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교육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2006년 11월 23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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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원평가안돼요 투쟁열심히하세요ㅋㅋ 홧팅홧팅♡하하하 샘얼렁오세요 보고싶어요♥♥
    11/22(수) pm03:38

    서울시청 앞에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던 그는 반 아이가 보낸 ‘깜짝 문자 메세지’를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 힘들고 속상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가슴 속에 있었던 고뇌와 갈등이 부끄러웠다. 400Km를 달려 여기 온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남 순천의 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 교사(40)는 이날 전교조의 교원평가 반대 연가투쟁을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아침은 관광버스에서 죽으로, 점심은 도시락으로 때웠고, 12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했다.

    정부와 언론은 정말 무서웠다. 교육부는 연가투쟁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물론 학교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협박했다. 그동안 연가투쟁에 참가한 기록까지 모두 일선 학교로 보냈다. 연일 신문에 전교조 비난 기사로 도배질하는 보수언론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조합원은 열 명 남짓이지만 같이 가자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다녀오겠습니다.”

    21일 학교에 연가를 내자 교장, 교감 선생님이 극구 말린다. 꼭 가겠다면 연가를 내지 말고 그냥 병가를 내면 안 되겠냐고 설득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졌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다녀오겠습니다.” 결제를 받지 못한 채 연가서를 제출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 22일 시청 앞에서 열린 ‘전국교사대회’
     

    조합원들에게 “다녀오겠다”는 메신저를 건네자 잘 다녀오고, 몸조심하라는 정이 담긴 글자들이 날아왔다. 같이 가자고 얘기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순천에서 50명이 넘게 왔는데 조합원들이 많이 온 학교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적극적으로 권유해볼걸 그랬나 싶어요.”

    다들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을텐데 조합원들이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자 기운이 났다. 학교에서는 혼자 왔지만 이렇게 많은 교사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용기가 생겼다. 힘차게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불렀다. “제 의지로 온 것에 대해 책임져야죠. 함께 하니까 괜찮아요.”

    정부는 공청회를 막았다는 이유로 도주 우려가 전혀 없는 교사를 구속시켰다.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탄압을 벌이고 있다. “정부도 막바지까지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심하게 탄압할 수도 있겠구나 싶구요. 그래서 거꾸로 보면 정부도 애가 닳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사이처럼 전교조에 대해 이렇게 크게 보도한 적이 없잖아요. 막판까지 온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정말 막판이 궁금해요.”

    막판이다. 교원평가든 한미FTA든, 노동법 개악이든 이번에 막지 못하면 정말 힘들어진다. “교원평가가 통과됐을 때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교조 교사로서 아이들 인간답게 살라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짤리지 않기 위해 참교육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될 테고 그걸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 텐데….”

    학교 나오면 그냥 잠만 자는 아이들. 아예 학교도 나오지 않는 아이들. 세상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그는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었다. 이 아이들에게 수학이 무슨 소용이고 물리가 무슨 의미겠냐. 그는 요즘 아이들에게 종아리까지 때린다고 했다. 공부는 못하지만 괜찮은 아이들, 인간적인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믿을 구석은 정말 아이들밖에 없잖아요.”

    “그런 진심을 알고 있는지 가끔 아이들과 소통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변명을 위안 삼고 있어요.” 정부와 언론, 학교, 일부 학부모까지 전교조를 비난하는 세상에서 그를 보호해줄 사람은 아이들뿐이다. “믿을 구석은 정말 아이들밖에 없잖아요.”

    교사 결의대회와 민주노총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 그리고 민중총궐기대회가 연이어 이어졌다. 남도 끝에서 올라온 조합원들이 서서히 갈 채비를 한다. 전남 보성, 진도지회의 깃발이 휘날린다. 순천도 먼데 참 멀리서도 왔다. 그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차에 올랐다.

    빵과 우유, 그리고 맥주가 하나씩 돌아간다. 추위에 떨던 조합원들이 환하게 웃는다. 연가 투쟁에 처음 참가한 조합원들의 풋풋한 이야기부터 선배 교사의 이야기까지 이날의 경험과 느낌을 서로 나누었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세상을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가르치고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마음먹는다. 24일 새벽 1시 그의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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