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원이 다른 박물관 이야기
    [책소개] 『박물관의 최전선』(박찬희/ 빨간소금)
        2021년 05월 22일 03: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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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신라 금관은 머리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이한상 선생의 연구를 빌어, ‘머리에 쓴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얼굴에 씌운 마스크’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황남대총 북분의 금관과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종이관을 만들어 목에 두르고 얼굴을 덮었다. 그럴싸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22권의 접는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그 가운데 몇 권을 볼 뿐이다. ‘만약 대동여지도 전체를 직접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궁금증이 저자를 대동여지도 손수 만들기로 이끌었다. 대동여지도 영인본을 실물 크기에 맞춰 복사하고 두꺼운 종이에 덧붙인 뒤 이 종이들을 이어 붙였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크기였다. 놀라운 건 크기뿐만이 아니었다. 온 국토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지도를 뛰어넘은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저자는 박물관 큐레이터에서 역사와 유물 이야기꾼으로, 이제는 박물관 연구자로 자신을 바꿔왔다. 박물관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 발맞춰 박물관의 최전선을 지켜온 저자가 차원이 다른 박물관 이야기를 들려준다. 30대를 온전히 보낸 호림박물관, 문턱이 닳게 드나든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의 박물관과 경주 대릉원 같은 유적지까지, 그의 발길이 닿은 것들의 정수를 이 책에 담았다.

    신라 금관이 죽은 왕의 얼굴에 씌운 마스크라고?

    오랫동안 신라 금관은 머리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뜻밖의 의견이 제기되었다. 신라 금관을 연구한 이한상 선생의 의견이었다(이한상, 《신라 황금》 중 ‘황금장신구를 통해 본 신라와 신라인’). 황당한 주장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귀가 솔깃했다. 평소에 ‘저렇게 무거운 걸(황남대총 북분 금관의 무게는 1,062그램이다) 어떻게 썼을까, 무게도 무게지만 흔들려서 쓰고 있기 어려울 텐데’라며 미심쩍어하던 터였다.

    연구자의 말마따나 금관이 발견된 위치가 독특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황남대총 북분의 금관(국보 191호)을 보면 금관 아랫부분이 머리가 아니라 목 부분에 있었다. 금관을 머리에 썼다면 당연히 머리 근처에서 발견되었을 텐데. 목 부분에서 발견되었다면 금관이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눈으로 보면 발굴될 당시의 금관 모양도 새롭게 보인다. 금관이 삼각형 모양으로 눌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만약 금관이 현재 전시된 것처럼 장식이 밖으로 펼쳐졌다면 무덤 안에서 금관이 눌렸을 대 삼각형이 될까? 이 모습을 해명하려면 다른 가정이 필요했다. 얼굴에 금관을 봉지 씌우듯 씌우고 가장 윗부분은 가운데로 모아 묶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무덤이 꺼지면서 시간이 흘러 금관이 눌려 삼각형 모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관에 뚫린 구멍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금관 가운데 최초로 발견된 금관총 금관(국보 87호)을 보면 잘못 뚫은 듯한 구멍이 그대로 남아있다. 만약 산 자가 썼다면, 더군다나 왕이나 왕족이 썼다면 이런 실수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금관이 발견된 위치, 삼각형으로 눌린 모양, 잘못 뚫린 구멍은 금관의 통념과 한참 달랐다. 흥미로웠다. 이 의견대로라면 금관의 우주나무와 사슴뿔은 죽은 이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통로였고, 그들은 이 통로를 따라 다른 세상으로 먼 길을 떠났다

    그래도 진짜로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황남대총 북분의 금관과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종이관을 만들었다. 관을 완성하고 머리에 써봤다. 비록 종이관이지만 뭐라도 된 듯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고는 종이관의 관테를 목 주위에 두르고 관 장식으로 얼굴을 덮어봤다. 새로운 실험을 하는 과학자 같았다. 실제 관 장식도 얇은 금판이라서 잘 휘어져 쉽게 얼굴을 덮었을 것 같았다. 장식을 다 덮자 시야가 가려져 답답했고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라졌다. 머리에 쓴 것과 얼굴을 감싸는 건 심리적인 차이가 컸다.

    대동여지도 22권을 모두 펼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22권의 접는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그 가운데 몇 권을 볼 뿐이다. ‘만약 대동여지도 전체를 직접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궁금증이 저자를 대동여지도 손수 만들기로 이끌었다. 대동여지도 영인본을 실물 크기에 맞춰 복사하고 두꺼운 종이에 덧붙인 뒤 이 종이들을 이어 붙였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크기였다. 놀라운 건 크기뿐만이 아니었다. 온 국토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지도를 뛰어넘은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대동여지도 22권을 모두 펼쳐 실제 크기에 가깝게 재현해 전시한 박물관이 몇 곳 있다.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 <지도예찬>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저자가 ‘대동여지도 손수 만들기’를 멈추지 않는 까닭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빈터에서 자신이 만든 대동여지도 복사본을 시민들과 함께 맞추고 높은 곳에서 올려다본 느낌은 특별전과 달랐다.

    “대동여지도 전체를 전시한 특별전에서 처음 느꼈던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여전히 국토는 웅장했고 땅에는 힘찬 기운이 서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손으로 만들고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든 대동여지도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처음 보는 대동여지도에 감탄했다. 상상 이상으로 큰 규모, 섬세한 세부, 각각의 퍼즐이 이어져 만들어진 하나의 국토에 놀란 듯했다. 대동여지도의 실제 크기가 사람들을 움직였다.”

