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 민중의 호민관인가, 북한 정권의 외교관인가?
        2006년 11월 15일 08: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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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실련은 이번 부동산 정국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11월 상순 동안 언론에 보도된 바만 보아도 경실련은 80건이 넘어, 다른 대규모 시민단체들의 60여 건, 40여 건을 많이 앞질렀다(이상 한국언론재단 kinds 검색 기준). 물론 이것은 정국 이슈가 부동산으로 모아지며 경실련의 정책이 부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실련이 시의적절하게 대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을 호령하던 1990년대의 경실련을 알지 못하는 젊은 기자나 활동가들은 “경실련이 왜 저러지?”라고 궁금해 한다. 그들에게 ‘경실련’은, 극우신문에 반북 반개혁 칼럼을 쓰는 변호사나 우익 집회 연단의 목사로 인식되었고,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부동산 정국에서 경실련이 보인 활약상은, 전직 유명 인사들의 해괴한 언행과 ‘경실련’이라는 이름 사이의 연상 작용을 깨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 경실련의 아파트값 거품빼기 캠페인(사진위, 출처=경실련)과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기자회견 모습(사진아래, 출처=민중연대)
     

    경실련 뿐 아니라, 이러저러한 사회단체나 노동조합들도 부동산․주택 문제에 대한 대안 정책을 가지고 있고, 경실련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

    그럼에도 이번 정국에서 경실련의 대안 정책이 부각되는 것은 우연히 제기된 사회 이슈에 재빨리 대응하는 기동력이나 선점력이 정국 대처의 관건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이슈나 아젠다가 제기되었을 때, 대개의 시민들은 그리고 뉴스 공급자들은 새로운 뉴스원(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뉴스원에 의존하여 신규 뉴스를 보강하려 한다.

    그것은 기존 뉴스원에게 그 아젠다에 대한 검증된 신뢰와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즉 ‘평소 실력’이 있는 것이다.

    NGO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도 시민단체’로 분류하는 경실련이 부동산․주택 문제에 대한 실력을 인정받는 동안 이른바 민중운동 단체들은 무엇을 했을까? 부동산 주택 문제라는 것이, 작으나마 집 한 채씩은 갖추고 있을 중산층 ‘시민’보다는 월세방 신세를 면치 못하는 ‘민중’에게 훨씬 더 절박한 문제일텐데 말이다.

    민중운동단체들이 모여 있다는 거대한 민중연대는 그 비조격인 국민연합이 부동산 가격, 물가 문제에 대응하며 국민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史實) 같은 것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다. 해마다 나오는 민중운동단체들의 정세 분석과 예측, 사업 과제 선정에서 부동산가나 물가에 대한 면밀하고 과학적인 조사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들은 “민중의 고통과 분노는 나날이 깊어지고, 정권과 체제의 파국이 임박했다”는 수사(修辭)로 과학을 대체한다. 그 놈의 분노와 파국은 20년 동안 변함이 없다. 어떤 남파 간첩은, “왜 이북에 ‘서울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켜켜이 쌓여 있다’는 엉터리 보고서를 보냈는가?”라는 감방 동료의 물음에 “선배 간첩들도 그렇게 해서”라고 답했다. 간첩과 운동권과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을 따른다.

    11월 상순 동안 경실련을 압도한 유일한 운동조직은 민주노동당이고, 그 주제는 ‘간첩 사건’이었다. 민주노동당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북의 정권에 의해 만들어지는 간첩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정보에서든 정책에서든 조직에서든 경실련의 몇 배나 되는 민주노동당이 이번 부동산 정국에서 미적거린 것은 큰 손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지난 1년 여 동안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촉각을 곤두세운 관심사가 ‘한나라당이냐, 열린우리당이냐’, ‘미국 공화당이냐, 미국 민주당이냐’ 하는 따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아젠다는 한국 민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이미 오래다. “그 놈이 그 놈이지”라는 시쳇말은 정치혁명을 경과하고 사회혁명에 다다르지 못한 시대의 진리다.

    정치 변화 중심의 미세 정치학에 가장 관심이 큰 주체는, 남한과 미국의 정권 향배가 ‘돈이냐, 폭탄이냐’ 하는 민생 문제로 직결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이 남한 인민의 호민관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외교관인 줄 안다. 대개는 착각이고 더러는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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