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가 준 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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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2월 04일 12: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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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꿈 같은 나날들이다. 아직도 장모님은 영서의 아토피 시절 얘기를 싫어한다. 가끔이라도 우리가 “예전에 잠도 못자고 그랬지?”하고 옛날 얘기하듯 말하면 대뜸 뭐하러 그 얘길 다시 꺼내냐며 다른 얘길 하신다. 장모님 생각에는 ‘말이 씨된다’는 속담처럼 옛날 얘기 자꾸 하다 다시 아토피가 심해지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 일게다.

아토피는 우리 가족에게 많은 것을 빼앗고 더 많은 것을 안겨줬다. 아토피가 준 가장 큰 선물은 둘째 영찬이다. 영서와 영찬이의 터울은 두 살이고 개월수로는 16개월이다. 영서 하나만 해도 벅차서 도통 둘째를 낳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토피가 좋아지니까 괜한 욕심이 생겼다. ‘아토피도 키웠는데 둘째를 못 가질소냐?’ 이게 내 마음이었고 영서엄마의 자신감이었다.

   
 
 

둘째를 갖고 나서 영서 엄마는 영서 때와 다른 먹거리를 먹었다. 김밥을 먹지 않았고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반찬 한두 가지라도 조미료 없는 집 밥을 먹었다. 가끔씩 미친듯이 라면이 먹고 싶을 때면 생협 라면을 먹었다.

영찬이가 태어나자 마자 기저귀 발진이 생겼는지 아닌지부터 봐야 했다. 다행히 기저귀 발진도 없었고 아토피도 없었다. 너무도 고마울 따름이다.

아토피가 준 또 하나의 선물은 맛의 소중함이다. MSG의 ‘깊고 깊은’ 맛을 우린 너무도 그리워했다. 무슨 음식을 만들어도 그렇게 싱거웠던지, 소금을 넣어도 싱거웠다. 맛이 안 좋다는 뜻인 ‘맛이 없다’가 아니라 맛이 전무하다는 ‘맛이 없다’가 우리 가족의 초기 음식맛이었다.

그런데 차츰 지나고 보니 새로운 맛이 생겼다. 양파 하나를 넣으면 맛이 이렇게 변하고 마늘 한쪽만 더 넣거나 덜 넣어도 맛이 달라졌다. 이렇게 되니 우리 혀는 아주 민감해져서 MSG의 강하디 강한 맛만 찾는게 아니라 부드럽지만 입안을 편안히 해주는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아토피는 우리에게 씀씀이도 꼼꼼하게 해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산책삼아 나가서 쇼핑 카트에 한 바구니씩 단지 싸다는 이유만으로 샀던 식음료를 우린 절제하면서 샀다.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음식을 줄이고 꼭 필요한 음식만 사게 됐다. 이번 주에는 무엇을 해 먹을까 하는 생각 자체를 즐기게 해줬다.

무엇보다도 영서엄마에 대한 동지애(?)가 생겼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영서 엄마는 아토피 걸린 아이를 키워냈다. 내가 일하러 간다고 내내 비운 그 시간을 온전히 영서엄마는 영서와 씨름하면서 길렀다. 24시간 내내 울고 보채는 아이를 돌보느라 영서엄마야 말로 내내 울고 보채고 싶었을게다.

아토피가 정말 극심해서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도 아내는 아이의 기저귀를 하루에 두 번씩 삶아 빨고 모든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방안에 있는 온도계를 보면서 난방을 줄여나갔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남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아이를 들쳐없고 병원을 쫓아다녔다. 영서 ‘엄마’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영서의 아토피는 2편에서 얘기했지만 온전히 우리의 책임이다. 햄버거를 좋아하고 라면을 좋아하고 인스턴트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우리의 잘못이다. 또 장사가 된다는 이유로 이런 것들을 팔고 산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지금도 소아과에 가보면 접수대에 버젓이 사탕이 있다. 사탕을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이빨이 썪었든 썩지 않았든 모든 아이들에게 간호사가 먼저 사탕을 준다. 다른 곳도 아닌 소아과가 말이다.

소아과에서 내려오면 약국에서 또 색소가 듬뿍 들어간 어린이용 비타민을 준다. 어린이용 비타민이 얼마나 몸에 좋을지 몰라도 그 비타민에 들어간 색소만이라도 우리 아이는 3일은 충분히 고생한다.

영서는 처음에는 단호하게 “전 사탕을 안 먹어요, 전 색소 들어간 음식 안 먹어요”, 이랬다. 그런데 이제는 “아빠 난 왜 먹으면 안돼요? 나도 먹고 싶어요”, 이런다.

가게에 한 번 가보면 아이들 과자는 온통 색소에다 첨가물 천지다. 이름조차 외우기 힘든 그 첨가물이 들어간 양만큼 아이들은 좋아한다. 과자회사 사장 자식이 아토피에 걸렸다면 절대 먹이지 않을 그런 과자를 내다 파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영서는 공동육아를 한다. 공동육아를 선택했던 큰 이유는 우리 먹거리와 유기농을 먹이고 과자 아이스크림을 먹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동육아는 보육료가 굉장히 비싸다. 그래서 진입장벽이 높다. 우리 가족은 공동육아 보육료로 등골이 휜다. 그러나 다른 곳에는 보낼 수는 없는게 현실이다.

왜 공동육아나 일부 아주 비싼 어린이집에서만 유기농을 먹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도 마음놓고 아토피에 걸린 아이를 보낼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없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기사가 연재되던 중에 영서의 아토피가 다시 생겼다. 엉덩이와 등에 좁쌀같이 것이 오돌토돌 나왔고 아이가 긁어서인지 딱지가 앉았다.

얼마전에 눈썰매 장에 가서 솜사탕을 먹였던 것이 생각났다. 같이 간 아이들이 모두 하나씩 들고 있는데 영서만 안 사줄 수 없어서 가끔 이렇게 사주는데 영락없이 아이 몸이 반응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젠 한숨을 쉬고 걱정하지 않는다. 영서에게 솜사탕을 먹으니까 이렇게 간지러운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목초액으로 가려움을 없애줬다. 아이는 “솜사탕 이제는 안먹을 거예요” 하고 약속을 했다. 당분간 솜사탕은 먹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지금도 수많은 유혹과 투쟁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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