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움을 뚫고 불끈 솟는
    큰 빛을 고대하라
    [풀소리의 한시산책] 두보(杜甫)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에 붙여
        2021년 05월 18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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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는 김수영(金洙暎, 1921년~1968년) 시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기 불과 보름 전에 쓴 시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저는 이 시를 읽을 때 마치 김수영 시인의 유언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김수영은 4.19 혁명에 환호했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민주주의가 신생 조국 대한민국에서 실현될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불과 1년 여 지난 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사정권이 수립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질식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습니다. 민중은 언젠가 군사독재의 얼어붙은 땅을 뚫고 일어설 것입니다. 그러한 꿈을 담아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바람 – 바람 몰아치는 바닷가 풍경. 모진 바람에 풀들은 흔들리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사실 이 시는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시이기도 합니다. 『논어』의 해당 구절을 살펴볼까요.

    계강자(季康子)가 공자(孔子)님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무도한 자를 죽임으로써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님이 답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어찌 죽이는 방법을 쓰겠다는 것입니까? 그대가 착해지려고 하면 백성들도 착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지요.”

    (季康子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 以就有道, 何如. 孔子對曰, 爲政焉用殺. 子欲善而民善矣. 君子之德, 風. 小人之德, 草. 草上之風, 必偃.)

    참고로 계강자는 공자님이 사시던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실권자입니다. 임금은 한자로 군(君)입니다. 임금은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백성을 살리는 존재입니다. 현실 속의 임금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임금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이상적인 임금으로 중국에서는 요(堯)임금, 순(舜)임금을 꼽습니다. 그래서 태평성대를 요순시대라고도 하지요. 임금다운 임금을 다른 말로 성인(聖人)이라고도 합니다.

    군자(君子)란 임금의 자손으로 귀족을 뜻하기도 하지만, 덕(德)으로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위에 있는 공자님 말씀은 군자의 좋은 정치는 바람과 같아서 백성들이 골고루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자님에게 좋은 정치를 묻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답하셨습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우면 정치는 절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임금이 임금답고, 군자(관리)가 군자답도록 견제하고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임금을 임금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불가능하면 떠나는 게 선비의 도리였습니다. 세월이 바뀌었습니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으면 임금을 바꾸면 됩니다. 누가 바꿉니까. 바로 백성이 바꿉니다. 바람보다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빨리 일어서는 백성이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조시대에는 백성들이 임금을 바꾸고 관리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관리가 군자답지 못하면 백성들이 고초를 겪습니다. 백성들의 모진 고초를 외면할 수 없는 선비들은 붓으로 시대를 고발합니다. 백성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 시대를 고발하는 시를 쓴 이들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시인은 두보(杜甫, 712년~770년)입니다.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이를 성인(聖人)이라고 합니다. 성인의 마음으로 시를 썼다고 하여 두보를 두고 시성(詩聖)이라고 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고발시 「석호리(石壕吏)」를 보겠습니다.

    石壕吏(석호리)

    暮投石壕村(모투석호촌)
    有吏夜捉人(유리야착인)
    老翁踰墻走(노옹유장주)
    老婦出門看(노부출문간)
    吏呼一何怒(이호일하노)
    婦啼一何苦(부제일하고)
    聽婦前致詞(청부전치사)
    三男鄴城戍(삼남업성술)
    一男附書至(일남부서지)
    二男新戰死(이남신전사)
    存者且偸生(존자차투생)
    死者長已矣(사자장이의)
    室中更無人(실중갱무인)
    所有乳下孫(소유유하손)
    孫有母未去(손유모미거)
    出入無完裙(출입무완군)
    老嫗力雖衰(노구력수쇠)
    請從吏夜歸(청종리야귀)
    急應河陽役(급응하양역)
    猶得備晨炊(유득비신취)
    夜久語聲絶(야구어성절)
    如聞泣幽咽(여문읍유인)
    天明登前途(천명등전도)
    獨與老翁別(독여노옹별)

