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차돈의 목에서 흰 피가 쏟구친 이유
    [컬렉터의 서재] '이차돈 순교 사건'의 새로운 해석
        2021년 04월 16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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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한 페이지] 연재 칼럼의 필자 박건호 선생이 시즌2로 [컬렉터의 서재]로 문패를 달고 새로운 칼럼 연재를 시작한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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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의 위한 희생만도 놀라운 일이거늘
    하늘꽃과 흰 피 기적,
    더욱 미쁘오이다.
    칼날이 한번 번쩍 그 몸이 죽으시매
    절마다 범종소리 서라벌을 진동하네.
                          – 이차돈에 대한 찬미시, 『삼국유사』 중에서

    지난주 오래된 LP 음반 하나를 수집했다. 1971년 서라벌무용단의 ‘창극조(唱劇調)’ 작품으로 제목은 『순교자 이차돈』이었다. ‘창극조’는 일제 강점기 경성방송국(JODK)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용어로 지금의 판소리를 말한다. 이 음반은 이차돈 순교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엮은 것인데 특이한 것은 한 명이 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배역을 맡아 뮤지컬처럼 이야기를 전개한 점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일반적인 판소리 음반이 아니라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창극 음반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당시 이차돈 역은 정철호, 법흥왕 역은 황수옥, 이차돈의 연인인 달님 역은 성창순이 맡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사진] 1971년 발매된 창극 음반 [순교자 이차돈]의 앞면과 뒷면이다. (박건호 소장)

    내가 이 음반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그리 길지 않은 이차돈 순교 기록에 어떤 상상력과 어떤 스토리로 이차돈을 소환했는지 궁금해서였다.

    널리 알려진 이차돈 순교 사건의 요지는 대략 이렇다.

    이차돈은 6세기 신라 법흥왕의 근신(近臣)으로서 일찍부터 불교를 신봉했으며, 벼슬이 내사사인(內史舍人)에 올랐다. 당시 법흥왕은 불교를 국교로 하려 했으나, 전통 신앙에 젖은 귀족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이차돈은 혼자 불교의 공인을 주장하다가 순교를 자청한다. 죽기 전 그는 만일 부처가 있다면, 자기가 죽은 뒤 반드시 이적(異蹟)이 있으리라고 예언했는데, 과연 죽은 뒤 잘린 목에서 흰 피가 한 길이나 쏟구치고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꽃비가 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에 신하들도 마음을 굽히게 되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불교가 공인되었다.

    수집한 창극조 『순교자 이차돈』이 재구성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이차돈 순교에 대한 옛 기록을 중심에 놓고 여기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총 4장으로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애정편(愛情篇)’이라는 이름이 붙은 1장은 이차돈이 팔월 한가위날 열린 무예 경기에서 우승하자 법흥왕이 그를 외동딸의 부마로 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차돈은 이미 재상의 딸 달님과 부부의 언약을 맺은 상태라 왕명을 어길 수밖에 없게 된다. 이어지는 2장의 이름은 ‘수란편(受亂篇)’이다. 공주와 결혼하라는 왕명을 어겨 감옥에 갇히게 된 이차돈과 달님. 그들에게 추상같은 명령이 내려진다. 이차돈은 고구려에 가서 3년 안에 그 나라 왕의 목을 베어 오고, 달님은 이차돈을 잊고 딴 곳으로 출가하라! 이에 이차돈은 어머니와 이별하고 고구려로 향하게 된다. 3장은 ‘수도편(修道篇)’이다. 고구려 땅에 들어온 이차돈은 고구려 왕을 죽일 수도 없고 고향에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고뇌한다. 그러던 중 고구려 백봉도사의 눈에 띄어 불가에 귀의하여 흥륜이란 법명을 얻게 된다. 얼마 후 이차돈은 신라 땅으로 불도를 포교하러 떠난다.

    이어지는 마지막 4장은 이차돈의 최후를 다룬 ‘순교편(殉敎篇)’이다. 신라에 온 이차돈이 흥륜사를 지으면서 불도를 신라에 포교하자 귀족들이 이차돈을 죽일 것을 왕에게 요구한다. 왕은 이차돈과 같은 인재를 죽일 수 없다면서 이차돈에게 불도를 버리라고 권고하나 이차돈은 불제자로서 죽음 앞에 나서 불도의 참뜻을 외치며 죽기를 자처한다. 결국 이차돈의 사형은 집행되고 그의 목에서는 흰 색의 피가 치솟고 목이 하늘로 나르는 기적이 일어나자 온 신라 사람들이 다 불도를 숭상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 창극의 마지막 4장 정도가 그나마 역사 기록에 근접한 이야기고, 나머지 장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허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시도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과거는 창백하고 기록은 싸늘하다. 기록 너머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어차피 아무도 없다. 과거의 설화와 기록에 상상의 이야기를 입혀야 죽어있는 이차돈이 살아 움직이는 이차돈이 되는 것이고, 그때부터 역사는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된다. 역사의 저 편에서 이차돈은 늘 우리를 기다려 왔다. 이 음반은 1500년 전 불교 공인 과정에서 순교한 이차돈을 다시 일으켜 세워 우리들과 대면하게 한다.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환된 이차돈이 많아질수록, 이차돈의 본 모습도 희미한 윤곽선을 걷고 보다 또렷하게 우리 앞에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그런 점에서라도 이 음반은 나름의 의미를 품고 있다.

