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센터 집단감염 후에도
    방역지침 제대로 안 지켜
    "정상체온 나올 때까지 발열체크"
        2021년 05월 17일 07: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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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5도 조금 넘으면 병원에 먼저 갔다 오라고 해요.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게 좋겠다고 하면 연차 하나를 사용을 하든지 조퇴를 하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거의 다 연차를 통째로 써요. 조퇴를 하면 인센 마이너스 3점, 4점이라.” (F, 자동차보험 콜센터)

    “37도, 37도, 38도가 나왔어요. 그러면 조금 이따 다시 재요. 그래도 안 내려가면 다시 재요.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프면 집에서 쉬기’라는데 아프다는데 그냥 이따 오라고.” (G, 은행 콜센터)

    “재택을 한다고 했지만 거리두기를 위한 재택근무라고 볼 수는 없는 게 제가 앉아있는 줄에 5명 있거든요. 그러면 두 명이 없어지면 3명이 띄엄띄엄 앉아야 하는데 그런 거는 전혀 없어요. 거리두기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약간 형식적으로 재택근무를 진행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D, 공단 콜센터)

    코로나19 콜센터 노동자 집단감염 이후 나온 정부의 방역대책이 현장에선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7일 각기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 13명을 심층면접 조사한 결과를 담은 ‘코로나19가 콜센터 노동환경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집단감염을 계기로 총 3차례 코로나19 대응 콜센터 감염 예방지침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재택근무 적극 활용, 병가·연가 등 휴가제도 적극 활용,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이다.

    정부는 휴가제도를 활용한 ‘아프면 쉬기’라는 기본 방역수칙의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콜센터 사업장의 특성상 “상담 건수, 응답률 등을 이유로 휴가 사용을 제한하거나 업무 인사 등에 불이익 없도록 조치할 것”이라는 일반 사업장에는 없는 규정도 추가하였다.

    그러나 여러 사업장에서 여전히 당일 휴가 신청을 하면 인센티브 감점, 하루 콜 수를 근거로 하는 성과급 지급 등 기존 인사관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등 ‘아프면 쉬기’의 방역수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자동차보험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A씨는 “당일에 연차를 사용할 수 없어요. 만약에 당일 전화로 통보하면 인센티브 점수 마이너스를 해요. 그래서 꼭 출근을 해서 하도록 해요. 만약 내 자녀가 학원에서 밀접접촉을 해서 보고를 하면 연차를 쓰라고 하고 점수를 마이너스를 시키는 경우도 많고요”라고 말했다.

    면접 참여자들이 근무하는 사업장 중 대부분은 하루 두 차례 발열 확인을 했는데 발열 증상이 있어도 노동자를 바로 귀가시킨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 체온이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열 체크를 하는 사례도 있었고, 그 시간 동안 해당 노동자는 정상적으로 업무를 해야 했다.

    미열 증상이 있는 노동자가 귀가를 희망했으나 ‘우선 병원을 다녀오라’고 지시한 후 연차 사용을 강제하기도 했다. 당일 연차 사용은 마이너스 1점이지만 조퇴는 4점이라 어쩔 수 없이 연차를 사용해야 하는 불이익 사례도 있다.

    사진=직장갑질119

    거리두기를 위한 재택근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정부는 거리두기 1~2단계의 경우 적정 비율로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2.5단계에서는 1/3 이상 재택근무 등 실시, 3단계에서는 필수 인력 이외 재택근무 등 의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5단계 방역이 이뤄졌던 시점인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재택근무를 시행한 사업장은 3곳,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도 해당 지침을 준수해 1/3 이상 노동자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한 사업장은 1곳뿐이었다. 개인정보 등 민감한 내용을 다뤄야 하는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항공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C씨는 “업무 환경의 변화는 없었어요. 재택근무는 할 수 없는 구조에요.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코로나 때문에 노동자 보호를 위해 변경된 근무 시스템은 없었어요”라고 전했다. 지자체 콜센터 근무자 I씨도 “저희는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사업장이기 때문에, 재택근무는 아예 시도를 하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사업장 근무 시 거리두기도 지켜지지 않았다. 심지어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사업장에서도 출근하는 노동자 간 거리두기 수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형식적인 재택근무 시행으로 제대로 된 감염 예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 콜센터 G씨는 재택근무로 밀집도가 많이 줄었는지 묻는 질문에 “여유로운 수준은 아니죠. 2명이 재택 들어가고 3명이 붙어 있으면 그냥 이렇게 된 거예요”라고 답했다. 출근 근무자 3명이 붙어 앉아 근무를 한다는 뜻이다.

    재택근무자에 대한 감시로 심해졌다. 노동자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불시에 사진을 찍어 보낼 것을 요구하고 20분 내로 사진을 올리지 않으면 강제로 연차유급휴가를 차감한 사례도 있었다.

    은행 콜센터 직원 L씨는 “어느 날은 재택하는데 사진 올리래요. 타임 퀘스트인가 이걸 깔아서 시간이 밑에 나와야 돼요. 집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고). 20분 안에 안 보내면 연차로 처리해버리는 거예요”라고 전했다.

    비대면 사업 증가로 콜센터 업무가 폭증으로 업무강도가 높아졌으나 코로나19 감염을 이유로 휴게공간마저 폐쇄한 사업장도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예방지침에서 휴게공간을 여러 명이 함께 이용하지 않도록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휴게공간을 이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거리 두기 2.5단계 이상일 때에만 일시적으로 휴게공간을 폐쇄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업무 공간의 거리 두기는 지키지 않으면서 휴게공간은 폐쇄한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업무 및 작업환경 특성상 노동자에게 자율성이 적은 업무일수록 업무공간과 구별되는 휴게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감정노동과 직무상 스트레스가 높은 콜센터 노동의 특성상 충분한 휴식시간과 공간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라며 “그런데도 사용자들은 ‘코로나 19 예방’이라며 휴게공간부터 폐쇄해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가중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사업장은 구내식당도 폐쇄해버렸다. 정부의 방역지침엔 없는 내용이다. 앞서 정부는 구내식당 운영과 관련해 투명 가림막 설치, 거리 두기 식탁 배치 등을 통해 운영하도록 규정했다. 거리두기 단계별로 부서별 점심시간을 시차 운영하거나 식사 시 대화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투명 가림막 설치 등 거리두기 실천을 위한 고민보단 구내식당을 일괄 폐쇄를 선택한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모여서 음식을 섭취하면 코로나 19 감염 위험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내식당을 폐쇄하는 방식으로는 코로나 19 감염 위험을 낮추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며 “오히려 노동자들의 휴식을 방해하는 정도는 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내식당을 폐쇄한다고 해도 근로시간이 8시간인 이상 중간에 음식은 섭취해야만 하고, 자리에 앉아서 먹는다고 해도 기존 자리 배치가 거리두기 수칙을 준수하지 않기 때문에 감염 위험성은 줄지 않은 것”이라며 “이에 반해 노동자들은 점심을 굶거나 라면으로 때우는 식으로 적절한 식사를 하지 못해 건강권을 침해하는 정도는 매우 큰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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