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이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가
    [책소개] 『강자 동일시』 (강수돌/ 사무사책방)
        2021년 06월 05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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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와 우리 삶을 어둡게 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질병은 무엇인가?

    1) 강수돌 교수가 말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질병은?

    모두가 성공한 강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모두가 성공한 강자가 될 수는 없다. (“누구나 로토 복권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당첨자는 1명뿐이다.”) 성공한 강자가 되는 길은 좁은 길로 ‘구조화’되어 있다. 교육과 미디어는 노력한다면 누구나 성공한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밤낮으로 가르치지만, 분명한 현실은, “성공은 소수에게만 허락된다.” 그 부작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고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대표적 질병1: ‘돈중독’과 ‘일중독’

    대표적 질병2: ‘중독’의 밑바탕 동력인 ‘강자 동일시’

    ‘돈중독’과 ‘일중독’ 그리고 ‘강자 동일시’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질병이다.

    “우리의 삶과 사회의 모든 문제 핵심에 ‘돈중독’과 ‘일중독’이 그리고 그 밑에 ‘강자 동일시’의 심리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교육과 미디어가 앞장서서 우리들의 경쟁심과 세속적 욕망을 끝없이 부풀린다. 남을 이기고 남보다 잘살지 않으면 무언가 크게 잘못 사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 그 욕망이 ‘진짜 자신이 원하는 욕망’인지 아니면 ‘사회가 자신에게 세뇌시킨 가짜 욕망’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고 만다.

    어쨌든 경쟁 속에서 이겨야 하니까, 돈이 많은 ‘강자’가 되어야 하니까, 딴 생각하고 한눈팔면 지니까 가난해지고 ‘루저’가 되니까, ‘끊임없는 공부’ ‘끊임없는 일’로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이 ‘돈이 다리미’라는 영화 <기생충>의 한 대사처럼 돈이 인생의 모든 주름을 펴준다고 믿는다. 모두가 ‘돈’을 많이 갖고 떵떵거리며 남이 부러워하는 ‘강자’가 되고 싶어 난리다. 그 ‘강자가 되고 싶은 마음’만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모든 것을 ‘강자의 시선’으로 보고 나와 강자를 쉽게 일치시키는 ‘강자 동일시’ 심리로 드러낸다. ‘강자 동일시’ 심리는 일중독과 돈중독이라는 삶의 양태를 띠며, 중독을 중독인지 모르게, 그냥 자연스러운 일처럼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의 세속적 욕망과 이기적 욕심을 부풀리며 더욱 심화시킨다.“

    2) 강수돌 교수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① 우리 사회는 사다리꼴 사회다

    소수만이 많은 돈과 여유로운 삶을 독차지하는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소수의 상류층이 ‘많은 돈과 여유로운 삶’을 독차지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생존경쟁에 목을 매는 ‘사다리꼴 사회’를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 상류계층에 대한 끝없는 선망과 자기 자신에 대한 한없는 불만으로 가득찬 정신질환적 욕구불만의 ‘사다리꼴 사회’를 더 이상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

    ②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 사회다

    고생 끝에 낙이 오지 않는다. 고생 끝에 또 다른 고생이, 또 다른 고생 끝에 새로운 고생이 기다린다

    “한번 승리했다고 영원히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지만, 무한경쟁의 영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고생 끝에 다른 고생이 기다리고, 또 다른 고생 끝엔 새로운 고생이 기다린다. 갈수록 태산이다. 그야말로 무한한 경쟁만 있을 뿐이다. 그 맨 끝에는 죽음이 기다린다.”

    ③ 우리 사회는 ‘위선과 정직’을 뒤바꾼 사회다

    우리 사회는 윤리적 인간의 얼굴을 위선이라고 하고 야만한 짐승의 얼굴을 정직이라 말한다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속에 윤리적 ‘인간의 얼굴’을 ‘위선’이라면서 던져버리고

    야만한 ‘짐승의 얼굴’을 ‘차라리 정직’이라며 선택하고, 적자생존・약육강식의 맨 얼굴을 들이밀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짐승자본주의’의 야만성에 길들여져 일부 지배계층의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나 ‘그루밍grooming’에 취해 오로지 ‘최적자’ 혹은 ‘최종의 포식자’로 강자만 되고 싶어 한다면, 종포식자 공룡이 마지막엔 지상에 아무것도 남아 있질 않아 굶어 멸망했다는 이야기처럼 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1등만이 기억되고 살아남는다며 모두가 ‘강자 동일시’에 빠진다면, 그 어느 누구도 ‘선한 약자’되기를 거부하고 ‘악하든 선하든 간에 오직 강자만’ 되어 살고자 한다면, 이 강자되기의 약육강식 전쟁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일반화되어 마침내 집단자살, 집단공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④ 우리 사회는 성적순 대학순 사회다

