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나온 자식들까지 가족 모두 비정규직이야”
        2006년 11월 16일 01: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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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추위’를 알리는 강풍이 몰아치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한미FTA와 노동법개악 저지를 위해 이날 4시간 파업을 벌이고 국회 앞으로 달려온 노동자들은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에 온 몸을 떨었다.

    스물 남짓 앳된 얼굴부터 환갑이 넘은 늙은 노동자들까지 세대를 뛰어넘은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자동차공장의 노동자와 지하철 청소 노동자, 환자를 간호하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현대자동차 영등포지점에서 자동차판매를 하는 문연욱(35) 씨는 현대자동차노조의 파업 지침에 따라 오후 1시부터 파업을 벌이고 국회 앞으로 달려왔다. 모든 조합원이 다 나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는 “회사는 맨날 불법 파업이니 정치 파업이니 하면서 노조를 비난하지만 지금 노동법 개악을 막지 못하면 우리의 생존이 위태롭기 때문에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며 “현장은 노사관계 로드맵이나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상당히 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노동자들 근태를 입력하면서 파업 집회에 나가지 않는 조합원들은 ‘파업코드’에서 빼줘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있어요. 하지만 이번 총파업의 의미에 대해 더 잘 알려내고 지속적으로 싸워나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봐요.”

       
     
     

    “임금 까도 좋다고 하고 모두 나왔어요”

    집회 맨 앞에는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 나이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앉아있었다. 지하철 신정 차량기지에서 청소를 하는 이덕순(56) 씨도 이날 오후 1시부터 4시간 파업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왔다. 차량기지에서 지하철을 청소하는 노조원 70명 중에서 50명이 참가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해고하려고 하는데 부당해고 처벌조항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금 우리들은 1년, 2년 계약이 계속되면서 무기계약이 되고 있는데 2년마다 해고하는 기간제 법안이 통과되면 아마 우린 다 짤릴 거예요. 그래서 파업하러 나왔죠.”

    그는 22일 총파업에도 꼭 참가하겠단다. “관리자들이 이름 적고 나가라고 해요. 우린 임금 까도 좋다고 하고 나왔죠. 우리가 청소를 안하면 지하철은 다니겠지만 서울시민들이 쾌적하게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 못해 불편할 거예요. 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휴식시간 반납하고 나온 병원노동자들

    노란 깃발 아래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병원노동자들이다. 이화여대병원 소화과 병동에서 일하는 김지영(26) 씨는 5일 일하고 하루 쉬는 날이었는데 집회에 나왔다.

    김지영 씨는 노조 간부가 아닌데도 입을 열자마자 노사관계로드맵의 대체근로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했다. “우리가 파업을 하겠다고 하면 병원에서는 한 달 전부터 준비해서 우리 자리에 다른 간호사를 쓸 겁니다. 자기 자리에 누가 들어와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파업하러 나가기 진짜 어려워지는 거죠.”

    “지금도 우리는 파업하면 환자를 생각해서 전면파업을 하지 않고 근무를 해요. 그런데 대체근로까지 허용하면 파업하지 말란 얘기고 병원을 상대로 하는 우리 무기는 사라지는 거죠. 간호사들 지금도 힘들게 일하는데 앞으로 근무조건이나 임금이 떨어지게 되겠죠.” 그는 22일에도 파업은 힘들겠지만 휴가를 내서라도 파업에 참가하겠단다.

    “대학나온 아들, 딸까지 가족이 모두 비정규직이야”

    청소아줌마들 뒤로는 할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머리가 하얗고 주름이 가득한 노동자들이 앉아있다. 시청 또는 구청에서 청소나 환경미화의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옛날 이름은 경기도노조였고 얼마 전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으로 바꿨다.

    성남시에서 수도 누수업무를 하는 김현태(55) 씨는 이날 오전 9시부터 파업을 벌였다. 성남 상용파트에서 일하는 96명 중에서 60명 정도가 이날 파업집회에 나왔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잖아. 근데 얼마 전 시흥에서 우리 조합원이 갑자기 해고를 당했어. 간부들이 3일간 연가투쟁을 하고 시장 면담해서 간신히 복직을 시켰지. 그런데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면 어떻게 되겠어?”

    “아이들이 다 컸겠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대학 4학년인 아들은 취업이 안되니까 휴학을 해서 은행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딸은 전문대 나와서 학습지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어. 토요일 일요일도 밤 11시까지 일하는데도 수당도 못받아. 일가족이 모두 비정규직이야.”

    “못살겠다. 이참에 노무현 정부 바꾸자”

    민주노총은 14만5천명이 파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 중 12만명이 금속노동자다. 이날 집회에도 금속노조의 푸른 깃발이 수도 없이 휘날렸다. 자동차부품 전문업체인 만도 평택공장 900명의 노동자들은 이날 주․야 4시간 파업을 벌였다.

    자동차 브레이크를 만드는 이주영(36) 씨는 “현장의 파업 열기가 아주 좋다”고 전했다. “집값 폭등하고 세금 많이 걷고 노동자들 점점 살기 힘드니까 불만이 엄청나요. 조합원들이 이참에 노무현 정부 바꿀 수 있으면 바꾸자고 얘기한다니까요.”

    맨날 금속노동자들만 파업한다는 불만은 없을까? “항상 우리만 파업하니까 피해의식이 있죠. 하지만 어쩔 수 있어요? 우리가 민주노총의 선봉인데. 힘이 들더라도 우리가 열심히 하면 나중에는 커다란 투쟁이 되지 않겠어요?”

    “집행부 의지만 있으면 파업 할 수 있어요”

    기아자동차노조 2만7천여명의 노동자도 민주노총 파업에 함께 했다. 소화리 공장에서 그랜드카니발을 만드는 김환택(39) 씨도 오전 근무 하고 점심 먹고 전철을 이용해 국회까지 왔다.

    “분위기 좋은 편이예요. 집회에는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대다수가 이번 파업에 동의하고 있구요. 우리 같은 자동차회사는 한미FTA가 체결돼 관세가 철폐되면 상대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게 되고 그래서 조합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어요.”

    문제는 22일부터 시작되는 무기한 파업이다. 기아자동차노조는 임기 말이고 곧바로 선거에 들어가게 된다. 파업하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는 “집행부 의지만 있으면 파업은 할 수 있다”며 “민주노총이 지침을 제대로 내려주고 현장에서는 지침을 사수하는 강력한 총파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 몸을 떨게 하는 강풍이 몰아치는데도 노동자들의 구호소리는 우렁찼고 씩씩했다. 강서구 등촌동에서 엘리베이터 수리를 하는 이장주(45) 씨는 “정치하는 놈들이 뒷주머니 챙기기 바빠서 이 나라 꼴이 이모양이 됐고 노동자가 살기 힘들게 됐다”는 말을 꼭 써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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