    이 음반을 살펴보다 나는 문득 20년도 더 지난 옛날 학교에서의 수업이 떠 올랐다. 나에게 있어 이차돈은 1995년 7월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 1995년 7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1990년대 중반 내가 몸담고 있던 M외고 수업시간으로 가보자. 거기에서는 이차돈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장면Ⅰ. 1995년 7월 이전의 박모 교사의 수업 풍경

    박모 교사, 아이들에게 신라의 불교 공인 과정과 이차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먼저 아이들에게 질문한다.

    선생: 얘들아. 이차돈의 성이 혹시 뭔지 아니?
    아이들: (당연하다는 듯) 이차돈인데 이씨지 뭐예요…

    선생: 이 놈들아. 이씨면 내가 그런 질문을 하겠니? 다시 한번 기회를 주마.
    아이들: …………….(묵묵부답)

    선생: (뜸을 들인 후) 이차돈의 성씨는 박씨야.
    아이들: (놀라며) 왜 박씨예요?
    (넌센스 퀴즈로 생각한 몇몇은 재미있는 설명이 나올 줄로 기대하는 눈빛이다.)

    선생: 이차돈의 ‘이’는 흔한 성인 ‘이(李)’자가 아니라 다를 ‘이(異)’자를 쓴다는 점을 먼저 알 아야 돼.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李차돈’인줄 혼동하기 십상이지. 『삼국유사』에는 이차돈의 이름은 박염촉(朴厭髑)이라고 기록하고 있단다. 『삼국유사』 기록을 그래로 읽 어줄게. 잘 들어 봐.

    (염촉을) ‘이차(異次)’ 혹은 ‘이처(伊處)’라고도 하니 발음이 다를 뿐이요, 번역하면 ‘싫 다(厭)’는 뜻이다. 촉(髑)은 ‘頓(돈)’, ‘道(도)’, ‘覩(도)’, ‘獨(독)’ 등 다 글 쓰는 자의 편의 에 따랐으니 이는 어조사이다. 여기서 위의 글자만 한문 글자로 번역하고 아래 글자는 번역하지 않았으므로 염촉(厭髑) 또는 염도(厭覩) 등으로 불렀다.

    그러니까 이차돈의 원래 이름은 ‘박이차돈’인데, 신라말로 ‘이차(異次)’라는 말은 ‘싫다’ 라는 뜻이고, ‘돈(頓)’은 별 뜻이 없는 어조사이니, 이를 한자식 이름으로 바꾸니 싫다 는 뜻의 ‘염(厭)’자에 별뜻없는 어조사 ‘촉(髑)’를 붙이서 ‘박염촉’이 된 거지. 다시 말하 면 이차돈이라는 신라식 고유 이름을 훈차한 것이 ‘염촉’이라는 것. 왜 이름에 하필 ‘싫 다’라는 나쁜 의미가 들어갔는지는 미스테리하지만, 이차돈, 아니 더 정확히는 박이차돈 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박 싫어요’씨고, 영어 이름으로 말하면 ‘Hate Park’인 게지.

    참! 그리고 우산국 복속한 인물로 잘 알려진 지증왕 때의 이사부 장군 있지? 그 어른도 본래 성이 따로 있어. 『삼국사기』에는 김씨, 『삼국유사』에는 박씨로 나와. 그러니까 그 는 김이사부, 혹은 박이사부인데, 우리들은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고 있는 셈이지. 김이사부, 박이사부 이런 신라식 이름 말고도 한자식으로 기록한 이름이 따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사부를 『삼국사기』에는 김태종(金苔宗)으로, 『삼국유사』는 박이종(朴伊宗)이 야. 이차돈을 박염촉으로 기록한 것과 같은 맥락이지.

    아이들, 이해할 듯 말 듯한 표정이다. 이어서 박모 선생, 이차돈 순교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중 이차돈의 흰 피 이적(異蹟)에 대한 이야기에서 아이들의 고개 갸우뚱. 아니나 다를까 한 아이 질문한다.

