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
    2006년 11월 18일 04: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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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일주일에 한 번 주말이면 세 살 난 딸아이의 목욕을 시킨다. 언젠가 딸아이의 성기가 발개져 불안한 마음에 “누가 우리 딸 잠지를 만졌니?”하고 아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한 딸아이가 오줌 싼 기저귀를 오래 차고 있어서 그랬으려니 하면서도 성폭력센터에서 한다는 인형놀이까지 서툴게 따라 해보며 아이에게 혹여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고는 소중한 곳이니까 다른 사람이 만지면 안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유별난 엄마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성 주간지에서 일하며 아동 성폭력 사건을 취재했던 일이 생생해서 그럴 것이다. 한 미성년자가 10건도 넘는 아동 성폭력을 연이어 자행해 사회적 논란이 뜨겁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결혼 전이라 아이가 있지 않았지만 취재하고 기사 쓰는 내내 그처럼 불편하고 속이 아팠던 기억이 없다 싶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기자로 일하며 국회를 출입하게 됐다.

하지만 요 며칠 마음이 불편해졌다. 국회 어린이집을 다니던 5살짜리 여자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는데 가해자도 잡지 못하고 국회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이를 지적할 것이라는 제보를 접한 뒤부터다.

국회 직원인 아이의 엄마는 지난 5월 9일 아이의 성기가 붉어진 것을 보고 아이로부터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됐다. 국회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바깥놀이를 하던 중 국회에 놀러온 한 초등학교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아이와 함께 있던 또래 친구 3명도 이를 봤고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이를 발견하고 성폭행한 초등학생을 때려줬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가해학생의 학교와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날 엄마는 아동 성폭력 상담전문기관인 ‘해바라기아동센터’를 방문했다. 센터의 심리 평가자는 보고서에는 “피해 아동이 조사자와 경찰을 거부해 며칠 동안 조사자와 만나 낯을 익힌 후에야 비로소 조사가 가능했다”며 “피해 자체에 대해서는 비교적 일관성 있게 보고했으나 그 밖의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무척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아동이 성폭행 사건에 대해 어머니에게 자발적으로 보고하였다는 내용이 판타지나 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매우 구체적”이라며 “성폭행 피해의 가능성은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진단했다. 연세대병원 소아정신과에서는 불안장애, 성적학대, 우울장애 진단을 받았다. 산부인과에서도 발진을 진단했다.

하지만 경찰의 4개월 여간 용의자 수사에서는 가해 학생을 찾지 못했다. 더구나 수사 과정에서 국회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의 진술을 강력히 부인했다. 성폭행을 목격한 일이 없고 보육시간 중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거짓으로 판단되는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지난 7일 용의자 불명으로 기소 중지키로 하고 검찰로 사건을 송치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영등포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말해 사실상 수사 종결 의사를 밝혔다.

피해 어린이의 엄마와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하지만 어린이집과 이를 관할하는 국회사무처가 사건의 진상조사와 해결에 나서기는커녕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학부모는 “같이 있던 친구들이 분명 있는데도 해당 교사는 국회 어린이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있었던 일을 갖고 국회에서 있었다고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국회 사무처도 책임교사들을 두둔하며 형식적인 감사를 통해 오히려 피해 엄마에게 2차 가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무처 관계자는 현재 해당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요청에 따라 교육에서 배제됐으며 별도의 업무과제를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민주노동당 최순영 국회의원은 16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회 사무처 국정감사에서 “영유아보육법에서는 영유아에게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교사가 보호자에게 알리고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보고하고 보고서도 비치해야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며 강력히 비난했다.

최 의원은 “최근 일정 수준 이상의 지능과 표현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3세 아동의 진술이라도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며 “국회 사무총장은 성폭행 사건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위로와 함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김태랑 사무총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 철책과 CCTV를 설치했고 수사가 진행 중인 문제여서 결론이 안 났다”며 “인정하고 안하고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 의원의 거센 비난에 김 사무총장은 “책임을 안 지려고 하는 게 아니다”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발 물러서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회 사무처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자세다. 해당 관계자는 “공식적인 사과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영등포 경찰서에서는 성폭행에 대한 전문의 소견서가 없다는 사실확인을 보내온 바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교사들의 입장에서도 중립적으로 다뤄달라”면서도 “한 선생님이 엄해서 (부모들의) 의심을 사고 오버가 된 부분이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피해 보상 등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사법기관을 거칠 일”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국회사무처는 사건을 기사화하려는 기자들에 대해 법적 대응, 국회 출입 제한 등을 운운하기까지 했다. 사건을 취재 중인 한 여성주간지 출입기자에게 국회 출입 제한을 거론했는가 하면 보도된 기사와 관련 국회 명예 훼손 등으로 법적 대응까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해당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도 “공보관실에서 법적대응을 이야기하기도 했다”며 “KBS 기사가 처음 나온 것에서 많이 달라졌는데 그래도 거짓이 많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린이집에 대한 취재에 대해서도 “공보관 입회하에 하라”고 주문하는가 하면 “중간적 입장에서 판단하고 조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 사실상 취재와 보도를 제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의원들이 강력히 이야기했으니 사무총장의 말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인식과 대처를 볼 때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3년 만에 그것도 국회에서 아동 성폭력 사건을 취재하며 피해 아동가족, 성폭력상담센터, 여성단체 등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아동 성폭력 문제를 지적하고 사회적인 대책을 요구해왔지만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한 아동 성폭력상담 전문가는 “아동 수사기법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검찰에서 성폭력 피해 아동의 진술에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들을 벌여왔는데 이번에 담당과장이 바뀌면서 그마저도 중단됐다”고 비난했다. 그는 “아이들에 대한 성폭력 범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심각성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입이 아플 정도”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아동 성폭력 사건이 어느 정도인지 집계는커녕 추측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해바라기아동센터 최경숙 소장은 “지난해 우리 기관에 상담 신청만 500건이고 실제 방문한 것은 300여건이 된다”며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동 성폭력 사건의 신고율이 6% 미만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해 심각한 현실을 지적했다.

미국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학대 발생율 연구의 경우, 여성 20% 남성의 10~15%가 어린 시절 성폭력 경험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설마…하며 마음 가라앉히려고 정말 많이도 애씁니다만 두 시간 눈 붙이고 깨서 잠을 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이 가만 있어도 후끈후끈 심장이 요동치고.”

“무슨 죄인 취급하듯 묻기에 저는 더 화가 났습니다. 술이 아닌 뭘 먹어도 부모 된 심정에 태연할 수가 있냐고 하며 울었습니다.”

“순간 손발이 떨리고 아무 생각이 안 나더군요.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우선 딸아이 상태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순간 피가 거꾸로 흐르면서 당장 쫓아 가서 뒤집어 엎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한국 아동성폭력피해 가족모임’의 상담 게시판에는 자녀의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엄마, 아빠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행히 성폭력 피해 아동들도 전문기관의 상담과 치료를 받을 경우 후유증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피해 아동과 가족들만의 고통으로 성폭력 문제를 방치한 채 사후약방문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을 분노해야 할지 세살배기 딸아이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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