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도심 뒤흔든 5만 노동자 함성
    By tathata
        2006년 11월 12일 09: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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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노총은 12일 조합원 5만3천여명이 참가한 ‘2006 전구노동자대회’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었다.

     

    민주노총은 12일 오후 시청 앞 광장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5만3천여명(경찰추산 3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태일 열사정신 계승, 총파업투쟁 승리,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민주노총의 15일 총파업을 사흘여 앞두고 개최된 이날 노동자대회는 노동법개악 저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 한미FTA저지, 산재법 개혁 등 민주노총 4대 핵심요구를 요구하는 조합원의 열기가 도심을 가득 메웠다.

    이날 대회는 경찰이 시민불편과 교통흐름 통제 등의 이유로 당초 집회를 불허하는 등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충돌이 없는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노동자대회에 앞서 금속연맹은 서울 시청 앞 광장, 화학섬유연맹은 광화문 열린공원, 운수노조(추)는 청계광장, 건설운송노조는 대학로, 전교조 공무원노조 공공연맹의 공공연대는 서울역 광장에서 각각 ‘산업별 대회’를 열고, 이후 서울 시청 앞 광장까지 행진했다.

    오후 3시 경이 되자, 시청 앞 광장이 바람에 휘날리는 민주노총 깃발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전국 각지에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부터 전세버스를 타고 올라온 조합원들은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전북 익산에서 올라온 덤프연대의 한 조합원은 “이번에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따내기 위해서 3박4일간 노숙상경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어디서 자야 할지 정하지 못했지만, 추위도 우리를 못 막는다”며 각오를 밝혔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은 대체근로 허용 반대, 필수업무유지 반대, 필수공익사업장 확대 반대 등 요구안을 적은 칼을 목에 걸고 이날 대회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은 요구안을 담은 칼을 목에 차고 노동자대회에 참여했다.
     

    전태일 노동상, 세종병원지부에 돌아가

    본대회에 앞서 사전대회에서는 ‘전태일노동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로 15번째를 맞는 ‘전태일노동상’에는 사측 용역경비의 폭력 속에서도 35명의 조합원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180일동안 끈질긴 투쟁을 이어 나간 보건의료노조 세종병원지부에 돌아갔다.

    ‘전태일노동상’은 전태일기념사업회(이사장 이광택 국민대교수)가 매년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단체나 노조, 개인에게 주는 상이다.

    수상식에 참여한 이소선 여사는 “인원이 과반이 안 돼 대의원대회가 못 열렸다는 소식을 듣을 때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연대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염려가 된다”며 “대의원대회는 인원이 부족해 못 열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서로 가까워지려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오후 3시 30분. 노동자대회가 시작됐다. 민주노총 노조들의 깃발 입장이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진행됐다. 대회에는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와 권영길 의원단 대표를 비롯,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천영세 의원 등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또  백기완 선생, 문경식 전농 의장,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남윤인순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등이 참여했다. 해외에서는 필리핀 노총, 일본 전노협,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만노조 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정리해고, 산업재해, 비정규직, 구조조정이 밀려온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2006 노동자대회는 민주노총과 이 땅 민중들에게 중대한 대회”임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은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는 정리해고를 전면허용하고, 노동3권을 말살하는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확산법을 비롯 대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FTA협상을 졸속으로 강행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규탄했다.

    그는 “한국의 노동자에게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산업재해, 그리고 개방과 구조조정이 밀려오고 있다”며, 이제 “가만히 앉아서 죽을 것이냐, 일어서 싸울 것이냐를 선택해야 할 때”라며 총파업을 호소했다.

