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저항에 도전하고 진보적 대안을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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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13일 08: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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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논의들은 거의 ‘숫자들의 투쟁’이다. 각 개정안들이 보험요율이 몇 년간의 평균소득 몇 %니 소득대체율이 몇 %니, 혹은 이 보험요율을 언제부터 몇 %까지 올리고 급여율은 언제부터 몇 %로 낮추어야 하느니 등 서로 다른 % 각축을 벌인다. 다수의 대중들은 이렇게 ‘복잡한’ 논란을 지켜보기가 정말 고통스럽다.

    국민연금 ‘숫자투쟁’ 보통사람들 고통스럽다

    그래도 대중들은 이미 국민연금에 대해선 확신에 가까운 판단을 가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공공의 적이라는 것이다. 작년의 어느 조사(페이오픈 설문조사, 2005년 4월)에 따르면, 건강보험과 소득/주민세,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자신의 임금명세서에서 공제되는 항목중에서 국민연금으로 나가는 돈을 다른 항목들에 비해 가장 아까운 것으로 꼽았다(전체 아까운 항목들의 총합이 100%라면 그 항목들중 73.3%나 차지하는!).

    심지어 국민연금의 ‘반국민적(?) 비밀들’을 폭로 규탄하는 ‘안티 국민연금’ 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국민연금은 대중적 저항을 받고 있다.

       
     
     

    민주노동당 오건호 정책전문위원이 최근에 펴낸 『국민연금, 공공의 적인가 사회연대 임금인가』(책세상)는 이러한 국민들의 저항에 강하게 도전한다. 그는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를 친절한 설명으로 불식시키되, 그래도 지니고 있는 문제들은 적극적으로 해결하여 국민연금을 사회연대 임금으로 전화시키자고 제안한다.

    먼저 그는 "낸 것만큼은 받아야 겠다"는 시장보험 논리를 강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그래서 덜 받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행 국민연금이 모든 가입자에게 "낸 것 보다 더 지급해 준다"는 ‘비밀’를 폭로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시장보험보다도 더 수지맞는 장사인 셈이다.(“국민연금에 가입하기만 하면 어떤 사보험보다도 높은 수익이 보장된다는 ‘비밀’” 54쪽, “1988년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은 소득 계층별로 2.1~9.1배의 수익을 얻는다” 63쪽).

    국민연금 비밀을 폭로하다

    하지만 이 높은 급여 때문에 후세대 부담이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급여를 낮추고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개정안이 제출된 이유이다. 게다가 국민연금 수혜는 가입자에게만 돌아간다.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지 못한 다수의 저소득, 비정규 노동자는 노동시장의 차별에 이어 국민연금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비판을 넘어 대안을 모색한다. 정말 쉽지 않는 대장정이다. 저자는 국민연금에 대한 반감을 ‘국가신뢰’의 문제로 집약한 후, 현재 쟁점과 개정의 역사를 정리하고, 나름의 개혁 대안을 제안한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망망대해를 이렇게 조리있게 엮어 설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쉽게 접근할 만한 분량에다가 독자들이 이해를 돕도록 서술해 간 노력이 금방 눈에 보인다. 일관된 사회연대적 관점에서 이 분야에 장기간 고민과 연구를 투자한 저자의 내공이 돋보인다. 최근 심상치 않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에 대해선 보론으로 다루고 있다. 참 욕심도 많다.

    연금 문제에 대한 논의는 조세 문제로 귀결된다. 저자는 다수의 저소득 노년층이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행 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초연금’을 제안한다. 이 대안모델의 관건이 재정에 달려 있기에 저자는 “결국 국민연금 개혁의 성공 여부는 …… 조세개혁에 달려있다”고 매듭짓는다(146쪽, 150쪽).

    기금 고갈보다 과대 기금이 문제 

    사보험에 대한 저자의 경계도 높이 살만 하다. 저자는 사보험의 지나친 확산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증대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사보험 시장규모는 전체 경제규모에 비추어 세계적으로 매우 큰 편이다.

    국민연금기금 적립금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연금기금의 고갈보다 현재 ‘과대 기금’을 더 큰 문제로 보는 저자는 국민연금기금이 국제금융자본에 종속될 것을 우려하며 기금운용 주체의 개혁과 대안적 기금운용 전략을 역설한다. 금융세계화 시대에 그 방안을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특히 이 책이 내게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 것은 사회복지 형성 경로이다. 사회복지의 순행코스(사회연대적 복지국가화)와 역행코스(복지의 시장화 즉 신자유주의적 탈복지) 중 전자의 경로를 밟기 위해서는 세금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줄일 수 있는 ‘사회복지 체험’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국 국가는 이 점에서 커다란 약점을 지니고 있고, 이 원인이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은 적절하다(71쪽).

    재미있게 읽었다. 연금재정 고갈 위협을 국민을 협박하며,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시장주의 논리에 현혹되기보다, 오해를 넘어서 ‘진보적 대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고자 하는 데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본서는 좋은 안내가 될 것이다. 숫자들이 매 페이지를 거의 피해가지 않는 책도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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