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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위기 시대의 이야기 짓기
    [에정칼럼] 기후침묵 속에서 무지개 전환을
        2021년 06월 10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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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소설가 켄 리우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種)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진화했다”고 짚었다. 우리는 어떤 감정적 창발, 호르몬, 날씨부터 사회경제적 풍파까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아울러 저마다 자기 서사를 꾸린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촉발된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어찌 이야기해야 할지 곤란하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우리가 오랜 시간 혼란스러운 데에 그럴듯한 변명이 없지는 않다. 기후위기는 특히 대응하기에 너무도 촉박한 시간, 중앙권력의 부재, 차별화되었더라도 모두가 짊어진 책임, 미래의 가치에 대한 절하 경향 등의 특성으로 인해 ‘몹시 사악한’[1] 문제로도 여겨진다. 그러나 새로운 이야기의 샘을 틀어막고 있는 가장 커다란 바위는 권력의 침묵이다.

    왕왕한 기후침묵

    운동가 아룬다티 로이는 “침묵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일갈한 바 있다. 작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나 한편으로는 국내에서만 7,260MW 규모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 건설에 침묵해왔다. 

    국내외 총 10기의 건설·운영 중인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반대와 함께 탈석탄을 요구했던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이은호 위원장의 단식이 보름에 가까워지던 때에 P4G 정상회의(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가 개막하였다. 그리고 이틀간 개최된 P4G정상회의는 기후위기비상행동을 비롯한 여러 단체 및 시민이 행진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실천이 요원한 말잔치로 평가되는[2] ‘서울선언문’ 채택과 함께 마무리되었는데 참 요란하고 지독히도 깊은 침묵이었다. P4G정상회의가 폐막하던 둘째 날 거리에 모인 시민들은 대통령은 나와서 그린워싱을 중단하고 탈석탄을 속히 추진하라는 우리의 메시지에 응답하라고 저마다 목청껏 외쳤으나, 메시지의 수신자는 그때도 지금도 묵묵부답이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이야기는 민주적인 절차와 안전한 미래를 위한 비전 없는 한국판 뉴딜 속 그린뉴딜, 자가당착적 2050 탄소중립 선언,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경제적 구조적 변화 없이 고집하고 있는 현란한 기술들에 대한 비현실적 환상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한가로이 질척이는 관성의 어제와 쉬이 절망으로 그려지는 내일 사이에서 오늘의 우리는 욕지기를 느끼거나, 절망적인 어제와 바라는 내일 사이의 드넓은 간극에 멀미를 낸다. 

    기후불안과 어떤 울음

    기후위기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갈망하는 가운데 기후위기는 심리적 위기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앞장서 온몸으로 외치는 청년들의 기후불안이 심히 염려스럽다[3]. 기후불안이 기후위기에 사회가 대응하는 방식에 의해 구조화되는 만큼 개인의 정신건강 돌봄 이상으로 사회적인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 한다면, 기후와 관련된 불안으로 사회적 기능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4] 

    급속한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불확실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누군가는 용감하게 절망을 직시한다. 저마다 전환의 상과 경로를 마음속에 새기고 고치며, 견고하게 짜인 미로 같은 시스템을 함께 가로질러 어쨌든 더불어 살아보자고 애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동료시민들과 곁을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에 겨우 안도하고, 동요하고 따로 또 같이 울 것이다. P4G정상회의 마지막 날 몇몇 활동가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이는 기후침묵 속에서 더욱 명백하게 떠올랐다[5]. 그 순간 한 가지 분명하게 공명하며 가리킨 방향은 지긋지긋한 기후침묵의 파열일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이야기 짓기 – 사랑, 질문, 상상

    가수 이랑은 “여전히 우리는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노래한다. 가령 사랑은 어떨까. 경쟁과 배타성이라는 폭포에 흠뻑 젖어버린 것도 같은 사회에서 우리가 다시 서로를, 비인간동물을 사랑하고 우리가 진실로 생태계의 일부임을 ‘믿게’ 될 수 있을까? 한 배우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놀라운 일을 해낸다는 점에서 특히 예술로 ‘자연과의 사랑이야기’를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6]

