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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정상회담 이후의 과제 :
    한·미·일 vs 북·중·러의 구도를 넘어
    [국방칼럼] '남북협력'과 ‘우리민족끼리’는 달라야
        2021년 06월 01일 12: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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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여의 간격을 두고 진행된 한미 정상과 미일 정상 간의 회담 결과를 비교해 보면 미국과 한∙일 양국이 각각 합의한 ‘약속(commitment)’의 편차가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한미공동성명에는 ‘북한’의 비중이 매우 높은 대신, ‘쿼드’와 ‘대만해협’이 정상 간의 공동성명에서는 처음 언급되기는 했으나 ‘중국’과 관련된 내용은 간략하고 원론적인 수준이다. 반면 미일공동성명은 전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전략의 나열이었으며, 중국을 직접 거명한 것도 모자라 홍콩, 신장위구르 자치구, 양안관계의 평화적 해결 촉진(encourage the peaceful resolution of cross-Strait issues)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내정간섭으로 여길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한겨레의 황준범 미국특파원은 바이든 외교의 특징으로 ‘동맹들이 가진 개별적 특수성’을 고려하는 점’을 꼽고 그런 측면에서 미국은 한미, 한일정상회담에서 ‘한국과 일본에 요구할 수 있는 선을 지킨 셈’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그러한 측면보다는 중국문제는 미일 사이에서만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고, 한미 간에는 합의가 안 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게다가 한·미·일 관계에서 황 기자가 말한 ‘개별적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는 힘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는 것이지 한∙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삼각관계는 양자관계보다는 복잡하고 다자관계 중에서는 제일 단순하다는 이중적인 특성을 지닌다. 한·미·일 삼각관계는 ‘중추적 위치(pivot)’의 미국과 두 측면에 자리한 한국과 일본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여기서 미국과 한국, 미국과 일본은 각각 우호적인 동맹관계이지만, 미국의 두 측면에 있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현재 결코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삼각관계는 로웰 디트머의 ‘낭만적 삼각관계(Romantic Triangle)’로 설명이 가능하다. 여기서 ‘낭만적’이란 말은 적대적인 한∙일이 우호적인 미국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서로 구애(경쟁)하는 행위를 말한다. 마치 제국주의의 고전적인 통치방식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가 연상되기라도 하듯 미국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전략적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글렌 스나이더가 말한 것처럼 동맹이 체결된 이후부터는 관리(management)에 모든 관심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빅터차 Powerplay, Origins of the U.S. Alliance System in Asia)

    한·미·일 삼각관계를 빅터 차의 ‘파워플레이 모델’을 통해 ‘양자주의(bilateralism)’와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았다. 위 도표는 특정국가가 상대국가(Target State)를 통제할 때 국가의 힘에 걸맞는 효과적인 국제관계로 양자주의(bilateralism)와 다자주의(multilateralism)를 비교한 것이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두 명의 기수보다는 말 한 필과 기수 한 명으로 이루어진 동맹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비스마르크의 주장을 위 그림 ‘사분면(Quadrant) 3’에 대입해보면 강대국(Great Power, 기수)인 미국은 약소국(Small Power, 말)인 한국을 상대할 때 양자관계(bilateralism)를 통해서만이 미국의 이해를 가장 많이 관철할 수 있다. ‘허브(Hub) 앤드 스포크스(Spokes)’에 기반한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반면에 약소국은 상대국가를 불문하고 다자관계(bilateralism) 속에서 현안을 풀어나갈 때만이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사분면 Quadrant 1, 2). 미국이 유엔과 WTO, WHO와 같은 국제기구에 거리를 두는 이유이다. ‘사분면 4’에는 미중 경쟁과 미러 갈등을 대입해 볼 수 있다. 강대국이 강대국을 상대하려면 다자관계를 이용해야만 한다.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여러 국가의 연합에 의한 구속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때 미국의 동맹은 ‘전력승수(force multipliers)’ 효과를 극대화시켜 준다. 한∙미∙일 3국 협력「trilateral cooperation」이 미국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미국의 힘을 배가시켜 주기 때문이다.

