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소유욕을 추수하지 말라
        2006년 11월 22일 09: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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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분양원가 공개’는 두 개의 시대 상식을 전제하고 있다. ‘무주택 서민’에게 값싼 주택을 공급하자는 정책 목적과 주택 가격을 인하시킬 수 있다는 정책 효과 기대가 그 두 가지인데, 어지간해서는 거스르기 어려운 상식인 듯 하다. 여기에 시비를 걸어보자.

    최근의 주택가 폭등에 분노하고, 분양가 인하를 통해 혜택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수도권 신규 분양 아파트 수요자들이다. 수도권에서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 면적 25.7평의 분양가는 4억 원(평당 평균 분양가 1,200만 원 × 분양 면적 33평)인데, 저축을 통해서든 대출을 통해서든 이런 집을 사려면, 생애노동기간 26년 중 20년을 월 200만 원 가량씩 실질 주거비용에 지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 성시를 이룬 떳다방
     

    주거비에 200만 원씩 쓴다는 것은 가구총소득이 적어도 600만 원 이상은 된다는 것이고, 이런 수준은 전국 가구 평균의 꼭 두 배이고, 최상위 소득 계층 20%에 해당된다.

    그런데 우리 나라 주거 문제가 고소득 무주택자와 집을 늘리려는 전환 수요자에게 아파트를 주지 못하는 것 뿐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자가 소유 가구의 임대 소득까지를 전월세가로 환산 평가하면 도시근로자가구의 평균 주거비 지출은 위에 든 200만 원의 1/3인 70만 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권 아파트가가 오르든 내리든 직접적인 이해 관계 밖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까지 혜택이 오려면 수도권 아파트가가 1/3로 내려야 한다.

    다른 세대(世代)가 한 방에서 생활하거나 수세식 화장실이나 목욕시설이 없는 집에 사는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사람들이 330만 가구, 1천만 명이나 된다. 지하실이나 판잣집, 움막에 사는 부동산 극빈층도 160만 명이나 된다. 왜 한국의 좌파들은 이 사람들에 대해 말하지 않나?

    물론 쪽방에 사는 사람들도 번듯한 아파트를 꿈꾼다. 이것을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는 ‘내 집 마련의 소중한 꿈’이라고 부른다. 외국에 별로 뒤지지 않는 주택보급률 106%, 자가 소유율 56%라는 객관 지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내 집 마련의 소중한 꿈’을 결코 접지 않는 이유는 조금 복잡하다.

       
     ▲ 판교주민대책위원회의 어린이
     

    집 없는 서러움은 자본주의가 도입된 이래의 문화적 배경이다. 과중한 전월세가 지출로 인해 이외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고통은 30~40년 동안 변함 없는 저임금 정책의 산물이다. 고용과 소득 불안정에 대한 안전판으로 주택을 바라보는 시각은 3대에 걸친 자유주의 정부들에 대항하며 체득한 노동자들의 자구책이다. 쥐꼬리만한 국민연금도 줄이겠다는 판에 늙어 탑골공원으로 나돌지 않으려면, ‘집 한 채라도 건사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실수요든 가수요든 사람들이 집으로 집으로만 몰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에 대처하기 위한 나름의 삶의 지혜이다. 이것은 주택 정책만을 통해서는 결코 주거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나쁜 신호이기도 하고, 다양한 사회정책을 병행함으로써 주거난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청신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집을 사고 싶어 하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근로소득이나 금융소득을 월등히 넘어서는 부동산소득의 실례를 너무도 많이 듣고 보았고, 자신들도 한몫 잡고 싶기 때문이다. 올해의 임금인상률은 5.1%다. 그런데 강남 지역 아파트는 16.7% 올랐다. 세 배의 수익률에 투자하지 않는 바보는 세 배 손해 보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불문율 아니겠는가?

    국민들의 이런 욕구를 막으려는 개혁주의자는 몽상가다. 한편 근본적인 구조 변혁을 이루려는 세력이 소유 확대 욕구를 추수하는 것은 자신들의 미래를 갉아먹는 짓이다. 한국 노동운동이 잘 안되는 것은 노동자들 재산의 89%가 부동산에 묶여 있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사회의식이 안정과 보수를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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