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조장 개발정책 개혁 내용 없어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인력 감축과 공공택지 입지조사권한 이관 등이 핵심이다. 업무상 얻은 미공개 정보를 유출, 활용한 부동산 투기로 이득을 취한 ‘LH 전·현직 직원 투기 사태’에 이후 내놓은 대책이다. 당초 LH를 해체하는 수준의 강력한 쇄신안, 투기를 조장하는 공급정책의 전면적 전환 등의 요구가 나왔었는데, 이러한 기대엔 못 미치는 미흡한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7일 오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공공택지조사과를 신설해 LH가 해오던 입지조사 업무를 국토부가 직접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노 장관은 LH 혁신방안 발표 후 질의응답에서 “국토부에 공공주택추진단이라는 조직이 있다. 이 추진단 안에 공공택지조사과를 신설해 조사업무를 전담할 계획”이라면서 “국토부 전담조직은 20명 내외로 계획하고 있다. 현재 LH에서 담당하고 있는 인력 113명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측은 LH 대신 입지조사 업무를 하게 되는 국토부의 내부정보 유출·활용 우려에 대해선 “공무원 조직은 가장 공공성이 큰 조직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강한 통제장치가 내부적으로 있고, 거기에 의해서 내부 통제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LH에 대해 실시하려 하는 내부통제장치를 국토부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입지조사 권한을 국토부로 이관해도 후속절차를 LH가 담당한다면 LH가 미공개 개발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엔 “토지에 대한 투기 사태의 경우에는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사전적으로 유출해서 재산상 이득을 취한 경우”라며 “이와 관련해서 택지로 신규로 지정되고 거기에 대해서 발표가 된다면 그 후속절차의 경우에는 이미 공개된 정보에 해당되기 때문에 미공개 정보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LH 인력도 감축하기로 했다. 시설물성능인증 업무와 안전영향 평가, 도시·지역개발, 경제자유구역사업, 자산의 투자·운용 업무 등은 축소·폐지하거나 타 기관으로 이관하는 등 기능 조정 등을 통해 LH 인력의 20%를 감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재산등록 대상을 현행 임원 7명에서 전 직원으로 확대하고 연1회 부동산 거래조사를 실시한다. LH의 전 직원은 실제 사용하거나 거주하는 목적 외에 토지 취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실수요 목적 외 주택·토지소유자는 이를 처분하지 않을 경우 고위직 승진 배제하기로 했다.
임직원이 보유한 토지현황을 신고하고 관리하기 위한 임직원 보유 토지 정보시스템을 마련하고, 신도시 등 사업지구를 지정할 때 지구 내 토지소유자 정보와 임직원 보유 토지 정보를 대조해 투기가 의심되면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또 LH 임직원의 위법·부당한 거래행위와 투기 여부를 전문적으로 감시하는 준법감시관 제도를 도입하고 준법감시관은 외부전문가로 선임키로 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외부위원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취업제한 대상자도 현재 임원 7명에서 이해충돌 여지가 큰 고위직 529명으로 확대하고, 퇴직자가 소속된 기업과는 퇴직일로부터 5년 이내에 수의계약을 엄격히 제한한다. 설계공모나 공사입찰 등 각종 심사를 위한 위원회에서 LH직원은 배제하고 임대주택 매입 시 직원과 친척의 주택은 배제하기로 했다.
야당과 시민사회계에선 정부의 이번 방안은 매우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LH 전·현직 직원은 물론 공직사회 전반에서 내부정보까지 활용하며 부동산 투기 범죄 저지른 배경엔 돈벌이 위주의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급정책의 상업화’라는 본질은 건들지 않으면 LH사태와 같은 문제는 다른 기관에서 또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LH 문제의 핵심인 ‘상업화 구조’ 개혁 없는 모양 바꾸기에 불과”
정의당 부동산투기공화국해체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가 발표한 LH 혁신 방안은 LH 문제의 핵심인 ‘상업화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도 없는, 모양 바꾸기에 불과한 개편안”이라고 비판했다.
심 의원은 “LH는 겉으로는 공공기관이지만 실상은 주택을 통해 돈벌이에 나서는 상업화에 집착해 왔다. 교차보조를 명분으로 땅 장사, 집 장사에 공공연히 나섰고 이 과정에서 개발 후보지 조성과 보상, 주택 공급 및 분양 등 전 분야에서 권한도 집중됐다”며 “이번 LH 직원 투기 사건 역시 이러한 상업화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LH 혁신은 단순히 LH의 조직 개편, 기능 조정의 문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돈벌이 경영을 중단하고 온전히 주거공공성에 전념하도록 조직체계를 완전 혁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무분별한 개발정책이라는 본질 건들지 않은 미흡한 혁신안”
시민사회계 또한 본질을 빗겨간 대책이라고 혹평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이날 <레디앙>과 통화에서 “(LH 사태의) 본질은 건들지 않는 미흡한 혁신안”이라고 비판했다.
김 국장은 “LH 사태의 본질은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무분별하게 개발정책을 추진했고, 오히려 이 정책을 LH 직원들이나 다른 공직자들에게 개발 정보를 제공해서 그들이 투기에까지 악용한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공직자 규제와 감시로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토부에 입지조사 권한을 이관한다는 것 역시 대규모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라며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LH가 주택공급 정책을 계속해야 한다고 하지만, 3기 신도시 대책 발표 이후에도 집값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주택이 투기의 수단화 되는 원인 해소하지 않으면 아무리 공급해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고 투기에만 악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론 투기를 조장하는 개발 정책을 손보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 LH 해체 수준의 쇄신이다. LH는 공공주거 복지 기능만 남겨야 한다”고 했다. 특히 “서민에게 필요한 주택을 공급하려고 한다면 대규모가 아닌, 소규모로 국공유지 활용해서 지방공기업 중심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 대규 강제 수용, 환경파괴 중앙정부 중심의 개발정책은 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 사태가 LH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규모 공급정책을 악용한 LH, 국토부, 국회의원, 시의원 등 광범위한 공직자들의 개발정보 활용한 투기행각이 문제였다. 이런 문제 해결하려면 결국 공직자들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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