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 인명진 앞세워 ‘최후의 심판?'
        2006년 11월 21일 03: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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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성 없는 정치인에게는 파멸이, 새롭게 거듭나는 정치인에게는 재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국민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이다.”

    21일 한나라당 국회 대책회의에서 황우여 사무총장이 당 소속 의원들에 전하는 메시지다. ‘정치인’을 ‘인간’으로, ‘국민’을 ‘하느님’으로 바꾸면 종교 집단의 교시다. 한나라당이 북핵 심판 대회에서 “하느님이 한나라당과 함께 한다”며 친히 뉴라이트 목사님의 “아멘” 호응을 받더니, 아예 당에 목사님을 모셔놓고 ‘최후의 심판’ 교훈을 설파하려는 것인가. 

    황우여 사무총장은 이날 대책회의에서 “윤리는 정치의 목적은 아니다 하더라도 그 기본이라는 게 우리의 소신”이라며 “한나라당의 윤리 기준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부 영입한 윤리위원장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 목소리를 담아 윤리 기준을 제시한다면 한나라 지도층부터 경청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외부 영입된 인명진 윤리위원장의 징계 방침과 관련 당 소속 의원들의 반발에 대한 응답이다.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전날인 20일 CBS 라디오 <뉴스레이다>에 출연, 호남 비하 발언과 공천에서 탈락한 무소속 후보를 지원한 김용갑 의원에 대한 징계 방침을 거듭 천명했다. 인 위원장은 “특히 무소속 출마자 지원 문제는 당명 불복”이라며 “과거 같으면 제명됐을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 위원장은 이 문제가 당의 질서는 물론 “대선 후보 경선에서의 불복 사태까지 관계돼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 위원장은 공성진, 송영선 의원 등의 ‘국방위 피감기관 골프’ 사건에 대해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징계하라고 회부된 사안”이라며 “징계 수위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당장 송영선 의원이 인 위원장을 간접 비난했다. 송 의원은 20일 김만복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현직 목사 오충일 과거사진상규명위원장에게 “우리 한나라당에도 목사님을 모셨지만,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뜻을 옮기는 중간자로 자기들 말이 절대 옳고, 절대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오충일 위원장을 지적한 것이지만 인명진 윤리위원장을 겨냥했다는 해석이다.

    김용갑 의원은 직접 인 위원장을 겨냥해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김 의원은 21일 ‘좌파의 칼이 보수의 목을 겨냥하고 있다’는 제목의 개인 성명을 당 홈페이지에 올리고 “임명진 목사는 한나라당을 분열시키고 도산시키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또한 “많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우려하듯이 한나라당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는 강한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성직자인 인 위원장이 최소한 피고인에 대한 무죄 추정의 원칙도 무시하고 사전에 언론에 공개적으로 매도해 엄청난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최소한의 윤리적 기본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인명진 위원장의 행위가 ‘제척사유’에 해당한다며 당에 인명진 위원장에 대한 기피 신청을 건의했다. 또한 명예훼손과 관련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색깔론까지 제기된 인 위원장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것 같지는 않다. 황우여 사무총장은 이날 윤리위 활동의 의미를 강조하는 한편으로 “당원이나 의원들의 행동이 윤리 기준에 어긋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 동료들이 외부 영입 윤리위원과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이래야 정치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고, 불이익한 처분이 있더라도 승복감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갑 의원 징계와 관련 표결 처리에 불만을 토로했던 인명진 위원장에게 사실상 ‘정치판은 다르다’는 충고를 남긴 셈이다.

    한편 당내 반발 기류에 단련이 된 탓인지 인명진 위원장은 송영선 의원과 김용갑 의원의 주장에 오히려 맞장구를 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인 위원장은 <레디앙>과 통화에서 “저 개인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김용갑 의원의 ‘정체성’ 문제제기에는 “김 의원이 사람을 잘 본다”며 “재야 운동을 하다가 민주화 운동 하다가 한나라당 들어가니까 내가 생각해도 정체성이”라며 웃음으로 답했다. 송영선 의원 발언에 대해서는 “목사들이 좀 그렇다”며 “저는 되게 더하다”고 응수했다. 황우여 사무총장의 말도  “원칙적인 이야기”라고 넘겼다.

    언제든 짐을 쌀 각오라는 인명진 위원장이 앞으로도 계속 당내 의원들의  비판에 웃음으로 답할 수 있을지, 윤리위 결정에서 또다시 한나라당의 타협안을 “아멘”하며 수용할지,  아니면 갈등 끝에 짐을 싸게 될 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당장 김용갑 의원의 징계수위를 놓고 인 위원장과 당내 의원들간 내홍이 벌써부터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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