    한∙미∙일 3국 협력의 다른 표현으로 ‘남방 삼각관계’가 있다. ‘남방 삼각관계’의 맞은편에는 ‘북방 삼각관계’라고 일컬어지는 ‘북∙중∙러’ 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한∙미∙일 관계와 북∙중∙러 관계는 여러 면에서 많은 차이점을 가진다. 첫째, 한미, 미일 관계는 미군이 상시 주둔해 있기 때문에 이른바 ‘주둔형 동맹(stationary alliance)’으로 분류되지만, ‘북중’, ‘북소’ 관계는 ‘정치형 동맹(political alliance)’으로 시작했으며 현재의 ‘북러’ 관계는 동맹이 아닌 ‘동반자관계(Partnership)’이다. ‘주둔형 동맹’은 안보를 미국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율성에 제한을 받는 ‘비대칭(Asymmetry) 동맹’으로 간주되지만 ‘정치형 동맹’은 유사시의 위기에 대비하여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려는 차원의 동맹이기 때문에 ‘주둔형 동맹’보다 행동의 제약을 덜 받고, 동맹의 구속력도 약하다.

    둘째,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1950년대 초에 체결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흔들림 없이 지속되어 오면서 동아시아 안보질서를 주도해왔지만, 1950년에 체결된 ‘중소동맹’은 1960년대부터 갈등관계에 접어들었다가 1980년에 정식으로 동맹관계가 종료됐다. 1961년 7월 진행된 북소, 북중관계의 동맹화는 1961년 5월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군사정권이 한국에 들어선 데 따른 대응의 성격이 짙다. 이후 ‘북소동맹’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냉전이 해체되면서 와해되었고 2000년 8월에 와서야 비로소 ‘북러신조약’이 체결되었으나 탈냉전을 맞아 일반적인 동반자관계로 대체되었다. 중국은 1982년부터 불결맹() 다시 말해 동맹을 맺지 않고 우호국을 늘려나가는 이른바 자주적 평화외교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중국외교부는 현재 북중관계를 ‘동맹’이라는 표현 대신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로 명시하고 있어 안보협력과 같은 ‘북중조약’의 세부조항이 1992년 한중수교 이전처럼 지금도 유효한지 여부는 불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북중관계는 기존 조약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북러관계보다 더 긴밀하면서 특수하다.

    셋째, 한∙미∙일 3국과 북∙중∙러 3국의 결속 수준은 서로 대등하지 않다. 한∙미∙일 3국은 미국이라는 구심점이 존재하며, 군사동맹의 기반 위에 서 있고, 북핵을 명확하게 공동위협으로 인식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3국의 공조는 4월의 국가안보실장 회의와 합참의장 회의, 5월의 외교장관 회담과 국가정보기관장 회의 등이 연이어 개최된 것만 봐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반면 북∙중∙러 3국은 구심점이 없다. 북중, 북러 사이에는 군사협력이 활발하지 않고 공동의 외부위협이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은 중∙러의 적이 아니며, 미국에 대한 북∙중∙러의 태도 역시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북∙중∙러 3국은 공동의 원칙을 가지고 대응하는 다자간 협력체라기보다는 사안별로 서로 협력하거나 갈등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북중, 북러, 중러 간에 각각의 이해관계가 중첩되는 과정에서 북∙중∙러 3국이 마치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아시아 주변국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등거리외교를 전개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

