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 지키려면 정규직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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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23일 08: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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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터뷰어에 대해 얘기를 하겠습니다. 이근원은 공공연맹 조직강화 본부장입니다. 보통 큰 규모 집회나 시위 때 야전 사령관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때론 ‘전투’가 치열한 가운데 경찰과 ‘길거리 담판’도 짓고.

그가 비정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해서 <레디앙>에 글을 보내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식구끼리, 또는 ‘동지끼리’ 하는 인터뷰가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깊이가 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자에 대한 기대로 그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습니다.

다음 첫 번째 인터뷰 기사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굉장히 깁니다. 단편소설 한편 이상의 분량입니다. 그래서 읽는데 오래 걸립니다. 필자에게 독자를 안중에 두지 않는 이런 분량을 편집자로서 그냥 내보내기 어렵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하라. 하지만 아쉽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길이를 자르기 위해서 그 전에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정독’입니다. 열심히 다 읽은 끝에 내린 편집자의 결론은 ‘자르지 말자’였습니다. 끝까지 읽을지 말지는 독자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편집자 주>

몇 번을 생각했다 접고, 약속했다가 일정 땜에 연기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용산역 부근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를 찾았다. 정말 많이 망설였다. 민세원.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 지부장.

나는 민 지부장이 연행을 피하기 위해 숨어있던 ‘안가’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옮길 때 운전사로 그녀를 처음 보았다. 싸늘한 눈매. 첨엔 그렇게 느꼈었다. 하긴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투쟁의 초기에 누굴 믿을 수 있을까?

인터뷰를 당해보긴 했지만 해보긴 처음인 아마추어와 이미 수십 번을 넘게 해 본 프로가 만나는 자리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를 고민,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 어눌한 자세로 만났다. 마침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매콤하다. 자리가 한결 부드럽다. 투쟁 대책을 같이 논의하긴 해 보았지만 이런 자리는 처음이다.

“왜 실장님이 직접 하세요?” “그냥 한번 해 보려고.” 이렇게 시작했다. 맏언니로, 투쟁을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 상황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게 무엇일까? 빤한 질문부터 던진다.

투쟁이 길어질수록 동지들이 힘들어지니까.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니까 최대한 빨리 쟁취하고 끝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늘 하게 되죠. 또 이렇게 열심히 하다가 각자 개인적인 이유로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데, 최대한 그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늘 고민하게 돼요.

잔인한 질문과 가슴 아픈 답변

   
 

380명에서 시작한 투쟁대오는 현재 90여명이 남아 있다. 심지어 율동패를 했던 ‘K투’도 해체되고, 얼마 전에는 핵심 간부였던 사람마저 떠난 걸 잘 알면서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도 민세원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투쟁을 같이 하다가 떠나는 동지들을 볼 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마음이 너무 아프죠.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끝까지 남아 투쟁하고 있는 동지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어쨌든 지부장 입장에서는 특히 정리해고 시점까지 같이 싸웠던 동지들에 대해서 늘 한결같이 마음이 너무 아파요. 구제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런데 그런 경우가 있나 봐요.

나가 있으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네 언제 마무리할 건데? 관광레저로 가든 어떻게 되든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다시 합류해서 같이 싸우자고 하면 “그건 싫고 다 해결되면 들어갈께.”라고 노골적인 대답을 한다는 거예요.

힘들게 버티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화나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저희 요구안이 쟁취돼도 조직적으로, 인간관계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모든 판단은 지금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결정에 달린 겁니다.

5번의 공권력 투입에 4번의 연행이 있었고,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 간부에 대해 7천만 원, 조합원 35명에 대해 3억 손해배상, 그리고 7명에 대한 체포영장은 이제 민세원 지부장만 남았다. 배달호 열사가 분신한 이후 잠시 가압류와 손해배상 청구가 주춤한 적이 있었다. 옛날 애기다.