    이런 질문들은 또 어떨까. 우리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를 서로를 더 돌보고, 더 함께하고, 더 연대해서 풀어갈 방법은 무엇일까? 물질적 안락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 실패한 소비사회는 한정된, 또는 고유한 속도로 회복하는 생태계 속에서 지속불가능하다. 탄소사치를 종용하는 지금의 사회와 이제는 이별하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 문명의 주요 에너지 획득 방식이 가치관을 결정한다는 다소 설레는 주장이 있다[7]. 핵발전과 화석연료발전이라는 시공간적 불평등의 표본과도 같은 발전방식을 지나보내고 나서 (적게, 효율적으로) 재생가능한 에너지만을 사용할 때 우리는 어떻게 거듭나게 될까? 

    여기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의 육하원칙, 주체와 이야기를 재구성하기 위해 마련된 공론장이 열린다(그림 참고). ‘탄소집약적 사회를 추동한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문명이 지나온 몇 곱절의 시간만큼 멍에를 지우는 원자력 발전, 더불어 생산지와 소비지가 괴리되어 책임이 방기되는 중앙집중형 방식의 체계와 이제는 작별’하자[8].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실천을 다르게 생각해보자. 전기차 이용, 전력효율이 높은 제품 사용, 일회용기 덜 쓰기, 분리배출 잘하기, 대중교통 타기 모두 중요한 실천들이지만 우리는 소비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치적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연대하는 시민’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주변을 살피며 용기내어 사랑하고 투명하게 분노하자. 대량폐기될 운명으로 생산되는 온갖 소비재들과 인간과 비인간을 가리지 않는 착취를 토대로 값싼 것들을 거부하고 다른 선택지를 원한다고 선언하자. 굳센 바위를 가르는 작은 식물의 뿌리에 대한 경탄 섞인 오랜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서 사랑하고 질문하고 상상하고 싶다. 

    본문에서 소개한 집담회 ‘세 번째 녹색전환 공론장: 에너지전환 육하원칙’ 웹자보

     당장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이 평등하게 드러나고 펼쳐지며 촉발될 상상들, 만나고 해체되며 뻗어나갈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녹색전환은 기존의 사회와 생태의 관계를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녹색은 비단 녹색만일 수 없다. 기후·생태위기의 원인이 소수자 차별, 노동 착취 등과 배타성을 근간으로 작동해온 정치경제시스템이라면, 결국 녹색전환은 무지개 전환이다.

    덧 : 마침 차별에 실질적으로 대응하는 힘이자 평등한 세상을 위한 최소한의 법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현재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 시대, 오색찬란한 세상에 다가서며 등장할 새로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모든 이의 평등한 존엄’을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하자. https://equalityact.kr/


    [1] Levin, K., Cashore, B., Bernstein, S., & Auld, G. (2007, February). Playing it forward: Path dependency, progressive incrementalism, and the “super wicked” problem of global climate change. In International studies association convention, Chicago, Il, February 28th–March (Vol. 3, pp. 79-88).

    [2] http://kfem.or.kr/?p=216709

    [3]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0/feb/10/overwhelming-and-terrifying-impact-of-climate-crisis-on-mental-health

    [4] Clayton, S. (2020). Climate anxiety: Psychological responses to climate change. Journal of Anxiety Disorders, 74, 102263.

    [5] 침묵 속에서 어떤 것이 보다 명백해 진다는 표현은 멸종반란한국 소모임인 ‘창작하는반란’에서 지연님의 말씀을 빌렸다.

    [6] https://www.theguardian.com/culture/2021/jun/01/mark-rylance-arts-should-tell-love-stories-about-nature-to-tackle-climate-crisis

    [7] 이언 모리스, 『가치관의 탄생』, 이재경, (반니, 2016).

    [8] https://greenduck.kr/post/xQ3aZuVygqvJVerWnqtk

    필자소개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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