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섭 강조 보건의료노조,
    9월 산별총파업 불사···왜?
    말로는 공공의료 강조, 실행은 미미
        2021년 05월 06일 03: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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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의료노조가 9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노정교섭을 중시해온 보건의료노조의 대대적인 총파업 결정은 이례적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요성이 커진 공공의료 강화, 보건의료인력 확충 등에 대해 정부가 전혀 진전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탓이다.

    보건의료노조는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달 29일 대의원대회에서 확정한 7대 교섭 요구안과 산별총파업 투쟁계획을 밝혔다.

    사진=유하라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인력 확충 ▲불법의료 근절 ▲교대근무제 개선과 주4일제 시행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고용보장 ▲산별교섭 제도화 등이 요구안의 주요 골자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전문가들은 주기적으로 감염병 확산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공의료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 의료기관 비율이 5.7%, 공공병상 수 기준으로 하면 8.9% 밖에 되지 않는다. OECD 회원국의 평균 공공 의료기관 비율이 65.5%, 공공병상 비율은 89.7%이 점을 감안하면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10%도 되지 않는 공공병상으로 코로나19 확진자 대부분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K-방역은 의료진의 희생과 주먹구구식 처방으로 유지돼온 셈이다.

    나 위원장은 “작년 연말에 보건복지부에선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지난달엔 2차 공공의료기본 계획 관련한 공청회도 진행했다. 이런 발표가 나올 때마다 굉장히 많은 기대를 하지만, 현장에선 큰 변화를 느끼기 힘들고 실제로 실행된 것은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발표한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은 대전의료원, 서부산의료원, 서부경남공공병원 등 3곳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전부다. 노조는 공공의료 30%까지 확충을 목표로 ‘공공병원 신설·인수 시 예타 조사 면제 법제화’를 주장하고 있다.

    수익성을 중심으로 하는 예타조사 제도가 번번이 공공성을 중시하는 공공의료 확충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 상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국무회의를 거쳐 예타 조사를 면제하고 공공병원을 확충할 수 있지만, 정부는 올해 예산 편성 과정에서 공공병원 설립 예산을 포함하지 않은 이유로 예타 조사 문제를 거론했다.

    정부의 필요에 따라 예타 조사를 면제해온 사례는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이나 4.7재보궐선거 때 정부여당이 부산 표를 얻기 위해 추진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대규모 토건사업엔 예타 면제를 남발하면서도, 공공병원 설립에 대해선 예타 조사를 고집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공공병원 비중을 30%까지 늘릴 때까지만이라도 예타 조사는 면제돼야 한다. 이미 학교 등도 예타 면제가 가능하다”며 “이 정도(요구를 수용할지 말지)는 정부의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공공의료 확충 여론이 높아졌던 지난해 말에도 공공병원 신·증축 예산을 단 한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특히 공공의료 관련 예산은 전년도 대비 오히려 삭감했다.

    보건의료인력 부족은 코로나19 전부터 노동계는 물론 정치권 안팎에서도 오랜 논의가 있어왔던 고질적 문제였다.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를 따져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2.3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3.5명의 65%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7년 주요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전망’ 연구에서 2030년 의사 7600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큰 문제는 피부과, 성형외과 등 소위 ‘돈이 되는’ 진료과목에 의사가 편중돼있다는 있는 데다, 지역간 의사 수 격차도 심각하다. 의사 약 10만 8천명 중 서울과 경기권 의사가 5만 3천 명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러한 의사 인력 부족 문제는 의료 현장에 만연한 불법의료행위, 부실진료의 원인이 되고 있다.

    노조는 “의사의 고유업무를 의사가 수행하지 않고 무자격자가 대리하는 무면허 불법의료행위가 횡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와 약사의 고유 업무를 타 직종에게 떠넘기는 대리 처방, 대리 동의서 작성, 대리 처치·시술, 대리 수술과 대리 조제 등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의료법상 법적 근거가 없는 PA간호사(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 간호사)는 불법의료행위의 중심에 있다. PA간호사는 병원에서 일반 간호사 중 일부 인원을 차출해 외래·병동·중환자실·수술실 등에서 의사 ID를 통한 진료의뢰서 발급, 진단서 작성, 투약·검사 처방, 수술·시술 등 사실상 의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심지어 의료 현장에선 PA간호사가 전공의를 가르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노조는 “이는 환자와 국민을 속이는 행위이자,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의료서비스 질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문제”라며 “대리 처방, 대리 동의서 작성, 대리 처치·시술, 대리 수술과 대리 조제 등을 5대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전면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 또한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의사 인력 부족 문제를 인정하고 공공의대 설립 등 의사 인력 확충 정책을 발표했다. 보건의료계, 시민사회단체, 노동계도 이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밝혔으나, 의사단체가 저항하자 유보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나 위원장은 “이제는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 내렸다”며 “노정협의와 산별교섭에서 이 같은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6월 서울 대규모 집회와 9월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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