각종 고소고발은 너무 많고요…. 뻔히 우리가 여기서 합숙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등기를 집으로 보내요. 부모님한테 충격을 주고 대오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김 웅 KTX관광레저 사장은 우리가 성희롱 문제로 기자회견을 한 걸 가지고 한참 있다가 명예훼손으로 넣었더라고요. 저랑 3명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어요. (웃음)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가해자 대부분이 오히려 피해자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하더군요. 강력 대응할 것입니다. 저희 일은 아니지만 같은 여성노동자로서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반성하기는커녕 적반하장을 보이다니요. 무엇보다 철도공사의 자회사가 얼마나 부실하고 방만하며 자격이 없는지를 알 수 있는 극명한 예이기도 합니다.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사람에 대한 사랑’

인생을 단번에 사는 사람이 가끔 있다. 남들은 십수 년 동안의 활동을 하면서 삭발하고, 단식하고, 수배되고, 구속되는 데 늦깎이로서 단숨에 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96년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그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민세원 지부장이 그 꼴이다. 아직까지 구속은 안 되었지만 구속의 칼날은 항상 그녀 앞에 있다. 그럼에도 버티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가장 큰 힘은 KTX 승무원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사랑, 애정 때문인 것 같아요. 애초에 지부장을 하게 된 이유도 다른 게 없어요. “나 몰라라” 하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는데 굉장히 눈에 밟혔어요. 그런 상황에서 승무원으로 고통스럽게 일하고,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만 둘 수 없었고 도망갈 수 없었어요.

지부장을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본래의 자신감을 찾고, KTX 승무원으로서 당당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투쟁을 하면서 쌓인 정과 애정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과정에서 책임감도 커지고. 그 외에는 분노가 물론 큰데….

자신의 존재에 대한 파악을 못하고 살아왔어요. 제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못 찾고 있었죠. 서른이 넘을 때까지도 내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나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래서 “돈이 있어야 편하게 살 수 있으니 돈을 안정적으로 잘 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기준으로 생각했어요. 정작 제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몰랐다가 KTX승무원으로 부당함을 겪고 투쟁을 하면서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8개월 동안 수배상태로 자유가 구속되어 있고 심신이 힘들고 마음 아픈 일이 많지만 얻은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해요. 제 삶의 중심을 찾았으니까요…

그녀는 특이하게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5년 동안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도 물론 많은 비정규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때는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국내선을 전담할 승무원을 계약직으로 채용했었습니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으로 일했던 경력자만 재채용을 시키되 계약직으로 일하게 한거죠. 대한항공 퇴사 후 다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재채용하는 것이라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저도 대한항공을 그만두고 두 번 다른 곳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지만 스스로 잠시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비정규직이었어도 경력을 인정받고 인격적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크게 문제의식을 못 느꼈지요.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큰 사회 문제이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근데 KTX승무원이 된 후 저와 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들으며 알게 됐습니다. 상시적인 해고위협 등 부당한 언행에도 해고될까 내년 재계약이 안 될까 무서워 관리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고, 온갖 차별과 착취를 당하면서 알게 된 거죠.

그냥 정의가 아니라 ‘실천하는 정의’만이 이길 수 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녀가 인터뷰했던 다른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260여일(이 인터뷰는 11월 15일에 진행되었으므로 그 시점을 기준으로)에 달하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을까? 그것도 철도공사라는 어마어마한 권력에 대항하면서.

“난 더 이상 정의가 이긴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실천하는 정의’만이 이길 수 있다. 내가 정당한 길을 선택했으니까 싸운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도대체 그 초심이 무엇인지, 승리에 대한 믿음은 어디서 오는지가 궁금하다.

글쎄요. 생각보다 힘들고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한 이길 것이라고 봐요. 모든 게 변화하고 있거든요. 오늘로 260일인데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고 성장했습니다.

