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긍정적 “공감하는 국민 많아”
재계와 보수언론 등을 중심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가석방 요구가 제기됨에 따라 사면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재벌총수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사면권이 재벌의 기업 범죄 정당화에 악용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양대노총과 경제개혁연대, 경제민주주의21, 경실련, 민변, 참여연대는 2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용 사면·가석방은 현재 진행 중인 삼성물산 불법합병과 분식회계 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결코 허용돼선 안 된다”고 이같이 촉구했다.
권오인 경실련 재벌개혁본부 국장은 “이것이 재벌개혁을 외치면서 출범한 현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의 초심이냐”며 “정권 초기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중대경제범죄자에 대한 사면권 제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한가”라고 물었다.
이주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은 “5대 중대 부패범죄에 대해 (정권 초기) 약속한대로 양형 강화는 못할망정 사면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바탕사진=참여연대(박스 안은 4대 재벌과의 회동 모습)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한미정상회담 성과 공유와 대미 투자에 감사를 전하기 위해 마련된 4대 그룹 대표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이 부회장 사면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총수들이 이 부회장 사면을 에둘러 요구하자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며 “지금은 경제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고, 기업의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와 취임 후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는 사면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당초 청와대도 이 부회장의 ‘사면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재계의 요구가 잇따르자 입장이 바뀌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와 백신 문제 등을 거론하며 이 부회장 사면의 필요성을 내비쳤다.
그간 재벌총수의 경제범죄에 대해 3‧5법칙(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적용해온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대해 이례적으로 실형을 선고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시민사회계는 이 결정에 문 대통령이 사면권 행사로 찬물을 끼얹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법부가 어렵게 결단해 정의를 세워가는 이 시점에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에서 재벌총수에 대한 처벌을 과거로 회귀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실행위원은 “이 부회장을 사면하는 통 큰 결단을 해야만 삼성과 나라가 산다고 한다. 이건희 전 회장도 유사한 이유로 특별 사면됐다. 당시 재벌그룹 회장이라는 이유로 죗값 다 묻지 못하면서 재벌총수는 반복적으로 같은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재벌총수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이 재벌범죄를 사실상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승희 경제개혁연대 사무국장도 “적폐청산 수사로 처벌을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을 풀어준다면 문재인 정권은 또 다른 적폐를 쌓는 것”이라며 “총수 일가에 대한 미온적 처벌을 내린 사법부, 면죄부를 주는 정치권도 재벌 범죄의 공범”이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다른 사건으로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에 대해 사면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단체들은 “현재 진행 중인 삼성물산 불법합병과 분식회계사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점에서도 부당하다”고 밝혔다.
이 실행위원은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합병 관련 주가 조작, 삼바 분식회계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다른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인에 대해선 사면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권은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도 “이재용 부회장은 회삿돈 79억 원을 횡령해서 대통령에게 제공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가장 큰 정치권력을 매수했다. 이 후 부당합병과 연관돼서 현재 재판 중이다. 그런데 백신, 반도체 투자 명분을 내세워서 가증스러운 논리들이 횡행하고 있다”며 “대통령에게 사면권한이 있다는 조항을 들이밀며 합법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권한이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행사해선 안 된다. 사면권의 원리 원칙에 맞게 그 범위 내에서 적합하게 행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평성 문제도 지적된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은 “사법부와 수사기관은 그동안 노동자들의 사소한 불복종 행위에는 엄정한 법집행을 운운하면서 처벌해왔다”며 “그런데 국정농단 범죄 일으킨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선 사면과 가석방을 논의하는 것은 참담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년 전 촛불시민들은 뿌리 깊은 정경유착을 끊어내고 재벌 개혁 과제를 완수하라고 했지 중범죄자에 대해 사면, 가석방하라고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산업재해, 백형별, 노조탄압으로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와 불법철거로 거리로 내몰린 철거민 등 삼성 재벌의 만행으로 거리로 내몰린 민중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대통령의 일”이라며 이 부회장 사면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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