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대기업·중소기업·노동자,
    2000년 이후 한국 자본주의 전개
    [연구논문] 선진국으로의 진입과 위기를 중심으로①
        2021년 04월 05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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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이후 한국 제조업의 전개과정, 그 장점과 단점, 성과와 위기적 요인들에 대한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의 연구논문이다. 공공상생연대 [상생과 연대를 위한 사회개혁비젼 연구 2]의 경제부분 일부이다. 도덕적 당위가 아닌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분석, 우리가 서있는 자본주의의 구체적 전개양상과 현실을 읽는 것이 우리의 실천을 고민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 진지한 일독을 권한다. 글을 3~4차례에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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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제제기 : 한국 자본주의 분석틀

    빠른 추격 성장을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한 한국 경제는, 그 놀라운 성과만큼이나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압축적 성장과정을 주도한 기업집단 즉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비롯하여 과도한 수출의존도,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격차,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 등 한국 경제는 수많은 모순을 안고 있음을 일반 시민들에게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제조업의 장기적 침체와 일자리 창출 능력의 현저한 감소, 중공업, 자동차, 전자산업 등의 최종재 생산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됨으로써 더 이상 모방 성장이 불가능해진 현실, 한국과 기술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 현저하게 낮은 저가격 경쟁자들의 진입으로 인한 세계시장에서의 한국 경제의 상대적 지위의 위협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면서 한국 축적체제의 다양한 비판적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진보적인 학계에서 한국 경제의 현실을 진단함에 있어서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대기업-중소기업 간 ‘양극화 체제의 성립’과 ‘저진로 성장 경로’였다.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하에서 대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비해 중소기업의 상대적 정체로 인해 생산성, 임금, 노동시장이 이중화 되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이 창출한 잉여의 일부를 영유하는 준 수탈적인 체제를 통해 성장해 온 반면 중소기업, 사내하청 기업 등은 이 성장체제의 하위 공급기업들이지만 대기업에 비해 현저히 낮은 협상력으로 인해 대기업이 제공하는 중간재 시장에 수동적으로 적응해 오면서 독립적인 생존기반을 형성하지 못해 왔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비정규직 및 사내하청 노동자,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면서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도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는 것이다.(이병천, 2014; 홍장표, 2014a; 홍장표, 2015; 남종석·홍장표, 2016)

    한국 경제가 직면한 여러 모순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재벌집단의 존재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과 선진국으로의 진입이 오히려 ‘한국 기업집단의 역능’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도 존재한다.(장하준·신장섭, 2004; 장하준·정승일·이종태, 2012) 이들은 한국 경제가 이중화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재벌의 지배력 강화가 한국 경제에 장기적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이를 이유로 재벌 지배구조를 바꿀 필요는 없으며, 한국 경제의 성장 자체가 기업집단 시스템의 효율성이 크게 기인한 바가 있으며, 성장을 위한 새로운 투자를 위해서라도 이들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주도적인 모험 투자를 함으로써 중소기업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생태계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이들은 현재의 재벌가 중심의 기업지배구조가 시장화된 주주자본주의보다는 한국 산업체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도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장하준·신장섭, 2004; 이찬근, 2007). 이 입장에 서 있는 연구자들도 한국 경제의 양극화는 심각하며 이의 개선을 위한 복지체제 확대, 노동양극화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전환, 확대되고 있는 사내하청 등 불안정고용에 대한 제도적 개선에 대해서는 전자의 입장과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석은 두 진영 모두 지나치게 한국 경제의 제도적 측면의 변화에만 집중하는 반면 현대 자본주의의 일반적 특성 속에서 한국의 축적체제를 분하려는 데서 멀어져 있다.

    기업집단이라는 제도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이지만 전후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과정은 자본주의 일반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예컨대 한국 자본주의는 ‘투자주도 성장체제’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고전파나 마르크스주의뿐만 아니라 ‘신고전파 교과서’ 경제성장 모형에서 보편적으로 서술된 내용이다.(1) 한국의 축적체제가 ‘저진로의 길’을 걷는 것은 저가격 경쟁자가 세계시장에 진입할 때 활용하는 일반적인 수단이기도 하다(Brenner, 2001). 다만 ‘저진로의 길’이라고 해서 모든 국가들이 선진국에 대한 추격 성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한국은 ‘예외적인 성공’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예외적인 성공의 요인들을 ‘제도적인 측면’을 통해 규명하고, 동시에 그 한계에 주목하는 태도이다.

