.” 한 학생 당 100만 원을 쓴다? 당신들이 교육복지에 한 학생 당 한 달에 100만 원을 쓴다고? 학생이 세 명인 가족에게는 한 달에 300만 원을 주겠다고? 너 국민의 힘 맞니? 너희들이 그런 정책을 펼친다면, 내가 국민의 힘에 입당한다.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 했던 연설에서 그는 “저소득층 학생은 교육의 기회가 적어 경쟁에서 낙오되기 쉬운데, 이들이 낙오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게 해 줘야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의 보수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얼마나 자주 하느냐면, 그런 글이 한국의 수능 영어 영역 모의고사에도 등장할 정도이다. “equal footing(동등한 발판)이 평등이고, 그 이후의 수입의 차이는 능력 차이이다.”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의 요체이다. 다시 말해, 이준석의 주장은, 복지제도를 거부하며, 동등한 고등학교까지의 교육만 해주면 평등과 관련된, 국가가 할 일은 더는 없다는 미국 보수파 일부의 주장을 copy & paste (복사해서 붙이기)한 것이다. 이준석의 기본적 생각이 어디서 나왔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해법이 너무나 우습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전국단위 일제고사 폐지를 비판했고, “한국형 낙오방지법 같은 정책으로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 교육에 바람직한 경쟁을 만들고 성취도 평가 제도를 도입해 기초 학력이 미달인 학생을 찾아내 그들에게 교육을 집중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기초 학력 미달인 학생을 찾아내 그들에게 교육을 집중해야 한다고? 나쁜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그가 지키려고 하는 ‘보수’라는 가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얘기이다. 그가 꿈꾸는, 그리고 지키려고 하는 사회는 능력 있는 엘리트에 가용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 사회 아닌가? 삼성전자의 뛰어난 임원 하나는 수천 명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신들의 생각 아니던가? 서울과학고 등의 영재학교에 돈을 더 써야지, 기초 학력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집중하자는 것은 당신들 생각과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닐까?

    어쨌든 이준석의 주장이 진심이라고 받아들이고 다시 이야기를 진행하자. 기초 학력 미달인 학생이 기초 학력을 갖춘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는 아마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비정규직의 요건 정도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는 어떤 이가 다른 이의 수천 배, 수만 배를 벌 수 있는 사회이다. 건물주들의 자식들은, 회사의 지분을 십 대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젊은이들은, 기초 학력이 있든 없든 평범한 이가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벌게 될 것이다.

    내가 코로나 창궐 이전에 주말마다 함께 농구를 하곤 했던 어떤 서른네 살의 남성은, 부모에게 7억 원을 ‘빌려서’ 서초동의 어느 아파트를 사 년 전에 12억 원에 샀다. 그리고 그 아파트는 지금 25억 원 정도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그는 아파트 담보 대출을 통해 7억 원을 부모에게 갚았고, 결국 그는 5억 원을 써서 4년 만에 13억 원을 벌었다. 그는 이제 20억 원을 지닌 재산가가 되었다. 이것이 그에게만 있는 일일 리 없다. 그러므로, 기초 학력을 갖추게 한들, 공정한 사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준석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이준석은 조지 부시의 낙오 방지법을 도입하자고 하면서, 기초 교육을 진행하는 교사들에게 더 큰 투자와 지원, 즉 인센티브를 주고, 교사의 성과 측정 기준을 마련해서, 낙오자가 발생하면 교사들에게 그에 따른 페널티를 부과하자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성과 평가와 무관한 삶을 살았던 교사들에게도 능력주의적 접근법을 쓰면, 공교육이 살아나서 사회 전반에 기회의 평등을 구축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교사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가하면 사회 전반에 기회의 평등이 구축된다고? 하, 한숨이 나온다. 이 친구는 판타지 소설 속에서 살고 있다. 먼저, 교사들이 “성과 평가와 무관한 삶을 살았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교사들은 공식적인 평가도 받으며(관련 링크), 학생들의 비공식적인 평가도 받는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성과 평가와 무관한 삶을 사는 직업인이 있다고? 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거나, 현실을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또한, 교사들에 대한 능력주의적 접근법이 공교육을 살린다는 주장은 무지의 극치이다. 먼저, ‘공교육’을 정의하자. 사립학교는 공교육인가, 사교육인가? 대개 공교육으로 분류한다. 그 사립학교들은 어떠한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3대 세습이 이루어졌다. 나와 같은 반이었던, 행정학과에 입학하면서 행정학과가 무엇을 배우는 곳인지 몰랐던, 왜냐하면 축구부가 아닌데 축구부로 위장하여 ‘명문대’에 갔기 때문에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이가 지금 교장이다. 그의 아버지도 교장이었고, 그의 할아버지는 설립자였다.