    “이번 투쟁은 향후 10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기에, “국민을 위한 총파업, 노동운동의 미래를 열어 나갈 총파업, 민중의 생존권과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총파업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나내자”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우리는 전 세계 어느 노동자보다 노동해방을 위해 싸워왔다”며 “우리는 3자 개입금지를 뚫어 민주노조를 지켰고, 복수노조 금지를 뚫어 민주노총을 세웠으며, 노조 정치활동 금지를 뚫어 민주노동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이제는 한미FTA에 맞서, 그리고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수구보수 세력에 맞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전농이 민중투쟁으로 싸우고, 전진하자”고 촉구했다.

    문경식 전농 의장은 “지금까지 노동자는 비정규직 투쟁으로, 농민은 쌀값 쟁취로 각각 따로 싸워 실질적인 연대가 되지 못했지만, 이제 때가 왔다”며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이 끈끈한 연대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고 촉구했다.

    박대규 건설운송노조 위원장은 “건설운송노조는 오늘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기 때문에 이제 길거리에서 덤프, 레미콘 차량을 보기 힘들 것”이라며, “동지들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성공적인 총파업을 진행할 때 현장에서 적극 지지, 엄호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조준호 위원장은 ‘총파업 지침’을 발표 △11월 15일 오후 4시간 경고파업, 정부와 각 정당에 민주노총 4대 핵심요구사항에 대한 성실답변 촉구 △11월 22일부터 매일 7시 전국동시다발 촛불집회 참가 △11월 22일 민중총궐기와 전면 파업에 이어 11월 23일부터 28일까지 매일 4시간 파업 △11월 22일 29일, 12월 6일 민중총궐기투쟁의 날에는 전면 총파업 △비정규법안 법사위 강행 시 즉각 총파업을 선언했다.

    대회는 오후 5시경에 마무리 됐으며, 건설운송노조를 제외한 지방에서 올라온 조합원들은 전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부 노조와 연맹들은 개별 마무리 집회로 다시 한번 총파업을 결의했다.

    일단 파업에 들어가면 분위기 달라질 것”

    이날 대회에 참가한 현대차노조의 한 상근활동가는 “언론들이 ‘총파업 안된다’고 계속 떠들어대고 있는데, 일단 파업에 들어가면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조합원들이 아직 노동자에게 닥칠 재앙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가 나서서 조직하고 홍보하겠다”고 다짐했다.

    경남 진주에서 전세버스 3대를 맞춰 서울에 올라온 민주버스노조 삼성교통지부의 임영철 조합원은 “여기에 오니 속이 후련하다”며 기뻐했다. 삼성교통지부는 부도로 직장을 잃은 신일교통 노동자에게 매달 1천만원을 후원, 노동자 자주회사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임 조합원은 “평소에 외치고 싶었던 함성을 여기 와서 이렇게 많은 동지들과 함께 외치고, 즐길 수 있으니 마음이 도도해지는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매년 노동자대회에 수백여명의 조합원들이 상경한 포항건설노조는 이날 대회에 단 10명의 조합원만 상경할 수밖에 없었다.

    임진순 포항건설노조 조합원은 “1백여명 포스코 출입정지 명령, 구속자 50여명 무더기 실형선고, 사과조차 받지 못한 고 하중근 조합원의 문제로 노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나하나 추슬러 가야 하겠지만, 쌓인 상처가 너무 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올해는 비록 적은 인원이 올 수밖에 없었지만, 내년에는 더 많은 조합원과 함께 올 것”이라고 소망했다.

    이주노조도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노동비자 쟁취하자”는 마무리집회에서 구호를 외쳤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리뽄 조합원은 “대회에 오니까 지금까지 혼자서 싸워왔는데 함께 싸우고 있는 느낌”이라며 “우리는 모두 세상의 아들(we are son of the world)”이라고 말했다.

    어느새 서울 시청 앞 광장은 어둑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2006 전국노동자대회’는 끝이 났지만, 11월 15일 민주노총 총파업을 시작으로 22일 ‘민중총궐기의 날’ 등 전국 곳곳에서 한미FTA 저지, 노동법 개악 저지 등을 위한 노동자와 농민의 외침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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