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수리도 안 먹는 시체가 될 자들
    By
        2006년 11월 13일 07:3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시신을 땅 속에 파묻지만 티벳에서는 시신을 독수리 떼가 서식하는 산으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톰데’라는 장례식을 주관하는 성직자가 시신을 칼로 토막을 내서 독수리들에 내어준다.

    장례식을 마친 뒤 사람들은 독수리들이 와서 시신을 먹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어떤 참석자들은 내려가기도 한다. 독수리들은 시신의 고기를 먹고서 사라지고 뼈만 남겨놓는다. 이렇게 한 떼의 독수리들이 고기를 먹은 뒤 사라지면 다시 다른 독수리 떼가 남겨진 시신의 뼈만 먹기 위해 날아든다.

    이들은 ‘고아’라고 불리는 독수리들로서 남겨진 시신의 뼈만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티벳의 장례식은 이런 식으로 보통 끝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독수리 떼가 시신을 먹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독수리 떼가 먹지 않는 시체는 원인이 있다. 그 사람이 살았을 때 너무 많은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독수리들까지도 시체를 거부한다는 것이 티벳 사람들의 믿음이다. 이럴 때, 톰데가 나서서 시체를 처리해줄 것을 독수리들에게 사정한다는 것이다.

       
     ▲ 티벳의 마을
     

    살았을 때 그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하고 시체를 먹을 것을 간곡하게 독수리의 언어로 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톰데라는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물론 죄가 많은 사람의 시체를 독수리들이 먹게 하기 위해서는 톰데와 가족들의 많은 시간의 기도의식이 필요하다. 독수리들이 거부하는 시체의 가족들은 결국에는 부끄러움으로 인해 그 마을을 떠나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한다.

    위의 장례식 얘기는 지금도 티벳에서 그대로 행해지는 있는 것이다. 물론 비과학적이라고 단정해버리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티벳인들은 장례의식을 통해 한 인간의 삶과 독수리들의 시체에 대한 반응을 수천 년 동안 지켜봤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믿음이 생성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티벳 사람들은 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 같은 인간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독수리들은 알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티벳의 장례의식과는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스님들 중에서 수련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스님들은 죽은 뒤에 시신에서 ‘사리’가 나오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유사한 일은 서양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서양의 천주교나 정교회의 수도승들 중에서는 죽은 뒤 시신에서 향기가 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인간들에게 출생과 성장은 모두 불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죽음은 인간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 독수리의 밥이 되든 땅속에서 썩어가든, 장례식이 화려했든 초라했든 모두 세상에서 사라질 뿐이다.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며칠 전 터키의 에제빗 전 수상이 세상을 떠났다. 물론 다섯 번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말해주듯 앙카라의 시내는 추도의 물결로 뒤덮였다. 몇 년 전까지 수상으로 재직할 당시만 해도 누구도 그가 세상을 쉽게 떠나리라 믿지 않았다. 사실 그를 추모하는 터키인들의 시각은 세상이 그를 보는 시각은 하늘과 땅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키신저의 제자로 미국정부를 배경으로 삼아 다섯 번이나 수상으로 재임했던 화려한 정치가였지만 그가 남긴 오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1974년에 키프러스를 침공하여 수천 명을 학살하고 수만 명을 난민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리고 터키에 사는 2천 5백만의 쿠르드민족의 인권을 수십 년간 완전히 말살하고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쿠르드인들을 학살하고 투옥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에제빗 전 수상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거나 아니면 수많은 사람들을 착취해 부와 권력을 축적해온 사람들 중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돈과 권력의 화려함은 이들에게 죽음까지도 망각시키고 있음을 본다.

    하지만 이들도 에제빗처럼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돼있다. 이들에게 죽음은 향기로운 안식이 아니라 단지 공포가 될 것이다. 죽은 뒤에는 독수리들까지도 외면하여 버려지는 신세가 되리라는 것을 티벳의 장례의식이 증언하고 있다. 티벳의 장례의식은 인간들에게 죽음의 비밀을 말해주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