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출,
    탈핵에 국경 없다···한일 반핵연대 필요
    [기고] 두 나라의 ‘반일’과 ‘혐한’ 프레임은 악순환
        2021년 05월 25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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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글을 보내준 오하라씨는 일본인이다.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으며 탈핵신문 편집위원 등으로 한국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발언이라는 요청에 기고글을 보내줬다. 감사하다. 탈핵의 길에 국경은 없다. 누구의 핵은 좋은 것이고 누구의 핵은 나쁜 것이라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반일과 혐한의 프레임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반핵을 향한 한일 시민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깊은 공감을 보내며 일독을 권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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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13일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출을 결정했다. 국내외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오염수는 충분히 정화한 후 기준치 이하로 희석해서 바다로 보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궤변을 고수했다. 해양 방출 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오히려 핵발전소 부지에서 해양으로 오염수를 방출하는 것은 오래된 국제적 관례임을 강조했다. 일본에서 제일 가까운 한국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발표와 동시에 한국의 탈핵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하여 어민조합, 대학생 등 각계가 강력하게 반대하며, 각지에서 연일 기자회견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국민적 관심도 크다.

    오염수 방출 관련 방송화면 캡처

    사람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출을 ‘핵 테러’라 부르기도 한다. 어쩌면 인류가 ‘핵’을 다루는 것 자체가 ‘테러’일 수도 있겠다. 핵이 개발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핵 테러’가 전 세계에서 벌어졌다. 미소 냉전 기간 핵보유국들의 핵실험은 세계적으로 2000회가 넘는다. 핵연료를 재이용하기 위한 핵 재처리 관련 시설에서도 대량의 오염수가 바다에 방출됐다. 중·저준위핵폐기물의 해양투기도 1993년에 금지되기 전까지 계속 진행되었다. ‘군사적’이든 ‘평화적’이든 인류가 핵을 다루는 이상 핵 테러는 아예 ‘일상’이 됐다.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일본정부는 IAEA와 미국의 든든한 지지를 이끌어냈고 해양방출을 공공연하게 정당화하는 수단을 갖추었다.

    대외적으로 IAEA와 미국이 일본을 도와주고 있다면, 일본 국내에서는 언론기관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며 오염수 해양방출 정당화에 가담하고 있다. 특히 일본 보수 언론은 한국에서 일부가 욱일기를 찢으며 ‘오염수는 일본이 마셔’와 같은 자극적인 구호를 외치며 진행하는 퍼포먼스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의 오염수 반대 목소리를 ‘반일’운동 프레임으로 소개함으로써, 오염수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국민적 감정 대립을 먼저 부추긴 것은 일본 정치인들이다. ‘오염수는 마셔도 괜찮다’거나 ‘중국·한국 따위로부터 그런 말 듣기 싫다’와 같은 망언은 한국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데 충분했다. 오염수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뒤로한 채, 양국에서 ‘반일’과 ‘혐한’이라는 감정 대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민족주의적 감정 대립을 부추기는 것은 오히려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만들면서 역효과로 작용될 우려가 크다.

    반일 프레임으로 오염수 문제를 부각하는 이미지들

    한국에서 일부 운동단체들이 기형 동식물 사진 등 후쿠시마 방사능 피해에 대한 확실하지 않는 ‘가짜’ 정보를 이용해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도 삼가야 한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괴담’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수없이 인터넷상에서 돌아 화제가 되긴 했다.