    20대 오직 유명대학 나왔다고 100세 시대 남은 인생 내내 편하고 잘 먹고 잘사는 사회

    “한 인격체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시험 점수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꾸준히 실력을 키우면서 그 과정을 즐기는 게 필요하다. 또 그렇게 해서 사회에 나오면 누구든 당당하고 소중하게 대접을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성적순, 대학순이 아니다. 20대 중반, 오직 유명한 대학 나왔다고 100세 시대 남은 인생 내내 평생을 편하게 잘 먹고 잘산다면 그런 사회는 정말 잘못된 사회이다.”

    ⑤ 우리 사회는 이런 인생 내비게이션을 권한다

    눈만 뜨면 공부, 공부, 공부만 권하는 사회

    “돈 많이 벌어 남부럽지 않게 더 나아가 남이 부러워하게 살려면 좋은 일자리 잡아야 하고, 그러려면 일단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 바로 이게 보통 우리가 어릴 적부터 세뇌된 ‘인생 내비게이션’이다. 돈 벌어 남부럽지 않게, 아니 남부럽게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 모두 눈만 뜨면, 공부, 공부, 공부!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⑥ 우리 사회 문제의 핵심은 정치가 아니고 생활이다

    살아 있는 최고 권력은 정치권력에서 ‘자본경제권력+지식문화권력 동맹체’로 바뀌었다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이제, 우리 사회는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빨갱이’라고 수천 군중을 모아놓고 ‘쌍욕’을 해대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보다 센 일상의 살아 있는 권력, 즉 자본권력, 사회권력, 문화권력은, 여전히 우리들 스스로 비판하고 건드리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회피한다. 정치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1980년 광주항쟁부터 치더라도 이제 그 역사가 40년이나 되었으니 그렇게 두렵진 않다. 온 지구인이 놀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촛불혁명’을 보면 정말이지 뿌듯하고 놀라운 ‘세계사적’ 민주화의 성과이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민주화되고 합리화될수록 그 정치권력은 약해지고 작아지는 데 반해 자본권력과 사회권력, 그리고 문화권력 같은 일상의 생활권력은 소리소문없이 더욱더 강해지고 커져 ‘권력 전체’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는 복잡하고 어렵게 되어간다.

    ‘강자 동일시’에 빠진 우리는 민주화로 약해진 정치권력 대신 등장한, 정치권력보다 훨씬 강한 ‘자본경제권력과 지식문화권력의 동맹’에 당황하면서 침묵하게 된다. ‘독재와 가난’으로 얼룩진 북한에 대한 공포와 혐오,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의 세계질서를 배경으로 한 우리의 보수적 이데올로기는 ‘돈과 가방끈’의 결합으로 오히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서 내면적으론 더욱 새롭게 강화되고 성장했다.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성공하고 배운 사람들’일수록 ‘살아 있는 제1권력’인 자본경제권력과 지식문화권력의 동맹, 그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하질 않는다. 그것은 자신들이 속한 계층의 ‘계급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도이지만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질문할 필요없는 우리 삶의 당연한 전제와 기초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강자 동일시’와 돈중독, 일중독은 오늘 우리의 운명이 되어버렸다.”

    ⑦ 우리 사회의 공정은 불공정을 인정하는 공정, 자본의 논리에서 나온 교활한 성과주의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외면하는 ‘공정’은 구조적 모순 위에 올라탄 ‘가짜 공정’이다

    “‘정의’도 그렇다. 경쟁 자체가 문제인데 마치 ‘공정 경쟁’이 정의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바꿔준다는 데 대해서 정규직이 반대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들어왔는데, 너희들은 공짜로 정규직이 되려고 해! 양심도 없어!’ 이런 식이다. 물론 그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로 형태를 나눈 것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 ‘공정’은 ‘공정’이 아니다. 그때 ‘공정’은 ‘불공정을 인정하는 공정’일 뿐이다. 말하자면 ‘가짜 공정’이다. ‘비례성의 원리’, 노력한 만큼 받는다는 것은 언뜻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유리한 위치를 점유한 사람들의 입장만을 존중하는 ‘공정’일 뿐이다. 그것은 ‘공정’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서 나온 교활한 성과주의다.“

