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을 꿰뚫는 지혜의 드라마
    [그림책]『마법사의 예언』(호르헤 부카이 글,구스티 그림/ 키위북스)
        2021년 06월 09일 09: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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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살인 계획

    옛날 어느 나라에 아주 못된 왕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왕은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그러고도 만족할 줄을 몰랐습니다. 왕은 신하와 백성들로부터 사랑과 존경까지 받고 싶었습니다. 왕은 걸핏하면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

    “폐하, 당연히 폐하가 가장 강한 분이십니다.”

    신하들은 두려움에 떨며 대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왕이 아무리 강한들 예언을 하는 마법사보다 힘이 셀 수는 없다.’

    알아보니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마법사는 뛰어난 예언 능력으로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질투심에 휩싸인 왕은 마법사를 없앨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선 파티를 열어 마법사를 초대한 뒤 사람들 앞에서 예언할 수 있는지 묻고, 아니라 대답하면 그동안 거짓말을 했으니 죽이고, 예라고 대답하면 마법사가 죽는 날을 예언하라고 한 뒤 무슨 말을 해도 죽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파티가 열리고 왕은 마법사를 불러냈습니다. 과연 위대한 마법사는 왕의 계획대로 죽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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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의 한 장면 같은 표지

    그림책 『마법사의 예언』은 독특한 콘셉트의 표지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표지가 액자 그림입니다. 마치 갤러리에 전시된 명화처럼 고전적인 금빛 액자 안에 표지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의 주인공은 마법사가 아니라 또 다른 주인공인 못된 왕입니다. 못된 왕은 빨간 매부리코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은 너무나 뚱뚱한데다 화려하게 차려입어서, 왕의 몸통만으로 그림이 꽉 차 있습니다.

    그림 작가 구스티의 과장되고 뚜렷한 캐릭터들은 작품 전체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상대적으로 위대한 마법사는 비쩍 마르고 흰 수염을 길게 길렀습니다. 눈은 크고 깊고 선한 빛을 냅니다. 특히 실루엣으로 구현한 왕의 마법사 살인 계획 장면은 마치 그림자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강렬합니다. 더불어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변하는 나라의 풍경은 장면마다 이 독특한 드라마가 지닌 온도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영혼을 꿰뚫는, 지혜로운 드라마

    그림책은 시각 예술입니다. 그림 작가 구스티가 그려낸 캐릭터와 톤과 매너는 제 영혼의 취향을 완전히 매료시켰습니다. 그리고 펼쳐 본 그림책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제 영혼을 관통할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모두 가진 자가 나를 죽이려고 할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아무리 예언의 능력을 지닌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나를 죽이려는 마음을 먹은 왕을 어떻게 당할 수 있을까요?

    그림책 『마법사의 예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무나 놀랍습니다. 도무지 수수께끼 같고 무시무시한 상황에서도, 지혜롭고 무시무시한 예언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마법사의 지혜롭고 무시무시한 예언은 마법사 자신의 목숨을 살립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법사의 예언은 탐욕스러운 왕의 영혼마저 구원합니다.

    살인자의 마음을 돌려놓는 지혜

    세상에는 나를 질투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질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질투하는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누군가의 장점을 발견하고 부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질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볼 줄 아는, 좋은 안목을 지녔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미움이 깊어지면 실제는 아니더라도, 상대방을 말이나 생각으로 살해할 수는 있습니다. 누구나 말이나 생각으로는 쉽게 살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살인자의 마음을 돌려놓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는 마법의 지혜 같은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혜를 구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있습니다. 경청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마법사의 예언』에서도 마법사의 지혜로운 예언은 왕의 이야기를 경청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마법사는 지혜로웠을 뿐 지혜로운 대답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신은 마법사에게 지혜를 주었을 뿐 정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은 모든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습니다.

    놀라운 옛이야기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다!

    호르헤 부카이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에는 엄청난 반전과 삶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에 입혀진 아름다운 옷이 바로 구스티의 그림책입니다. 구스티가 만들어낸 그림책의 세계는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경이롭습니다.

    놀라운 옛이야기가 아름다운 그림책이라는 옷을 입었을 때, 옛이야기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사람처럼 이 서점 저 서점을, 또는 이 집 저 집을 활보하며 우리 마음에 바람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저는 선량한 왕처럼 그림책 『마법사의 예언』에게 명령하고자 합니다.

    “그림책아! 너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널리 전하여라!”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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