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소중립위원회 보이콧 선언’에 부쳐
    [에정칼럼] 건설적이고 실질적 토론 위한 문제제기
        2021년 05월 14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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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2일, 멸종저항서울과 40개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243명의 시민과 활동가들이 “그린워싱 정당화하는 기후 거버넌스 참여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개인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주장과 전술을 대체로 지지하는 입장에서 토론을 이어가고자 한다. 인터넷 서명 운동을 뒤늦게 알았지만, 논쟁이 더 격렬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선언문의 부제 “탄소중립위원회 보이콧과 P4G 반대행동을 제안하며”에서 알 수 있듯이 5월에 예정되어 있는 탄소중립위원회 출범과 P4G(녹색성장을 위한 파트너십 및 글로벌 목표 2030)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본문에 보이콧과 반대의 이유가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첫째, 정부의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정책은 그린워싱에 불과하다. 기후위기 인식이 명확하지 않고 탄소중립 추진 의지가 단호하지 않고, 그마저도 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기후위기를 악화시킬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정부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성, 전략, 소통과 책임성 등의 쟁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탄소중립위원회와 P4G민간위원회에 대한 관행적 참여는 정부의 그린워싱에 동참하는 길이다.

    셋째, ① 삼척 블루파워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과 고성하이 석탄발전소 가동 중지, ②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와 베트남 붕앙2 석탄발전소 건설에 대한 공적금융 지원 중단, ③ 가덕도 신공항, 제주 제2공항, 새만금 신공항 등 모든 신공항 건설 계획 취소, ④ 그린뉴딜과 2050 탄소중립 추진 계획의 전면 재검토 및 재구성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기후운동 및 시민사회단체의 탄소중립위원회 참여는 정당성이 없다. 그리고 위원회에 참여하는 단체와 인사는 대표성과 책임성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넷째, 녹색성장과 성장 중심 자본주의를 통해 기후부정의와 사회부정의를 외면하면서 그린워싱의 기회를 제공하는 P4G 정상회의를 반대하고, 대신 기후정의 원칙에 입각한 대안포럼을 구성하겠다.

    탄소중립위원회 명단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누가 참여하는지 모른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를 묻는 탄소중립위원회 보이콧 선언이 미칠 영향을 예상하지도 못한다. 어느 편이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 선언에 전적으로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고, 선언 이후의 “건설적이고 실질적인 토론”을 위해 다소 도발적인 내용을 던진다.

    첫째, 특정 정책이나 사업에서 그린워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녹색자본주의와 그린워싱의 구별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념적 입장에 따라서 그 판단이 크게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곤란한 측면이 있다. 일각에서 1.5도 탈성장 시나리오(1.5C degrowth scenarios)도 제기하지만, IPCC와 대부분의 국가의 시나리오들이 경제성장-탈동조화-신기술의 조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그린워싱만 일삼고” 있다고 볼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적대적, 경합적 대결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녹색과 회색만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뜻이 맞아 시민사회단체 간의 협력과 연대가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무조건 공동 전략을 모색할 이유는 없다. 어느 시민사회단체나 그 구성원이 시민사회 전체를 대표할 수 없을뿐더러, 거버넌스 참여를 소속 단체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이름을 걸고 참여하거나 그런 자격으로 초대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에 의해 대표성을 부여 받았는지” 엄격히 따질 수 없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네트워크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그 역할을 자임하면 모를까.

    셋째, 정부 정책결정자와 위원회 참여 인사 모두가 고려해야 하는, 국내외 석탄발전소, 신공항과 주요 계획 등의 전제조건은 분명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참여 단체와 인사에게 직접 제시하는 전제조건은 과도하다. “어떤 절차적 정당성에 근거해 한국의 기후운동을 대표하게 되었는지, 위원회 참여 과정에서 어떻게 기후운동을 대표할 것인지” 질문하고, 이에 답변을 요구하는 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참여 비판이나 거부 제안이면 충분하지, 경위서나 계획서를 심사하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 반면 참여 단체와 인사의 책임성은 대표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시민사회로부터 위임받지 않았더라도, 중대한 사안을 공적으로 심의·의결하는 행위는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수반된다.

    넷째, P4G 정상회의와 차별화되는 대안포럼에서는 기후운동 리더와 활동가들의 대변인 역할보다 기후정치의 대중적 이해가 심화되고 집합행동이 활성화될 사회적 조건을 창출하는 논의가 부각되길 기대한다.

    현실 민주주의에서 외부 배제 없이 내부 합의를 이룰 수 없다. 물론 내부 배제도 나타난다. 탄소중립위원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기후변화 위기보다 더 위험한 것이 기후대응 위기라면, 탄소중립위원회와 같은 거버넌스는 결코 전부는 아니지만 기후대응에 필요한 조직이다. 그러나 위원회가 함정이 되지 않으려면 내외부에서 치열한 대결이 펼쳐져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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