    [사진] 국립 경주 박물관에 있는 이차돈 순교비이다. 이차돈이 순교한 지 약 300년 뒤인 817년(헌덕왕 9)에,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기념하고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이 비가 건립되었다. ‘이차돈공양당(異次頓供養幢)’, 또는 ‘석당기(石幢記)’라고도 부른다.

    A학생: 선생님! 목에서 흰 피가 나다니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선생 : 글쎄…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이차돈이 백혈병 환자일 가능성이고..

    아이들: (야유조로) 우우.. 선생님, 백혈병도 피 뿕어요~
    선생: (너스레를 떨며) 아니 그래? 정말 그렇단 말이지? 처음 듣는 이야기네. 그럼 왜 이름이 백혈병(白血病)이지? 사람 헷깔리게…..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두 번째 가능성을 이야기 해 줄께… 그건 말이야. 그 전날 이차돈이 우유를 많이 먹었을 가능성이지.

    아이들: (웃음을 터뜨리며) 선생님, 그건 더 이상해요.
    (몇몇은 선생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진 눈빛)
    선생: 그럼 그것도 아닌가. 이상하네. 그럼 도대체 뭐지?

    아이들: 선생님 그건 그렇다 치고 꽃비는 뭐예요?
    선생: 글쎄다. 왜 꽃비가 내렸을까?

    아이들: 선생님, 혹시 나무옆에서 처형당했는데 칼이 이차돈의 목을 베고 잘못해서 옆에 나무 를 건드려 그런 것 아닐까요?

    선생: (픽 웃으며) 그럴듯한 이야기군. 그럼 꽃비는 비처럼 내리는 꽃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비 속에 꽃이 섞여 내리는 것을 이야기하는 건가. 『삼국유사』 기록에는 ‘雨花爲之飄落 (우화위지표락)’이라고 되어 있단다. 내 생각에는 꽃이 비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애. 이차돈 순교 후 300년 뒤인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차돈 순교 모 습을 새긴 비(碑)에는 꽃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모습을 새기고 있거든.

    [사진] 이차돈 순교비에 새겨진 순교 모습(왼쪽)과 그것의 모사도(오른쪽) 이차돈의 목에서 흰 피가 솟아오르면서, 주위에 꽃비가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장면Ⅱ. 1995년 7월 이후 박모 교사의 이차돈 수업

    다시 수업 시간. 이차돈 순교를 다루고 있다.

    선생 : (아이들에게 예의 그 질문) 흰 피는 뭘까? 또 꽃비는 뭘까?
    아이들:……(묵묵부답)

    선생, 백혈병과 우유 이야기가 섞인 옛날의 그 우스개를 한다.

    아이들, 웃긴 하지만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 몇몇 아이 선생에 대해 어김없이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선생: (얼굴 분위기를 진지하게 바꾸며) 얘들아! 작년 7월 아주 놀라운 발견을 했어. (약간 과 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이건 이차돈 순교 사건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해석이야. 나도 내가 막 자랑스러워지려고 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당분간 아무한테도 하면 안돼. 이건 분명히 말하지만 지적재산권이 나한테 있는 거야.

    (아이들 약간 호기심을 보임)

    내가 작년 7월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에 있는 희원이라는 전통 정원에 갔는데 연꽃이 가득 피어있는 연못이 있었어. 연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리고 조선 후 기 민화에 많이 그려지는 연꽃이 어떻게 생겼나 자세히 살펴보려고 아주 몰래 연꽃 한송 이를 꺾었지. 물론 이건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 났어. 연꽃을 꺾자 꽃대에서 너무도 선명한 흰색의 수액이 쏟구치더라구. 우유하고 아주 비슷해. 난 큰 전율을 느꼈어.

    (아이들의 관심 급상승)

    나에게 퍼뜩 이차돈이 떠올랐지. 나의 오랜 궁금증이 확 풀린 순간이었어. 이제 나는 더 이상 너희들에게 백혈병이니 우유니 해서 더 이상 유치한 장난 안 할래. 할 필요가 없어 졌어. 나의 이차돈 순교사건에 대한 해석은 이래. 먼저 이차돈은 분명 불교의 공인 과정 에서 순교했다. 이건 팩트! 이후 불교는 점점 퍼져나갔고 후대에 가면 갈수록 순교자 이차돈에 대한 숭배와 존경의 열기는 더해갔겠지. 그래서 이차돈의 죽음, 죽음 방식으로 보자면 단순하고 일반적인 죽음이었을 그 죽음을 불교적인 시각에서 가장 아름답게 채색 하려는 움직임, 즉 종교적 신비화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이차돈은 바로 한 떨기의 연꽃으로 비유했던 것이지.