    6.2톤에 달하는 ‘철조 석가여래 좌상’을 어떻게 옮겼을까?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던 유물의 이동은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사 때였다. 박물관이 이사할 때 이동하는 유물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 용산에 새로운 박물관 건물이 세워지면서 유물도 이사를 갔다. 옮겨야 할 유물이 무려 10만 점에 가까웠다.

    사람들의 관심과 우려를 알기라도 한듯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유물을 운반하는 첫날, 유물을 포장하고 운반하는 과정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 대표로 등장한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유물이자 우리나라 대표 유물인 국보 78호 금동 반가사유상이었다. 포장을 마친 반가사유상은 360도 회전을 해도 안전했다. 포장된 유물을 실은 차량에는 박물관 직원과 무장한 호송원이 타고 앞뒤로 경찰차가 호송했다. 운송 시간은 매일 바뀌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4월 19일에 시작된 유물 운송은 12월 24일에 마무리되었다.

    당시 운송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유물은 ‘철조 석가여래 좌상’이었다. 높이가 무려 281센티미터에 무게가 6.2톤에 달하는, 실내에 있는 유물 가운데 가장 큰 유물이었다. 출입문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어 수장고의 천장을 뚫고 유물이 든 상자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야 했다. 철불을 옮기기 전에 유물과 같은 무게의 돌을 넣은 나무 상자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고 이송하는 예행연습을 했다. 1911년 광주의 절터에서 이왕가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 철불은 벽을 뚫어 이동해야하는 고단한 역사를 용산에서 마쳤다.

    청자의 비색을 전시실에서 제대로 만나기 어려운 까닭은?

    전시실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바로 ‘조명’이다. 조명발이라는 말처럼 조명은 유물을 살리고 죽인다. 조명을 사용할 때는 우선 유물의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빛을 받은 진열대의 색이 변하는 걸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자외선을 차단하는 조명을 쓰고, 종이나 천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서화는 조명의 밝기를 최대한 낮춘다. 특히 고려불화는 조명을 최대한 어둡게 처리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섬세한 고려불화의 선과 독특한 색감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고려불화를 제대로 보려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조명마다 고유한 색(켈빈 온도)이 있다. 붉은색이 강한 조명이 있는 반면 푸른색을 띠는 조명이 있다. 붉은색은 유물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고 푸른색은 이지적이고 차갑게 만든다. 한낮의 햇빛처럼 특별한 색을 띠지 않는 조명은 유물의 원색을 무난하게 보여준다. 박물관에서는 만들고자 하는 전시실 분위기에 따라 적절한 조명을 선택한다.

    조명의 색에 유난히 까다로운 유물이 있다. 청자다. 청자는 빛을 흡수하기 좋아해 카멜레온처럼 변신한다. 붉은색 조명 아래서는 붉은 청자로 바뀌고 푸른 조명 아래서는 파랗게 질린 청자로 바뀐다. 중국인이 천하제일로 친 청자의 비색을 전시실에서 제대로 만나기 힘든 이유다.

    차원이 다른 박물관 이야기

    저자는 박물관 큐레이터에서 역사와 유물 이야기꾼으로, 이제는 박물관 연구자로 자신을 바꿔왔다. 박물관의 변화에 발맞춰 박물관의 최전선을 지켜온 셈이다. 30대를 온전히 보낸 호림박물관, 문턱이 닳게 드나든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의 박물관과 경주 대릉원 같은 유적지까지, 그의 발길이 닿은 것들의 정수를 이 책에 담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다. 기존의 박물관 책은 대부분 박물관 속 유물과 유물에 얽힌 이야기(역사)에 집중한다. 그러나 《박물관의 최전선》은 이 이야기들에 더해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2장에 실린 박물관 건축, 전시실 구성 방법, 유물 이름 짓는 법, 박물관 이사 등은 다른 책에서 보기 어려운 이야기다.

    11년 동안의 박물관 큐레이터 경험과 박물관연구자로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벼려온 시간이 준 선물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박물관 이야기

    박물관뿐만 아니라 관람객 이야기도 흥미롭다. 박물관을 그만두고 관람객이 된 뒤부터 다른 사람들이 전시를 보는 방법과 박물관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자세히 알기 위해 여러 그룹의 사람들과 함께 전시를 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열 사람이 오면 열 사람 모두 전시의 인상이 달랐다. 전시는 관람객의 마음 끝에서 완성되었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박물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이용하는지 묻곤 했다. 관람객이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박물관을 움직이는 중요한 주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사이 유물을 대하는 관점도 상당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유물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유물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때로는 진열장과 박물관을 벗어날 때 속 깊은 이야기가 들렸다. 유물을 사람들과 연결시켜 살펴보자 유물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종종 유물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관람객들을 만났다. 유물과 관람객 사이에 놓인 거리감을 줄이고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법이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유물과 관람객이 연관 검색어처럼 짝을 이뤄 따라다녔다. 그사이 유물을 대하는 관점도 상당히 달라졌다.

    이 책은 박물관과 유물에 대한 ‘지식’보다, 저자가 20년 넘게 사람들과 함께 쌓아온 ‘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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