철도조합원, 교수, 대학생, 여성계, 시민들이 외주 위탁의 문제에 대해 인식해가고 있어요. 물론 1대 1로 싸워서는 자본과 정권을 이길 수는 없죠. 하지만 자본과 권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대중을 이기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중이 인식하고, 알아가고, 함께 할 때 이길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여론이 중요한 거겠죠. 아무리 힘으로 누르고 싶어도 찍어 누를 수 없을 때가 온다고 생각해요. 그만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60일이 걸렸고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포기하지 않는 한 된다고 봅니다. 그것을 앞당기기 위해 전술과 전략이 필요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표현이 식상할진 몰라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눈앞의 것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겠죠. 하지만 눈앞에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는 소수의 투쟁하는 동지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자그마한 실천과 힘을 모아 저항한다면 막강한 자본과 권력도 이길 수 있지요. 그래서 모두 함께 알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와 KTX 조합원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생각이나 인식이 바뀔 수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통한다면 노동자로서,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한다면 우리가 변했듯이 사람들이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자신들처럼 사람들이 바뀔 수 있다는 신념은 얼마나 위험한가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근거 없는 낙관주의? 대중에 대한 무한한 믿음? 자신들이 바뀌었듯이 사람들이 바뀔 수 있다는 신념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그러나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세상은 바뀐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만들어 온 것은 아닌지….

투쟁은 사람을 바꾼다. 단지 노동 문제만이 아니라 모순이 가득한 한 사회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다른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민세원 지부장이 공교육에 대해 “질 좋은 소모품을 생산하는 교육”이라는 표현을 쓴 게 눈에 들어온다.

다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공교육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자본의 좋은 돈벌이 수단과 비즈니스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죠. 특히 공교육 자체의 내용도 실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부와 자본이 원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죠.

70~80년대 솔직히 그래왔잖아요. 저만해도 자라면서 북한사람들을 빨간 늑대, 도깨비를 그린 그림으로 인식하면서 자라왔어요. 요즘엔 노골적이지 않은 세련된 방법으로 세뇌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친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게 하고, 노동자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알고 자본과 권력의 폭압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의식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권 교육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지상주의, 출세지향주의, 이기주의로 점철된 교육과정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들어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사고할 수 없게 하는 겁니다.

대학생들 아무리 노력해도 40%만 정규직되는 현실 알아야

   
 

언젠가 KTX 집회에서 “아무도 학교에서 우리가 졸업하고 나가서 일할 사회가 이런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비정규직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절규하는 조합원을 본적이 있다.

노동력의 가치를 제일 인정 받을 때가 대학 졸업 전후인데 이때부터 살인적인 취업난 때문에 “비정규직이건 정규직이건 취업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졸업을 앞둔 사람들이 말이죠. 저희가 몰랐듯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는 거죠.

대학생들을 더 많이 만나서 얘기 나누고 싶어요. 하루 20시간씩 공부하고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 어떤 노력을 해도 이미 이 사회구조 속에서는 40% 정도의 인원만이 정규직이 될 수 있습니다. 생존권과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개인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데 공부만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죠.

어떤 것이든 잘못된 사회 문제를 푸는 데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저희만 하더라도 KTX승무원이 되고나서 직접 체험을 하고 부당한 것을 고치고자 하니 사용자가 대중을 상대로 쉽게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호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기들 문제가지고 자기 좋자고 시끄럽게 싸우는 거라고 말이죠.

흑색선전과 호도를 막고 대중과 함께 하려면 아직 내 문제로 다가오기 전에, 사회에 나가기 전에 자신이 설 땅 자체가 없는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녀는 수배 중이라 대학생들을 자주 만나지 못한다. 찾아와서 인터뷰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뿐.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인식을 하고 있느냐 못하고 있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인식만 하고 실천을 안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죠. 지금 저희 같은 경우는 아주 많은 것을 버리고 감내해야 하지만 학생들이나 시민들은 본인에게 아무런 부담과 희생도 안 되는 아주 조그만 실천 투쟁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거죠.

20대 노동력 가치를 인정 못받으며 그 이후 어떻게 살겠습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는 20대가 가장 노동력의 가치를 존중받을 시기인데 이때부터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면 30대, 40대 인생을 어떻게 영위해 가겠습니까. 노동력의 가치가 가장 높을 때조차 선택의 여지없이 비정규직으로, 하청노동자로 입사할 수밖에 없다면, 나이를 먹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면 얼마나 힘들게 살겠어요?