    또 한 가지는 기존 연구자들은 2010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장기침체와 한국 제조업의 정체가 산업체제 및 노동체제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고려하지 않았다. 다수 논자들의 분석은 ‘바람직한 성장체제’라는 규범적 틀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 집중한다. 축소되는 세계시장에서 자본간 경쟁 심화는 기업의 매출액증가율 하락 및 수익성 악화로 나타나며 이는 공급기업에 대한 기회주의적 행동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일상화하도록 만든다. 더군다나 한국보다 기술력은 크게 낮지 않으면서 비용경쟁력은 현저하게 높은 저가격 경쟁자의 시장진입은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노동에 대한 공격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현존하는 양극화 체제를 더 강화시킨다. 자본간 경쟁 압력으로 인해 노동에 대한 자본의 배제적-억압적 관행들을 더 하도록 부추긴다는 점이다.(Callinicos, 2014) 사내하청 확대와 외주비율의 증가는 이 과정의 일부이다.(2)

    필자의 입장은 한국 자본주의가 재벌 중심 체제에 하에서 ‘저진로 성장’을 해 왔다는 선행연구들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이병천, 2014; 홍장표, 2014) 그러나 필자는 또한 재벌 중심체제의 독특한 제도적 특징이 한국 경제가 현재와 같이 성장하는데 주요하게 작동한 제도적 요인이라고 판단한다. 더불어 비록 한국 경제가 ‘저진로 성장’이었지만 노동생산성 상승만큼 실질임금이 상승해 왔고, 이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점도 강조되어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기업가주의적인 혁신 능력과 독특한 공급생태계, 노사의 적대적 관계가 만들어 온 ‘갈등적 요소’가 현재와 같은 성과(!)를 낳았다는 점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한국 경제성장의 역사이다.

    본 장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 전개 과정을 미시 데이터를 중심으로 분석하면서 재벌 즉 기업집단 중심의 경제성장 과정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필자는 결합불균등발전론의 관점에서 200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정체를 분석한다(Brenner, 2002; Callinicos, 2008). 그 과정에서 필자는 기업집단 중심의 산업구조의 특징과 한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더불어 필자는 규범적 틀을 통한 분석을 지양하고 자본주의 일반의 경쟁법칙 하에서 한국의 축적구조를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201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정체-위기의 구조를 살펴보고 이것이 어떻게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 자본가-노동의 관계를 변모시키고 있는지 보고자 한다.

    2. 한국 자본주의의 제도적 특징

    1) 한국의 산업생태계 : 계열사 체계와 다층화된 공급네트워크

    하나의 산업생태계는 “개별 기업에 대해 가치 창출 및 제공에 영향을 주고 또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기업들(공급자, 유통업자, 아웃소싱 기업, 관련 제품 및 서비스 생산자, 기술제공자, 기타 조직- 인용자)의 느슨한 네트워크”로 정의할 수 있다(Iansiti& Levien, 2004). 다수의 행위자가 상호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생존을 위한 경쟁과 상호의존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제적 공간이다. 생태계 내의 행위주체들은 각자의 경제활동이 공동체의 운명에 의해 상당 부분 영향을 받으며 경쟁을 한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기업간 상호작용에는 권력관계, 갈등, 경쟁이 공존한다.

    산업생태계는 공생의 측면과 적대적 갈등, 수탈의 체계가 공존하며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제공하는 최종재가 일종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면서 산업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플랫폼은 각자 생산하는 가치를 서로 보완해줄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이자 경쟁공간이다. 플랫폼의 경쟁력 상실은, 플랫폼에 기반을 둔 기업들 전체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큰 위협이 된다.

    한국의 산업생태계는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인 대기업이 플랫폼을 제공하고 계열사 및 협력중소기업이 중간재를 납품하는 것에 토대를 두고 구축되어 있다. 대기업이 플랫폼을 제공하면 이에 맞게 부품기업들은 부품을 제작하여 대기업에게 납품하고 대기업은 다시 이를 최종적으로 조립해서 시장에 판매한다. 부품조달형 산업생태계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구조이다. 대기업들이 제공하는 플랫폼은 개별 기업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개방형의 구조를 띠지 않는다. 이는 대기업과 납품계약을 맺은 협력기업들에 한정하여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며, 대기업들은 부품을 납품할 수 있는 잠재적인 중소기업들에 대하여 수요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반면 협력 중소기업들로서는 이 플랫폼에 부품을 납품할 수 있다면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하는 것과 같다. 대기업의 성장이 꾸준히 이뤄지면서 중소기업들은 안정적인 중간재 공급시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중소기업에게도 성장기회를 제공한다.

