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생태학’은 부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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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20일 0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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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작은 나라이다. 우리에게는 산디니스타 사회주의 혁명이 있었던 곳으로 약간 알려져 있을 뿐인, 먼 나라이다. 당시 산디니스타 정권 시절 대통령이었던 다니엘 오르테가가 17년만에 재집권, 남미 좌파 정권의 릴레이를 이어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니카라과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19세기 중엽부터 니카라과는 바나나 대농장을 소유한 미국 농장주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미국을 등에 업은 소모사 정권은 1979년 혁명 이전까지 니카라과를 독재적으로 철권 통치해 왔고, 그 와중에 인구의 1%도 안 되는 소수의 대지주들이 토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면화와 바나나를 대농장에서 재배하면서, 니카라과 농민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 면화를 수확하는 니카라과 농민들
 

무엇보다도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면화 재배에 사용된 엄청난 양의 고독성 농약이었다. 1950년대에 면화 재배 붐이 일었을 때, 니카라과는 그야말로 2차대전 이후 신종 유기합성 농약들을 개발해온 거대 농화학 기업들의 실험장이 되다시피 하면서 엄청난 양의 농약이 살포되었다.

하지만 농약의 효과는 아주 짧은 것이었고, 1960년대 들어 농민들의 건강과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했다. 계속적으로 새로운 해충들이 창궐하고 이에 대응해 점점 농약 사용량을 높여감에 따라 농민들은 농약중독으로 고생하였고(1962년에서 72년 사이에 해마다 평균 3천건 이상의 급성 농약중독 사고가 일어났고, 이는 1인당 비율로 따졌을 때 미국의 8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70년대 들어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만 갔다.

니카라과 국민들의 체지방내 DDT 검출량은 전세계 어느 나라들보다도 더 높았다. 니카라과가 면화 재배를 위한 농자재를 선진국에서 수입하여 이것으로 면화를 재배하여 이를 선진국으로 수출해서 외화를 획득하는 경제구조로 고착화되고 그에 따라 면화 생산량이 세계 5위 안에 들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돈을 버는 것은 다국적 농약회사들 뿐이었다.

1979년 7월 19일 산디니스타 혁명군(FSLN)이 소모사 정권을 뒤엎고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정부를 세우게 되었다. 혁명정부는 이러한 농약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환경에 대한 악영향도 인식하고 있었다. 그해 8월 24일 국립자연자원환경연구소(IRENA)가 창립되었다. 바로 자연자원의 사회적 관리, 그리고 농약을 비롯한 심각한 환경문제에 대한 대처를 위한 것이었다.

   
 

▲ "인간들만이 해방을 원한건 아니었다. 모든 생태계가 이를 갈망했다. 혁명은 호수, 강, 나무, 동물들의 것이기도 했다."

-에스테날로 카르데날 신부(산디니스타 혁명정부에서 1979년~90까지 문화부장관을 지낸 시인  

 
 

1979년에서 81년 사이에 산디니스타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12가지 농약(dirty dozen) 중에서 8가지의 사용을 금지시켰고, 농약 수입을 엄격한 통제 하에 두었다. 그리고 소모사정권 때부터 UN의 지원으로 간헐적으로 시도되었던 통합해충관리(IPM/농약 사용량을 줄이면서 다양한 생태적 방식으로 해충을 방제할 수 있는 일련의 관리책)를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IPM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자문위원회가 꾸려졌고, 대상지역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80년대 초 니카라과에서 농약 사용량이 상당히 줄어드는 효과를 보게 되었고, 1985년까지 니카라과 면화 재배량의 45%에 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IPM은 농약이라는 외부 투입물에 대한 의존을 줄여주면서 자립적인 농업구조를 갖게 하는데도 기여했다.

이처럼 산디니스타 정권이 국가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 전략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부터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싹을 틔운 “농민에게서 농민에게로(Campesino a Campesino, 영어로는 Farmer to Farmer) 운동” 때문이었다.

이 운동은 중미 국가들에서 약 30년 동안 농민 주도의 생태적 적정 기술 – 1973년 슈마허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영향으로 등장한 거대 기술에 반대되는 작은 기술 – 의 등장과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을 통하여 소농들의 생계와 농촌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60~70년대 미국 주도로 농업의 근대화와 상품화를 꾀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과 80년대 초반 중남미를 휩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의 각종 생태적, 사회적 부작용들에 맞서서, 농업생태학, 연대, 혁신의 원칙에 기초하여 생태 파괴적이고 사회 파괴적인 흙, 물, 유전자원의 상품화에 저항하고,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농업발전 경로를 결정할 수 있는 소농들의 권리를 옹호해 왔다.

국제 NGO들의 지원으로 과테말라 산간의 토착 농민들 사이에서 싹이 튼 이 운동은 농민, 전문가, NGO 간에 참여적이고 농민 주도적인 “두터운” 정보지식 공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위로부터의 획일적인 농업-농촌 개발모델에 대한 대항이자 대안인 셈이다.

1970년대 멕시코로 전파되었고, 산디니스타 혁명기 니카라과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 운동이 공산권과의 교역이 봉쇄되어 전국민이 심각한 식량위기를 겪었던 90년대 초반 쿠바에 도입된 것이다. 그리고 쿠바는 과거 산업형 농업모델에서 유기농업으로 빠르게 전환하여 위기를 딛고 21세기 접어들면서 식량자급을 이루게 된다. 왜 유독 쿠바에서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농민에게서 농민에게로 운동”이다.

하지만 정작 니카라과에서는 이러한 ‘혁명의 생태학’이 오래가지 못했다. 중남미의 계속적인 좌경화에 위협을 느낀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이란에 무기를 수출하여 생긴 돈으로 사회주의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항하는 우익 콘트라 반군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면서(이란-콘트라 스캔들),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 니카라과 대통령에 당선된 오르테가
 

콘트라 반군의 주목표가 바로 IPM 전문가들과 농업 거점들, 그리고 바로 농민들이었고, 그에 따라 IPM 정책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산디니스타 정부가 콘트라 반군에 대한 대응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예산의 절반 이상을 내전에 사용함에 따라 초기의 개혁정책들도 점점 희석되어 갔고, 경제상황은 점차 악화되어 갔다. 결국 1990년 선거에서 산디니스타 정권은 차모로가 이끄는 전국야당연합(UNO)에 패배하면서, ‘혁명의 생태학’도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제 17년만에 다시 기회가 왔다. 과연 오르테가는 ‘혁명의 생태학’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을까? 15년전 니카라과의 도움을 받았던 쿠바는 전세계적으로도 훌륭한 유기농업과 도시농업 사례를 만들어내었다. 이제는 니카라과가 쿠바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생태적 발전모델을 모색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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