    즉 불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연꽃 한 송이가 떨어지는 것 으로 이차돈의 죽음을 표현해보자. 그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하고 신비한 순교였 어. 그래서 연꽃을 꺾었을 때 흰 수액이 나오듯이 흰 피가 쏟구치는 것으로 표현했던 것 이지. 『삼국사기』에는 “色白如乳(피의 빛깔이 젖빛처럼 희였다)”라고 기록했고, 『삼국유 사』에는 “白乳湧出 一丈(흰 젖이 한 길이나 솟구쳤다)”라고 기록했어. 그리고 이런 이차 돈의 죽음을 더 장중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달랑 한 송이의 꽃이 아니라 수만 송이의 꽃송이가 동시에 떨어지면 더 좋겠지? 독창보다는 합창이 더 장중한 맛을 내지 않겠니?

    이차돈이라는 큰 연꽃 하나가 가운데 떨어지고, 그것을 배경으로 천상에서 떨어지 는 꽃비는 이를 화려하게 축복하고 장식하는 코러스같은 거지. 다시 정리하면 이차돈 순 교 이야기에서 이차돈을 연꽃으로 등치시키면 이 이야기는 완벽하게 해석된다는 거야. 옛날 이야기에 보면 “주인공이 죽은 다음에 그 자리에 OO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들 많 지 않니? 그런 류의 이야기와 이 이차돈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똑 같은 거지. 다만 수많 은 연꽃이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떨어짐을 통해서 이차돈의 순교를 표현한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그래서 이 이차돈의 죽음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보다 장중하면서도 처 연한 것이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이 이야기에 접근하면 이차돈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지니까 그냥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결론! 이차돈은 한 송이, 아니 수 만 송이 연꽃이었다.

    (아이들, 이전보다는 공감하는 듯한 표정이다. 몇몇 손뼉을 치는 아이도 있다. 어떤 학생 이 손을 든다. 할 말이 있는 모양)

    학생B : 선생님, 이렇게 볼 수는 없을까요? 흰 피는 자비를 상징하는 것으로요. 이차돈이 순 교하면서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비가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일 수도…. 흰 색 은 순수하고 고귀한 색이잖아요.

    아이들 : 어얼 —어얼 (이상한 괴성)

    선생: 그럴 수도 있겠지. 이차돈 순교사건에 대한 정해진 결론은 없어. 내 해석이 가장 완벽하 겠지만 (아이들 또 야유) 해석의 여지는 무한히 열려있어. 조금 어려운 이야기인데 불경 중 하나인 『능엄경』의 유가수련증험설(瑜伽修煉證驗說)에 따르면 수행자의 수련 단계를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그 중 3번째 단계인 아나함의 경지에 오르면 “붉은 피가 하얀 기름으로 변한다”는 대목이 나온다는데, 혹시 이차돈의 흰 피를 이것과 연결시켰 을 수도 있을 듯. 이건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귀여워해줄께.

    오늘 수업 끝!!

    최근 수집한 『순교자 이차돈』이라는 창극 음반이 상기시킨 옛 수업 기억은 이렇게 생생하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나에게 1995년 7월의 연꽃 경험은 큰 의미가 있었다. 꼭 수업 내용의 변화가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해 여름 나는 연꽃을 꺾음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우연히라도 연꽃을 꺾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책상 머리에 앉아서 과학이니 의학이니 하는 것들을 가지고 이차돈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했을 것이다. 어쩌면 피가 하얀 색이라는 남극 빙어를 주목하고 있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2019년이던가 중국에서 우유색 피 가진 남성이 발견되었다는 기사에 흥분하고, 그것이 정상보다 94배 많은 지방 때문이었다는 이유에 실망했을 수도 있다. 흰 피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면 온갖 억지를 부려가며 이차돈의 죽음을 설명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차돈의 죽음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의외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모든 기록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연꽃 하나를 꺾음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천적이고 경험적인 학습이 중요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나에게는 참신한 깨달음이었다. 머리가 큰 사람보다는 발과 손이 큰 사람이 낫다는 깨달음.

    [사진] 이차돈 순교 사건을 과학적 시각이 아니라 종교적 시각에서 보면 의외로 이해가 쉽게 될 수 있다. 이차돈의 성스러운 죽음은 떨어지는 연꽃으로 비유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차돈의 흰 피는 이러한 추측에 설득력을 더해 준다.

    * 이 글은 1990년대 후반 전국역사교사모임의 회지 [역사교육]에 실었던 글을 새롭게 고쳐 썼음을 밝힙니다.

    필자소개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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