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이냐? 쇄신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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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13일 0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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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세계 시간과의 엇박자이다. 우리는 한국전쟁 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극우반공 체제 하에서 진보의 불모지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세계가 진보의 위기 속에 보수화의 물결을 타던 1980년대 들어 80년 광주학살 덕분으로 뒤늦게 진보의 르네상스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꽃이 채 피기 전에 소련동구의 몰락을 경험했다. 이후 생겨난 것이 주기적인 진보의 위기론이다. 소련 몰락 때만 해도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전향을 선언했다. 그러나 지식인 중심의 관념적 진보운동과는 달리 대중운동인 노동운동은 위기론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해 왔다.

    구체적으로, 소련 몰락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생겨났다. 또 1996년 말에는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통해 김영삼 정부의 항복을 받아 내는 등 그 힘을 키워 오고 있다.

    또 다시 찾아온 진보운동의 위기

    진보운동이 최근 또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민주노동당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서너 가지가 중첩된 결과이다. 물론 그 심층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특히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라는 자본의 공세와 이 같은 공세 앞에서 상대적으로 무력한 진보운동의 무능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심층적 원인 이외에도 진보운동과 민주노동당이 위기에 처해 있는 데에는 다른 원인들도 적지 않게 기여를 했다. 우선, 민주노총의 중앙 지도부까지 관련됐던 잇따른 노동운동의 부패 스캔들로 상징되는 진보운동의 도덕적 위기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지난 지방선거에서 출마자가 금품을 돌리다가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역시 진보운동의 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노무현 정부는 진보세력이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내지 개혁적 보수 세력에 불과하다. 따라서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처럼 노무현 정부를 진보세력, 좌파세력으로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식한가를 폭로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진보와 좌파를 모독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같은 구별을 하지 않고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진보 세력의 실패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로 진보 세력도 덤터기로 위기를 맞고 있다. 민주노동당 역시 노무현 정부의 인기 하락과 함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북한, 남한 진보세력의 최대 아킬레스건

       
      ▲ 북한 핵실험은 북한이 남한 진보진영에 최대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걸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국면에서 설상가상으로 터진 것이 바로 북한의 핵문제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이라는 변수가 남한의 진보세력에서 최대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주목할 것은 핵문제가 기폭제가 되었을 뿐 북한이라는 변수가 최근 들어 북한인권 문제 등을 통해 진보진영의 엄청난 짐으로 부상해 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냉전적 보수 세력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들고 나와 이에 대해 침묵하는 진보진영을 공격하면서 진보진영은 수세에 몰려야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북한인권운동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조선일보> 등 주로 북한의 인권문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세력들이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군사독재 정권들의 인권 침해에 대한 민주화운동과 진보진영의 비판에 대해 귀를 닫고 오히려 독재정권들을 미화하기에 앞장섰던 극우냉전세력들이기 때문이다(물론 예외적으로 과거 북한을 찬양하다가 돌아선 전향한 주체사상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 역시 애당초 대학교육까지 받은 지식인들이 전근대적인 수령관에 왕정처럼 세습까지 하는 북한을 신봉하며 상당수가 충성서약까지 썼던 당사자라는 점에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 결국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다).

    한 마디로, 인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람들, 특히 우리 자신의 인권도 무시하던 사람들이 엉뚱하게 북한의 인권을 걱정하고 나서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을 큰 전제로 하여 인권을 중시하고 인권을 위해 싸워온 진보진영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어려운 딜렘마에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그토록 인권을 중시하고 하다못해 먼 나라인 이라크 국민의 인권을 이유로 이라크 참전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왜 유독 북한 문제에는 침묵하느냐는 비판에 부딪치는 것이다.

    북한 인권문제와 사르트르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우면서 왜 소련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천적 좌파 지식인이었던 사르트르가 한 대답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지침이 될 만한 답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왔다.

