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산업 슈퍼사이클,
    그것이 던져주는 함의와 과제
    [노동자도 알아야 할 산업과 경제] 역사적 경험
        2021년 05월 24일 09: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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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산업은 수주량 기준으로 한국과 중국이 세계시장 1위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2018년 이후 2년 연속 세계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 주력산업이다. 2019년 세계 조선소를 기준으로 할 경우 1∼3위까지가 한국 조선소이며, 10위 안에 5개의 조선소가 한국 기업일 정도로 개별 조선소 차원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높다.

    조선산업은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외화획득산업이기도 하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13~2017년 사이 신규 선박 건조량에서 국내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CGT(Compensated Gross Tonnage)기준으로 약 6.6%에 불과하여, 93.4%에 이르는 압도적 부분이 수출선으로 건조되고 있다.

    조선산업이 국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통계청의 광업제조업 조사를 통해 살펴보면, 2018년 기준 사업체 수 측면에선 전체 제조업 대비 1.7%에 불과하지만, 종사자 수는 3.7%에 이르러 제조업 고용에서 매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산업이 다른 제조업에 비해 높은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표준화된 생산이 아니라 수요자의 요구에 따른 주문형 생산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독특한 특징 때문이다. 주문형 생산방식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같은 조선소에서 유사한 선박이 생산되더라도 제품에 차이가 존재하여, 공정을 표준화할 수 없다. 이처럼 조선산업은 조선소가 보유한 공학기술과 인적자원의 작업 노하우 및 숙련도 등이 제품 품질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자동화가 주류를 이루는 대부분의 제조업과 큰 차이가 있다. 사람이 직접 판단하여 작업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산업에 비해 노동집약적 특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조선산업은 다른 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긴 경기사이클을 가지고 있는데, 세계 조선산업의 지형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그 충격이 막대하다. 마틴 스톱포드에 따르면 조선업은 건조량 기준으로 1902년에서 2007년 사이 총 5번의 사이클을 경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세계 조선 건조량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10년을 고점으로 2015년 반짝 증가한 후 최근까지 하락추세에 있다.

    현대중공업의 현장 모습

    그렇다면 왜 조선산업의 경기사이클은 다른 산업에 비해 유난히 길게 나타나는가? 이는 선박을 수요로 하는 해운산업의 특성과 선박 건조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조선산업의 특성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해운산업의 특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해운업의 수익은 기본적으로 사람이나 화물을 운반하며 얻는 운임과 선박을 빌려주는 대가로 받는 용선료에서 발생한다. 그렇지만 운임이나 용선료를 통한 수익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척당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들어가지만, 세계 단일 시장의 특성상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론 제조업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선주가 선박에 투자하는 이유는 해운 경기의 불확실성이 야기하는 기회를 잘 이용하면 선박매매차익을 크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벌크선 신조선가와 중고선 가격을 살펴보면 신조선가보다 중고선박 가격이 더 높은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중고선 가격이 새로 선박을 만드는 비용보다 높을 수 있다는 것은 언뜻 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해운 경기와 선박 건조가 갖는 특별함 때문에 종종 발생한다.

    예상과 달리 해운경기가 팽창하면, 선박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선박운임과 용선료가 올라간다. 그렇지만 신규 선박을 건조하여 인도되려면 2∼3년의 시차가 필요하다.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중고선은 바로 투입하여 이윤에 기여할 수 있지만, 신조선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중고선의 가치가 신조선의 가치보다 올라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이런 원리 때문이다. 특히 해운경기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급격히 좋아지고, 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어 해운운임과 용선료가 치솟을 때, 선박가격의 역전현상이 두드러지게 발생한다.

