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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 『두 얼굴의 무궁화』
    출판사 절판 조치, 감수자도 철회
    [인터뷰] 무궁화에 대한 왜곡과 거짓에 맞섰던 조민제 변호사
        2021년 06월 07일 0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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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에 ‘푸른솔의 식물생태 이야기’를 연재하던 필자이기도 한 조민제 변호사는 최근 몇 년 동안 무궁화 꽃을 둘러싼 왜곡과 거짓에 맞서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두 얼굴의 무궁화』라는 책의 논지에 대해서는 강하고 끈질지게, 근거를 제시하면서 맞서왔다. 무궁화 꽃의 정치적 왜곡과 과잉 해석에 대해서 경계를 하면서, 그렇지만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 속에서 존재해왔던 무궁화에 대해 친일의 꽃이자 상징이라고 왜곡하는 것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그 책을 출간한 출판사와 감수자였던 광복회장도 조 변호사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출판과 추천 의사를 철회하기도 했다. 조민제 변호사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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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  <두 얼굴의 무궁화>라는 책 및 그 저자와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고 최근 그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출판 중단 의사를 밝혔다고 하던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이 책의 추천사를 썼던 김원웅 광복회장도 공식적으로 추천 의사를 철회했다는 것도 설명 부탁 드린다.

    조민제 : 『두 얼굴의 무궁화』를 출판한 한국학술정보(주)(이담북스)가 올해 5월에 판매를 위해 서점에 배포했던 책을 수거하고 추가 판매를 중단하며 책에 대한 절판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보면 판매가 중단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남궁억 선생과 독립유공자의 후손들께서 항의와 노력이 있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작년 10월에 출판사에 정식으로 감수와 추천 철회의 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책의 내용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저자만을 믿고 출판과 감수가 이루어졌던 것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뒤늦었지만 절판과 감수 철회 조치는 스스로 잘못을 시정한 것으로 스스로 명예를 지켰다고 본다.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를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도 용기이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천연기념물 제520호 강릉 방동리의 무궁화(촬영자 : 우리무궁화연구소 이춘강 소장)

    레디앙 : 조 변호사는 이 책의 논지, 무궁화는 일제가 우리 민족에 의도적으로 강요한 꽃이고, 무궁화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꽃으로 부각시킨 과정은 일본과 친일파들이 집요하게 기획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책의 논거를 조목조목 비판하셨는데, 그 책의 대표적 논지와 비판을 요약 좀 해주세요.

    조민제 : 무궁화가 국가상징물로 사용된 것은 우리의 오랜 역사를 반영한 산물이었다.

    최치원 선생이 통일신라 말기인 897년에 발해와 외교전을 펼치면서 당나라에 보낸 표문에 신라를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으로 ‘槿花鄕’(근화향)이라고 지칭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가 있다.

    최치원 선생이 초안한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는 그 자체로 명문장이어서 고려 때 명문을 모은 『동인지문』(1355)과 조선 초기 성종의 명으로 편찬된 『동문선』(1478)에도 내용이 그대로 수록되었다. 조선 후기 자주적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살피고자 한 『동사강목』(1765)과 『해동역사』(1814)도 이 내용을 수록하였고 실학자 이규경이 저술한 『오주연문장전산고』(1850년대)는 근화향을 조선을 지칭하는 국호(國號)로 기록하였다.

    조선 중후기 국가의 공식 외교문서를 집대성한 『동문휘고』를 살피면, 청나라의 중국 지배가 확고해졌던 18세기 말 이후에 청나라와의 관계를 재조정하면서 청나라에 보내는 각종 외교문서에 국호를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의 ‘槿域’(근역)이라 칭하였던 것도 확인된다.

    이러한 역사가 이어져 최초의 근대국가인 대한제국에서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과 더불어 무궁화는 문관대례복의 복식에 문양으로 국가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일제에 의하여 1910년에 대한제국이 강제병합 당하자 황실은 이왕가로 격하되어 오얏꽃을 상징 문양으로 계속 사용하였으나, 태극기와 더불어 무궁화는 국가를 나타내는 문양으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좌익과 우익을 막론하고 독립운동에서 무궁화는 민족의 독립을 상징하고 국권의 회복을 의미를 갖게 되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자라는 세대들에게 무궁화를 재배하고 그를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했던 한서 남궁억 선생뿐만 아니라 신채호, 한용운, 안창호, 문일평, 오세창, 차미리사, 윤봉길 의사에 그리고 사회주의 계열의 소년운동의 기관지 명칭으로, 동북항일연군에 참여한 조선의용군의 노래가사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무궁화를 민족독립과 국권회복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이를 알렸다.

