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당 = 신당’ 굿판을 걷어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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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5일 11: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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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 전 얘기다. 91년 4~5월 노태우 정권의 공안 통치에 항거해 청년학생들이 연이어 분신, 투신하고 고 박창수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던 시절이다. 이때 한 저명한 시인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면서 ‘분신정국’을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해 적잖은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오랜 민주화운동의 선배이자 생명사상을 강조하는 그 시인의 양심으로 볼 때, 3당 야합에 기초한 보수대연합정권의 무지막지한 공세 앞에 꽃 같은 젊은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너무나 가슴 아팠으리라.

       
    ▲ 정성희 소통과 혁신 연구소 소장
     

    역설적이게도 최근 민주노동당 안의 분열 행각에 대해 필자는 “‘분당=신당’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말하고 싶다. 그 까닭은 이렇다.

    대선 63% 지지의 이명박 보수정권과 이회창 수구신당의 예고된 협공을 목전에 두고 벌어지는 민주노동당의 탈당-분당 움직임이야말로 ‘죽음의 굿판’이기 때문이다. 아예 진보민중세력을 잘게 썰어 외세와 보수연합군이 집어삼키기 좋도록 만들어주는 지극히 어리석은 ‘자학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친미보수대연합의 광풍 앞에서…

    공안정국에 분신, 투신으로 저항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타까운 패배주의적 대응이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민심의 전제조건에서 보수는 부패해도 정권을 잡았지만, 진보는 분열하면 곧 망하고 소생하기도 어렵기에 하는 말이다.

    이명박 신보수정권은 한미동맹 강화에다가 지금보다 심한 폭력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결합시킬 태세다. 남북관계도 미국의 손때가 더 묻을 것이고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조짐 속에서 한미FTA, 공기업 사유화, 출자총액제한과 금산 분리의 완화 또는 폐지를 강행할 것이다.

    물가는 뛰고 비정규직은 871만 명, 임금은 정규직의 50%로 떨어질 전망이다.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재벌의 투자 확대와 이윤 보장을 위해서라면, 법과 질서를 앞세워 정당한 단체행동권까지 재갈을 물리고 ‘노사민정위원회’라는 신종 어용기구를 통해 민주노조를 포위, 압박할 작정이다.

    그러면서 CEO형 우익 포퓰리스트답게 유류세 인하, 통신비 절감, 신용불량자 구제 등으로 서민대중의 마음을 붙잡겠다고 한다. 이런 친미, 친자본과 반북, 반노동의 길에서 이회창 수구보수파는 ‘가속페달’, 손학규 중도우파도 ‘고장 난 브레이크’일 뿐이다.

    친미보수대연합의 이 같은 광풍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지금 뭘 하고 있나. 실의에 빠진 태안주민이 농약을 마신 채 분신 사망하고 이랜드, 코스콤, GM대우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와 고공에서 피울음을 토하고 있는 판에, 어떻게 노동자, 농민, 서민의 당에서 ‘탈당-분당-신당’이란 ‘죽음의 굿판’이 벌어질 수 있는가.

    총선이 불과 2개월 앞으로 닥쳐왔는데, 도처의 예비 후보들이 “그래도 민주노동당이 희망입니다”라고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는데, 더구나 가까스로 심상정 비상대책위 체제가 출범해 당의 혁신과 활로 개척에 지혜를 모으고 있는 이 때, 어떻게 민심과 동떨어진 ‘대선패배, 종북주의 탓’을 끝까지 강요하며 분열-분당의 외길을 고집한단 말인가.

    그 어떤 변명, 그 어떤 고상한 기치로 포장해도 겨우 3% 지지를 다시 쪼개고 당장의 서민의 눈물도 방기하면서 소통과 혁신의 진지한 노력조차 포기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정말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이렇게 되었나. 창당 8년, 어려운 조건에서 생각은 조금씩 달라도 형님, 아우하며 민생현장과 통일광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해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 와서 형편이 좀 더 어려워졌다고 매정하게 ‘갈라서자’니 도대체 이것이 정상인가.

    형님, 아우하며 어깨를 나란히 해오지 않았는가?

    좋다. 허심탄회하게 토론해보자. 무엇이 일부 동지들에게 ‘가출’과 ‘이혼’과 ‘재혼’을 결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는지 한 치의 과장과 왜곡도 없이 냉정하게 원인을 규명해보자. 그리고 반성할 건 반성하고 혁신할 건 혁신하자. 국민의 눈높이에서, 통합적 시각으로 소통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먼저 아무래도 민주노동당의 사정이 이렇게 악화된 데에는 다수파인 이른바 ‘자주파’에게 더 큰 원인, 더 많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추후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간략히 세 가지 영역에서 ‘자주파’ 노선과 태도의 부족한 점과 문제점을 반성하고 성찰해본다.

