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발이 파업에 미치는 영향
    By tathata
        2006년 11월 18일 03:4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민주노총에 스님들이 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돌입하기 전 ‘작전회의’를 짜기 위해 열린 지난 9일 열린 투쟁본부대표자회의. 민주노총 회의실에는 ‘까까머리’를 한 연맹 위원장과 지역본부 위원장들 수십여명이 모여 있었다.

    총파업의 수위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이날 회의는 시계 바늘이 몇 바퀴를 돌았지만,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다. 잠시 정회시간. 연맹 위원장들이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눴다.

    “어이구. 스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한 연맹위원장이 ‘농’이 섞인 인사말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예. 스님도 잘 계셨는가?” 다른 위원장이 화답하자, 이들은 서로 멋쩍은지 한동안 웃었다.

    민주노총의 시설경비를 맡고 있는 경비원 아저씨는 연맹 위원장들을 보며 “그 사이 또 삭발이여? 머리는 언제 기르는겨?”라며 삭발한 위원장들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우병국 금속연맹 부위원장은 그 경비 아저씨를 볼 때마다 요즘은 인사 대신 스님의 인사법인 두 손을 모은 ‘합장’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경비 아저씨도 먼발치에서 가끔 인사대신 합장으로 답한다고.

    민주노총 연맹 위원장은 물론 지역본부장까지 요즘 민주노총의 헤어스타일은 ‘삭발’이다. 지난 11월 6일에는 교원평가에 반대하며 전교조 부위원장 3명이 삭발을 했으며, 이어 8일에는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지부장 등 간부 87명이 ‘9.11 합의’ 폐기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지난 12일 노동자대회에서는 금속연맹 노조 위원장 34명이 삭발했다.

    가히 민주노총의 ‘삭발시대’인 셈인데, 민주노총의 지도부들이 이처럼 대규모로 집단 삭발식을 거행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만큼 민주노총에게 현재는 ‘비상시국’이라는 말이다. 삭발을 하는 것이 곧바로 민주노총 총파업의 승리로 연결되지는 않겠지만, 삭발을 해서 결의를 높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묻어있다.

       
    ▲ 보건의료노조 지부장 등 간부 87명이 집단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삭발에는 여성 임원들도 참여했는데, 남성과 달리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부담과 위험이 크기 때문에 삭발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영옥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말 힘든 결정이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조합원들의 총파업 결의를 높일 수 있다면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토로했다.

    보건의료노조의 한 관계자는 “삭발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결정했다”면서도 “삭발을 결심한 사람 가운데 결혼을 앞둔 이도 있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고 전했다. 그는 “참 사연이 많은 삭발식이었다”고 덧붙였다.

    진 부위원장은 총파업 현장 순회교육이 없는 날에는 늘 털모자를 쓰고 다닌다. 때로는 모자에 땀이 베이기도 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한다. 우병국 부위원장도 평소에는 캡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찬바람이 불면 머리가 얼얼해질 정도로 춥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에 ‘삭발 스타일’이 ‘유행처럼’ 퍼지자, 일부 상근활동가들도 삭발에 동참했다. 김선민 금속노조 총무부장과 박유호 금속연맹 조직실장 등은 몇 일 전 사무실에서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며 삭발을 했다. 김선민 부장은 “웬지 해야 할 것 같아서” 했고, 박유호 실장은 “삭발을 독려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했다는 후문.

    아무튼 엄동설한이 다가오는 요즘 ‘때 아니게’ 삭발은 민주노총의 트레이드 마크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삭발은 민주노총 총파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삭발을 해서 총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수가 산술적으로 얼마나 더 늘었는가를 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삭발을 한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영향력은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염창훈 금속노조 인천지부장은 “삭발을 했다고 해서 조합원들의 총파업에 대한 절박함과 긴장감이 갑자기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일단 조합원들의 시각을 집중시켜 지도부의 결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님은 승가에 입문하여 불법을 완성하기 위해 삭발을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줄이고, 노동기본권을 지키며,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 삭발을 하고 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