    일제 식민지 당국은 강점이 시작되었을 때 무궁화를 자신들도 알고 있는 식물로만 인식했을 뿐 무궁화가 가지는 상징성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3.1운동의 여파로 시작된 문화정치가 시작되자 그 틈새를 뚫고 무궁화를 언급하고 논하는 글들이 쏟아졌고 일제는 이를 검열하여 삭제하고 불허가 처분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던 중 1932년 4월 29일에 상해 훙커우공원에서 있었던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에 윤봉길 의사의 「자필 약력과 유촉」에는 무궁화가 어김없이 언급되었고 일제는 무궁화가 민족독립과 국권회복의 상징을 넘어 무력 항쟁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그 다음 해에 『고등경찰용어사전』에서 무궁화, 무궁화강산, 무궁화동산, 근화, 근역 등을 모두 불온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즈음에 강원도 홍천에서 자라는 세대에게 무궁화를 재배하며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일흔이 넘은 남궁억(1863~1939) 선생의 인신을 구속하고 키우던 7만 그루의 무궁화는 외형으로는 유상분배를 형식을 취하면서 실제로는 무궁화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일제는 중일전쟁과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언어와 민족에 대한 억압과 더불어 식물에 대한 억압도 강화되어 갔다.

    『두 얼굴의 무궁화』는 이 모든 역사를 왜곡하여 아예 우리 문화에 무궁화가 없었거나 비하되거나 경멸된 것으로 만들고 일제에 의해 이식된 문화인 것처럼 없는 사실을 만들어 조작하였다. 친일 행위자로 등재된 윤치호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가사가 포함된 애국가의 작사자라는 설을 왜곡의 출발이자 근거로 사용하였지만,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살피면 이조차도 구한말에 우연히 등장한 노랫말이 아니었다. 정조 때 백두산 부근의 경흥지역의 부사를 지낸 홍양호(1724~1802)가 1777년에 저술한 「삭방풍요」(북녘에서는 부는 바람의 노래)라는 연작시에는 “檀木槿花三千里 不階尺土奄有之 長白山高靑海濶 緜緜瓜瓞無窮期”(박달나무와 무궁화는 삼천리에, 척토라도 가리지 않고 문득 자라고 있구나, 백두산은 높고 동해는 넓나니, 자손들 번창은 무궁하리라)라고 노래하여 이미 그 가사의 원형이 18세기 말에 이미 등장한 것이었다.

    무궁화를 일본의 신화(神花)로 만들기 위해 왜곡과 조작에 사용될 수 있는 기기묘묘한 수법들이 총동원되기도 하였다. 『두 얼굴의 무궁화』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통일신라 시기부터 일제의 식민지이었던 꼴이 된다. 철저한 역사 왜곡이며, 무수한 항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 행위이다. 그래서 밤을 세워 우리의 옛 문헌과 일본 문헌을 뒤져가며 비판을 하게 되었다.

    조 변호사와 그가 직접 찍은 무궁화

    레디앙 : 이렇게 근거도 부실하거나 아예 출처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책이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고 또 제법 유명한 사람들이 추천을 하는 이유와 배경은 뭐라고 생각하나? 친일과 반일 프레임으로 나누고 그 프레임에서 우리편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그런 문화가 있는 건가?

    조민제 : 우리는 근대화 시기에 식민지를 경험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해방된 이후에도 이데올로기 전쟁을 치르며 분열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아픈 역사 형성에 일조한 자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불안한 동북아의 국제 정세는 일본과 계속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반일이라면 그것이 모두 옳은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와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도외시한 채 우리의 것을 일본의 것으로 치환하는 행위가 어떻게 반일이겠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반일이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사실은 개인적 명예를 취하거나, 책을 팔아 영리를 취하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과 입지 강화에 이용하려는 행위들이 분명히 있다.

