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평적 연대로 진보 신뢰 위기 극복"
        2006년 11월 21일 08:0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사업의 취지와 방향은 옳다. 그런데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민주노동당 민생특위 산하 ‘국민연금보험료지원사업단’이 21일 주최한 ‘노동운동의 사회연대와 국민연금 사각지대 –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사업, 수세적 양보인가? 적극적 연대인가?’ 정책토론회는 ‘답’보다는 ‘질문’을 던져준 자리였다.

    기조발제를 맡은 오건호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은 "시급하게 사업이 추진되면서 아직 노조와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열린자세로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운을 뗐다. 오 전문위원은 발제의 상당량을 사업의 취지와 배경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신뢰의 위기에 처한 민주노동당

    오 전문위원은 민주노동당이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권과 승인권을 대중들로부터 받고 있느냐"는 것이다. 즉, 늘 옳은 소리를 하는데 "너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문제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정책의 현실화 능력에 대한 문제제기다. 즉, 옳은 소리를 하는데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느냐"에 대한 회의라고 한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오 전문위원은 "사회연대의 가치를 내부적으로 채우고 바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데 당 지도부가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사업’은 그 일환으로 제기됐다. "대중적 관심과 사회연대성 문제를 의제화하는 데 대단히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8월 의원단 워크샵에서 이에 대한 최초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오 전문위원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제도의 바깥에 놓여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의 기본 취지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노후를 보장한다는 것인데, 비정규직 등 열악한 급여조건에 있는 사람들은 보험료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수평적 연대는 투쟁 주체 형성에도 도움

    그는 "국민연금은 대단히 냉혹한 제도"라며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빈곤화가 공적 취지를 갖고 있는 공적연금으로 해소되는 게 아니고 외려 확대재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대단히 반사회공공적인 역할 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가입자에게는 적지 않은 혜택을 주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연금 가입자와 미가입자간 수평적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했다. 오 전문위원은 "국민연금에 가입해 제도적으로 누리는 여러 수혜를 우리 내부에서 나눌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연대의 최고봉은 수평적 연대"라고 했다.

    그는 수평적 연대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을 제도의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효과 말고도 자본가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투쟁의 주체를 좀 더 단단하고 폭 넓게 형성한다는 전략적 의미도 지닌다고 말했다.

    그럼 ‘수평적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국민연금에 기 가입된 노동자들의 부담(국민연금 납부액)을 늘리고 혜택(급여율)을 줄여 마련한 재원으로 경제 형편이 어려워 미가입한 사람들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5년간 대신 지급해 주자는 게 기본 골격이다.

    조금 덜 받고, 조금 더 내면, 수평적 연대 이뤄진다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세 가지가 제시됐다. 하나는 기가입자의 미래 급여의 일부를 인하하는 방안이다.

    중위 임금 90%(117만원) 이상 노동자들의 5년간(2008-2012년) 급여율을 1%포인트 낮추면 2조9,718억원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100만원대 월급을 받는 가입자가 미래에 덜 받게 되는 월 급여액은 대략 2,000원 전후다. 300만원대 월급자의 경우도 월 3,000원 전후 수준이다.

    또 월수 360만원 이상을 받는 고소득 노동자를 대상으로 360만원을 추가하는 소득분에 대해 누진 부가보험료를 적용하면 4조665억원이 확보된다. 월소득 400만원인 노동자의 경우 매달 국민연금 보험료를 2,000원씩 더 내면 된다.

    이밖에 국민연금에서 정부가 빌려간 다음 갚지 않고 있는 이자액이 연간 5,335억원 규모인데, 5년간 2조6,776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 국민연금 대부분이 노동자들 주머니에서 나간 것이고 이를 정부가 빌려다 쓴 것이니만큼 ‘수평적 연대’를 위한 필요 재원으로 충당하라고 할 명분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총 9조7,159억원을 확보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안이 연금 지원 대상을 중위 임금 70%(91만원) 이하로 잡고 있고,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 규모를 약 8조5천억원으로 추정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일단 재원은 충분히 마련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농어민과 차상위 계층, 기초수급자 등 지역 가입 대상자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서도 약 3조5천억원 가량의 추가 재원이 필요한데, 이는 농어촌특별회계 등 정부재정으로 충당하도록 하고 있다.