    “윤리가 개인의 도덕적 선택과 책임을 묻는 ‘개인윤리’로만 좁혀질 때, 역설적으로 ‘윤리’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타락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빠져 있는 세 가지의 문제적 상황

    1) 우리는 돈중독에 빠져 있다

    돈중독은 오늘날 우리 대부분이 걸려 있는 가장 확실한 집단 질병이다

    “돈중독은 오늘날 우리 대부분이 걸려 있는 가장 확실한 집단 질병이다. 돈이면 온갖 걱정과 근심, 스트레스도 다 사라지고 심지어 부정적인 이미지까지 세탁해준다고 믿는다. 심지어 죄를 짓더라도 돈만 많다면 돈을 통해 벌을 면하거나 무거운 죄가 가볍게 처리된다고까지 생각한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돈은 권력이 되고 더 나아가 신처럼 떠받들어진다. 모든 것이 돈중독이니 자연이나 사람이나 땅이나 집이나 다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다. ‘집’은 ‘가정’이 아니라 ‘부동산’이 되었다.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식이다. ‘돈 놓고 돈 먹는’ 돈중독 사회에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빈부의 격차는 사람들을 확실히 갈라놓는다. 내 존재의 소중함은 나보다 못한 처지의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무시당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치를 떨고 이를 갈면서도 그런 일을 당할수록 ‘강자 동일시’ 심리에 빠져 오로지 위만 보고 따라간다.”

    “우리가 돈을 벌 때,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지 따져보면 그 목록이 갈수록 길어진다. 일상생활도, 아무리 돈을 벌어도 갈수록 돈은 부족하고 그만큼 더 열심히 일해 더 많이 벌려고 한다. 이렇게 자기도 모르게 돈중독에 빠지고, 일중독의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게 된다.”

    2) 우리는 일중독에 빠져 있다

    마약중독은 감옥으로 보내지만 일중독은 온 사회가 칭찬한다

    “마약, 알코올, 게임 중독 같은 건 주위에서 적극적으로 말리지만, 일중독은 온 사회가 칭찬해준다. 그러다 보니 일중독은 사회가 인정하는 바람직한 ‘삶의 도덕’으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일중독에 빠지면, 소중한 나의 관계망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내’가 아니라 일의 성취와 업적, 외부의 평가, 타인의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돈’에 삶을 모두 걸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무시하고 돈, 명예, 지위를 위해 목숨을 걸 때 그중에서도 특히 돈에 중독되어 일만 할 때, 그게 곧 일중독이다. 아무리 일이 중해도,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쉬어야 하지만, 결국 무리하게 된다. 일중독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빠져들게 만든 ‘죽음에 이르는 중독’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과로하지도 말고 과로사하지도 않아야 한다고. 옛 그리스 사람들의 속담처럼 ‘삶이 죽음으로 가는 지루한 여행길’이 되어선 안 된다고. ‘어느 누구도 과로하고 싶어 과로하진 않는다’고. 그러면서도 이상한 것은 스스로 ‘강자 동일시’ 심리에 사로잡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내 삶의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며 끝없는 일중독에 시달린다. 우리는 거부는커녕 복종을 당연시하면서 이걸 ‘근면・성실’로 미화해 받아들이고 있다.”

    3) 우리는 ‘강자 동일시’에 빠져 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강자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고 있다

    ① 우리는 약자이면서도 꼭 승자처럼 보고 승자처럼 행동하고 승자 편에 서려고 한다

    “우리에게는 자신은 승자가 아니면서도 꼭 승자 편에 서서 마치 승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또 반드시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태도는 성공에 대한 집착과 함께 ‘강자 동일시’로 발전한다. 약자가 노력 끝에 승자 집단에 들기만 하면 보상이나 받으려는 듯 ‘악랄한 강자’가 되어 이제는 반대로 약자를 아주 무시하고 억압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부자 숭배 심리나 권력자 숭배 심리가 강한 것도 이 ‘강자 동일시’ 심리에서 나왔다. 이 ‘강자 동일시’ 안에는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이 모두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강자를 숭배하고 복종하며 추구하는 심리가 있고, 사회적으로는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당연시하며 자본주의가 영원할 거라고 믿는 심리가 있다.”

