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과 젠더 이슈,
    노조와는 무관한 것일까?
    [노동운동의 현실, 과제와 전망 ②]
        2021년 04월 13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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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이 노동운동의 후배들, 철도노조의 신입 간부들에게 노동운동의 현실과 과제, 전망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페이스북에 풀어서 쓰고 있는 글이다.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강의 내용 중심이어서 말하는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원글을 그대로 살린다. 앞으로도 부정기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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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의 현실-과제-전망 ①] 그럼에도 우리는 노동을 이야기해야

    7. 세상에는 계급문제가 아니라도 다양한 문제들이 있지요.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또한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낳은 문제이기도 하지요. 말하자면 페미니즘, 젠더, 노인문제, 인구문제 등이 그것인데요. 혹시 여러분들은 “노동운동과 페미니즘”, “성소수자 운동과 노동운동” 이런 주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세상은 젠더 이슈가 뜨거운 이슈인데 노동운동은 이를 얼마나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강남역, 혜화역, 잇따른 성추행 사건, 그리고 퀴어 퍼레이드까지. 성격차 지수 110등 언저리의 나라, 변희수 하사의 죽음.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면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최근에는 동아제약 면접을 본 여성노동자의 면접후기가 공중파에서 SNS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었지요. “군대를 안 갔다 왔으니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시 군대를 갈 생각은 없는지”가 면접관의 질문이었습니다.

    별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정말로 시대에 뒤처진 것입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죠. 그냥 평소에 여러분들이 둘러 앉아 하는 이야기들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 여성노동자가 받은 질문은 젠더, 노동, 인권 등 여러 가지의 가치가 어떻게 우리 사회 기성세대에 의해 무심히 떨어진 것처럼 소비되는지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 여성노동자가 조목조목 반박한 글을 읽어 보세요. 그것이 바로 오늘 시대의 코드입니다. 젠더 이슈에 대해 노동운동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 안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노동현장에 들어오는 여성노동자들은, 청년들은 이렇게 세상과 싸우고 있고, 이렇게 젠더와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노동운동의 미래세대인 그들과 과연 소통할 준비를 하고 있나요? 과거에는 세상을 앞서갔던 노동운동이 지금은 오히려 뒤처져서 허겁지겁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을 바꾸자면서 변화하는 세상, 새로운 세대와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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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저런 세상이야기, 저성장 체제로 들어선 자본주의, 4차산업과 플랫폼 노동, 산업재해, 비정규직 현황 등에 대한 이야기는 건너뛸게요.)

    8. 청년들 이야기 좀 해볼게요. 요즘 청년 조합원에 대해 나이 든 노조 간부들의 하소연을 듣습니다. 여기도 청년 간부들이 많이 계십니다만 장년층 조합원들의 하소연의 핵심은 청년들의 생각이 정말 문제가 많다는 것인데요. 비정규직 정규직화 한다고 노조 탈퇴하고, 성과연봉제 평등하게 나눈다고 언론사에 제보하고, 자기들 이익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니 참 답답했겠지요.

    소위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인천공항은 세계 1등 공항을 8년 연속 놓치지 않고, 그래서 국내 공공기관 중 가장 임금 및 복지조건이 좋은 기관 중 하나라고 하지요. 직장을 구하는 청년들이라면 다들 입사하고 싶은 직장이 된 거지요. 요즘 입사희망 1순위가 공공기관이고 그 경쟁률이 수백대 1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정규직화 문제가 등장하면서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났지요. 인천공항은 대략 15,000명 정도의 노동자가 일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정규직은 인천공항공사라는 공공기관에 일하는 노동자 2,000명 정도고요. 실제로 공항현장의 일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거의 다 비정규직이지요. 정규직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고 비정규직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고요.

    정규직 노동자가 이야기합니다.

    “인천공항에 들어가기 위해 고시 공부하듯이 노량진에서 공시 준비를 하며 김밥, 컵밥으로 떼우며 참으로 힘든 2-3년의 세월을 보냈다. 세계 1등 공항을 관리하는 인천공항공사, 좋은 조건의 이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이 청년실업의 시대에 수백대 1의 경쟁을 이기고 여기에 왔다. 그런데 3년 전에 혹은 5년 전에 그런 과정도 없이 들어와 인천공항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우리와 같은 정규직이 된다는 건 누가 봐도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진 것 아니냐? 누가 공채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막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 기회의 평등은 필요하나 무조건 결과까지 같아야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받아들일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야기합니다.

    “나는 입사 10년차이다. 이곳에서 내 노동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려왔다. 그리고 나와 13,000여명의 노동으로 인천공항을 세계 1등 공항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인천공항공사는 좋은 직장이 되었지만, 그래서 그대가 그렇게도 들어가고 싶은 직장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비정규직으로 산다. 그대가 누리고 있는 좋은 임금과 복지, 1등 공항이기에 누리는 성과급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대의 노량진에서의 컵밥 3년의 시험공부와 내 힘들었던 노동 10년은 정말 비교할 가치도 없단 말인가? 그대 청년들이 생각하는 공정은 이런 것인가?”

    여러분은 어디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가요? 세상에 비정규직이 넘쳐나면 지금 정규직도 자리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건 당연하겠지요. IMF 이후 자본과 정부가 아웃소싱과 민영화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었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요. 이윤이 모든 것인 자본주의 세상에서 언제라도 필요하면 정규직의 처지가 바뀐다는 것은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청년들은 어떻게 답하나요? 청년들은 어차피 세상이 그런 거고 그걸 이겨내는 사람이 승자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 문제는 안타깝지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 거지요. 바로 장년세대와 청년세대의 고민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그리고 우리 사회의 노동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여기 엉켜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사업장은 어떤가요? 코레일 네트워크 비정규직 싸움에 철도노조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그냥 청년들의 생각이 문제라서 잘 안된다고 이야기할 건가요? 솔직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철도노조의 장년층 조합원들은 많이 다른가요?

    청년의 생각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세상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본이 끈질기게 노력하여 경쟁과 효율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그래서 그나마 참 공정이라는 말이 매력적인데, 청년들의 생각이 문제라구만, 해서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자본의 그런 의도에 맞서 노동운동은 세상에 대해 어떤 전략을 가졌나요? 열심히 투쟁해 온 걸 몰라서 묻는 건 아닙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세상을 등한시한 노동운동에 대한 세상의 복수입니다. 그럴듯한 직장에 취업하려면 수백 대 1의 경쟁을 거쳐야 하는데, 청년실업이 27%인데, 유년시절.청소년 시절 IMF를 거치고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긋지긋하게 경험한 그들에게 ‘요즘 청년들’ 뒤에 쯧쯧 혀를 차는 것만으로는 되겠습니까? 일자리 내놓으라고 기재부도 아니고 청와대도 아니고, 민주노총 앞에서 데모하는 청년들, 그게 오늘 우리 노동운동이 당면한 현실입니다. 노동운동을 책임졌던 장년세대가 어느 사이 실리주의에 빠지며 노동운동을 담장 안으로 가둔 잘못을 깊이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세상의 모순을 세대 문제로, 노동계급 내부의 갈등으로 환원하는 저 자본의 전략에 휘둘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운동에게 청년세대는 정말 소중하니까요. 지속가능한 노동운동은 그들의 몫이니까요. 더구나 공공부문의 경우 2-3년만 지나면 바로 청년 세대가 조합원의 50%를 넘어섭니다. 많이 남지 않은 시간, 독하게 운동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운동이 정말 지속가능한 운동이 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계속>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공공연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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