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로 잃어가는 문화유산
    [에정칼럼]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
        2021년 05월 27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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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갈라파고스제도의 ‘다윈의 아치’가 무너졌다. 남태평양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풍부한 주변 생태계 덕에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쓰도록 도움을 줬다던 곳이다. 갈라파고스제도는 그동안 기후변화 영향에서 가장 취약한 곳 중 하나도 지목되어 왔다. 이는 그동안 다윈의 아치 아래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생태계에 대한 말이었겠지만, 지속적으로 그 경고를 무시해온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비명 같았다. 물론 기둥의 붕괴 또한, 엘니뇨로 심해진 태풍으로 침식을 가속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윈의 아치 외에도 많은 고대유적, 문화재 등이 기후위기로 인한 파손 위험에 처해있다.

    출처: AFP·AP 연합뉴스

    기후변화는 인간의 흔적도 지우기 시작했다. 최대 4만5천년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석회동굴 고대벽화가 기후변화로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일 네이처지에 발표된 ‘술라웨시 고대 암석 미술에 미치는 기후변화 영향’ 연구에서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해당 지역의 가뭄를 심화하고, 우기 때는 강우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염정작용으로 인해 동굴벽화가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이 단 200년 동안의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위기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출처: CBS NewYork, “Ghost Forest” by Maya Lin

    이런 기후변화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경고한 작가가 있다. 마야 린(Maya Lin)은 미국 매디슨 스퀘어에 “유령 숲”을 설치해 지구 표면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도심에서 직접 느끼도록 한 것이다. 유령숲에는 나뭇잎이 없는 49개의 죽은 삼나무가 심어져 있다. 사람들은 가까이 가서 하늘을 바라보기 전까지 그 나무가 죽은 나무인지 모르고 산책과 피크닉을 즐기기도 한다. 나무들은 진짜지만 죽은 나무다. 뉴욕 매디슨 스퀘어의 유령 숲은 인위적으로 설치된 것이지만,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실제 나무들이 기후변화로 죽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북방 한대지역에서 발생하는 ‘좀비 산불’은 비현실적인 재앙을 보여준다. 지난 19일 발표된 네이처지의 논문 중 여름 기온이 상승하면서 발생한 산불이 유기토양 깊은 곳에 겨울을 거치면서 동면하고 있다가 다음 산불 시기에 재점화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구 대기의 두 배가 넘는 이산화탄소를 저장해주는 탄소흡수원이던 북방 한대지역 또한, 기후변화로 큰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현실 같은 예술 작품, 비현실적인 현실. 기후위기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최근 공상과학(Sci-Fi) 대신 기후소설(Cli-Fi)이 뜨고 있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 ‘투모로우’, 우리나라에서 유독 흥행했던 ‘인터스텔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등이 그 예이다. UC샌디에고 셸리 스티비 교수는 “과학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소설가들이 대신하고 있다”며, “소설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게 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예감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최근 울진 금강송면의 금강소나무들이 고사하고 있다. 지난 2019년 6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남부지방산림청과 소나무 전문가, 녹색연합 등과 협력하여 금강소나무 고사 실태를 조사하였고, 겨울 동안의 가뭄 등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금강송군락의 고사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한편 극심한 자연재해로 새로운 자연유산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 2006년 설악산에 집중된 집중호우로 ‘하룻밤 새 형성된 선상지’가 생기기도 했다. 최근 과학저널 ‘퇴적 기록’에 실린 논문에 참여한 이광춘 상지대 명예교수는 보통 수만년에 걸쳐 형성되는 부채꼴 퇴적 지형인 데다가 설악산의 지형상 선상지가 생기기 힘든데, 2006년에 격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설악산의 선상지가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지만, 그 주요 원인이 예외적인 집중호우라는데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출처: 남부지방산림청

    영향을 받는 것은 이런 자연유산뿐만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일찍이 기후변화로부터의 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해 문화와 기술 기반의 혁신적인 복합해결책을 찾기 위한 EU JPI(Joint Programming Initiative)를 발족했고, EU NOAH’s ARK 프로젝트를 통해 유럽 문화재의 기후변화 영향 분석과 적응 전략을 연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재청에서 2012년 발표한 ‘기후변화적응을 위한 문화재 보호 종합대책 수립 연구’를 통해 한반도 문화재의 기후변화 영향을 분석하고, 문화재 보호 전략을 제시했다.

    연구에 따르면 태풍, 호우, 강풍, 대설 등의 재해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명승문화재와 중요민속문화재로 나타났다. 이렇듯 기후변화로 영향을 받고 보호해야하는 것은 국보 등 유형문화재뿐만이 아니라 천연기념물과 명승문화재, 민속문화재 등 다양하다. 하지만 현재 문화재보호법은 자연유산 보호에 미비한 부분이 있다는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작년 11월, 이상언 의원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자연유산에 치명적 위협을 끼치고 있는 상황에서 유형문화재뿐만 아니라 천연기념물 및 명승 등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고 지난 4월 20일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렇듯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의 과제는 더 이상 환경부나 산업부 등 일부 부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계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는데 탁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의 보호 또한 기후변화 적응 대책 안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하는 부분이다. 사회 대전환을 요구하는 탄소중립 선언 이후, 전방위적이고 범부처 간의 논의가 필요하다.

    <참고>

    지구의 경고일까… ‘다윈의 아치’ 기후변화에 결국 무너졌다 – 서울신문(seoul.co.kr)

    기후변화 때문에…최대 4만5천년전 인도네시아 동굴벽화 훼손 – 매일경제(mk.co.kr)

    땅속에서 동면했다 살아나는 ‘좀비 산불’…기후변화로 많아진다 – 한겨레(hani.co,kr)

    울진 금강송 군락지 고사목 발생 ‘기후변화’때문 – 울진투데이(www.ulfintoday.com)

    기후소설(Cli-Fi)이 급부상하고 있다 – The Science Times(sciencetimes.co.kr/news)

    ‘Ghost Forest’ In Madison Square Park Raising Awareness About Impact Of Climate Change On Trees – CBS NewYork(newyork.cbslocal.com)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문화재보호 종합대책 수립 – 문화재청(2012)

    수만 년 걸리는 ‘부채꼴 퇴적지형’ 설악산서 하룻밤 새 만들어져 – 한겨레(hani.co.kr)

    국회 문체위,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 개최 – 데일리투데이(dailytoday.co.kr)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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