    첫째, 신자유주의시대에 맞게 민생문제와 밀접히 결합해 자주와 통일 운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그 동안의 반미반제자주화운동은 북미관계에 따른 정치군사적 의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정치군사적 문제가 관건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 따른 민생경제 악화와 관련된 정치경제적 의제를 소홀히 취급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 한미군사합동훈련 반대, 주한미군 철수 및 기지 철거, 평화협정 체결 등에는 적극적이었으나, 론스타 같은 투기자본이나 외자와 재벌 중심의 주주자본주의에 따른 착취-수탈 구조에 대한 천착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정치군사적 의제조차도 정세의 요구에 따른 당위적 구호식 접근이 많아 대국민 설득력이 떨어졌다. 예를 들어 천문학적 혈세 낭비인 무기수입비, 미군 지원비, 미군기지 이전과 환경오염 및 보전비 등을 소재로 “그 돈이면 일자리를 몇 개 만들고 비정규직을 몇 명 정규직화할 수 있다”라는 해설, 홍보를 결합시켜야 미군 철수의 대중적 지지를 확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부족한 측면이 반미반제자주화운동의 대중성을 약화시키고 정파간의 연대연합을 저해한 점이 없었는지 깊이 돌아볼 일이다. 건전치 못한 정파나 활동가들의 버릇이긴 하지만, 심지어 자주화운동이 부르조아 민족주의의 소산인 양 왜곡되곤 한다.

    평화통일운동도 마찬가지다. 6.15남북공동선언 이행 촉구와 부문별 민간교류협력, 6.15와 8.15 행사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6.15선언 이후 지난 8년간 ‘우리민족끼리’ 의식, 연북연공의식이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북과 미국의 축구경기에서 북을 응원하겠다는 사람이 몇 배로 늘었다는 여론조사 하나만을 놓고 봐도 친북이 친미를 압도하는 우리국민들의 잠재의식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한나라당이 ‘친북행위, 기구축소’라며 국가인권위에 메스를 갖다 대듯이, 웬 ‘종북주의’ 타령인가.

    ‘우리민족끼리’ 의식, 연북연공의식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그게 단가? 민생이 최대의 화두가 되고, 그래서 ‘대북 퍼주기’ 논리가 먹히는 조건에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한반도 평화가 군사비를 얼마나 줄이고 민생과 복지를 얼마나 증진시키는지, 남북경협 활성화와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이 남쪽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풍부하게 조사연구, 교육 토론했어야 했다.

    그래야 우리국민들이 평화가 가장 큰 밥그릇이고 통일이 가장 많은 일자리임을 깨닫고 평화로 통일로 달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평화통일운동은 그러하지 못하다. 1년에 수만 명이 북을 오가는 6.15시대, 먹고 살기 어려운 신자유주의시대에 맞게 주체, 의제, 방식과 태도 등을 풍부하게 혁신,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평화와 통일 운동이 서민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지 못했으며, 민족문제, 분단문제를 홀시하는 일부 진보인사들의 ‘통일지상주의’ 비난은 그렇다 치더라도 불필요하게 정파 갈등을 증폭시킨 측면은 없었는가를 반성할 일이다.

    둘째, 대중의 요구와 지향, 의식과 정서에 맞는 투쟁의제 설정과 투쟁방식을 올바로 구사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일반 대학생들의 고민은 등록금, 청년실업 등에 집중되어 있는데, 학생운동 주도세력은 그 중요성에 응당한 주목을 돌리지 못하고 자주통일 의제 중심의 선도적 투쟁을 계속 반복해왔다.

    물론 정세의 요구에 따른 정치 과제를 앞장서 수행하는 학생운동의 선도적 기능을 인정하지만, 청년학생대중의 당면 요구를 방기하는 편향을 보였다. 그래서 한총련은 지금 학생 대중으로부터 매우 고립적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 공백을 뉴라이트, 비운동권이 급속히 파고들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수년간 민주노총의 준비되지 않은 총파업투쟁 남발도 마찬가지다. 투쟁 주체인 조합원에 대한 충분한 교육토론을 기본으로 산업별, 지역별 조직의 특색 있는 사회개혁 요구와 실적의 선전을 통한 전민중적 지지 확대, 노사정 공간을 통한 요구와 주장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 동의과정, 정권과 자본의 악수, 즉 ‘손님 실수’의 최대 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준비된 총파업 전술을 구사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진보연대 주최의 민중총궐기는 주관주의적 투쟁노선의 집약적 표현이다. 투쟁주체의 준비 정도와 일반민중의 정서, 대선국면의 특성에 맞지 않는 요소가 많았다. 준항쟁 개념에 해당하는 ‘총궐기’를 선동하면서 도심 한복판인 서울시청을 집결장소로 미 대사관 진출을 공공연히 알리는데 민주노동당 정권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사전 원천봉쇄하지 않기를 바라는가.