    이 상황을 잘 포착하기만 하면 선주는 큰 돈을 벌 수 있다. 특히 불황기에 선박을 싸게 구입한 후 가격이 오르는 적절한 시점에 선박을 매매할 경우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해운강국인 그리스의 대부분 선주들은 선박 매매를 통해 높은 수익을 얻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선박의 자산가치는 경기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동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공급이 필요하다고 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큰 시차가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선박은 부동산과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 동시에 자산가치가 올랐을 때 기회를 잘 포착하면 매매차익을 크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해상운송을 위한 목적보다 매매차익을 위한 투자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도 유사한 특성을 갖는다. 마치 부동산이 실거주가 아니라 매매차익을 위한 투자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선박시장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해운업과 선박의 이와 같은 특성은 조선산업의 경기사이클을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만약 해운 경기변동이 예측가능한 수준에 있다면 선박 발주는 노후선을 교체하거나 세계 교역량 증감에 맞추어 안정적 수준을 꾸준히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조선산업에 장기불황을 야기하는 사이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선박 매매 차익을 위한 투기 성격의 투자 역시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해운산업의 경기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에선 선박이 집중발주되어, 시장에 선박 공급이 집중되는 시기가 존재한다. 호황이 지속되면 선주들이 선박에 대한 발주를 늘여가기 시작하는데, 조선산업의 특성상 선박이 발주되었다고 바로 시장에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 수요에 비해 선박 공급이 뒤처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만약 호황이 예상보다 지속되면 해운운임과 용선료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므로, 선주들이 경쟁적으로 선박을 발주하기 시작하는 선박투자 붐이 일어난다. 물론 여기엔 매매차익을 위한 투기 성격의 투자 역시 가세하게 되는데, 이 경우 선박 발주는 필요 이상으로 더욱 늘어나게 된다. UNCTAD(2013)에 따르면 2003∼2008년 사이 발주된 신조선 가운데, 무려 절반 이상이 2007∼2008년 사이에 발주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메커니즘에 의해 해운업에 불황이 발생하면 조선산업 역시 불황을 겪게 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호황 국면이 갑작스런 충격에 의해 붕괴될 경우 그만큼 선박의 과잉공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므로 조선산업의 불황이 장기화된다.

    심각한 것은 장기불황이 세계 조선산업의 지형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큰 충격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70년대 초에 발생한 석유위기와 중동전쟁의 충격으로 세계 조선산업은 무려 20여년간 장기 불황을 겪어야 했다. 당시 세계 조선산업은 일본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장기불황에 따라 조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간주하여 설비를 감축하고,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을 1978년, 1987년 두 차례에 걸쳐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1976∼1990년 동안 조선산업 고용자 수가 1/4까지 떨어지는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였다. 결국 대형선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이 축소되는 것과 함께 인력 고령화가 겹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하여, 자국 선박건조에 집중하는 사실상 내수기업화가 진행되고 말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대형 도크를 증설하는 공격적 전략을 통해 조선산업 경기가 회복된 2000년대에 세계 조선산업의 강자로 등극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장기불황 역시 우리 조선산업에 엄청난 구조개편을 야기하였다. 중소형 벌크선, 탱커 및 컨테이너선에 주력하면서 중국 조선산업과 경쟁을 하던 중소형 조선사들이 2009년 이후 몰락한 것이다. 원래 Clarkson 기준 수주가 있던 중형조선사는 2004년 13개에 불과했지만, 조선산업 활황에 따라 선박 발주가 폭발하면서 2008년엔 26개로 크게 확대되었다. 이는 대형조선사에 블록이나 기자재 납품을 하던 공급기업이 중형선박 건조사업에 뛰어들거나 신규 업체가 새로 진출한 결과였는데, 이들 조선소 중 상당수가 금융위기로 재무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는 명백하다. 조선산업은 필연적으로 장기 사이클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기 때문에 적정 건조 능력을 유지·관리하면서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락슨에 따르면 조선산업은 올해부터 향후 10년간 슈퍼사이클에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기후위기에 따라 국제해사기구가 온실가스 규제를 강화하면서 LNG추진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의 발주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온실가스 규제가 강화될 경우 암모니아나 수소를 연료로 하는 친환경선박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한국 조선산업이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좋은 소식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장기 사이클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소개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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