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도 못 내리는 국회 장애인 화장실
        2006년 11월 17일 11: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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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 입구. 남자 화장실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가야 할까, 왼쪽으로 가야 할까. 여자 화장실은? 입구에서 고개 한번 돌려 표지판을 확인하면 되는 일인데 뭐가 중요할까. 하지만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면?

    일단 오른쪽으로 조심스레 발을 옮긴다. 입구에서 벽면을 더듬어 점자 안내판을 확인한다. ‘이런, 남자 화장실이잖아.’ 다시 뒤로 돌아 왼쪽으로 걸어간다. 다시 점자 안내판을 확인하고 그때서야 안심하고 볼일을 보러간다.

    “화장실로 들어서는 복도 입구에 점자 안내판을 설치하고 남여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면 좋을 텐데.”

       
    ▲ 화장실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모습  
     

    지난 10월 11일 장애인들과 함께 한 국회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에 나선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화장실 입구를 돌아보다 내뱉은 말이다. 최순영 의원뿐만 아니라 실태조사에 동행한 비장애인 보좌진들과 민주노동당 당직자, 기자는 수백, 수천 번 마주쳤을 일상 속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났다. 처음엔 설명을 듣고서 끄덕이던 고개들이 어느새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있었다.

    몇 발짝 떼기도 전에 온통 문제투성이다. 국회 의원회관 출입문 바로 옆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없는데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판은 기준보다 30cm 아래에 설치돼 있었다. 문은 안으로 열리게 돼 있어 좁은 공간에서 휠체어를 비켜 문을 다시 닫기도 버거웠다. 변기 바로 옆에는 세면대가 붙어 있었다. 휠체어에서 변기 옆쪽으로 건너앉아야 하는 장애인들은 혼자 이용할 수가 없는 구조다.

    화장실 옆 최근 새로 인테리어를 한 식당에서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식권 판매대를 시작으로 모든 시설물들이 장애인들의 손이 닿지 않는 ‘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수저를 뽑아드는 것은 물론 자율배식대에서 음식을 받는 것 등이 일체 불가능했다. 벽면 높이 붙은 휴지를 뽑거나 배수대 위에 올려놓은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받는 것도 일일이 남의 손을 빌려야만 가능했다.

    장애인 엘리베이트가 2대라지만 홀수층과 짝수층으로 나뉘어져 서는 바람에 다른 층을 가자면 다시 1층으로 내려온 다음 다시 올라가야 했다.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에서는 장애인들이 차에서 내려 휠체어로 움직여야 할 공간에 버젓이 2대의 자전거가 자물쇠까지 채워진 채 서 있었다.

    의원회관 1층 대회의실 안에서는 가파른 계단 때문에 아래쪽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회의실 바깥 오른쪽 복도 계단에 설치된 장애인 리프트를 이용하고자 했으나, 청소도구와 상자들이 리프트 전면에 가득 쌓여져 있었다.

       
    ▲ 장애인 주차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전거
     

    건물을 나서면서는 생명의 위협까지 마주해야 했다. 장애인들의 휠체어가 의원회관 입구에서 계단 한편 경사로를 돌아 내려선 곳은 일순간 차도였다. 국회의원들을 기다리며 줄줄이 대기 중인 검은 승용차들이 경사로에서 이어지는 인도 입구를 막고 있어 보지 못하고 길을 따라 내려온 게 차가 다니는 도로였던 것이다.

    국회 본청에서도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본청 2층의 여성 장애인용 화장실은 들어갈 수는 있지만 문을 닫을 수도 없고 물을 내릴 수도 없는 상태였다. 휠체어의 회전은 물론 측면 접근이 안 되는데다 물을 내리는 장치가 후면에 있어 장애인의 손이 닫지도 않았다. 결국 동행한 보좌관이 물을 내려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겪어야 했다.

    일일이 출입구 경사로의 각도를 재고 장애인 시설물의 위치를 줄자로 재고 수치나 상황을 기록해가면서 진행하자니 국회 의원회관 한 곳만 조사하는데도 오전 한나절이 다 지나갔다. 하지만 국회 본청, 후생관, 도서관 등 역시 꼼꼼하게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는 지난 2004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처음 진입하면서 필수적인 장애인 시설들은 설치했다. 하지만 직접 실태조사를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인 최순영 의원이 국회사무처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시행한 것이다.

    이날 실태조사에는 최순영 의원측은 물론, 장애인 단체와 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했다. 특히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배융호 정책실장은 지난 2004년 국회에서 첫 장애인 국회의원을 위한 시설 설치 시 자문을 맡기도 한 바 있다. 배 정책실장은 “당시 자문만 하고 설치 결과는 보지 못했다”며 “직접 확인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역에서 장애인 시설 실태조사를 시행했던 민주노동당 강동지역위 장애인 당원들도 참여했다. 하지만 실태조사에 참여한 장애인들은 한결같이 “필요한 시설들은 거의 설치돼 있지만 실제 장애인들의 이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형식적인 설치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순영 의원은 17일 운영위의 국회사무처 국감에 앞서 국회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평가지표에 의거해 점수로 환산해 본 결과, 국회 본청은 74.6, 의원회관 74.4, 국회도서관 76.7, 헌정기념관 77.4, 후생관 72.3점이었다.

    최 의원은 “장애인이나 어린이, 노인, 임신부 등이 이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설설치 현황이 100점인 점을 감안한다면 국회의 점수는 형편없이 낮은 점수”라고 비난했다.

    그는 “양적인 설치율에서 벗어나 질적으로 장애인 등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체감설치율 위주로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있는 것이 요즘 추세”라며 “이제부터라도 국회는 장애인이나 노인 등 약자들에게 접근하고 이용하는데 안전하고 편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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