    ② 우리의 ‘강자 동일시’는 두려움fear 때문이다

    “잘 들여다보면 모든 ‘강자 동일시’의 밑바탕엔 두려움fear이 있다. 죽음의 두려움, 배제의 두려움, 탈락의 두려움 등이다. 왜 그럴까? 삶에서 맞닥뜨린 온갖 종류의 거대 폭력 때문이다. 예를 들어 6·25 한국전쟁, 제주 4·3, 광주 5·18 민주화운동, IMF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 같은 한 개인을 넘어선 역사와 사회체제의 구조적 폭력들이다. 개인으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이다. 그런 폭력의 경험과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트라우마trauma로 고정된다. 이 트라우마가 고정되면 언제 어디선지 꼭꼭 숨어 있다 갑자기 나를 덮쳐 내 삶을 파괴하고야 말 ‘두려움의 괴물’이 늘 우리를 괴롭힌다. 죽음, 탈락, 배제, 루저 등에 대한 공포, 이걸 회피하려는 심리적 전략이 ‘강자 동일시’로 나타난다. 1등 강자를 따르면, 1등 강자가 되면, 그 역사의 폭력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1등 강박증’인 ‘강자 동일시’에 빠져 살게 된다.”

    ③ 우리는 기존 시스템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존 시스템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체제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도 기득권 강자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사회가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성공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강자 동일시’는 ‘오로지 성공’의 욕망과 함께 강한 집념이 되어 우리의 삶을 끝없이 돈중독과 일중독으로 몰아간다. 그것은 첫째, ‘어떻게 감히, 내가, 이 구조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아예 처음부터 체념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은 ‘나도 저 높은 사람들처럼 강자가 되어 기득권을 맘껏 누려야지’라고 강자에 대한 선망과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당연시하고 거기에 ‘강렬한 성공 집착’을 더하여 모두가 ‘강자 동일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④ ‘강자 동일시’는 약자들의 르상티망ressentiment(시기, 질투, 복수)이다

    “철학자 니체는 이런 ‘강자 동일시’의 심리를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해서 ‘원한에 기초한 노예-약자들의 시기와 질투와 복수’로 이해하고, 이 ‘르상티망’이 현대인의 가장 중요한 내면 풍경이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왜 우리는 변화를 꿈꾸기보다 이런 ‘강자 동일시’의 태도를 갖게 될까? 그것은 한편으로 변화를 꿈꾸던 사람들이 핍박받고 좌절하고 망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그저 주어진 현실 구조에 잘 적응해 기득권 계층으로부터 인정받고 잘사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저 사람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요컨대 강자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기득권을 누리는 이의 성공에 대한 부러움이 한데 섞인 결과, 우리는 ‘강자 동일시’의 심리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IMF 사태 이후 “나도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나도 그들처럼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고 싶다”는 절박한 욕망과 합쳐져 더욱더 ‘강자 동일시’에 우리를 빠트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당하고 힘센 자’를 ‘미워하면서 닮아’간다. 오늘 우리는 함께 보다 나은 삶의 질서를 만들어 나가려는 변화의 의지를 속으로 억누르고 미리 포기한다. 오히려 경쟁구조에 잘 순응하여 개인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며 억압적인 기득권 경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강자 동일시’ 속에 경쟁구도는 더욱 치열해지며 사회는 더욱 심하게 분열된다. 친구나 이웃도 라이벌, 즉 경쟁 상대나 적으로 둔갑해버린다.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삶의 현실이 된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경쟁의 구도를 만든 소수 기득권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강자의 벽은 한층 높아진다. 또 그럴수록 ‘강자 동일시’는 더욱더 강화되며 돈중독과 일중독은 중독을 넘어 자연스러운 삶이 된다.“

    ⑤ ‘강자 동일시’는 ‘미움받을 용기’가 전혀 없던 약자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강자의 비위를 맞춰가며 겨우 끄트머리 강자가 되면 보복이나 하듯이 ‘미움받을 용기’를 자랑하며 자기보다 약한 약자를 괴롭히는 약자, 바로 그들의 태도이다.

