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5개월 논의 단일안 마련 실패
    2006년 11월 20일 01: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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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은 노동운동의 선봉이다. 1987년 금속노동자들이 치켜올린 민주노조의 횃불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20년 후인 지난 6월 금속 노동자들이 산별노조시대를 열어제치자 철도노조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산별전환이 속속 뒤를 잇고 있다.

그래서 오는 23일 15만 금속산별노조호가 어떤 모습으로 출항할 지에 대해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더구나 기업별노조에서 산업별노조로 전환하는 일은 세계노동운동사의 유례가 없는 전대미문의 길이다. 따라서 금속산별노조가 걸어가는 길을 다른 산업의 노동자들이 따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금속산업연맹 산별완성대의원대회 준비위원회(위원장 전재환, 이하 출범준비위)는 23일 15만 금속노조 출범 대의원대회에 제출할 규약개정안을 단일하게 제출하기 위해 지난 10일 9차 회의에 이어 16일 10차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오후 2시에 시작해 17일 새벽 4시 40분까지 장장 15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러나 회의결과를 받아든 노동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금속노조의 한 지부장은 “금속노조가 누더기가 됐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간부는 지회(사업장) 예산이 40%에서 48%로 늘어난 것을 지적하며 “지난 5년 중소기업 중심의 금속노조가 만든 성과마저 뒤로 후퇴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간부는 “대공장노조가 자기 것을 내놓지 않으려는 본색을 드러냈다”고 힐난했다.

5개월간의 단일안 마련 노력 실패

   
 ▲ 5개월간의 지도부 현장순회 공청회가 있었으나 결국 단일안의 마련에 실패하였다. (사진=금속노조) 
 

이날 회의에서는 지난 9차 회의에서 처음 제출됐던 ‘금속노조-본부-(기업지부)-지회’ 안이 단일안으로 채택될 것이냐가 핵심 관건이었다. 지난 회의에서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뤘고, 지역적 동질감과 연대의식을 통해 기업지부를 해소하기 위한 유력한 방안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속산업연맹 전재환 위원장이 제출한 ‘본부안’은 이날 회의에서 주요 사업장들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현장의 혼란 등의 문제제기로 토론 3시간 만에 단일안 채택에 실패하고 말았다. 전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방법을 찾으면 나올 수 있다”고 설득했으나 주요 노조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조직체계’에 대해 단일안을 만들지 못하고 1안) 2009년 9월까지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3개시도-3천명 이상) 2안) 지역지부로 곧장 이행 3안) 광역본부 등 3개 안이 대의원대회에 올라가게 됐다. 3안)인 광역본부를 제출했던 간부들은 9차 회의에서 제안된 ‘본조-본부-(기업지부)-지회’ 안을 대의원대회에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10차 회의에서 정리된 ‘한시적 기업지부’의 문제

문제는 출범준비위에 참가하고 있는 대다수 대공장들이 지지하고 있는 ‘한시적 기업지부’ 안이 지난 9차까지의 논의과정보다 상당히 후퇴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기업별노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업지부’를 광범위하게 인정했다. 대공장들은 산별노조의 중심이 ‘지역’이지만 판매와 정비 등 전국에 흩어져있는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근거로 ‘한시적 기업지부’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 기준을 3천명으로 확대함으로써 기업지부를 하고 싶은 대기업노조는 다 기업지부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게다가 3천명 기준에 미달하는 만도와 2개 지역밖에 없는 현대제철을 현대하이스코와 묶어 철강지부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사실상 받아들여 중앙위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여기에 조합원이 2,700명인 두산인프라코아지회의 경우 사무직지회(600명)를 합쳐 기업지부를 요구하면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결국 현대, 기아, GM대우, 쌍용 등 4개 완성차노조(8만5천명)과 만도, 철강, 두산인프라코아까지 9만 5천명이 기업지부 소속이 된다. 14만4천명인 금속노조의 2/3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이로써 금속노조는 14개 지역지부와 7개 기업-업종지부 등 지부 수가 21개로 대폭 늘어나게 됐다.

3년 후 기업지부는 없어질까?

출범준비위는 3년 후 기업지부를 해소하기 위해 해서 지역지부로 이행하기 위해 경과규정을 마련했다. 경과규정에는 ▲2009년 9월 기업지부는 지역지부로 자동 편재 ▲처무규정에 따른 인력, 공동사업 예산 분담 ▲기업지부 해소 대책위 구성 ▲지역지부 소속 운영위 참가 등 8가지 방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기업지부 소속이 2/3를 넘기 때문에 이번에 제정된 규약은 대기업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이에 대해 금속산업연맹 김연홍 정책국장은 “3년 후에 기업지부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금속노조를 깨자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수노조 유예’처럼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공장에서 3년 유예기간을 연장해달라고 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게다가 대공장 기업지부에 산별노조에 반대하는 성향의 집행부가 당선될 경우는 ‘영구적’ 기업지부가 될 공산마저 크다고 할 수 있다.

유명무실해진 기업지부 해소방안

금속노조 전북지부는 지역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사업과 지역연대사업, 지역집회, 지역정치사업 등 주요한 활동들을 벌인다. 그러나 기업지부 소속이 되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은 이 사업을 주관하지 않고 참여만 하게 된다.

