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자의 힘
    [말글 칼럼] 문제투성이 글이 강한 힘을 가진 이유
        2012년 05월 01일 04: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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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필자는 ‘말글 칼럼’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들의 말이나 글이 갖는 특징을 분석하고, 그 말과 글의 장단점을 찾아내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말과 글은 소통이고 그 자체가 관계를 드러냅니다. 앞으로 ‘말글 비평’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가는 필자의 흥미로운 시도에 독자 여러분들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김순자 글의 힘은 어디서 나왔나?

    진보신당 비례대표후보 1번 김순자만큼 말과 글의 힘을 제대로 보인 이는 드물 겁니다. 그의 트위터 글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죠. 이제 갓 가입한 이의 두 번째 글(첫 글은 인사였죠)에 무려 96개의 리트윗이라니! 페이스북도 온통 이 글로 도배가 됐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저의 진보신당 비례대표후보로서 첫 번째 공약은 진보신당 국회의원으로서 전국의 청소노동자들에게 휴게실을 만들겠습니다. 우리 청소노동자들에겐 잠깐이라도 쉴수 있는 휴게실은 청소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인 것입니다. 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당당하게 외치겠습니다.”

    사진=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글 선생이 보기에 이 글은 문제투성이에요. 첨삭이라도 할라치면 난도질을 당해야 합니다. ‘공약은 ~ 만들겠습니다’는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되지 않고, ‘청소노동자들에게 휴게실을 만들겠습니다’도 비문이고, ‘청소노동자들에겐 ~ 휴게실은’은 주격조사가 반복됐고, ‘쉴수’는 ‘쉴 수’로 띄어쓰기를 해야 하고……. 하하.

    내용도 별 것 없습니다. 그저 청소노동자 후보가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을 만들겠다는 소박한 공약일 뿐이죠. 그러나 바로 이것(!)이 엄청난 호응을 부른 까닭입니다.

    공허한 이야기 대 자기 이야기

    이전에도 노동자나 장애인 비례후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김순자가 이렇게 뜬 걸까요? 원인은 간단합니다. 김순자는 자기 얘기를 했다는 거죠. 이후 TV토론에서도 그는 일관되게 청소노동자, 아이 낳은 여성인 자기 말을 합니다. 전국의 청소노동자들을 찾아다닙니다. 이것이 같은 노동자인데도 김순자가 달리 보이는 까닭입니다.

    노동자를 대표하겠다는 후보들은 대개 노동자 전체, 나아가 소외된 사람들 모두를 대변하겠노라 포부를 밝힙니다. 그런데 왜 그 말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그렇습니다. 노동자라면 대체 어떤 노동자인가? 소외된 사람은 또 누구인가? 왜 그 일을 하필 당신이라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이 들죠. 해서 오히려 공허합니다. 자기가 쏙 빠져버린 얘기는 대개 이렇습니다.

    무엇이 좋은 말글일까요? 논리정연하고 화려한 수사를 구사하는 글이요? 그럴 것이면 교수나 작가들 글이 제일 좋을 겁니다. 공감과 공명! 이것이 힘을 발휘하는 말글의 조건입니다. ‘공감’은 같은 감정을 갖게 하는 거고, ‘공명’은 깊은 울림을 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순자의 말과 글을 통해서 청소노동자의 처지가 되었던 겁니다. 마음 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울렸던 겁니다.

    자기 얘길 한다 해서 반드시 공감이나 공명을 일으키는 건 아니에요. 어떤 ‘자기 얘기’는 거꾸로 분노와 짜증을 부르기도 하죠. 이명박 대통령의 ‘나도 그걸 해봐서 안다’는 얘기가 그렇습니다. 그건 마치 어른들이 ‘내가 너만할 때는~’으로 말을 꺼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국민을 애 취급하는 거죠. 그렇게 둘러대고 을러대고 윽박지르는 말에 공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듣는 이를 아래로 보고 대상화하기 때문이죠.

    김순자 1번 ‘작전’ 대성공의 의미

    말하는 이가 제 감정에 못 이겨 울부짖으면 안쓰러울지는 몰라도 공감하긴 힘듭니다. 집회장이나 유세현장에서 이런 장면을 만나면 민망할 때가 많지요. 과격한 주장을 쏟아내면 살벌하다거나 생뚱맞다는 느낌이 먼저 들지 공명을 부르진 못합니다. 김순자는 그저 담담하게 자기 얘기를 하면서 아주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았을 뿐이에요.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빌딩이나 사무실에서 스쳐 지났던 청소아줌마를 떠올립니다. 화장실이나 계단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는 얘기에 죄스러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비정규직인데다 시급이 고작 4,500원이라는 말에 분노합니다.

    제대로 인사한 적이 없던 게 부끄럽고, 죄 닦음 해야 할 처지인지라 분노는 훨씬 커집니다. 뭔가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런 판에 휴게실을 만들겠다는 공약이라니! 이 정도는 해 줘야하는 것 아냐? 그런 생각 들지 않았나요? 실제로 다른 당원이지만 정당투표는 진보신당으로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죠.

    김순자 1번 작전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결과나 당을 떠나서 정치가 내 이웃, 아니 바로 내 삶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했으니까요. 기업인이나 의사, 변호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저리 많은데 왜 이 많은 청소노동자의 대변인은 없는가, 의문을 품게 했으니까요. 김순자는 삶을 말과 글로 옮길 줄 아는, 자기 얘기를 모두의 얘기가 되게끔 할 줄 아는 ‘준비된 후보’였던 겁니다.

    필자소개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정의당의 당원이다. 수도권에서 오랫동안 논술 전문강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부산에 정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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