    예를 들어 자주 등장하는 기형 사진으로 머리가 두 개 있는 상어 사진은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2008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공개된 사진이다. 기형 해바라기 사진 또한 비료 과다 섭취 등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진 상태다. 그 외에도 유명 연예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암 사망 등도 방사능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입증된 것은 아닌 상태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러한 괴담에 제일 큰 상처를 받은 쪽은 언제나 실제 핵사고로 피해를 입고 있는 현지 주민들이다. 방사능으로 인한 피폭은 다양한 위험성을 내포하는 반면 그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한다는 것을 핑계로, 가해자인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각종 방사능 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번 오염수 해양방출은 방사능 피해를 외면하는 그간 태도의 반복이다. 그래서 확인되지 않은 ‘괴담’을 진실인양 이야기하는 것은 오염수 해양방출을 막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이 한국 내 이런 주장을 매우 수준 낮은 것으로 왜곡하는데 빌미만 줄 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오염수 해양방출 용인 = 친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 또한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미 작년 10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출에 대해 ‘의미 있는 영향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핵마피아의 일원인 한국원자력학회 또한 지난 4월 26일 ‘오염수는 일본 주장대로 처리수라고 부르는 것이 맞으며, 방출해도 한국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런 입장을 내놓는 것은 그들이 결코 ‘친일’이어서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지적하듯이 한국의 핵발전소에서도 방사능 오염수가 통상적으로 해양에 버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장대로 특히 중수를 사용하는 월성 핵발전소에서는 다른 핵발전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삼중수소가 액체와 기체로 자연에 방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핵 발전을 운영하는 모든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고, 각국의 원자력 관련 기관들은 하나같이 이런 방식을 정당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특히 한일 시민들 사이에서 그 점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양이 얼마이든지, 핵종이 무엇이든지 ‘독’은 ‘독’이다. 그것으로 피해와 고통을 받는 이들은 양국 시민 모두다.

    한국 정부가 향후 어떤 전략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할 수 있을지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최근 한국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양국 협의구조를 구축할 것을 일본 정부에 타진했고,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의향을 밝혔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협의를 유리하게 가져가기보다는, 일본의 해양 방출에 도장을 찍어주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계속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더라도 이를 가지고 ‘친일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엇나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은 탈핵을 선언하면서도 국내 핵 문제에 대해서 줄곧 불철저하고 어정쩡하게 대응하는 이중적인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전 산업 추진과 수출 협력을 약속하는 등 탈핵과 찬핵 정책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어쨌든,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출은 결코 용납할 수 없고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 내에서 일본 정부의 결정을 뒤집을 유효한 방책을 찾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여전히 제일 중요한 것은 일본 시민들 스스로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만행을 무너뜨리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오염수 해양 방출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수습 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과정 중 일부에 지나지 않다. 오염수 해양 방출을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일본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폐로 로드맵’을 전면적으로 재고하는 것부터 손대야 한다. 폐로 로드맵은 30~40년 내에 사고 현장을 깨끗한 맨땅으로 만들겠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상을 전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처리를 서두르는 제일 큰 이유이다. 이에 대해 일본 시민사회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많이 소개된 ‘오염수 육상 장기보관’이라든가 ‘모르타르 고체화’ 등이 그것이다. 추가적인 오염수 발생을 막기 위해 사고가 난 원자로를 물이 아닌 공기로 냉각하는 방안 또한 일본 시민사회 핵공학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일본 시민사회의 힘은 아주 미약하다. 오염수 해양 방출 반대 여론이 60%를 넘는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반대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잘못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사회를 바꿔 나갈 저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 시민사회와의 큰 차이점이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일본의 탈핵운동 진영과 시민들에게 힘을 보태주었으면 좋겠다. 작금 한일 양국 간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어 시민 차원에서 양호하게 이어져온 각종 교류마저도 타격을 맞고 있다. 일본 정부와 보수 언론들이 연일 ‘혐한’ 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악순환이다.

    과거 선배들이 이어온 한일 간 반핵운동 연대의 역사는 길고도 깊다. 아시아 지역 반핵운동의 연대를 위해 만들어진 ‘반핵아시아포럼(NO NUKES ASIA FORUM)’은 1993년 한국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거의 매년 아시아 각국을 돌아가며 개최되고 있으며 지속적인 신뢰와 유대관계가 구축되어 왔다. 탈핵은 장기전이다. 한국과 일본의 고질적인 감정 대립을 넘어, 각국이 제대로 핵마피아와 싸워 나가기 위해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탈핵의 길에 국경은 없다.

    필자소개
    탈핵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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