이미 사회양극화 심화로 인해 KTX여승무원 중에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 몇몇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정리해고, 명예퇴직, 사업실패 등으로 경제력이 없으시고 형제 중 한사람이라도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다행인거죠.

사회 초년생 중 과반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수밖에 없고 사회 양극화 심화로 인해 온 가족이 영향을 받아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모습입니다. 자본가들이 자본을 더 부풀리기 위해 다수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매스미디어와 제도권 교육을 통해 계속해서 개인이 공부만 열심히 하면 계급상승도 가능하고 잘살 수 있다고 세뇌되고 내 의식을 지배당하고 있는 거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학생 때부터 지식을 채우면서 소수에 의해 다수가 지배당하는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꾸는 투쟁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노력한 만큼의 생존권을 얻을 수 있고 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역할과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죠.

이제 투쟁하지 않으면 지금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먹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즉, ‘어떠한 형태의 노동력이든 내 노동력을 제공해서 급여를 받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리가 없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빠른 속도로 점점 더 자리가 없어지겠죠.

20년 넘는 성장과 교육과정 속에서 나 자신의 능력만이 중요하고 그것만이 충족되면 내 삶을 막아서는 것은 없을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20년 넘게 나만 잘 하면 잘 사는 줄 알았죠

지금 교육은 어떤 개인이 사회인으로서 성공 못하거나 직업을 잡지 못하는 것을 전적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KTX여승무원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한순간의 투쟁이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고, 세상을 알게 만든다. 그녀가 만일 수배 중이 아니라면, 아니 이후 투쟁이 끝난 후에 대학생들과 대화를 하게 된다면 아마도 풍부한 설득력을 가지고 세상의 많은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배 중인 그녀는 외부 연대집회에 가질 못한다. 서울역에서 열린 100일 문회제도, 종로에서 열린 200일 문화제도 가지 못했다. 투쟁하는 사업장의 다른 ‘동지’들을 보면서 보다 깊은 인생을 만나는 기회를 차단당했다. 당연히 공공연맹이나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에 대한 얘기를 물었다. 인간사가 그렇듯이 오래 있은 사람보다 처음 본 사람에게 더 많은 게 보이는 법이다.

사실 지부장을 한지 이제 2년도 안되었는데 파업을 270일이 되도록 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서 그런지 벌써 노동계에 회의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그런 자신을 보면서 15년, 20년 자신의 사리사욕을 다 버리고 노동운동을 해 온 분들은 어떤 마음이실까, 문득문득 파고드는 회의와 좌절을 어떻게 극복하실까 궁금합니다.

물론 문제를 느끼는 부분은 노력해서 바꿔야겠죠. 비정규직의 문제를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사용자의 언행이에요.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문제가 되죠. KTX승무원 이전에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임금을 뺀 복지 등 나머지 부분에 있어선 정규직과 거의 비슷한 대우를 받아서 불만이 없었어요. 무엇보다 제 경력을 활용할 수 있었고 인정도 받았죠.

그런데 KTX승무원은 달랐어요. 상시적인 생존권 위협도 언행의 문제죠. “생사여탈권을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내 맘이다”라며 사용자 마음 내키는 대로 언행을 하고 지시, 명령을 하는데서 생기는 모멸감, 수치심, 분노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노동계에서도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권위주의와 부조리, 차별 같은 것 말이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거나,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게 노동운동인데,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 동지가 되고 조직이 되는 건데 노동자 사이에서도 계급을 나누고 차별을 하니까요.

   
 

노동계에서 느낀 권위주의와 차별

두 가지 사례를 얘기한다. 하나는 얼마 전 국회 앞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에 대한 장기투쟁 사업장의 1박 2일 투쟁과정. 국회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돌다가 KTX의 한 동지가 국회 앞에서 경찰과 전경들이 둘러싸고 폭행을 가해서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민주노총 총파업 유인물에 본인에게 한마디 알림도 없이 사진을 게재한 일. 민주노총 위원장을 간선으로 뽑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투쟁에 참여하는 각 투쟁사업장 단위가 모두 모여 회의를 통해 충분한 협의가 된 것을 결정해 진행하는 것이 아니어서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일 아침까지도 뭘 하는지 몰랐어요, 이건 정말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투쟁전술을 배치해 효과와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낼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없었죠. 제 얼굴사진 문제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사실 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란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이건 매우 비약적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제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민주노총 홍보실에 전화해서 “본인의 동의도 없이, 물어보지도 않고 사진을 10만부 제작하는 선전물 1면에 써서 당황했다. 왜 그랬어야 했는가?”물었더니 “KTX 지부장 정도되면 공인이니까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다른 남자 노동자들은 이런 문제제기를 안 한다”고 대답하셔서 더욱 할 말을 잃었어요.