    진보연대 민중총궐기는 주관주의적 투쟁노선

    애초 민중경선제와 함께 민중참여형 대중운동으로 제시된 100만 민중대회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렇게 나열적인 요구와 가두집회시위에 경찰과의 충돌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서민의 비전과 힘과 문화의 결정체’인 서민한마당으로 성격 짓고, 뚜렷한 대국민메시지를 부각하는 문화 형식의 대규모 정치행사를 통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조직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 백만 민중대회는 경찰과의 충돌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사진=진보정치)
     

    이렇게 정파를 불문하고 진보운동 전반이 대체로 사전 의식화 없는 실무적 동원주의, 뚜렷한 메시지 없는 행동주의, 전투주의가 만연해 있다. 특히 정당은 단체보다 민중의 의제와 창의적 투쟁방식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데 아직 민중참여형 진보정치활동 모범을 힘있게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진보적 대중정당에 맞는 조직운영원리를 확립하지 못하고 패권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하나의 사상과 노선으로 통일되어 있는 일사 분란한 혁명 전위당이 아니다.

    자주와 평등이란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계급연합당, 정파연합당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강령과 당헌에 동의한다면,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 여성, 영세자영업자, 진보적 지식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 누구든 함께 하며, 사민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주적 또는 진보적 민주주의자, 생태주의자, 민족주의자 등 어떤 진보주의자들도 함께 할 수 있는 합법정당이며 대중정당이다.

    이런 대중정당조직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지키고 통일단결을 유지, 강화하는가가 늘 숙제로 남아 있다. 자신의 계급 계층적 요구나 정치사상적 신념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갈등과 대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세상에서는 이를 단순히 다수결의 원리에 기초한 형식적 민주집중제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다수의 패권주의와 소수의 분파주의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쉽게 얘기하는 ‘집단주의’ 강조나 ‘개인주의’ ‘이기주의’ ‘출세주의’ 등 부르조아 사상의 찌꺼기로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8년간 다수파는 패권주의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른바 ‘자주파’는 자신들의 사상적 요구에 충실하지 못해 높은 지도력과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치사업’이나 ‘구동존이’는 구두선에 그쳤고 진심을 바치는 소통구조 마련에도 소극적이었다.

    정치가 본래 설득과 타협의 과정인데, 오히려 선이 아니라 악으로 취급되고 공식의결기구의 찬반토론 후 표결이라는 형식적 민주주의에 안주했다. 실력과 모범을 통해 승복시키는 원숙한 자세도 갖지 못했고 상식 수준의 양보와 공존의 룰을 선도하는 넓은 아량도 부족했다.

    이를 통해 당원들과 지지자, 나아가 민중의 통일단결을 높이 발양해야 할 책무를 게을리 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민주노동당 갈등과 분열의 주요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필자도 지난날 당 기관지 개혁과정에서 인과관계가 어떠하든 본의 아니게 패권주의적 결과를 야기한 데 대해 진보정치활동가로서 당원과 국민 앞에 다시 한 번 깊이 반성하며 향후 그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임을 다짐해본다.

    기관지 개혁과정 패권주의적 결과 반성, 승복시키는 아량 부족

    그렇다면, 일부 당원들이 낙담하는 그 패권주의의 근원은 무엇인가. ‘종북주의’ 때문이 아니다. 악의에 찬 매카시 용어에 다름 아닌 ‘종북주의’는 정치사상에 가깝고, ‘패권주의’는 조직사상의 범주에 있기에 하는 말이다.

    패권주의의 조직사상적 뿌리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써클주의’의 폐해다. 내공은 약한데 쪽수가 많을 때 패권주의 놀음을 하게 되고, 내공이 약한데 쪽수마저 적을 때, 분파주의에 경도되기 쉽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발전을 저해하고 자칫 망칠 수도 있는 패권주의와 함께 분파분열주의, 극단적 자유주의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정파써클이 사상적 내공을 키워야 하며, 이것이 불가하다면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당과 민중을 살기는 길이다.

    아무튼 지금 민주노동당은 탈당이 아니라 입당을 조직해야 할 때이다. 분당이 아니라 합당을 추진해야 할 때이다. 또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앞장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역사적인 6.15선언을 지지하는 모든 진보세력을 규합하는 진보대연합당 건설운동을 전개할 때이다.

    심상정 비대위체제를 중심으로 국민의 눈높이, 통합적 시각에서 민주노동당의 혁신을 다그치고 발 빠르게 총선민심 앞으로 달려가자. 진심을 바치면, 민심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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