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투기 소득은 강탈 소득이다"
        2006년 11월 15일 05: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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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홍종학 경실련 정책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경기부양론을 반박하며 이런 말을 했다. "경제성장률 1% 올리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면 부동산 값 상승으로 소비자 실질소득은 20~30% 줄어든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도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가지표에 부동산을 집어넣어 계산하면 국내 물가가 엄청나게 폭등한 것으로 나올 것이다".

    현재 한국은행의 물가지표에는 부동산 항목이 없다. 최근 들어 부동산 임대료 정도를 반영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상대적 박탈감. ‘누구누구는 집을 어디에 사서 한 달 만에 몇 억을 벌었네’ 하는 식의 보도를 접하는 집 없는 서민의 절망감을 흔히들 이렇게 표현한다. 그런데 이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류의 발상법인데, 사실인즉 이 ‘사촌’들은 그저 ‘땅을 사는’ 게 아니라 내 ‘땅을 빼앗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부동산 투기로 혹자가 돈을 벌어들이는 와중에 물가(부동산 값을 포함하는)는 폭등한다. 홍종학 정책위원장의 주장을 인용하면, "1% 금리 인하로 부동산 값이 폭등하면 서민들의 소득이 20~30% 줄어든다". 실물의 경제 성장은 주어져 있는데, 부동산에 대한 투기적 요인으로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결국 부동산 투기가 물가라는 조절 장치를 통해 계층간 소득을 재분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투기 세력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사이 서민들은 멀쩡하게 앉아서 소득의 20~30%를 강탈당하는 것이다. 투기적 소득이란 곧 강탈한 소득이다.

    부동산 투기를 노름판에 비유하는 건 둘 다 ‘돈 놓고 돈 먹기’의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노름판에서 최후의 승자는 노름판 운영자다. 내기 당기를 치면 결국 돈을 버는 사람은 당구장 주인이다. ‘바다이야기’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도 게임업체 운영자와 게임장 주인이다.

    그럼 부동산은? 건설업체다. 레미안, 푸르지오, e-편한세상, 또 청와대 이백만 홍보수석이 샀다는 I-Park 같은 건설업체다. 먹이사슬의 종국에 이들이 있고, 그 바로 아래 투기꾼들이 있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는 ‘바다이야기’나 ‘타짜’의 노름판보다 더욱 악성이다. 왜 그런가. ‘바다이야기’나 ‘노름판’은 내가 판에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판에 들어갈 지 말 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내기당구도 내가 치기 싫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그게 불가능하다. 국민경제라는 판 자체가 도박판이 되기 때문이다.

    이 판은 내가 끼고 싶다고 끼고, 끼기 싫다고 회피할 수 있는 판이 아니다. 투기를 하지 않는 것은 곧 ‘투기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투기판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대가는 멀쩡하게 실질소득을 떼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을 강요당한다. 멀쩡히 앉아서 돈을 떼일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능동적인 행위자로 나설 것인가. 14일자 어느 신문에 한 맞벌이 부부의 가슴 아픈 사연이 실렸다. 내 집을 마련하려고 8년간 맞벌이로 개미같이 일해 1억원을 모았는데, 한 달 새 집 값이 1억원이 올랐더라는. 그 부부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맞벌이 하지 말고 둘 중 하나는 부동산이나 보고 다니는 건데…"

    이게 지금 우리 국민들이 강요당하는 선택의 적나라한 진상이다. 누가,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정부는 15일 또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공급을 늘리고 금융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게 골자다. ‘금융규제’란 미쳐 돌아가는 부동산에 이제라도 판에 뛰어들겠다고 마음억은 신규 진입자들에게 장벽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의 대책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동안 멀쩡하게 강탈당한 기회비용을 만회해 보겠다는데 정부가 막는 것이 억울하지 않을까. 이들이 그간 강탈당한 소득은 누가 보상해주는가.

    결국 홍종학 정책위원장 말대로 "현 정부 초기 수준으로 부동산 값을 돌려놓지" 않고는 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현재의 부동산 가격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종합대책은 경제 사안임에도 국회에서 종종 발표한다. 그만큼 정치적인 의미가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은 ‘재산권’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부동산 투기는 집 없는 서민의 재산권을 교란한다. 소득을 강탈한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해지면 흔히들 "민란이 날 분위기"라고 한다. 부동산 문제가 자본주의의 근간인 ‘재산권’을 교란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부동산 정책 전문가인 김종인 민주당 의원은 부동산 값과 정권교체의 상관성을 얘기한 적이 있다. 흉흉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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