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전』 2장
    열아홉의 주체사상 비판
    [6회] 도화빛 교정과 4.13 호헌 조치
        2021년 04월 30일 08: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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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50대 초반의 남자 김민수의 이야기이다. 그의 삶의 이야기이면서 그가 살아왔던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필자의 자전적 성격이 일부 담겨 있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다만 시대와 사회의 어떤 점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기록이기도 하다. 총 24회 분량의 소설인데, 앞부분 10대 김민수의 삶을 다루는 5회까지는 한 번에 게재하고 2장부터튼 한 회씩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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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회~5회] 1장 열 살 아이의 어떤 의식화

    2장. 열아홉 살에 주체사상 비판서를 쓴 대학생

    6회차 많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낭만적인 3,4월을 보내다

    만 열여덟 살의 민수는 대학 입학 둘째 날부터 약간의 시련을 겪었다. 3월 3일 그 날에는 3. 3 대회라는 것이 열렸다. ‘박종철 군 49재와 고문추방 국민대행진’이라는 긴 이름의 집회가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신입생 민수는 중문과에 입학한 고등학교 동기 우문석과 함께 종로의 종로서적으로 책을 사러 갔다. 전투경찰들이 검문을 했고, 눈치 없는 문석은 자랑스럽게 서울대 학생증을 꺼냈다. 둘은 닭장차라고 불리던 경찰버스에 실리게 되었다.

    다행히 그들이 어제 입학한 신입생이라는 것을 안 지휘자가 그들을 곧 풀어주었다. 민수는 문석을 째려보며 종각역으로 들어갔다.

    민수가 지하철에서 말했다. “야. 민증을 보여줘야지 학생증을 꺼내면 어떻게 해?”

    민수는 대학에 들어가며 욕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멍청한 새끼야’를 쓰지 않으니 말하는 것이 좀 어색했다. 어쨌든 그는 말을 이어갔다. “너 박종철 몰라? 왜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대학생 말이야. 개새끼들, 말이 돼는 얘기를 해야지.”

    민수의 결심은 입학 둘째 날에 이미 무너졌다. 또 욕을 한 것이다. 그는 반성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근데 어제 보니까 언어학과가 3동에 있더라고. 우리 과도 3동에 있잖아.”

    “근데 박종철 얘기하다가 언어학과 얘기는 왜 하는데? 아, 박종철이 언어학과야?”

    “응. 85인가 84인가 그렇대.”

    “적응 빠르네. 하루 만에 학번 쓰는 거에 익숙해졌나봐. 근데 나는 고민이 많아. 담탱이랑 교장이 중문과 가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뭐 하는 데인지도 모르겠고. 새 언어를 배우는 것도 부담되고. 너는 좋겠다. 영어 잘하는데 영문과 갔으니.”

    “나 영어 잘 못해. 다른 애들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고. 영국 살다 온 애도 있고, 미국 살다온 애도 있고. 대만에서 온 애들은 말하는 게 완전히 미국 사람이야. 그건 그렇고 한시 하면 또 나 아니냐.”

    “그렇지. 한문 선생님이랑 네 이름이 같아서 네가 한문 되게 잘했지.”

    민수의 고1 때 한문 선생님의 이름은 김민수였다. 이름이 같아서인지 둘은 매우 가까웠고, 민수는 한문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그리고 그는 당나라 시들을 사랑했다.

    “한시 공부하는 거 재미있지 않겠어? 이백에 두보에. 사실 이백이나 두보에 비하면 영국 시인들은 좆밥이지. 아이 씨발, 욕 안 쓰기로 했는데.”

    “어. 야, 근데 시청 지났잖아. 2호선은 시청에서 갈아타야지.”

    “2호선으로 반 바퀴를 돌 생각이냐? 너무 오래 걸려. 노량진역에서 내려서 52번 좌석 버스 타면 학교 안까지 들어간대. 내가 350원 내줄게. 교문에서 어떻게 인문대까지 걸어 가냐? 셔틀 아니면 좌석을 타야 돼. 나 못 걸어.”

    “짠돌이가 웬일이냐?”

    항상 없이 살았던 민수는 과외를 이월 말에 시작했고, 인생 처음으로 이십만 원이라는 돈을 만지게 되었다. 당시 과외는 금지된 것이었지만 대학생들의 과외를 문제 삼는 경우는 없었다. 경찰이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대학생 과외를 단속할까. 그래도 불법은 불법인지라 과외는 명목상으로는 몰래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몰래바이트’라고 불렸다. 몰래 하는 것이니 위험수당이 따라붙게 되었고 금액은 올라갔다. 짜장면 한 그릇이 600원이고 버스 이용요금이 200원이던 때였다. 그리고 학생은 회수권을 쓰면 90원에 버스를 탔다. 그 때 20만원은 큰돈이었다. 민수는 거의 처음으로 남에게 금전적으로 무언가를 베풀었다.