    한국 제조업 생태계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핵심적인 공급라인을 계열사 체계로 구축한 점에 있다. 1997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재벌 기업집단은 과거의 ‘문어발식 확장’을 지양하고 기술적 연관성을 갖는 핵심 업종 내에서 계열사 체계를 구축해 왔다(김경원·권순우 외, 2003). 계열사 체계는 재벌가의 경영권 장악 및 승계라는 소유지배구조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공급생태계의 기술고도화와 안정화라는 측면도 존재한다는 의미다.(김종호 외, 2019) 2000년대 이후 한국 제조업은 기술혁신과 함께 공급기업들의 기술역량도 고도화되지만 많은 경우 대기업과의 격차는 매우 컸다. 대기업들은 핵심적인 부품기업들을 인수하거나 자회사를 만들어 공급생태계를 새롭게 구성했다. 계열사 체계는 공동기술개발, 핵심 엔지니어를 매개로 한 공정혁신 등을 통해 계열사 내의 기술수준을 집합적으로 높이며 제품고도화를 추진했다. 한국 제조업 내에서는 재벌기업 집단 간 기술협력 및 기술확산의 사례는 흔치 않았지만 계열사 간의 기술 공유 및 공정혁신 지원 등을 통해 대기업과 공급기업 간의 역량의 격차를 줄이고 제품의 가치사슬 전반에 핵심적인 공급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한국 제조업은 잘 알려져 있듯이 다양한 협력기업 네트워크를 통해 관련 산업의 중간재를 조달해왔다. 1980년대 이후 진행된 부품국산화 과정에서 각 업종별로 많은 공급기업들이 만들어지면서 최종재를 생산하는 대기업과 계층화된 공급관계를 구축해 왔다. 2000년대 이후 수출주도 대기업들의 기술 및 제조역량이 매우 높아지고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중간재를 공급하는 협력기업의 수와 규모도 커졌다.

    김기찬(2009)은 협력 중소기업의 유형은 모기업과의 거래관계에서 무엇을 중요시하는 분야에 따라 세 유형으로 구분한다. 다수 가격경쟁형, 소수 기술경쟁형, 지명발주형이 그것이다. 다수 가격경쟁형은 범용부품을 공급하는 기업들로 구성되며 거래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중시한다. 기술수준은 낮고 대기업과는 단기거래가 중심이다. 소수 기술경쟁형은 대기업의 계열기업이나 핵심부품 기업은 아니지만 대기업이 공급하는 플랫폼과 관련된 관계특수적인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이다. 전속거래가 발전되어 있는 한국의 협력 중소기업들 중 다수가 이에 속한다. 지명발주형은 대기업의 입장에서도 역량개발과 동반성장을 중시하는 유형을 지칭한다. 지명발주 형은 대기업의 계열사이거나 대기업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거래를 지속해 온 핵심 부품 기업이다. 이 유형의 기업들은 연구역량, 독자적인 설계능력을 지닌 기업들로서 대기업이 제출하는 기본적인 설계사양에 맞게 부품의 세부설계 능력을 갖추고 있다. 주로 재벌기업 계열사와 중견기업 공급기업들로 구성되어 있다(김기찬, 2009). 지명발주 기업들은 준계열화된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기업 산출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림 3>은 조선 3사와 공급기업의 관계를 시각화한 것이다. 그림에서 보면 협력기업들의 경우 최소 2사 이상의 기업에 공동납품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협력기업들이 하나의 기업에만 납품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만큼 협력기업들에 대한 조선3사의 수요독점적 지위를 보여준다. <그림 4>는 자동차산업 대기업과 중기업, 소기업의 매출액성장율 추이를 나타낸다. 그림에서 보듯이 대기업 매출액성장율과 중기업, 소기업 매출액성장율은 거의 같은 궤적을 보여준다. 이는 자동차산업 공급기업들이 대기업 매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협력기업의 유형이 어떻든 이들 기업들은 수요기업인 대기업에 대한 협상력은 높지 않다. 대기업들은 핵심 모듈을 계열사를 통해 공급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부품도 대안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공급독점으로 인한 위험을 사전적으로 차단한다. 이와 같은 우월한 협상력으로 인해 대기업들은 협력기업들을 준계열화된 기업처럼 활용하며 비용절감 및 시장위험을 공유한다.