아무리 사소하게 생각되는 일이라도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봐요. 자본가와 사용자를 욕하지만 그들과 닮아가는 지도부가 있지는 않은지 걱정됩니다. 개인적인 욕심과 오판을 견제해줄 시스템이 없으면 그 누구도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을 전적으로 개인의 수양에만 맡기는 것만큼 불안정한 것은 없죠. 노동계가 초심을 지킬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잘 구축하고 보다 노동자간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IMF로 인해 졸지에 강제 퇴출되고, 노조 위원장이던 신길수 위원장이 자살을 하고, 144일 동안 투쟁을 했던 동아엔지니어링 노조의 투쟁 마지막에 나는 조합원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 “이제 여러분은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거리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따스한 눈길이라도 던져주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민세원 지부장은 투쟁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총 정리하는 차원에서 말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파업 전후 우리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파업 전과 수개월의 파업을 거친 지금을 비교해 무엇이 변화됐고 달라졌는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싶어요. 고통스런 경험이었지만 분명 큰 가치와 의미를 갖는 경험을 통해 나란 인간의 사고와 의식이 어떻게 변화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답을 지켜봐야겠죠.

KTX 조합원들은 이상수 노동부장관을 만났을 때도 그렇고, 각종 인터뷰를 봐도 승무원으로서의 안전을 강조한다. 안전에 대한 강조가 투쟁의 명분을 찾기 위한 전술인가, 아니면 실제로 그런가를 물었다.

어떤 노동자가 투쟁을 위해 거짓 전술을 생각하겠는가! 당연히 실제 안전의 문제입니다. 제가 항공사 객실승무원으로 일하지 않았다면 잘못된 부분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KTX는 국내선 항공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항공기에는 300여명 탑승객을 위해 6명의 승무원이 근무해요. 겨우 주스 한잔 주는데 왜 승무원이 필요하죠? 항공기 사고가 매일 일어나나요? 그런데 대한항공 승무원을 보고 “연봉도 높은데 다 없애고 차라리 요금이나 깎아 달라”고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근데 KTX 승무원은 별로 필요한 것 같지 않으니 없애고 요금을 낮추라는 말을 하는 네티즌도 있더라구요. 저는 왜 그럴까 생각을 많이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선입견 때문인가 싶어요. 철도에는 여성채용 비율이 5%도 안돼요. 성차별적 채용과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퍼센티지죠.

철도는 수십 년 동안 남성 승무원만이 승무원 업무를 했고 그러다 보니 최근에 생긴 여성승무원들은 남성들에 비해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업무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듯해요. 구조조정으로 인해 역직원도 줄여서 이제 취객이나 무표자나 정신이상자, 노숙자들도 쉽게 KTX를 비롯한 모든 열차에 탈 수 있습니다.

안전 강조 괜히 하는 소리 아니다

이들로부터 일반 승객들을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승무 인력인 것입니다. 열차 1대가 18칸, 388미터이고 칸마다 격리되어 다른 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도 없는데 남자승무원 혼자서 1,000명의 승객에 대한 안전을 충분히 책임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도공사의 안전 불감증은 KTX를 이용하는 국민들을 생각하면 큰 죄악이라 생각합니다.

국민의 혈세로 건설한 KTX를 비싼 요금을 지불하고 이용하는데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책임지라고 말하는 철도공사 경영진의 태도를 이제는 국민이 용서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가 덤벼도, 화재가 나도, 고장으로 환승할 때도 스스로 혼자 해결해야 하는데 거기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승무원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죠.

