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정국에 민주노동당이 없다
        2006년 11월 17일 12: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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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정국’이다. 건교부 장관과 청와대 홍보수석을 날려보낼 정도로 ‘부동산’은 정국을 주도하는 최대 이슈가 되고 있다. 국회 기자실에는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보도자료가 엄청나게 쌓이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정국’에 민주노동당은 없다.

    시민단체 관계자가 민주노동당에게 ‘투기 무관심당’이라는 오명을 안겨줬을 정도로 민주노동당은 이번 부동산 정국에 무기력하고 뒤늦은 대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민주노동당의 ‘실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31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전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을 때에도 뒤늦게 ‘부동산 대책특위’를 만들었지만 ‘반짝 가동’이었을 뿐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부동산 대책특위 반짝 가동

    이후 민주노동당은 의원이 없던 건교위에 이영순 의원을 배치하는 등 그동안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벌였지만 이번 부동산 정국에서 재경위 심상정 의원실, 건교위 이영순 의원실, 경제민주화운동본부가 각개약진을 할 뿐 한 목소리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민주노동당은 16일 오전 여의도 당사앞에서 부동산 투기공화국을 부추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사진=민주노동당)   
     

    부동산 가격 폭등이 정국을 휩쓴 지 한참이 지났지만 부동산 정책이나 기획사업을 논의하는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다가 지난 14일 처음으로 당내 부동산 정책 관련 담당자들이 모였다. 하지만 이 모임은 다음날 있을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논평을 준비하기 위한 모임에 불과했다.

    최고위원회에서도 부동산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성현 대표는 수차례 관련 부서들 간에 테이블을 구성할 것을 지시했고 최고위원들도 부동산 폭등의 심각성을 지적했지만 사업으로 구체화되지 못했다.

    김기수 최고위원은 “문성현 대표가 지시는 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미적미적 거리다가 14일 그나마 회의 테이블이 마련된 것”이라며 “당내에서 부동산 문제를 건드리는 사람은 있지만 당 차원에서 축적된 게 없는데다가 부서간 조율도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금까지 나올만한 정책은 다 나와 있는 상태”라며 “지금 중요한 것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 중장기적인 기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대응이 아니라 큰 틀의 방향이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

    "민주노동당, 경실련보다 못해"

    당의 핵심 관계자는 “부동산 정국이 진보정당에게는 호기인데 당은 지금 경실련보다도 훨씬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민생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문제에 무기력한 대응을 거듭한다면 민생정당이라는 간판을 내리는 게 맞다”고 개탄했다.

    민주노동당의 부동산 정책은 종부세 등 보유세를 선진국만큼 현실화하고 집을 여러 채 소유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주택자의 아파트 신규 분양 금지, 은행 담보대출 제한을 실시하는 한편, 무주택 서민들을 위해 분양원가 공개와 원가 연동제를 통해 아파트 값의 거품을 제거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또 과도한 임대료 상승의 억제와 공공임대주택 확대도 주장하고 있다.

    사실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들이다. 분양원가 공개와 원가 연동제는 정부여당에서 일부 수용했거나 검토하고 있는 방안들이다. 당내에서는 일가구 일주택 법제화 등 소유의 문제를 건드리는 방안도 언급됐지만 당론으로 정해지지는 않은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정책’보다 ‘사업’에 있다. 얼마 전 경실련의 박완기 정책실장은 “민주노동당에 부동산 관련한 사업이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며 “놀라울 정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정책 자체도 빈약하지만 구체적인 캠페인을 왜 만들어내지 못하느냐는 질책이었다.

       
     ▲ 경실련의 ‘아파트값 거품빼기 대책 촉구 및 10만 서포터즈 모집 가두 캠페인’  (사진=경실련)
     

    경실련이 최근 ‘아파트값 거품빼기 대책 촉구 및 10만 서포터즈 모집 가두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민주노동당의 대응은 초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먹고사는 문제 무관심"

    이영순 의원은 “정부의 공급위주의 정책에 대해 비판도 하고 심각한 부도임대아파트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도 벌였지만 부동산 전반에 대한 큰 틀의 사업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노력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당내에서는 전반적으로 민주노동당이 먹고사는 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홈페이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일반 국민들이 글을 쓸 수 있는 자유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부동산과 관련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중앙당과 국회내 의정지원단 사무실에도 심심치않게 서민들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하지만 당원들만 글을 쓸 수 있는 당원게시판에서는 부동산과 관련한 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도부에서 평당원까지 부동산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 민주노동당에게 보물창고인데…"

    창당초기부터 부동산을 비롯한 민생문제에 천착해온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이선근 본부장은 “비민생사업은 전당적인 캠페인을 벌이면서 주택문제는 개별부서의 산발적인 대응에 머물렀다”며 “지도부가 전당적 사업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이 민생정당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내에서 부동산 문제를 다뤄온 심상정 의원실의 손낙구 보좌관은 “민주노동당이 무관심당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싸다”고 말했다.

    “먹고사는 문제, 대중들의 생활상의 어려움에 대해 무관심한 게 문제다. 대중들이 부동산 문제로 고통받을 때 당 활동가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남의 얘기라 치고 터질 때만 일시적으로 관심을 가지니 무관심당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게 아닌가. 대중의 고통이 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주택문제와 교육문제는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보물창고’ 같은 영역인데 지금 당에서는 곁다리 정도도 안 되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뭔가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언론의 일시적인 주목을 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다시 대중들을 속이는 것밖에는 안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상표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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