    “직장에서 과로하는 이유도 동료나 상사에게 ‘미운털 박힌’ 꼴이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한 10년 살다 보면 심신이 다 탈진되고 만다. 이 용기 없는 상태가 곧 우리로 하여금 과로를 하게 만드는데, 그 밑바탕엔 강자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그래서 ‘모범근로자상’을 받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다. 운이 좋아 ‘모범근로자상’을 받고 승진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처럼 ‘모범적으로’ 죽어라 일만 하라고 자기보다 약한 타인에게 강요하고 명령하고 평가한다. ‘미움받을 용기’가 1도 없는 우리 자신 스스로가 ‘강자 동일시’에 빠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가진 상사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강자 동일시’를 넘고, ‘돈중독’과 ‘일중독’에서 깨어나야 한다

    1) 이기적인 듯 보이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 ‘우리의 이타성’을 살려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너무나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회가 결코 정의롭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고, 선한 사람이 아니라 악한 사람이 더 잘살아간다고 생각할 때, 아무나 함부로 못하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어려운 시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꾀’는 강자선망에서 더 나아가 ‘강자 동일시’로 발전하며, 이 사회의 비윤리성과 그럴수록 강렬한 성공에의 집착은 ‘강자 동일시’ 속에 우리 모두를 몰아넣는다. ‘살아남아야 한다.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마치 악마의 주문처럼 우리들 영혼을 사로잡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먼저 마음을 다잡고 우리는 우리들 마음 깊은 곳, ‘우리의 이타성’을 살려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나만 잘살고 싶은 이기적인 면도 있지만 함께 나누며 살고 싶어 하는, 이타적인 마음도 갖고 있다. 이기적인 듯 보이는 개인도 그 속 깊이 어딘가엔 분명히 ‘이타성’이 숨어 있다. 최소한 ‘나의 이기성’을 인정하듯, ‘남의 이기성’도 인정한다. 따라서 ‘나의 이기성과 남의 이기성이 서로 충돌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할 줄 아는 ‘염치’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물론 어렵다. 하지만 그래야 불행하지 않고 행복해진다. 약자의 억울한 피눈물로 차려진 밥상에 우리는 설령 강자가 되었더라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우리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었으면 좋겠다. 내가 강자가 되고 싶으면 남도 강자가 되고 싶은 법이다. 강자든 약자든 ‘선한 마음으로’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하고 배려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때 ‘희망’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 희망은 옛 노랫말처럼 ‘둘과 둘이 모여 커단 함성 될 때’ 구체적 현실이 된다.”

    2) 1등’을 위한 ‘First One’의 경쟁가치 사회가 아닌, ‘저마다’를 존중하는 ‘Only One’의 존재가치 사회로 바꾸자.

    “줄을 세워 목표점에 빨리 도달하는 ‘1등’을 만들고 그 ‘1등’만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면 안 된다. 아이들을 ‘1등’만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저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여러 갈래의 다양한 목표에 열심히 즐겁게 다가가는 삶을 살 수 있게 사회는 옹호하고 지켜주어야 한다. 저마다가 저마다의 뜻으로 소중한 ‘단 한 사람의 고귀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1등’을 위한 ‘First One’의 경쟁가치 사회가 아닌, ‘저마다’를 존중하는 ‘Only One’의 존재가치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그 ‘Only One’들이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손을 잡고 함께 ‘사람 사는 사회’를 성숙시킬 수 있도록, 또한 모두가 자연의 작은 일부임을 깨닫고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새로운 ‘생태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게 그렇게 아이들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

    3) ‘충분함의 미학’과 함께 중요한 것은 ‘저항의 미학’이다. 그 시작은 ‘나부터’이다.

    “과잉생산, 과잉경쟁, 과잉노동, 소비중독에 빠진 현재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스스로의 내면적 성숙을 통해 자연스레 형성된 자기 절제, 직장과 가정, 일과 놀이의 균형으로 얻어진 자기 만족, 나의 이기주의와 공동체적 윤리와의 아름다운 조화,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존중, 이 네 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충분함의 미학’이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충분함의 미학’에 더하여 잘못된 가치관, 잘못된 문화,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과 저항, 즉 ‘저항의 미학’이다. ‘충분함의 미학’과 ‘저항의 미학’을 우리는 함께 갖추어야 한다. 그 시작은 물론 ‘나부터’이다.”

    4)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환경이 아니라 생태이다. 환경이란 말에는 인간 주체와 자연 객체가 분리되어 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보호하거나, 환경이라는 말 속에서 자연은 대상화된다. 그러나 생태란 말에는 인간과 자연이 한 몸이다,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의 주인이다. 바로 이런 생태철학을 살려야 한다. 인간의 삶은 자연의 품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같이 살아야 한다. 자연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성spirituality의 회복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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