    이러한 행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사안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반도체 부품을 둘러싼 경제적 및 정치적 충돌 문제 등은 그 상대방에 일본이라는 국가가 있다. 반면에 우리말에 투영된 일본어라든지, 우리 식물명에서 일본명의 차용이라든지, 무궁화를 국가 상징물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등의 문제, 친일행위자에 대한 처리라든지 등의 문제는 일본이라는 국가와의 관계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다. 일본은 관심조차 없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일본의 것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을 자신이 정밀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입장을 유보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리의 꽃에 대한 전통적 인식과 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일본의 꽃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제대로 판단하고 검증할 수 있겠는가? 판단과 검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의분에 찬 공감은 전혀 사실에 아닌 것에 현혹되고 선동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이번 사태가 전형적으로 그러한 사례라고 본다.

    레디앙 : 조 변호사는 어떻게 이 책의 문제점과 심각성을 알게 되었나?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또한 어떤 계기를 통해 형성된 것인지도 말해달라

    조민제 : 건강이 좋지 않아 치료차 등산을 하면서 야생화를 알게 되었고 야생화 공부를 하면서 식물학과 우리의 옛 식물에 대한 인식과 문화 그리고 여러 나라의 식물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공부하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 책이 출간되고 화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책을 읽었을 때 그 책의 대부분이 사실이 아닌 왜곡과 조작에 근거한 것이라는 알 수 있었다. 보다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찾기 위해 시간과 비용이 들었을 뿐이었다.

    조민제 변호사

    레디앙 : 어떤 정치적 상징으로서의 무궁화가 아닌 우리 역사 속에서 무궁화의 의미를 요약해준다면?, 그리고 꽃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논란에 대해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조민제 :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인 한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는 타당한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하나의 식물이 국가의 상징물로 사용된다는 것과 다수의 구성원이 이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도 한다.

    『두 얼굴의 무궁화』라는 왜곡으로 점철된 책이 팔리고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통용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궁화가 국민들 사이에 사랑을 받지 못하는 식물이 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무궁화는 나라를 상징하는 식물이기도 했지만, 옛 문헌을 찾아보면 고려시대의 『동국이상국집』(1241)과 『보한집』(1254) 등의 기록과 조선 시대의 아동용 학습서인 『훈몽자회』(1527), 중국어 학습서인 『역어유해』(1690) 그리고 의학서인 『향약집성방』(1433)과 『동의보감』(1613) 등에는 집과 정자 등의 정원의 양지 바른 곳에 단독수 또는 생울타리로 심고 정성들여 키우는 화훼식물(꽃식물)이자 긴요하게 사용하는 약용식물이었다.

    그런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늘어나면서 정원문화가 급격히 사라지고,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사용되었던 ‘근화향’이나 ‘근역’이라는 말이 마치 정말로 그러한 것으로 오해한 채 온 나라 방방곡곡 아무 곳에나 심기만 하면 아름답게 꽃 피는 식물이라고 잘못된 인식이 퍼지면서 햇볕이 없는 음지 그리고 전혀 관리되지 않는 곳에 식재만 되고 방치되어 온 것이 최근까지의 현실이었다. 이렇게 하면 무궁화는 생명력이 강해 죽지는 않지만 벌레들의 먹이가 된 채 아름다운 꽃을 보여 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무궁화는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농반진반으로 지인들에게 “무궁화는 일제강점기에 탄압 받았지만, 요즘에 들어 학대받고 있다”고 말하기 한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에서만 키우는 식물이 아니다. 오래전에 동북아뿐만 아니라 중동아시아를 건너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며 현재에는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각광 받는 여름철 정원을 장식하는 식물(gardening flower in summer)이다. 공통주택에서도 양지바른 곳에서 잘 심고 관리하면 꽃이 드문 여름과 가을철에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전쟁과 급격한 경제성장 시기를 거치면서 화훼식물(꽃식물)에 대한 전통을 계승하지도 못했고 화훼산업의 세계적 수준에서도 뒤처진 우리에게 그래도 무궁화는 가장 많은 재배품종을 보유하고 있는 식물 종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피는 꽃이라는 뜻의 無窮花(무궁화)라는 말처럼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계승하여 잘 심고 키우면 여름과 가을에 걸쳐 삶에 지친 현대인들의 삶의 터전에 피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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