    이런 사립학교들,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립학교들을 운영하는 이들의 목표는, 기초 학력 미달인 학생들의 학력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이다. ‘해 먹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민의힘의 전신인 정당이 가장 난리를 쳤을 때가 언제였나?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려고 정부가 시도했을 때였다. 박근혜는 영남대학교의 주인이었다. 나경원 역시 사학재단과 관련되어 있다. 사학과 연관된 그쪽 국회의원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 한둘이 아니다. 부패 사학은 널려있고, 그 부패한 사학들의 소유주들은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을 위한 특별 예산이 편성되면 그것을 ‘쓱싹’하고도 남을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초 학력 미달인 학생들보다는, 소위 SKY 대학에 몇 명을 보낼 수 있을지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런 현실은 무시하면서, 당근과 채찍으로 교사들을 자극하여 기회의 공정성을 확보하자고 한다. 너무나 무식하다. 혹은 기회주의적이다. 전자라면 나 같은 국민의힘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다행이다. 후자라면, 이 자는 홍준표 같은 부류보다 더 간사하고 위험한 자이다.

    그리고 그는 소위 ‘사교육’의 힘을 모른다. 혹은 모르는 척하고 있다.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왜 그리 인기를 끌었을까? 왜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그 드라마를 끝까지 보았을까? 시청자들은 사교육이라는, ‘하늘로 오르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이 밉기도 했었겠지만, 동시에 부럽기도 했을 것이다. 하늘 위의 성(Sky Castle)에 분노했겠지만, 자기도 거기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이준석은 상계동 주민이라 하고, 그렇다면 중계동 은행사거리에 가 보았을 것이다. 대치동 못지않은 곳이다. 학원 옆에 학원 옆에 또 학원이 있는 곳이다.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옆에 또 예쁜 애가 있다는 트와이스도 당하지 못할 곳이 은행사거리이다. 왜냐하면, 학원 옆에 학원 옆에 또 학원이 있을 뿐 아니라, 학원 위에 학원 위에 또 학원이 있기 때문이다. 당근과 채찍으로 ‘각성할’ 공교육 교사들의 노력만으로는, 미래탐구와 알로곤과 CMS를 다니는 학생들, 토피아나 학림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의 학력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치동으로 가 보자. 이준석 당신은 한티역부터 은마 사거리까지 걸어본 일이 있는가? 거기에 얼마나 많은 학원들이 있는지 모르는가? 은마 사거리에서 대치역 사거리로 걸어가면, 또 다른 학원 밀집 지역이 나타난다. 당신은 대치역에서 도곡역 쪽으로 걸어본 일이 있는가? 왜 한국사회의 교육을 논할 때 대치동 얘기가 빠지지 않는지 정말 모르는 것인가? 당신의 얘기에 얼마나 많은 학부모들과 학원 관계자들이 웃음을 짓고 있는지 상상하기 힘든가?

    나는 어느 소셜 미디어 친구가 “이준석을 섬세하게 보아야 한다.”라고 말해서 이 정치인에게는 무언가 색다른 것이 있는 줄 알았다.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당의 유명한 정치인들이 안하무인에 무식한 ‘꼴통’인 이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가 돋보인 것이다. 이준석은 ‘함량 미달’의 사상을 지니고 있다, 그쪽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단지, 예를 들어 홍준표보다 괜찮아 보이는 것이다. 서울법대 출신에 판사 출신의 정치인들이 자주 그러하듯, 주어 없는 이상한 어법으로 일관하는 나경원보다는 나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나 나경원보다 못한 ‘human being’이 존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닌가?

    교육은, 사회적인 것이다. 교육만으로 이 불공정한 사회를 바꾸겠다는 것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이 탄생한, 대학 졸업해도 ‘88만 원 세대’의 후예가 되는, 데이트도 못하고 연애도 꿈에나 존재하고, 결혼은 꿈도 못 꾸는, 그래서 과거로 회귀해서 떼돈을 벌고 여자친구를 구하는 내용의 판타지 소설들이 넘쳐나는, 이 사회를 ‘물로 보는 것’이다.

    이준석은 국민의힘의 대표이다. 잘 어울린다. 그에게 지성이란 것은 없다. 사회적 현상들을 분석하여 결론을 도출하고, 그에 근거해 정책을 세울 능력이 없다. 그는 안철수가 그러하듯, 학력은 높지만, 지성은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정책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질적인 힘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기반 또한 갖고 있지 않다. 오륙 년 동안 읽은 책이라고는 전공서와 토익책밖에 없는, 혹은 전혀 없는 20대 남성들의 지지? 정치적 측면에서 그들은 ‘가스통 할배’들보다도 더 무력한 존재들이다. 조심스럽게, 아니 대놓고 예상해보건대, 그는 그보다 더 지성이 없는 ‘동료’들에게 고립을 당해 고생하다가, 결국은 등에 칼을 맞아 장렬히 정치계에서 산화할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기획위원. 도서출판 벽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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