    오 전문위원은 "기존의 경우라면 필요 재원을 국자와 자본에게 부담하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이번 사업은 자본과 국가에 대한 일면적 요구에서 참여에 기초한 요구로 전환했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 국민연금 뿐 아니라 연대임금 투쟁이나 사회복지 조세의 문제도 이런 각도에서 접근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의 취지는 옳다

    발제 후 가진 토론에서 토론자들은 이번 사업의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형일 IT연맹 정책실장은 "활동가로서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면서 "이 사업이 노조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운동하는 데 중요한 소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도 "노조운동에서 금기시되는 단어가 몇 개 있는데, 참여와 타협"이라고 운을 뗀다. 이어 "현재의 척박한 노사관계나 노정관계에서 우리가 먼저 양보하고 참여하면서 사회연대 운동을 하자는 것이 쉽지 않은 얘기"라며 "각론에서 많은 논쟁점이 있지만 노동운동의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이 실장은 특히 보건의료노조의 무상의료 사업과 이번 사업을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의료공공성 강화라고 할 때는 국민들이 무슨 말인가 하더니 무상의료라고 하니까 ‘아 내가 공짜로 진료받을 수 있다는 얘기구나’ 하더라"면서 특히 "암부터 무상의료하자고 하니까 상당히 공감을 많이 했고, 그 결과 암에 대한 의료보험의 보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상의료를 위한 재원확보 방안으로 국방비 감축, 부유세 신설 등을 말했더니 사람들 반응이 ‘무상의료보다 돈 마련하는 게 더 힘들겠다. 어느 세월에 그걸 하느냐’고 하더라"면서 "가구당 3만원씩만 더 내면 비급여 부분이 해결된다고 하니까 훨씬 반응이 좋더라"고 했다.

    그는 "이런 말을 왜 하느냐. 양보나 타협이나 참여나 이런 것을 내세우기 어려운 조건이지만 우리가 더 냄으로써 얻어낼 수 있는 그런 투쟁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정호 공공연맹 정책국장은 "이 사업은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대가없이 주는 봉사활동이 아니"라며 "4대 보험에 미가입된 노동자는 대부분 미조직 노동자들인데 이들을 조직하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각론으로 들어가선 몇 가지 쟁점이 형성됐다.

    "보험료 지급기간 5년, 근거가 뭔가?"

    가장 주요하게 제기된 문제는 보험료 지급기간이었다. 민주노동당안은 5년간 보험료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 나머지 5년의 보험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 이상돼야 노후 연금 수급권이 생기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5년만 더 지속하면 노후 수급권이 확보되느니만큼 제도에 붙들어둘 유인이 생긴다는 게 민주노동당의 설명이다.

    고윤남 국장은 사무금융연맹 정책기획실장은 "5년 후에도 이들이 연금제도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아니냐"고 꼬집고, "의료, 교육, 주거 등 사회적 보편서비스를 일정 수준 제공함으로써 가처분소득이 어느 정도 유지되도록 해야 이들이 연금 제도 안에 머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오건호 전문위원은 "지원 기간을 5년으로 한정한 이유는 현재의 노동시장이 비정상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라며 "이 비정상적인 노동시장을 5년안에 정상화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고소득자에 대한 보험률 누진 인상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추가 재원으로 중위 50% 이하자에게 보험료를 지급하는 것은 지금의 설계안에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수평적 연대’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왜 하필 국민연금을 고리로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자는 지적도 있었다. 이주호 국장은 "국민연금은 불신도 많고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한다"면서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발전시키는 방안이나 사회보장세를 신설하는 방안 등 다른 수단과 무기는 없는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험급여 깎으면 임금도 깎으라고 할 것

    기가입자의 보험급여 인하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노동자 책임론’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금속노조의 논의상황을 전하면서 "상집에서 한차례 논의를 했는데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다. 노동자의 미래급여 인하가 노동자 책임론과 연계될 가능성이 있고 노조가 이걸 받아들일 경우 임금 부분도 마찬가지로 역공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이 안을 입법화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이정호 국장은 "예컨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국노총까지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안에 동의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 안을 민주노동당이 국회에서 법안으로 통과시킬 수 있겠느냐"며 "9명 의석 수의 당으로는 힘들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기조발제에서 오건호 전문위원이 말한 대로 이날 토론회는 이 사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발점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선지 토론도 원론과 총론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참석자들은 좀 더 많은 논의와 논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더 많은 토론과 논쟁, 논란이 필요하다

    오건호 전문위원은 "이 문제가 쉽게 결정되기 보다는 훨씬 많은 논란으로 확장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조형일 국장은 "다양한 토론이 활성화돼야 한다"면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홈페이지에서 이 사업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앞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노조원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이정호 실장은 "연맹에서도 논의할 때 보니까 사회보험노조 사람들도 이 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면서 "논의를 갖기 전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가 논의를 하면서 찬성으로 돌아서는 경우도 많았다. 내부 교육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형일 국장도 "교육과 찬반토론이 중요하다"며 "연맹 대의원대회를 통해 추진 사업으로 확정하고 일상적인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실장도 "각 조직별로 토론회를 갖고 입장을 정리했으면 좋겠다"면서 "현장을 포함한 공론의 장에서 토론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