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기 피해 반경 50km, 핵보다 더 심각”
        2006년 11월 21일 11: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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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살민(殺民) 정책’이 완벽하게 구비됐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이선근 본부장은,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도 그러했듯 ‘민심이 요동칠 때’ <레디앙> 역시 이선근을 찾았다.

    작년까지 주택가는 연 1.0%씩 올랐다. 그러던 것이 올해부터는 널뛰기를 시작하여, 5.2%나 올랐단다. 이 통계도 지난 9월까지 것이니, 지금은 5% 쪽보다 10%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강남 지역 아파트는 16.7%!

    “작년에 부동산 관련 세금 제도가 많이 갖추어지면서 주택 소유자들이 세금을 비용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 비용을 전월세 가격 인상에 전가한 것이다. 전월세 살던 사람들은 기왕에 오른 보증금이나 임대료를 내느니, 아예 집을 사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집값 폭등 노동자에 미치는 영향 심각

    하지만 이런 현상은 공급-수요 부조화라는 전형적 자본주의 현상과는 많이 다르다. 예전에는 천천히 사려고 기다리고 있던 주택 수요자들이, 현 상황에서 ‘막차를 타야겠다’고 한꺼번에 시장으로 뛰어들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증세가 나쁘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투기 붐과 과세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벌어지는 것이다. 투기 붐을 잡으면서 과세해야, 세금이 가격으로 전가되지 않는데, 투기를 억제하지 않으면서 조세로만 해결하려 드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종부세를 하려면 다른 세목을 빼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나라처럼 종부세를 과세하는 것이니, 외국에는 없거나 적은 자동차세 같은 것을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이선근 본부장의 분석에 따르자면, 주택가 폭등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자못 심각하다.

    “투기와 주택가 폭등의 피해는 반경 50km까지 미친다. 핵폭탄보다 더 심각하다. 그런데 그 50km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수도권 월급쟁이들의 마지노선이다. 서울 아파트가 폭등이 위성도시의 전월세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노동자들은 더 외곽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 바로 서민들의 생활상 불편과 고통이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은 비등하는 서민들의 불만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집을 살만한 사람들이 바로 여론 주도층이고, ‘분양원가 공개’ 같은 정책이 그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현재의 정국을 이끌어 가고 있다. 경실련은 이런 정국의 핵심을 잘 집어냈다. 민주노동당과 경실련의 정책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경실련 같이 축적된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정보를 분석해서 폭로거리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집 살만한 여론 주도층 담론

    둘째 문제는 당에 부동산 정책 콘트롤 타워가 없다는 점이다. 정책위원회가 그걸 맡아야 하는데, 현재의 정책위에는 그게 없다. 부동산 전담 연구원을 못 뽑기도 했고, 현재의 의장 체제 자체가 당내 유관 부서를 모아 조정하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경제민주화운동본부가 부동산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이 노하우를 실행할 수 있도록 물적 인적 지원만 해준다면 어떤 정당이나 단체보다도 앞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연일 언론을 달구는 주택가 폭등에 대해 이선근 본부장은 다음과 같이 단기 대책을 제시했다.

    “우선 주택청약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는 무주택 성인 1인당 청약권을 주고 있는데, 이것을 무주택 가구 단위로 바꿔서, 한 가구의 여러 사람이 청약권을 가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표준건축비 제도를 복구해야 한다. 예전에는 건교부 표준건축비 심의위원회가 정하는 것에 따라 분양가가 결정됐는데, 김대중 정부 때 그것을 없애서 지금과 같은 분양가 앙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 외에도 공공개발된 주택을 매각하려 하거나 실사용하지 않을 때 공공기관이 매수하여 실수요자에게 판매하는 환매수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

    부동산 기득권층 강력한 힘, 섣불리 하면 필패

       
     

    민주노동당이 정책으로 사회를 설득하려면 매우 정교한 논리를 가져야 한다. 부동산 기득권층이 워낙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지르기 식으로는 판판이 질 수밖에 없다. ‘1가구 1주택제’ 같은 것은 올바른 방향이지만, 현 시점에서 거기에 목매다는 것은 전술적 조급함이나 정치적 무능력이다.”

    늘어난 세금을 비용으로 전가하면서 주택가격 폭등이 일어났다면, 그리고 가수요가 갑자기 몰리기 때문이라면 2~3년 후에는 주택가격이 좀 안정될까?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들의 정책이 조금씩 반영된다면 서민 주거 생활이 나아질까? 이선근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전세 보증금의 월세 전환율이 14%다. 시중 금리의 세 배나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집주인들이 전세를 내놓지 않고 월세를 선호하게 되고, 전세 물량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전세 살 사람들이 매입으로 몰리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법에 정해진 전환율을 ‘10% 이하에서 공금리를 반영하는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 전세 시장이 안정되고, 매매시장도 안정시킬 수 있다.”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민주노동당의 다른 부서나 ‘정파’들이 별로 관심 기울이지 않는 ‘민생 정책’을 스스로 개발하고 발전시켜 왔다. 이자제한법이나 상가임대차보호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은 경제민주화운동본부가 하는 일의 일부일 뿐이다.

    “2차 대전 때 일본이 3광 정책을 썼듯이 이 정부는 ‘살민(殺民) 정책’을 쓰고 있다. 주택가와 상가임대료를 올리는 부동산 정책, 서민을 사채 시장으로 내모는 정책, 그리고 비정규직 정책이 그것이다. 여기에 맞대응하는 게 민주노동당의 역할이다.

    기능 정지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 제도 폐지돼야

    내년 대선 때는 지난 번 선거 때보다 100만 표를 더 얻어야 한다. 임대 아파트 거주민이 300만 명인데, 그 중 100만 표를 가져와야 하고, 가져올 수 있다.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서는 6년 전부터 이 사업에 진력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당조직에서는 아직 여기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임대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위해 우선 당내 여론을 확산하고, 활동가들을 모을 계획이다.”

    이선근은 민주노동당의 내부 질서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옥상옥일 뿐더러 이미 기능이 정지된 최고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 간부회의와 최고위를 통합해서 집행을 담당하도록 하고, 의사 결정은 대표단회의(주요 당직자회의)로 집중시켜 당무의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이선근 같은 이가 민주노동당의 지도적 위치에 서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이 유능하고 헌신적이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노선과 정책이 다르다’는 이유로.좋은 당에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고, 좋은 사람들도 좋은 생각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아무래도 일을 더 하려면 국회의원이 되야겠다.” 언제, 어떻게? “2008년에 비례의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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