    한반도 문제가 대화국면일 때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는 협력의 형태를 띠며 각 나라는 이 구조에서 탈피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 2000년대 6자회담, 최근의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그렇다. 한반도 상황이 긴장국면일 때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가 냉전의 탈을 쓰고 부활한다. 그러나 이 때의 대립을 전적으로 갈등과 충돌의 이분법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북∙중∙러가 동일한 입장으로 대오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예로 들어보자. 2010년 ‘천안함 사건’에서 러시아가 ‘어뢰공격 폭침’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북한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자체 조사단 파견을 통해 분석한 결과가 한국과 다르게 나왔기 때문이다. 같은 해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러시아는 북한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2017년 러시아는 미국의 한국 내 ‘사드 배치’ 과정을 일관되게 반대하면서도 한러관계를 악화시키는 직간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한반도 문제’ 해법으로 중러는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비핵화프로세스와 평화체제 같이 논의)’을 제시하고 있지만 미일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며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교착국면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라도 하면 우리 보수언론은 관성적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로 몰아가며 그 책임을 북∙중∙러에게만 지우려고 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북∙중∙러 3국은 한∙미∙일 3국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사고하는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해 북한을 지원한다는 선입견이 깔려있다. 이 논리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한국이 미국의 독점적인 역할을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시각은 냉전 이전의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분석할 때는 타당한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탈냉전 이후의 동아시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한반도 비핵화 못지않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미일동맹이 강화될수록 중러관계도 밀접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인도태평양을 둘러싼 미중 경쟁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탈냉전 이후 형성된 일극(unipolar) 체제를 영속하고 싶은 미국의 욕망은 전세계에 걸쳐 팽창주의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소련의 붕괴 이후 나토는 지난 30년 동안 동쪽으로의 확장을 계속해서 지속해왔다. 위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러시아와 나토 사이에는 이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동부를 제외하고는 완충지대라고 부를만한 지역이 남아있지 않다. 러시아에 인접한 스웨덴과 핀란드도 더 이상 중립국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나토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에 편중된 사고를 하던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푸틴 대통령 주관하에 신동방경제포럼을 매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할 정도로 자국에 대한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동아시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국은 1970년대 ‘연미항소(聯美抗蘇)’ 정책을 추진할 만큼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양국의 관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주력수출품인 에너지자원의 판로를 위한 대안으로써 중국을 눈여겨보게 되고 중국은 미중 경쟁에 대비한 에너지 수급의 다변화와 최신무기의 공급처로서 그리고 소비재 상품의 수출시장으로서의 러시아의 가치에 주목하면서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중러관계는 ‘2017-2020 중러 군사 영역 협력 발전 로드맵’을 체결할 정도로 경제분야를 넘어서고 있다.

    ‘스타니슬라브 코지에이’는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속에서 중러 관계는 ‘은밀한 경쟁’이자 ‘선별적 협력’의 관계라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의 4월 23일 칼럼에서 나카자와 가쓰지 편집위원은 4월 13일의 미국과 러시아 정상 간의 전화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안에 중국이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공식기념일을 맞아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중국에게 미국이 선수를 친 셈이다 미러정상회담 개최는 6월 16일로 확정되었다. 대만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 중국, 러시아 사이의 줄다리기 외교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의 논리로 분석하면 미일동맹과 중러협작(協作)의 관계가 주요모순으로 등장함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는 부차적인 지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정상의 공동성명이 강조한 가치는 민주적 규범과 인권과 법치의 원칙이다. 민주적 규범은 지난 3월의 한미 간의 외교‧국방 장관(2+2)회의 공동성명에서는 자유와 민주주의로 표현되었다. 김민하 저술가는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평가하는 글에서 “(국제관계에서) 명분 있는 가치에 동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명분론은 문재인 정권의 외교적 공간을 넓혀줬다”고 분석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는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한미가 반중연합전선의 이념이자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강조한 반면, 한국은 한미동맹의 상징으로써의 민주적 가치를 내세움으로써 ‘친미’를 강조하는 대신 ‘반중’을 피해갔다고 할 수 있다.