    사르트르는 우리들의 실천의 원칙은 “지금, 여기(here and now)”이어야 하는 바, 자신의 삶의 현장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이기 때문에 이의 문제들을 비판하는 것이며, 소련의 비판은 자신이 아니어도 넘쳐나는데다가 자신까지 소련을 비판하는 경우 그것이 “따라서 현재의 자본주의가 그래도 나은 것”이라는 식으로 현실을 정당화하고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는데 악용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를 우리 문제에 적용할 경우 우리의 삶의 현장이 바로 남한이기 때문에 진보진영은 남한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비판하는 것이고 북한 비판은 이미 넘쳐나는데다가 진보진영까지 북한을 비판할 경우 그것이 우리의 현실을 정당화하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외면하는데 악용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같은 이유 때문에 개인적으로 “조선일보가 북한인권 문제에 침묵하고 대신 우리의 인권문제에 대해 비판을 하는 날, 내가 나서서 북한 인권을 비판하기 시작하겠다”고 생각해 왔다.

    사실 이라크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북한 인권에는 왜 침묵하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라크 인권 비판은 그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외면하는데 악용될 수 없지만 북한인권 비판은 우리의 문제를 외면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고 답해주고 싶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함께 심각해지고 있는 북한의 인권 현실과 이에 대한 국제적 관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탈북자 문제, 특히 이들이 중국 등에게 겪고 있는 인권유린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의 인권문제는 진보진영이 언제까지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 대한적십자에서 북에 쌀을 지원하고 있다.
     

    내재적 접근 넘어서 사회구성체 분석해야

    다시 말해, 이제 북한 인권에 대해서 사르트르를 넘어설 때가 된 것 같다. 북한 인권에 대한 침묵과 외면은 진보진영에 엄청난 실책과 역사적 족쇄가 되어 우리를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다.

    전향한 주사파들을 중심으로 한 북한민주화 운동에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의 지배세력과 북한 민중을 구별하고 북한 민중의 인권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들의 문제의식은 받아들여야 한다. 지배세력과 민중을 구별하고 민중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진보세력의 상식이 아닌가?

    다만 문제는 현재 냉전보수 세력이 추진하고 있는 방식이 아니라 진보적 시각에서 북한 민중의 인권문제를 분석하고, 진보적 시각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냉전적 반북 교육을 바로 잡기 위해 “막대기를 반대로 휘는 안티테제”로 의미가 있었던 내재적 접근식의 북한 인식을 벗어나 북한에 대한 냉철한 사회구성체 분석, 계급분석에 착수해야 한다. 내재적 접근식의 문화적 상대주의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정당하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 얼마 전 정영태 교수가 이 지면에 기고한 ‘한국진보정당에게 북한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정확히 지적했듯이 북한은 더 이상 한국의 진보운동이 배우거나 기댈 모델이 결코 아니다. 아니 정교수의 분석은 너무 점잖고 소극적이다.

    물론 그 역사적 이유는 이해가 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북한은 진보, 보수를 떠나 한 마디로 ‘실패한 국가’이다. 자유를 포기했다고 평등을 이룬 것도 아니고 민중들의 최소한의 생존조차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길거리의 쓰레기를 주워 먹는 꽃 제비들 앞에서 무슨 이론이 필요하겠는가?

    진보진영이 남북 민중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살아있는 것은 푸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남한사회에 가져온 사회적 양극화에 분노하고 있지만 북한의 불평등은 신자유주의적 불평등보다도 훨씬 심각한 것 같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제재는 잘못된 것이지만 꽃 제비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북한의 사치품 수입이 제재가 된다는 것부터가 비극적인 북한의 현실을 웅변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

    물론 자주라는 부분은 의미 있는 부분이지만 그 역시 형해화된 것에 불과하다. 긴 분석이 필요 없이 북한은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아니 이 세상에 정권을 세습하는 진보정권도 있는가?

    북한이 과연 사회주의인지 모르겠지만 설사 사회주의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이한 봉건적 사회주의, 세습왕정의 사회주의에 다름 아니다. 만일 우리가 진보를 통해 이루려는 것이 만일 북한과 같은 사회라면 나는 단연코 진보이기를 포기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남한의 진보세력이 북한, 정확히 표현해 김정일 체제라는 북한의 지배세력과 거리를 두고 북한의 지배세력에 비판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진보가 무엇인가 하는 이 같은 원칙 때문만이 아니다. 이는 전술적으로도 필요불가결하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북한 체제와 남한의 진보 세력을 “그 놈이 그 놈”인 비슷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점에서 남한의 진보세력의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한나라당과 냉전세력, 그리고 국가보안법도 아니고 북한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남한의 진보진영은 북한과 거리를 두고 북한과 다른 진정한 진보의 모습을 보여줄 때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북한과 같은 사회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할 때만이, 남한 민중의 마음(장기적으로는 북한의 민중의 마음까지도)을 움직이고 성장할 수 있다.