    하지만 민수는 걷지 않겠다는 결심을 바로 깼다. 그날 오후 다섯 시에 인문대부터 교문까지 걸었고, 정문에서 서울대입구 전철역으로 이어지는 서울대 고개까지 걸어 넘었다. 여학생 둘이 그렇게 하자고 했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좋아하며 그 말을 따랐다. 여학생 두 명이 나란히 가고 그 옆에서 민수가 어색하게 걷고 있었는데 한 여학생, 민주가 갑자기 자리를 바꾸었고 민수가 둘의 가운데에서 걷게 되었다. 민주가 말했다. “김민수. 여학생 두 명을 옆에 끼고 서울대 고개를 건너면 3학점이래. 우리가 너 3학점 준 거야. 그러니까 저녁은 네가 사.”

    그 아이의 말은 신선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또래의 여자와 거의 대화를 나눈 일이 없던 민수는 어색했지만 이름이 자신과 비슷하고 밝은 김민주와는 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알았어, 김민주.”

    “우리 성 빼고 부르자. 친군데. 알았지, 민수야?”

    “어, 민주야.”

    “‘어’는 뭐야?”

    “‘응’의 종로중구 방언이야. 그러니까 옛 한양 성곽 안 방언.”

    대충 꾸며낸 거짓말이었지만 민주는 믿는 것 같았다. 그래서 꾸며내지 않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종로중구 방언도 있구나.”

    “응. 지금은 종로중구의 일부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쓰는 말이긴 하지만 있긴 있어. 예를 들면 갈비를 가리라고 부르고, 거울을 색경이라고 불러. 미숫가루를 미싯가루라고 부르고, 나무를 낭구라고 부르고 뭐 그런 거야.”

    “낭구? 웃긴다. 처음 들어봐.”

    “아닐 수도 있지. 아, 비슷한 걸 들어봤을 수도 있다는 얘기야. 왜 훈민정음 배울 때 그런 거 나오잖아. ‘뿌리 깊은 나무는’을 ‘불휘 기픈 남간’이라고 하잖아.”

    “맞아. 남간. 낭구. 비슷해 보여. 와, 신기하다. 그런 걸 어떻게 알았어? 그런데 너는 국문과 갔어야 하는 거 아냐?”

    “우리 할머니 말씀하시는 것 보고 알았지. 할머니 집안이 한양 도성 안에서 수백 년을 살았거든. 그리고 국문과 썼으면 교장에게 재떨이로 맞아죽었을 거야.”

    “뭐? 교장이 재떨이로 때려?”

    민수는 서양사학과와 국사학과 애기를 해주며 자신이 영문과에 오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 민주와 정미경은 깔깔 웃으며 그의 얘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민수는 커피를 돈을 내고 마시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아이들의 영문과 지원 동기는 한 술 더 떴다.

    미경이 말했다. “나는 원래 미대를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그런데 집에서 반대를 해서 예술과 가장 관련이 있는 인문대에 온 거야,”

    “미술 실기도 하면서?”

    “응. 7월에 그만 두었어.”

    “7월까지 미술 실기를 준비하다가 서울대에 왔다고? 천재 아냐?”

    “천재는 무슨. 늦었으니까 막판에 열심히 했지.”

    민수는 민주를 보았다. “넌 혹시 음대 준비하다가 온 건 아니겠지?”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왔어. 법대나 경제, 경영학과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나는 나중에 카페나 하나 차리고 싶어. 예쁜 카페에서 차 마시며 책 읽으며 지내는 거 생각해 봐. 낭만적이고 멋지지 않을까?”

    ‘얘들은 도대체 뭐냐. 적응이 안 되네.’

    민수는 그 날 그들과의 거리를 많이 좁혔는데, 셋의 공통점은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과, 무엇보다 초등학교 시절에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를 읽었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민수는 처음 만난 강남 지역 여자아이들과의 정신적 유대를 얻을 수 있었다.

    문무대 입소 관련 사진(대한뉴스 영상 캡처)

    첫 주의 좋았던 기분은 두 번째 주에 최악이 되었다. 3월 9일 월요일에 그는 잠실 롯데월드 건너편의 공터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성남에 있는 문무대로 입소했다. 사격이며 각개전투며 민수가 싫어하는 일들만 계속되었고 나오는 날도 최악이었다. 빨리 대학교나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신입생들을 모아놓고 서울대 총장 박봉식은 “일본에도 독일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일부 몰지각한 너희들의 선배 학생들의 말은 잘못이다.”는 요지의 연설을 20분이나 진행했다. 심지어 문무대의 장교들, 구대장이라고 불리는 이들마저도 그를 비난했다. 민수가 속한 구대의 구대장의 말이 멋지게 들렸다. “저러니 어용에 뽀식이라고 불리지.”

    민수와 남학생들이 돌아온 삼월 중순에 과 학생회 출범 행사가 있었다. 새로 선출된 학생회장의 인사가 끝나고 학생회가 할 일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 때 한 신입생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데 선배님들. 저는 이게 이해가 안 가는데요. 현 정부가 잘못이 많다고 해도 합법적 정부 아닌가요? 합법적인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은 불법 아닌가요?”

    민수가 나섰다. “법은 어디에서 만들어야 하는 거죠?”

    “국회죠.”