    석호촌(石壕村)의 아전

    저녁에 석호촌에 투숙하니
    아전이 밤에 사람을 잡으러 왔네
    늙은 노인 담 넘어 달아나고
    늙은 할미 문에 나와서 보누나
    아전의 호통은 어찌 그리도 노여우며
    할미의 울음은 어찌 그리도 괴로운가
    할미 앞으로 나와 말하는 것 들어보니
    세 아들이 업성(鄴城)에서 수자리 살고 있다오
    한 아들이 부친 편지가 왔는데
    두 아들이 새로운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하오
    산 사람도 겨우 삶 이어가고
    죽은 자는 영영 그만이라오
    집안에 다시 사람이 없고
    오직 젖먹이 손자가 있을 뿐이오
    손자 있어 어미는 떠나가지 못하고
    출입할 만한 성한 치마도 없다오
    늙은 할미 기력은 비록 쇠하였으나
    부디 아전 따라 밤에 돌아가리다
    급히 하양(河陽)의 전쟁터에 나가게 되면
    오히려 새벽밥은 지을 수 있을 것이오
    밤 깊어지자 말소리 끊기니
    눈물 흘리며 속으로 오열하는 소리 들리는 듯하네
    날이 밝아 예전 길에 오르니
    할미는 떠났고 홀로 늙은 노인과 작별하였네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한창이던 758년에 지은 시입니다. 당나라는 한 집안에 한 명만 병역을 지도록 되어 있었답니다. 그러나 이때는 반란이 일어나 세 아들이 모두 병역을 지고 전쟁터로 갔습니다. 그중 두 아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관리들은 아전을 보내 사람들을 더 잡아가려고 합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 잡아갑니다. 아전이 집에 들이닥치자 늙은이는 담 너머로 도망갑니다. 늙은이도 없으면 농사는 누가 짓겠습니까. 아전은 젊은 아낙을 잡아가려고 합니다. 할미가 나서서 사정을 합니다.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고요. 결국 아전은 할미를 잡아갑니다. 늙은이는 밤에 울음을 삼킵니다. 참으로 생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두보초상 – 두보초상입니다. 두보는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며 태평성대를 꿈꾸었던 성인(聖人)의 마음으로 시를 썼다고 하여 시성(詩聖)으로 불립니다. (사진 – 위키백과)

    두보 못지않게 백성들의 고초를 목도하고 분노하여 고발하는 시를 쓴 이가 조선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입니다. 그의 시 「애절양(哀絶陽)」을 보겠습니다.

    哀絶陽(애절양)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里正咆哮牛去皁(이정포효우거조)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蠶室淫刑豈有辜(잠실음형기유고)
    閩囝去勢良亦慽(민건거세양역척)
    生生之理天所予(생생지리천소여)
    乾道成男坤道女(건도성남곤도녀)
    騸馬豶豕猶云悲(선마분시유운비)
    況乃生民思繼序(황내생민사계서)
    豪家終歲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粒米寸帛無所捐(입미촌백무소연)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양근을 잘라버린 서러움

    노전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현문을 향해 가며 하늘에 울부짖길
    쌈터에 간 지아비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남자가 양근 자른 건 들어본 일이 없다네
    시아버지는 삼상 나고 애는 아직 물도 안 말랐는데
    조자손 삼대가 다 군보에 실리다니
    가서 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이정은 으르렁대며 마굿간 소 몰아가고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자식 낳아 군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음형 당했던가
    민땅 자식들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정한 이치기에
    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
    불깐 말 불깐 돼지 그도 서럽다 할 것인데
    대 이어갈 생민들이야 말을 더해 뭣하리요
    부호들은 일년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똑같은 백성 두고 왜 그리도 차별일까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조선시대 일반 백성 중 남자는 15세에서 60세 미만까지 군역(軍役)을 졌습니다. 군대에 가는 대신 군포(軍布)를 냈는데, 이게 세금으로 굳어졌습니다. 그것도 백성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 중에 가장 무거운 세금으로요. 양반들은 군대에 갈 의무가 없다고 하여 군포를 면제받았습니다. 대신 백성들이 모두 부담해야 했습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세금제도가 문란해져 60살이 넘은 늙은이나 어린 아이에게까지 군포를 거두었습니다. 심지어 이 시에서처럼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걷었습니다. 과중한 세금을 낼 수 없자 농사에 꼭 필요한 소마저 끌어갔습니다. 젊은 남자는 이내 자신의 생식기를 잘라버렸습니다. 더 이상 군포를 부담할 아들을 낳지 않으려고요. 기가 막힌 현실입니다.