투쟁은 감동이 없으면 계속 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날 때 마다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자신도 모르게 들기 일쑤다. 인생을 살면서 투쟁하지 않는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감동적인 일이 있는 법이다. 그게 투쟁의 힘이다.

너무 많아서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일단 최근에는 제가 삭발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수배 중이어서 밖의 활동을 못하기 때문에 제가 지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해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각오했기 때문에 저는 담담한데 조합원들이 많이 마음아파하고 결의하는 모습을 봤어요.

깎이는 사람보다 깎는 사람이 더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을 겪게 한 철도공사에 대한 분노와 전의를 더욱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인권위원회가 성차별적 고용을 수정하라고 권고안을 발표한 날 얼마나 승리에 목말라하고 올바른 판단에 굶주려 있었던지 전 조합원이 정말 밝고 환하게 웃었어요. 너무 오랜만에.

투쟁 이후 처음으로 그렇게 웃는 걸 본 것 같아요. 전 그 자리에 못 나가서 사진으로 봤지만 조합원의 기쁨이 그대로 전해지더군요. 그걸 보면서 다시 한 번 반드시 승리할 것을 결의했죠.

철도 정규직 노동자 연대가 아주 중요한 이유

모든 투쟁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여러 가지 고통이 있겠지만 자본주의 아래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이 없다는 고통도 크다. KTX와 달리 불법 파견을 인정받고도 복직하지 못한 경마진흥 노조 조합원들은 이제 생계비를 벌면서 투쟁하고 있다.

1년 넘게 투쟁하고 있는 충청남도에서 운영하는 학생 기숙사인 충남학사 노조 위원장은 심야에 대리운전을 하면서 투쟁하고 있다. KTX는 철도노조가 지원하고, 실업수당을 받고, 양말을 팔아 조합원들에게 생계비를 조금이나마 지급했었다. 이제는 그마저도 끝난 상태다.

   
 ▲ KTX 후원계좌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CMS를 철도 내부, 외부에서 받으려고 해요. 이철 사장이 철도 정규직 조합원들이 우리가 철도공사에 직접고용 되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해서 철도 노동자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몇 명이 참여하는지가 전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하지요. 안팎으로 많이 참여해주시면 이철 사장도 KTX투쟁을 더 이상 허투루 보지 않고 정규직 핑계를 대지 못할 겁니다.

재정을 위해 본격적으로 홈페이지도 만들고, CMS와 함께 모금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쯤 되면 이철 사장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마침 나는 수유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돌아 온 사형수’라는 그의 선거 포스터를 본 기억이 있다. 이철 사장과 마찬가지로 민청학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던 사촌형 때문에 나는 그에게 은근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다.

굉장히 크게 실망했지요. ‘민주화의 투사’라는 이력을 간판으로 정치를 했고 철도공사 사장을 거쳐 다시 정계로 나가겠죠. 노동운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민주화 운동과 다르지 않지요. 그런데 이철 사장은 사람의 인권과 노동자의 인권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에게는 인권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KTX여승무원도 인간인데 2년 동안 일한 세월을 맘대로 지워버리고 무시하고 해고하고, 공권력 투입과 연행 및 각종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등으로 고통을 주고 있죠. 다른 사람의 인간된 삶과 권리를 짓밟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큰일 나지요.

이철 사장은 노동자에게는 인권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우리 역사에서 그런 비참한 일들은 이미 충분히 많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또한 죽었습니다. 국민이자 노동자인 KTX여승무원과 철도노동자를 탄압하고 착취함으로 인해 수백 명의, 수천 명의 인권을 유린한 사람이 국민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제가 앞장서 막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은 이 땅에 사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한 말이니 이철 사장님께서 KTX여승무원을 더 탄압하는 빌미로 삼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수배중인데 투쟁이 길어지고 있으니까 빨리 감옥 갔다 나와서 투쟁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죠. 서울지방본부 본부장님이 출두할 때 같이 출두해야할지 고민했었어요. 5월 10일 이철의 대표님이 연행될 때 같이 갔었으면 제일 좋았는데….지금은 출두하면 투쟁이 끝날 때까지 못 나오게 할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현실도 아마 그럴 거예요.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 현장에서 호흡할 수 없다는 것이 제일 큰 고통입니다. 특히 간부들이 이런저런 활동으로 힘들어하는데 덜어줄 수가 없는 것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기도 해요.