    1996년에 이미 당시 헤리티지재단의 리처드 피셔 주니어 고위정책분석관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나라에 더 살기를 원하는가 라고 물어보라.”며 “통제된 공산사회 중국인가”, “아니면 한때 다른 나라를 지배한 적이 있지만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책임 있는 일을 맡고 있는 일본인가 라고” 하면서 중국의 잠재위협에 대한 민주적 가치의 우월성을 주장한 바 있다. 결국 민주주의, 자유, 시장경제의 강조는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자는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일본 아사히신문의 사설 제목이 ‘한∙미∙일 결속, 민주연합의 가치 자각을(日米韓の結束 民主連合の価値自覚を)’이다. 마이니치 사설의 ‘한∙미∙일 연휴(聯携)’, 요미우리 사설의 ‘한∙미∙일 3국 안보협력’ 등 한미정상의 공동성명을 바라보는 일본 언론의 주문은 한결같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미일(압박) 대 한∙중∙러(대화) 로 바뀌면 (북한) 포위망의 효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2018년 4월5일자 일본 산케이신문)

    미국이 적대시하는 권위주의 국가가 북∙중∙러를 비롯하여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이어 ‘개방형 통상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의 국가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협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종연구소 이성현 연구위원에 따르면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半岛问题当事方)’임을 처음으로 자임하고 나선 것은 2018년 남∙북∙미 협력이 가시화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까지 자신을 ‘당사자(当事方)’로 규정하지 않던 중국이 막상 당사자들 간의 대화가 시작되자 일관하던 입장을 바꾼 것은 좋은 의미에서이든, 나쁜 의미에서이든 한국이 진영을 넘나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한미정상의 공동성명은 마치 한미 간의 경제 협정에 관한 계약서를 보는 듯했다. 그 중에서도 첨단 제조업 분야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cooperate to increase resiliency in our supply chains)’ 을 비롯한 포괄적 협력 부문에 나열된 조항들은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경제통합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추진했던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연상하게 했다. 2020년 11월 15일 동아태 15개국은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라는 세계 최대규모의 메가 FTA를 체결한 바 있다. 한∙중∙일이 모두 참여했다는 점에서 ‘RCEP’가 한·중·일 FTA의 추진동력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치를 넘어선 협력의 사례라고 하겠다. 당장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에 뛰어들기 어려운 미국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중국에 견제구를 던진 것이고, 한국은 좋게 말한다면 ‘동아시아 가치사슬(Value Chain)’과 ‘북미 첨단 제조업 공급망’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우리가 핵을 보유하거나 동맹을 갈아타거나 다른 국가에 편승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점에서 이렇듯 현재의 구도에 안주하지 말고, ‘남북 협력’ 등을 비롯하여 구도를 교차하거나 구도 밖에 있는 국가들과 다자 또는 소다자 협력을 계속해서 이끌어내야만 한국이 바라는 평화와 번영의 토대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북 협력은 국제질서를 무시한 채 ‘우리 민족끼리’라는 민족주의자들의 편향된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대한제국이 곧바로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은 것은 열강의 의구심 때문이었다. 서구열강이 가진 대한제국 내의 이권문제와 일본이 청을 침략할 의사가 없다는 보장이 확실해지자 비로소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은 이루어졌다. 이렇듯 한반도문제 해결은 우리가 국제사회, 특히 미국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 직후인 1995년 5월 미 상하 양원에서 리덩후이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 허용 결의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되면서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는 ‘제3차 대만해협 위기’로 치달았고, 1999년 7월 리덩후이 총통의 `특수한 국가 대 국가(special state to state)’ 발언은 갈등에 불을 지폈다. 현재의 상황도 1990년대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2018년과 2019년의 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된 이후인 2019년 7월과 8월에 걸쳐 미 행정부가 대규모 군사장비의 대만 판매를 승인하자 양안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을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는 힘들다. 궁극적으로 한국은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얻을 수 있는 미래수익이 ‘한반도 분단유지’에서 발생하는 현실이익보다 더 크다는 것을 미국에게 논리적으로 제시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중국과 대만의 문제는 한반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6월에는 G7정상회의가 런던에서 개최된다. 한국, 호주, 인도가 게스트국가로 초청되었다. 일본 언론은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번에도 우리의 원칙을 견지해 나아가야 한다.

    필자소개
    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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