    한국에서 독특하게 발달한 계열화된 기업집단 체제와 협력기업 공급네트워크는, 대기업들로 하여금 기업간 거래에서 작용하는 거래비용을 낮추고 공급기업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준계열화 된 공급네트워크는 전속성인 강한 관계특수적 투자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급기업의 ‘과소투자’를 해소할 수 있다.(Williamson, 1985; Tiroll, 1994; 홍장표·남종석, 2016; 남종석, 2017) 또한 대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직면할 수 있는 시장위험을 일부를 공급기업들에게 전가할 수 있으므로 비용효율성의 측면에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김종호 외, 2019) 핵심 모듈이나 부품을 임금비용이 저렴한 계열사 및 외부기업들이 공급하도록 함으로써 비용경쟁력을 높이지만 동시에 준계열화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공급측면의 불확실성은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이는 GM 등이 모듈화에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공급 불안정성으로 인해 경쟁력에서 뒤처지며 모듈화에 실패한 것과 비교된다. 이와 같은 산업조직은 추격 성장 과정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할 수 있는 제도적 요소로서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business process innovation)이라 할 수 있다.(OECD, 2018)

    한국 대기업이 구축한 고유한 가치사슬과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산업생태계는 추격자로서의 한국의 지위를 개척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기업집단을 통한 수직계열화는 공격적인 투자를 가능하도록 했으며 기술추격기간을 단축시켰다. 수직적 전속구조에서 대기업들은 중소 협력기업의 조직적 기술학습을 촉진했고 협력업체는 안정적 납품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형자산투자를 확대할 수 있었다. 선도기업이 협력기업에게 중간재 납품시장을 제공했기 때문에 미래의 불확실성을 통제할 수 있었던 중소기업들은 적극적인 투자를 해왔던 것이다. 또한 신속하게 진행된 글로벌 생산체제의 구축은 현지 시장 개척 및 현지 시장 적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조성재, 2014). 조형제(2016)는 이와 같은 빠른 추격을 이룩한 한국 산업생태계의 특징을 기민한(agile)’ 생산방식이라고 묘사한다. 기민한 생산방식이란 제품개발, 생산, 부품공급, 마케팅 등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휘되는 기민함이 경쟁우위의 핵심 요소가 되는 생산방식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공급생태계는 추격자로서의 지위에서는 최종재의 비용경쟁력을 높여주었으며 주요 산업에서 한국 대기업들이 세계적 선도주자가 되었을 때는 ‘높은 수익성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었다. 공급기업들에게 일정한 마진폭을 보장하는 대신에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의 자사 제품의 마크-업을 통해 기술 진보의 결과를 수익성으로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급기업들은 수익성 개선의 여지는 크지 않았지만 불황기에도 일정한 수준의 영업이익율을 보장받았으며 매출액 증가를 통해 기업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협력기업이 됨으로써 중간재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지만 호황기라고 해도 높은 수익성을 실현할 수 없었다. 호황기에서 이뤄지는 공급기업의 혁신은 납품단가 인하를 통해 수요기업이 영유했기 때문이다. 이는 수요독점적 지위에서 대기업이 자행하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행동이지만 공급기업들은 이에 대해 저항할 수단이 부재하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자행하는 수탈적 행위의 근본적인 이유다(홍장표, 2011; 남종석·홍장표, 2016; 김종호 외, 2019).

    대기업 중심의 공급생태계의 수탈성에도 불구하고 이 구조하의 공급기업들의 기술역량이 축적되고 성장의 계기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근거는 대기업 중심의 공급생태계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들과 비교를 통해서이다. <그림 5>은 대기업 공급사슬에 참여하는 협력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 혹은 시장판매기업으로 분류하여 유형자산 및 부가가치액을 비교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독립기업들의 규모는 1차 협력기업은 물론이거니와 2차 협력기업들보다 작다. 유형자산과 부가가치 모두에서 대기업의 핵심 공급기업인 1차 협력기업의 규모가 월등히 크다. 이들 기업들의 제조역량, 기술수준 모두 독립기업보다 높다. <그림 6>은 독립기업의 주요 구매처가 어디인가를 나타낸다. 독립기업 가운데 공공부분 납품하는 기업이 27.52%이며 그 중 공공부분 납품비중이 1위 기업이 53%를 차지한다. 독립기업의 공공부분 납품 비중의 전체 평균은 32.93%이다. 납품 비중이 32%라는 것은 수요 즉 정부 조달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기업 공급네트워크 참여는 수요기업이 요구하는 중간재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과 제조역량이 존재해야 한다. 공공부분 조달에도 일정한 요건이 필요하지만 세계시장의 경쟁에 노출된 대기업 공급네트워크에서 요구되는 수준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대기업들은 수요기업들과 장기지속 거래를 하면서 공급기업들에게 중간재 시장을 제공하기 때문에 수요기업들은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수요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적 사양, 납품 단가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급기업들은 안정된 수요처가 있기 때문에 투자로 인한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대기업 협력기업들의 규모, 부가가치 생산능력이 독립기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이유이다.