언젠가는 투쟁이 끝날 것이다. 그녀는 무엇을 하고 싶어할까?

   
 

일단 대중의 의식과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일어났던 촛불 시위를 보면서 대중투쟁에 대한 가능성을 많이들 생각했을 거예요. 일상에서도, 투쟁 중에도, 투쟁 전후에도 다양한 교육과 지원이 필요한데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공부를 더해서 교육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뜻 깊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만약에 그녀가 원하는 대로 교육을 하게 되서 정규직으로 갓 입사한 잘 나가는 공기업의 신입사원 교육에 간다면 뭐라고 할까?

설득력을 가지려면 교육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많은 것들을 검토하고 모니터링 해야죠.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매달 몇 백만 원을 벌든, 몇 십만 원을 벌든 모두 노동력을 제공해서 급여를 받아 살아가는 같은 노동자라는 것이죠. 사용자는 노동자가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합니다.

소수의 정규직들에게는 엘리트의식으로 무장시키고 환상을 심어주면서 스스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고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으로 분열시켜 단결하지 못하게 하지요. 아마 이런 주제로 얘기할 것 같아요.

푸념은 몇번 했지만 후회는 없어

데모를 결심하고 처음 한 생각은 ‘내가 환갑이 되어서도 정말 오늘의 결심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생을 돌아보면서 지부장이 될 걸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푸념을 한두 번 하긴 했지만 후회하지 않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제가 투쟁을 하면서 얻은 게 더 많다고 생가해요. 수배 상태라 활동을 못하니 건강도 별로 안 좋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지만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지를 알았으니 큰 것을 얻은 거죠. 삶의 중심을 찾은 것이니까요.

정말 말을 잘한다. 청산유수다. 그리고 생각이 많다. 하루 종일을 같이 수다 떨고 있어도 재미있다. 그만큼 다양한 영역의 고민을 한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공인이 되어 버린 걸 제일 싫어하지만, 거부할 수도 없고 해서 포기한 상태란다.

땀 흘리는 운동을 하고 싶고, 평영도 배우고 싶고, 스킨 스쿠버도 하고 싶어 한다. 현재로서는 물론 꿈이다. 언젠가 그녀가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바다 속을 누비는 걸 볼 수 있을까?

저도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청소하시는 분이나 막일하시는 분들은 비정규직으로 써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시각에도 제가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죠. 그러나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권리는 대통령이나 노숙자나 똑같이 갖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권리와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으려면 반드시 모든 노동자는 정규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가피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시적인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정규직으로 일하며 생존권에 대한 위협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간단한 진실을 모든 노동자가 함께 인식한다면 이 사회가, 세상이 바뀔 수 있겠죠. 나에게 생존권이 중요하듯이 다른 사람들의 생존권도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노동자가 인식한다면요.

모든 것을 버리고 감내하며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향해 비난부터 퍼부을 것이 아니라, 무슨 이유가 있는지부터 관심을 갖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뻔한 말이고, 다 아는 얘긴데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다면요.

그런 세상이 올까?

많이 힘들겠지요. 한마음이 된다는 게 힘들다는 걸 이 조그만 조직 안에서도 느껴요. 출신 지역과 기수, 나이 등 각자의 차이를 온전하게 극복하고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차이를 없앨 수는 없어요. 차이를 인정하는 속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기 위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인식의 깊이만큼 판단이나 선택이 달라지는데, 저는 아직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70분짜리 MD 녹음기 테이프가 다 되어 비상용 MP3를 꺼내 다시 녹음을 하기도 했다.

그녀를 처음보고 왜 ‘싸늘한 눈매’로 기억했는지 모르겠다. 전화의 끝이 항상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눈꼬리가 항상 둥글게 되는, 잘 웃고 각박한 투쟁 속에서도 항상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는 그런 여유 있는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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