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술교육은 좋지만 논술입시는 없애라"
        2006년 11월 13일 02: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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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겪은 30년 전 논술시험

    절대 안 잊을 것 같은 기억도 언젠가는 잊혀진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30년 전 대입논술시험을 치렀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도 많이 하고 글짓기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고 고등학교 무렵에는 그 학교에서 제법 알아준다는 글 실력이었다.

    나는 당시 논술고사를 치르는 모 대학에 응시를 하게 되었다. 그 대학도 내가 원해서 준비했다기보다 교사들이 나를 주관식 시험에 강하니 논술 실시 대학으로 진학지도를 했던 것이다. 그 당시 고졸의 5% 정도가 대학에 진학했으며, 그때는 논술시험 준비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시험 당일 가보니 도표와 통계를 제시하고 지문을 제시하고 정답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답이 있는 논술 본고사였던 셈이다. 논술이라고는 그때까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나는 당황한 채 열심히 썼지만, 결국 불합격했다. 정답이 무엇이었는지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200개 대학 중 40여 개 대학이 논술시험을 실시하여 전체 수험생 중 5만 명 정도가 논술시험을 치는 대학에 합격하니, 대략 18만 명이 논술시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30년 전 뼈저린 논술시험 실패를 경험한 나는 30년 후 학부모가 되어 아이의 대학진학 논술을 지켜보게 되었다. 2002년, 큰 아이는 논술시험을 보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 아이 역시 독서량이 많은 편이라 처음에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수능시험 후 1~2주 정도 학교에서 논술준비를 하는가 싶더니 학교는 학원에서 준비하라며 갑자기 백기를 들었다.

    학부모가 되어 지켜본 논술시험

       
      ▲ 논술 준비에 여념이 없는 수험생  
     

    아이는 급하게 4~5주 동안 학원에 가서 논술시험을 준비했다. 대학 심층면접과 논술시험을 보고 온 아이는 “막상 출제된 문제를 보니 논술시험 준비가 별로 필요치 않았다”고 말했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아무 것도 안하면 불안했던 것이 학부모로서 솔직한 심정이다.

    둘째 아이는 사정상 여러 번의 대학입시를 치렀다. 에세이, SAT, 논술시험과 심층 인터뷰, 여러 종류의 대학전형을 골고루 경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엄마인 나는 아이와 갈등도 몇 차례 겪었다. 아이는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른다, 에세이와 논술, 글짓기는 다른 것”이라며 논술과 에세이 과외를 시켜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었다.

    한국대학 논술시험은 정답을 모르면 경험과 가치관과 창의력이 다 쓸모가 없는 시험이었다. 주제는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신자유주의의 문제’에 대한 영문에세이, 지문도 대학교양서 수준이어서 이를 제대로 독해해내지 못하거나 과학적 지식과 어려운 사회과학적 영어 단어를 알지 못하면 글쓰기 자체가 불가능했다.

    반면에 그 당시 미국 대학 에세이는 ‘다양성’이 화두였고 SAT 에세이 주제는 다양했다. 한 가지 기억나는 주제는 ‘우리 학교는 다양성을 지향한다, 너는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였다. SAT 주제 역시 ‘사람은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너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하라. 혹은 용기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등, 이렇게 가치관과 비판력과 논리력과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글쓰기였다.

    두 아이 모두 대입 논술시험을 집중적으로 준비한 것이 대학진학에는 큰 도움이 안 되었지만, 이후 과제물 작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결국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능력이니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되며, 18만 명 수험생 뿐만이 아니라 전체 국민이 어릴 때부터 학교교육과정을 통해 습득해야 한다.

    내가 논술시험을 반대하는 이유

    30년 전 나의 대학 진학 경험, 두 아이의 논술시험을 지켜본 내 결론은 ‘논술교육은 필요하나 논술시험은 안 된다’는 것이다. 30년 전 내가 처음 논술시험을 치룰 때의 당혹감, 내가 부모가 되어 논술시험을 치루는 아이를 바라보며 느낀 고충, 고등학교의 무력감과 입시결과의 모호함……. 30년이 지난 지금도 부모의 무관심이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겪는 논술시험에 대한 무력감은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6년 국정감사에서도 드러났듯이 학부모들은 논술을 본고사로 생각하고 있으며, 교육부와 대학은 교육운동단체가 주장한 ‘논술은 대입 당락을 결정하는 본고사’라는 주장을 극구 부인하였지만, 논술의 영향력은 내신 성적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얼마 전 서울대 측은 지방학생이 논술고사에 전혀 불리하지 않다는 발표를 했다. 그런데, 서울대 합격생 중 논술성적 최고를 차지한 모 지방고교의 합격생은 3명이고, 논술성적이 낮다고 공표된 서울 모 외고의 합격생은 48명이다. 논술 성적 전국1위인 경남은 100명이 합격했고, 전국 6위인 서울은 858명이 합격했다.

    학교 간 지방간 맥락이 닿지 않는 이러한 자료는 서울대가 자신들의 논리를 강화시키기 위해 통계를 가공했다는 불신만 줄 뿐이며,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지난 주부터 교육운동단체들은 논술 철회를 위한 시민단체공대위를 구성하여, 수능시험 무렵까지 단식농성을 릴레이로 이어가고 있다. 다행히 서울대 측에서 조금 후퇴하는 듯 해 고교 교과서에서 출제할 것을 천명하고, 논술 변별력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논술시험은 잘사는 집이나 못사는 집이나 전교 1등이나 전교 꼴등 아이나 모두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으나 미대나 음대 진학에 고등학교가 무력한 것처럼 논술도 ‘명품’이 되면 초등학교 때부터 어려운 철학서, 사회과학서를 독파하고 글을 써 제낀 아이들이 유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논술 가이드라인이 무슨 소용이며, 교사의 3%만 논술 재교육을 받은 상황에서 1년 후 시험을 치를 아이들이 무슨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서울대는 내년 봄 논술 모의고사를 치르고 난이도를 조절하겠다고 한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르면서 무슨 난이도 조절을 하는가? 강남학원에서 배우는 것을 피해 출제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논술교육 필요하나 대입 논술시험은 안 된다.

    대입논술의 불씨가 있는 한 언젠가는 교육현장의 화근거리가 될 것이다. 논술시험을 실시하는 대학들과 이를 방조하고 전시성 대책으로 현장의 혼란을 무마시키려는 교육부는 논술 가이드라인 운운하며 불씨를 묻어둘 것이 아니라, 불을 끄는 적극적 대책, 논술시험을 없앤다는 책임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 이 글은 문화연대 웹진 <문화사회> 11월 9일자에 실린 글로, 문화연대와 필자의 허락을 받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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