    다산초당 –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 동안 귀양생활을 했습니다. 이 다산초당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4년 동안 주막에 딸린 작은 방에서 귀양살이를 했습니다. 몸은 괴로웠겠지만, 백성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진 – 강진군청 홈페이지)

    혼란한 시대를 아파한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세상이 혼란하면 혼란할수록 백성들이 골고루 잘 사는 새로운 시대를 간절히 갈망합니다. 그 간절함을 담은 대표적인 시가 「춘야희우(春夜喜雨)」입니다.

    春夜喜雨(춘야희우)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봄밤에 반가운 비가 내리다

    좋은 비가 시절을 알아
    봄을 맞아 때맞추어 내리네
    바람을 따라 가만히 밤에 들어와
    만물 적시는데 가늘어 소리가 없네
    들의 오솔길은 구름 끼어 컴컴하고
    강가의 배엔 등불이 홀로 밝구나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이 가득 피었구나

    이 시는 두보가 안록산의 난리를 만나 떠돌아다니다 겨우 자리를 잡았던 사천지방 성도(成都)에서 지낼 때 지은 것입니다. 완화초당(浣花草堂)이라 이름 지은 집도 짓고 경제적인 쪼들림도 겨우 면할 수 있었습니다. 시를 보면 삶의 여유가 풍겨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봄날 때맞춰 내린 봄비를 그린 서정시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이 시는 혼란한 시대를 마감하고 훌륭한 임금, 훌륭한 관리가 다스리는 태평성대를 꿈꾸는 시로 읽히기도 합니다.

    두보는 실제로 제때 내린 봄비를 보면서 시를 지었을 겁니다. 봄비를 보면서 제대로 된 정치가 바로 제때에 내리는 봄비와 같음을 느낍니다. 유학(儒學)의 주요 경전인 『중용(中庸)』에는 ‘군자지도(君子之道) 비이은(費而隱)’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군자의 길은 혜택을 널리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하면서도 (남이 알지 못하게) 은미하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치 때맞춰 내리지만,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처럼 말입니다.

    좋은 세상이 온다면 어찌 두근거리지 않겠습니까. 잠조차 잘 수 없습니다. 들녘은 아직 어둡고, 강에는 초롱불을 밝힌 배 한척이 있을 뿐입니다. 날이 밝아지자 붉게 젖은 곳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라보니 금관성(錦官城)엔 꽃이 한 가득입니다. 실제로 금관성에 붉은 꽃이 한가득 피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한 신새벽이 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제게도 전해지는데 말입니다. 금관성은 당시 두보가 살던 성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두보한석봉 – 보물 1078 호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의 서첩 『한경홍 진적(韓景洪眞蹟)』 중에 두보(杜甫)의 시 「양전중이 장욱의 초서를 보여주다(楊殿中示張旭草書)」를 초서로 쓴 작품입니다. 시 일부를 옮겨보겠습니다. ‘슬픈 바람 얇은 비단에 일고/고아한 운치 만리에 뻗치네/쟁쟁 옥소리처럼 살아 움직이고/낙락장송처럼 홀로 굳세네/큰 산맥이 그 사이를 감돌고/힘찬 글씨 넓은 큰 바다와 같네(悲風生微綃/萬里起古色/鏘鏘鳴玉動/落落孤松直/連山蟠其間/溟漲與筆力)’ 이 시가 명필 한석봉 선생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특별히 초서로 썼습니다. (사진 – 국립박물관)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커다란 갈등의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다. 날로 커져가는 빈부격차, 소득격차가 그것입니다. 계급은 세습화되어 새로운 신분사회로 들어서는 것 같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소득 비정규직으로 몰락하고 있으며,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이, 그들의 분노가 어찌 그대로 묻혀 지낼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거대한 파열음을 내면서 세상을 뒤덮을 것입니다.

    거대한 분노가 세상을 뒤덮을 때 세상은 새세상으로 거듭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의 고통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을 개선하여 조금이라도 더 평등하고, 기회가 균등한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세상은 우리의 바람과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지금도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며,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이 끝없이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신경림 시인의 시 「빛」을 바칩니다.

    – 신경림

    쓰러질 것은 쓰러져야 한다
    무너질 것은 무너지고 뽑힐 것은 뽑혀야 한다
    그리하여 빈 들판을 어둠만이 덮을 때
    몇 날이고 몇 밤이고 죽음만이 머무를 때
    비로소 보게 되리라 들판 끝을 붉게 물들이는 빛을
    절망의 끝에서 불끈 솟는 높고 큰 힘을

    필자소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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