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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별과 배제 없는,
    성평등한 기후운동을 위해
    [에정칼럼]차별과 불평등 넘을 파도
        2021년 06월 01일 09: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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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하나.

    기후위기 관련 토론회에는 남성의 얼굴로 채워진다. 최근 한 달 새 열린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토론회 중 전체 패널 성비를 확인할 수 있는 스물 세 개의 행사를 정리했다. 패널 아홉명을 전부 남자로 채운 행사도 있는 반면, 여성은 많아야 네 명이다. 전부 남자로만 이루어진 토론회도 일곱이나 된다. 사회자, 발표자, 토론자 179명 중 남성은 145명으로 전체의 81%를 차지한다. 여성 전문가나 노조 관계자, 활동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남성 일변도일까? 남성이 주요 공론장 대다수를 차지할 때 주로 나오는 이야기와 누락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상세 데이터 확인)

    #장면 둘.

    회의 중 남성 선배가 여성혐오 발언을 한다. 열이 확 오른다. 하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나는 발언을 듣는 내내 고민한다. ‘지적해도 되나? 어떻게 말하지?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괜히 문제만 일으키는 거 아닌가?’ 분위기를 계속 살피다가 회의가 끝나기 직전에 손을 든다. 화내지 않으려고 말을 고르면서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들을 것 같다.

    기후 운동 속 성평등은 어디쯤?

    나는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다. 주로 여성평화운동을 하다가 기후운동으로 넘어오면서 한 차례 세상이 뒤집혔는데, 그 충격은 주로 이런 것이었다. ‘아니 여성이 이렇게 많은데 발언은 왜 죄다 남자가 해?’ ‘아니, 잠시만, 이런 소리(차별 발언과 혐오 표현)를 이렇게 부끄럼 없이 한다고?’ 언제나 따라오는 의문은 ‘아무도 문제 제기를 안 해?’였다. 양복 입은 남자로 가득한 회의장만 가도 답답하던 내겐 매일매일이 충격의 연속이었다. 세상이 다 어지러웠다.

    때로는 슬픔과 분노와 무력감에 휩싸였다. 더 나은 세상과 정의를 주장하는 진보운동에서, 여성 활동가가 반을 훌쩍 넘는 ‘여초’ 운동에서, 청소년과 청년 활동가가 많은 ‘젊은’ 운동에서, 왜 나는 여전히 차별과 배제에 절망하고 있나. 어째서 자본주의-착취 시스템과 결별하고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운동이 사회의 억압 기제를 반영하는가. 왜 평등과 정의를 꿈꾸는 운동이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 한가.

    ‘젊은 여자가 뭘 알아’하는 태도, 여성이 한두 명 있을까 말까한 토론회와 기자회견, 나이 든 남성 전문가로 가득한 각종 회의와 위원회, 대표급으로 올라갈수록 심해지는 남성 과다대표, 인맥과 편견을 바탕으로 한 성차별적 선택편향. 이 모든 일은 의제 설정과 의사 결정, 정보 접근, 리더십의 불평등을 낳고, 몰성적(沒性的)  정책을 낳으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성차별적인 구조를 재생산한다.

    별세상이었다. 성주류화, 교차성, 반차별, 성차별·성폭력 근절, 아무도 남겨두지 않는 세상 같은 말이 별처럼 아득했다. 고민에 귀 기울이고 지지해주는 선배, 함께 화내는 동료가 있는데도 마음 귀퉁이에 답답함이 고여 있었다. 내가 여기서 어떤 운동을 할 수 있을까. 교육을 잘 받은 한국인 비장애인 퀴어 여성 청년인 내게 기후정의와 기후운동이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를 고민했다.

    여성으로서 기후 운동을 한다는 것

    올해 3.8 세계 여성의 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멸종반란한국은 2021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X기후 집담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기후, 환경, 동물권 활동을 하며 겪은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이 훨씬 많은 모임에서도 의사결정권과 발언권이 남성에게 몰려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기후위기와 페미니즘의 관계가 문제시되지 않는 상황, 맨스플레인의 문제, 안전한 공동체, 여성의 이야기가 사소화되는 현상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문제의식을 나눴다.

    멸종반란한국에서 진행한 <여성X기후 집담회> 웹자보

    최근 비슷한 행사가 또 있었다. 현실적 이상주의자 세미나는 5월 16일 <왜 여자들이 기후변화에 더 관심을 가질까>를 주제로 왜 기후, 환경, 동물권 단체와 공부모임에 가면 왜 여성이 훨씬 많은지, 그런데도 언론이나 각종 행사에서 발언하는 사람은 남성이 더 많은지, 모두가 행복하고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모임에 참여한 여성들은 스스로가 발언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아서’와 ‘공격/비판을 받을 것 같아서’를 꼽았다. 반면 다른 여성들이 발언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는 ‘네트워크가 부족해서’를 많이 들었다.

    여성은 성차별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자신에게 가해질 공격을 두려워한다. 외모 지적, 조리돌림, 인신공격을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여성은 언제나 찌그러져 있기를, 조용히 찬성하기만을 강요받았다. 감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어 피드백을 받고 발전시킬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기에 스스로가 충분한 전문성이 없다고 여긴다. 다른 여성의 전문성은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같은 평가를 하지 못 한다.

    현실적 이상주의자 세미나 ‘왜 여자들이 기후변화에 더 관심을 가질까’ 웹자보

    파문이 일렁인다. 파도를 만들자. 해일이 되자

    차별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면 이유는 하나다.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성이 ‘모성적이고, 태생이 자연친화적이라서’ 기후 위기에 관심이 많다는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기후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과 현실을 질문하고, 여성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운동 내에서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파문이 일렁인다. 차별과 불평등을 넘을 파도를 만들자.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진짜 해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자.

    수많은 질문이 가능하다. 기후 위기가 성폭력과 관련이 있을까? 여성의 교육에는? 재생산권에는? 여성의 일자리와 경제적 자립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기후 위기는 성평등에 도움이 될까 저해가 될까? 여성은 기후 위기에 대해서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가? 성별 권력관계를 통해 기후 위기를 분석하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까? 기후 위기 대응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밀어내지 않으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나? 성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멸망을 막는 것을 넘어, 덜 억압적이고 덜 차별적인, 모두가 행복하고 안전한 세상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젠더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분석하고, 성평등한 기후 운동을 하고 싶어서 활동 분야를 옮겼다. 여성운동과 퀴어이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차별과 배제에 대한 민감함,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깨부숴야 한다는 명령, 아직은 주체가 아닌 존재를 끊임없이 주체로 만들려는 시도, 자연시되는 현상을 문제로 끄집어내는 예리함과 집요함이다.

    성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기후 위기로 인한 충격과 사회 변화는 기존의 차별과 맞물려 강화하고 재생산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기후 위기가 성차별 문제가 아닐 수 있나. 기후 정의는 젠더 정의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돈이 되는 대상은 모조리 착취하고 존재의 가치를 가르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일,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이며 재생산이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일은 차별과 배제 위에 만들어질 수 없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케케묵은 질문을 끝없이 제기해온 여성들이 기후 운동을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게 만드는 힘이다.

    덧 : 이번 칼럼은 기후,에너지,환경,동물권 운동을 하는 여성 활동가들에게 바칩니다. 칼럼 내용은 멸종반란한국의 류, 벌새, 수수감자와 나눈 대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세 분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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