    “예. 근데 지금 정부의 기반이 되는 법들은 국회가 아니라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곳에서 만들었어요. 국회 외의 조직이 법을 만드는 것은 당연히 위헌이죠. 그러니까 그 위헌적인 입법기관의 산물인 현재의 법들 또한 위헌이겠죠.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법대로 한다면 지금 대통령은 79년이나 80년에 사형 당했어야 하는 사람이란 점이죠. 정당한 지위의 별 넷 참모총장을 별 두 개짜리 밑의 놈들이 공격해 감금하고 최규하까지 협박해 좌지우지한 것이 12. 12 쿠데타에요. 그들은 군사반란을 저질렀고, 법대로 한다면 그들은 사형에 처해져야 했어요.”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선배들은 이 신입생에게 감탄했다.

    민수는 3월을 정신없이 보냈는데, 문무대라는 기분 더럽게 만드는 병영 생활을 6일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상당히 좋은 상태였다. 아마 여자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그 해 신입생들 중 여학생은 서른 명이 넘었다. 물론 여자아이들이 꽃은 아니었지만 다른 과 아이들이나 고등학교 동문들은 꽃밭에서 살아서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민수는 좋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어쨌든 여학생들이 많으면 마음에 드는 용모의 학생들도 있기 마련이었고, 그런 면에서는 자신이 꽃밭에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반면에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스럽게 해야 했고, 그것은 큰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고, 그는 한 달이 지나자 욕을 완전히 끊었고 여학생들과의 대화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중문과 1학년 남학생이 그에게 “여자처럼 말한다.”고 했다. 민수는 씩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도 욕을 하지 않는 자제심을 보였다.

    관악산의 4월은 아름다웠다. 그는 그때 철쭉과 진달래를 제대로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왜 이백이 산중문답에서 ‘도화유수묘연거’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복숭아꽃 빛깔이 분홍색과 진분홍임을 처음 알았고, 그 색이 얼마나 예쁜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꽃비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벚꽃 잎들은 잔디 언덕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로 연이어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벚꽃 잎을 맞으며 아름다운 복숭아꽃을 바라보며 이백의 ‘별유천지비인간’을 느꼈고 그는 행복에 젖었다.

    이 중문과가 아닌 영문과 신입생은 서너 명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당의 시인 이백의 시를 읊었다.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하되,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閒)이라.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하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민주가 말했다. “그거 우리 예전에 배운 것 같아. 아,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왜 사냐면 웃지요.’와 ‘소이부답심자한’의 관련성을 국어 시간에 배웠었어. 민수야. 우리말로 읊어줘. 좋을 것 같아.”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지만, 웃으며 대답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한가하구나. 복사꽃 아득하게 물위로 흘러가니, 별천지요 인간 세상이 아니로다.”

    “멋지다. 근데 복사꽃이 뭐야? 복숭아꽃?”

    “응, 복숭아꽃을 어른들은 복사꽃이라고 부르기도 해.”

    “그런데 그 시를 한문으로도 외우고 우리말로도 외운 거야?”

    “한문으로는 외웠고 우리말로는 내가 해석한 거야.”

    “즉석에서?”

    “즉석에서.”

    민수는 그렇게 믿었지만 반은 사실이고 반은 사실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의 해석을 읽으며 자연스레 외워진 것이 절반이었고 그가 그만의 언어로 번역해낸 것이 절반이었다.

    도화빛으로 물들 것 같던 그의 대학 생활은 꼬이기 시작했다. 4월 10일에 그는 처음으로 최루탄 냄새를 맡게 되었고, 그 날 인생 최악의 결정 중 하나를 내렸다. 어찌 된 일인지 전경들은 인문대 근처까지 와서 사과탄을 던졌고, 그는 매우 괴로웠다. 재수를 해서 들어와. 일월 생이어서 일 년 빨리 입학한 그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던 김민기는 그에게 최루탄 냄새에 좋다며 수정 담배를 권했다. 그는 피워보았고 멘솔 맛의 그 담배는 나쁘지 않았다. 그 날부터 그는 흡연자가 되어 수십 년 간 자신과 타인의 건강에 피해를 끼치며 살았다.

    4월 13일에 전두환 대통령은 많은 이들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 선언을 발표했다.

    “본인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임기와 현재의 국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인은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내년 2월 25일 본인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이와 함께 본인은 평화적인 정부 이양과 서울올림픽이라는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할 것을 선언합니다.”

    박종철의 죽음과 그의 호헌 선언은 잠들어 있던 많은 이들이 깨어나게 했고, 한국 사회에는 격랑이 일어났다. 민수는 그러나 이에 관심을 끊으려 노력했다. 그는 화염병과 돌 던지는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폭력을 병처럼 싫어하는 이 아이는 집회와 시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선배들과 이런저런 학습을 하기는 했지만 아크로 광장과 교문 앞과 거리에 나서지는 않았다. <계속>

    필자소개
    정재영(필명)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작가이다. 저서로는 「It's not Grammar 이츠낫 그래머 」와 「바보야, 문제는 EBS야!」 「김민수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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