    북한 최고 엘리트들의 착각 또는 고도의 전략적 계산

    사태가 이러하거늘,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 5.31지방선거에 대해 “한나라당이 승리하면 미국에 추종하는 전쟁머슴 정권이 들어설 것이기 때문에 가장 올바른 판단과 선택은 제일 당선 가능한 6.15평화세력 후보에게 지지표, 평화표를 찍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6.15공동선언 남북대학생 대표자회의에서 북측대표가 “민주노동당을 찍으면 사표가 되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원이라도 열린우리당을 찍어야 한다”며 투표 지도까지 하려들었다. 한 마디로, 북한은 민주노동당과 남한의 진보운동, 그리고 노무현 정부를 죽이지 못해, 그리고 한나라당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처럼 말도 되지 않는 발언을 계속하는 이유이다. 우선 이 같은 발언이 우리 사회의 반북심리를 강화시키고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한나라당에 타격을 주고 노무현 정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북한 지도부가 착각을 해서 그 같은 발언을 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북한의 최고 엘리트들이 얼마나 남한의 현실을 모르고 멍청한가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북한이 착각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이 같은 발언을 했을 수 있다.

    이는 자신들의 발언이 한나라당을 도와줄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아니 알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이 같은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다. 국내정치적 필요성(남북대립을 핑계로 북한 민중들을 계속 억압할 필요성)때문에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는 것을 북한의 지도층, 특히 강경파가 내심 바라는 경우이다.

    진실이 무엇이건, 북한의 행동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한의 진보운동을 도와주고 싶다면 차라리 지금과는 정반대로 남한의 민중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지령을 보내고 성명서도 발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일부의 잘못된 대응이 위기 가속화

    북한만이 아니라 NL, 특히 주사파라고 불리는 진보 세력 내 일부 정파의 잘못된 대응 역시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들의 ‘친북적’인 언행은 진보진영 전체의 이미지에 먹칠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일부 극단적인 주사파의 경우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공안사건을 통해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충성서약, 생일선물 보내기 등의, 지식인으로, 진보세력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개인숭배 행위를 해온 것이 드러남으로써 진보진영을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어왔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에는 북한의 핵무기실험을 자위권적 행동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그 결과로 민주노동당의 중앙위원회가 북한핵문제에 대한 특별결의문을 채택하려다가 결렬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북한의 핵실험에 명백히 반대의사를 밝히자는 다른 정파(평등파)의 주장에 대해 자주파가 반대를 하자 평등파가 퇴장해 버린 것이다.

    물론 부시정부의 외골수 강경론이 북한의 핵개발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핵무기 개발을 자위권적 행동이라고 정당화하는 진보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원칙으로 보나 전술적으로 보나,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진보의 자살 행위에 다름 아니다.

    언젠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한 냉전 세력의 거물에게 개인적으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들이 바라는 것이 진정으로 북한을 고립시켜 붕괴시키는 것인가? 북한이 붕괴하면 엄청난 난민 등 이후의 사태를 책임질 준비와 자세가 되어 있는가?” 그는 우물거리며 말을 하지 못 했다.

    사실 냉전세력이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흡수통일논자는 그들이 아니다. 오히려 햇볕정책 등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북한을 연착륙시키고 경제교류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우리 시장경제에 통합시키려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진정한 흡수통일론자들이다.

       
     ▲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는 북핵 문제와 관련된 특별결의문 채택이 무산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진=민주노동당)
     

    진보진영 대북 태도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다시 말해, 6.15선언과 햇볕정책 속에는 탈냉전의 긍정적 계기와 신자유주의적 흡수통일의 부정적 계기가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소련 동구 몰락 이후 자본의 공세기인 현 정세에게 통일을 바라고 있고 주도하고 있는 최고의 통일세력은, 한총련도 범민련도 아니고 현대와 개성공단에 진출하고 있는 자본들이다. 반면에 냉전세력은 먹지도 못할 고기를 탐만 내고 있는 과대망상증 환자에 다름 아니다.