따라서 기업지부의 예산과 인력을 3년간 단계적으로 지역지부로 옮겨 3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역지부로 전환하자는 방안이 지난 4개월 동안 꾸준히 논의됐다. 기업지부이기 때문에 추가로 배정받는 16%를 3년 간 매년 지역으로 옮기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3년간 지역으로 옮겨지는 예산이 7%-14%-20%냐, 35%-70%-100%냐는 논란을 벌이다 기업지부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논의는 사라져버렸다. 이에 따라 기업지부는 54%의 예산을 3년 동안 한 푼도 줄어들지 않고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인력에 대해서는 상근자가 10명 이상일 경우 15%를 지역 또는 본조로 파견하기로 했으나 이것도 상근자의 85%가 그대로 대공장 안에만 머무르게 되기 때문에 기업지부를 해소하는 실질적인 방안이 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조합비 = 공동체 연대기금’ 정신 훼손

산별노조의 조합비는 ‘능력만큼 내고 필요한 곳에 쓰는’ 공동체적 연대기금이다. 금속노조 조합비는 지금까지 기금 16%-본조 28%-지부 16%-지회 40%로 배분해왔다. 단일노조로서 예산의 효율성과 집중성을 높이고 비정규직 투쟁 등 꼭 필요한 곳에 쓰기 위해서였다.

기업별노조에서 조합비는 상급단체 의무금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기업 내에서 사용해왔다. 경조사비나 노조창립기념품 등 상조회비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출범준비위에서는 조합비의 연대기금의 정신을 살려 지난 5개월동안 토론한 끝에 기금 18%-본조 26%-지부 16%-지회 40%라는 단일안을 만들었다. 본조 예산을 줄이는 대신 쟁의기금, 신분보장기금 등 기금을 늘려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었다.

전체 노동자를 위해 쓰이는 기금은 줄어들고

그러나 10차 회의에서는 단일안을 뒤집었다. 조합비를 기금 16%-본조 18%-지부 16%-지회 48%로 결정해 기금과 본조 예산을 줄이고 지회 몫을 8%나 늘렸다. 사업장 예산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전폭 수용해버린 것이다.

기금은 18%에서 16%로 줄어들었는데 기금 사용처는 특수목적기금, 쟁의기금, 쟁의적립금, 신분보장기금, 비정규-장기투쟁 대책기금 등 5개로 늘어났다. 계약해지된 비정규직에게 신분보장기금을 적용하고 비정규-장기투쟁 대책기금 신설로 장기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지원기금 항목이 생겼으나 전체 기금이 줄어들어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폭 줄어든 본조 예산은 기업지부에서 보충해 기업지부일 경우 기금 16%-본조 30%-기업지부(지회 포함) 54%로 배분하기로 했다. 단, 2009년 기업지부가 해소되면 출범준비위에서 논의했던 원안(18-26-16-40)을 적용하기로 했다. 기업지부 몫인 54%는 애초 단일안보다 2% 줄어들긴 했으나 예산을 매년마다 지역으로 넘기지 않기로 해 기업지부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한 안이 된 셈이다.

결국 전체 노동자를 위해 쓰이는 기금과 본조 예산은 줄어들고 사업장의 예산은 크게 늘어나 ‘공동체의 연대기금’이라는 산별노조의 조합비 정신이 훼손됐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금속노조 예산을 담당했던 한 간부는 “금속노조가 5년간 해왔던 예산의 집중성조차 거꾸로 돌렸다”고 말했다.

여성․비정규직․소수자 할당제와 현장파업권

금속노조는 대의원, 중앙위원, 임원에 여성할당제를 실시하고 그 비율은 10%로 되어있다. 규약 개정 논의 과정에서 비정규직과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위해 비정규직․소수자 할당제를 실시하자고 제안됐다.

이번 회의에서는 ‘여성할당제’를 ‘여성 및 비정규직, 소수자 할당제’로 바꾸고 세부사항은 규정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준비회의에서 “여성할당조차 채우기 어렵기 때문에 추가 배정은 어렵다”는 의견이 나와 이후 논의과정에서 여성할당이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외에도 현장 단위의 파업권에 대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안에 대해 해당 단위에서 쟁의결의 및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조합의 통일된 투쟁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 위원장은 즉각 중단을 명할 수 있다”고 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후퇴된 결론에 이르게 만든 배경

출범준비위 10차 회의에서 지난 4개월간의 논의보다 전반적으로 후퇴된 결론에 이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6월 대공장노조에서 산별전환투표를 벌이면서 ‘기업지부’를 전제로 조합원들을 설득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지역지부 재편은 처음부터 수용되지 않았고, 기업지부를 해소하기 위한 유력한 방안이었던 ‘본조-본부-지회’안이 ‘현장의 혼란’을 이유로 거부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대의원대회의 파행을 염려해 반발하는 노조의 의견을 모두 수용했다는 것이다. 금속노조의 기존 규약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개정안이 2/3를 넘지 못할 경우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어야 하고, 임원선거까지 미뤄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이었다.

결국 출범준비위는 최저기준을 선택해 기업지부를 원하는 사업장의 요구를 모두 받아줬고, 중앙위원회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기준미달’인 만도지부와 ‘뜬금없는’ 업종지부도 사실상 수용했다. 나아가 4개월 넘게 토론해 단일하게 마련된 예산안마저 뒤바꿔 지회의 예산을 8%나 인상시키는 ‘파격적인’ 결정을 했다. 2/3의 ‘마법’에 걸린 것이다.

23일 오후 2시 서울 등촌동 88체육관에서는 15만 금속노조 출범 대의원대회가 열린다. 조합원들의 직접투표로 선출된 700명의 대의원들은 한국 최대의 산별노조의 규약을 정하는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금속노조는 처음으로 이를 생중계한다.

출범준비위 10차 회의에서 금속노조 이광우 대구지부장은 “우리의 모든 결정은 지역연대가 잘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15만 금속노조호를 ‘연대와 실천’의 무기로 출항시키는 임무는 이제 700여 대의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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