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보다 돈이 필요한 시대”
        2006년 11월 21일 06: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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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성별, 학력 모든 것이 깨졌다. 일단 ‘취업’만 될 수 있다면. 얄궂은 비도, 달려드는 칼바람도, 10kg의 모래 주머니도 직업을 갖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를 어쩌지 못했다. 뛰느라 식은땀에 옷이 젖는지, 비에 옷이 젖는지 알바 없었다. 할퀴는 칼바람에 모래주머니를 연신 떨어뜨려도 다시 이고 뛰면 그만이었다.

    서울 구로구청은 21일 안양천 둔치에서 환경미화원 공개 채용 ‘시험’을 치렀다. 1차 시험 과목은 체력 테스트.1명을 뽑는 여성은 17명이, 9명을 뽑는 남성은 190명이 지원해 20.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남성 중에는 대졸자가 35명, 그 중 법학과가 4명, 작년에 이어 다시 지원한 사람이 1명 있어 눈길을 끌었다. 또, 평균 연령도 25~35세의 지원자가 63%나 됐으며, 지원자격 미달인 만 25세 청년들이 접수를 하는 등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보여주었다.

       
     ▲ 모래주머니 들고 달리기
     

    이날 지원자들은 모래주머니(남자20kg, 여자10kg)를 청소차에 올린 후, 또 다른 하나를 이고 100m달리기를 하는 체력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 통과 기준은 지원자의 최종 점수 합산 후 상대 평가로 결정된다.

    공채 지원자들의 각오는 진지했다. 마라톤 복장을 준비하고, 운동화 끈을 조이며, 준비 운동을 하는 등 궂은비를 뿌려대는 얄궂은 날씨와 맞물려 운동장 곳곳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중1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장호숙(가명, 40)씨는 “나로 인해 사춘기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걱정이지만, 대화로 잘 극복할 거라 믿는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보다는 돈이 더 필요한 시대이다”라며 “남편도 무조건 나가서 돈 벌어오라고 적극 지지했다. 편견으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나로 인해 환경미화원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면 좋지 않겠느냐?”며 시험을 보게 된 이유를 얘기했다.

    솔직함과 진지함 그리고 현실이 녹아있는 배경 설명이다.  ‘엄마보다 돈이 더 필요한 시대’라. 몇 번이나 곱씹게 만드는 ‘슬픈 명언’이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정수(26)씨는 “일단 취업부터 하고 봐야 되지 않나요? 부모님도 반대 안 하시고 적극 찬성하셨다”면서 “잘 할 수 있으니, 정말 꼭 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로구청 양성주 주임(37)은 “쓰레기가 무겁고 점점 대형화 되고 있기 때문에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간혹 돌 침대도 나오는데 체력이 없으면 도무지 견뎌 낼 수가 없다”면서 “겉보기엔 간단해 보여도 8시간을 서서 돌아다녀야하는 고된 일이다”라며 체력 테스트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편, 자신의 뒤를 이어 환경미화원에 지원한 아들을 응원하는 아버지도 있었다. 곧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는 환경미화원 정건욱(58)씨는 “내가 하는 걸 보고 아들이 지원한 것 같은데, 정말 꼭 붙었으면 좋겠다. 요즘 같은 시대에 직업이 있는 게 어디냐?”라며 “남들 자는 새벽에 일하는 것이 정말 힘들긴 하지만,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친하게 지낸다면 일이 좀 수월 할 것”이라고 선배로서 충고를 건넸다.

    21일 삼 배수로 뽑힌 이들은 12월 1일 2차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 된다. 이들은 계약 상용직으로 만 59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며 공무원 7급 초봉(3,000~3,200만원)정도의 연봉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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