    이와 관련, 냉전세력이 제발 일어나지 말라고 빌어야 할 것, 그리고 진보진영도 함께 빌면서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예기치 않은, 때 이른 북한의 붕괴이다. 물론 소련동구 몰락이후 유행했던 북한붕괴론과 같은 우파들의 나이브하고 자기중심적인 진단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입증된바 있다.

    또 북한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유비무환이라고 진보진영은 최악의 사태를 준비해야 한다. 만의 하나, 북한이 붕괴할 경우 엄청나게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또 무너진 북한의 민중들이 우리들에게 당신들이 우리의 인권을 위해 무엇을 했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은 북한의 사회성격은 무엇이며,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우리는 북한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근본적 질문

    마지막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레디앙>의 이번 기획이 그러하듯이, 핵실험을 비롯해 북한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대응은 민주노동당은 진보진영에게 무엇인가, 민주노동당은 특정정파의 정당이 아니라 진정으로 진보진영전체를 대표하는 정당인가를 근본적으로 물어보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와 관련, 나는 2004년 11월 민주노동당의 요청에 의해 당 간부들에게 행한 강연 ‘민주노동당에의 쓴 소리’(손호철, 『해방 60년의 한국정치』이매진, 2006, 302~316쪽에 수록)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당내 의사결정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이 문제는 민주노동당을 스스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민주노동당을 뜻 맞는 사람끼리 모인 하나의 진보정당 정도로 생각한다면 당원이 중심이 되어 주요 결정을 하는 지금 방식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한국의 진보운동을 지도해나가는 진보운동의 정치적 중심으로 자리 매김 하려면 달라야 한다.

    또 민주노동당의 장점이 진성당원에 기초한 정당이라는 데 있고 이 같은 점을 발전시키려면 현재처럼 당원 중심의 정당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현재 세계적 추세는 당원 중심에서 지지자 중심 정당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도 누구에게 투표권을 주느냐에 대해 당원만 투표권을 갖는 폐쇄형 예비 선거를 하는 주도 있지만 당원이 아니어도 지지자면 투표권을 주는 개방형 예비선거도 있다.

    민주노동당도 지난 선거에서 당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즉 투표자의 10% 이상이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졌고 그 덕으로 국고보조를 받고 있다. 이 점에서 이들이 간접적으로 재정적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당원은 아니지만 당에 투표를 하는 지지자들의 의견을 당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에 대표성의 위기가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체 지지층에서는 A라는 노선이 지지를 받고 있는데 당원의 수준에서는 B라는 노선이 다수파를 이루어 당을 지지층이 바라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경우이다. 나아가 변혁운동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면 당원의 의사 결정만으로 변혁운동 전체의 의지를 종합적으로 표현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비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대표들에게 당내 의사결정에 발언권을 주지 않을 경우 민주노동당이 전체 노동자들의 대표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솔직히, 현재 민주노동당은 NL이 다수파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 그리고 지지자들 중 얼마가 북한 문제에 대한 NL 노선, 북한 핵실험이 자위권의 발동이라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을 지 회의적이다.

    민주노동당, 개방형 예비경선제 도입해야 한다

    이에 대해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라는 식으로 “우리는 우리 노선을 고수하며 정파당으로 남을테니 우리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당원이나 지지자들은 떠나라”는 식의 태도를 고수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지지자들의 생각과 전체 진보진영의 의견을 대표하는 진보운동의 정치적 대표체로서의 진정한 진보정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당의 후보들을 당원만이 아니라 지지자 전체가 선출하는 개방형 예비선거(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선출하는 방식으로 당의 의사결정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진성당원의 육성이라는 목표 때문에 이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현재 채택하고 있듯이 당원들과 일반 국민 지지자들이 일정비율로 참여하는 국민참여 경선제를 채택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운동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진보의 위기 앞에 서서, 자살이냐, 쇄신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자살이냐? 쇄신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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