    2) 모듈화와 자동화

    한국 재벌(기업집단)과 협력기업이 형성해 온 독특한 제조업 공급생태계는 한국적 모듈화의 성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듈이란 ‘재활용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덩어리’를 의미하며 모듈 자체는 정해진 ‘인터페이스’ 내로 외부의 단위들이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모듈 단위 자체는 다른 환경 속에서도 독립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모듈의 활용 즉 모듈화란 소프트웨어에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자산업, 자동차산업 등으로 확산된다. <그림 7>에서 보듯이 왼쪽의 비모듈화된 공급생태계에서는 공급기업(s1, s2, s3…)각각의 부품을 만들면 대기업들은 p1, p2, p3를 조립하고, 이렇게 조립된 p3와 p6를 다시 최종라인에서 만든다. 그러나 모듈화된 납품시스템에서는 독립된 모듈 생산업체가 p1, p2, p3를 하나의 모듈 단위로 생산하고, 최종재를 생산하는 기업에서 모듈단위의 부품을 조립한다(이군락, 2002).

    모듈화 과정에서 기술의 표준화가 이뤄지는 반면 부품 다양성은 축소된다. 제품 사양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을 부호화할 수 있는 능력이 복잡한 제품으로 확대될수록 제품 아키텍처의 모듈화 진전된다. 일반적인 사례에서는 모듈화된 생산역량을 갖춘 공급업체가 다수 존재하게 되면 최종재를 생산하는 기업과 모듈 공급업체 간에 존재하는 제품 아키텍쳐 상의 수직적 분업에서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의 위계적 관계는 약화되고 시장거래 특성을 더 많이 띠게 된다. 수요기업에 대한 모듈 공급기업들의 협상력이 크고 기술력도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조립업체가 부호화 가능한 제품사양을 공급업체에 제시하면 공급업체는 이 사양에 맞는 제품을 턴키 베이스로 공급하므로, 공급업체는 거래특수적인 자산에 투자할 필요가 없어진다. 표준화된 범용모듈을 다양한 수요기업에 납품하기 때문이다. 조립업체도 제품의 질적 수준 담보를 위한 통제와 감독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Humphery & Sturgeon, 2005) 서구에서 모듈화의 진전은 기업 다운사이징과 외주화를 통한 경영혁신으로 한때 각광받았다.

    한국 제조업의 모듈화가 생산성 향상 및 제품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공급생태계의 특수성과 연결된다. 한국의 모듈 생산 체제의 핵심적인 성공요인 가운데 하나는 최종재를 생산하는 기업의 혁신전략에 모듈 생산업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모듈 공급 기업이 수요기업과 동등한 협상력을 지녔거나 더 나아가 더 우월한 협상력을 지녔다면 한국 대기업들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대기업들은 추격과정에서 선발 자본주의 국가보다 제품 아키텍처 능력에서 뒤처지기 때문에 제조 과정의 잦은 설계변경, 사양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는데 글로벌 부품기업들은 이와 같은 변화조건을 쉽게 수용하지 않거나 그에 따른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한국 대기업들은 계열사 및 준계열화 된 공급생태계를 구축해 왔으며 공급기업들은 수요기업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제조역량을 키워 왔다. 더불어 최종재를 생산하는 수요기업은 연구개발, 마케팅, 자동화를 통한 모듈의 조립으로 생상성과 부가가치를 높였으며 재벌 계열사들 및 중견기업들은 소기업, 중기업으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모듈화된 중간재를 공급했다. 이와 같은 구조는 모듈 공급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한다. 반면 부가가치가 낮은 부품들은 저임금에 의존하는 2차, 3차 협력기업들이 생산하도록 함으로써 비용효율성을 달성했다. 준계열화된 공급생태계는 최종재를 생산하는 대기업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게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이 거대화됨으로써 나타나는 기능장애를 해소할 수 있었던 반면 ‘거래비용은 내부화’함으로써 모듈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림 8>은 휴대폰산업의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모듈공급 시스템을 나타낸다. 휴대폰을 조립하는 기업이 핵심종(대기업)으로서 플랫폼(설계와 사양)을 제공하면, 배터리, LCD패널, 카메라모듈, 인쇄회로기 조립품, 메모리 칩 등 5개 분야의 핵심모듈 공급업체가 제시된 설계와 사양에 맞는 모듈 부픔을 생산하여 대기업에 납품하면 대기업은 이를 최종적으로 조립하여 시장에 공급한다. <그림 9>는 TV산업의 플랫폼과 비즈니스 생태계를 보여준다. TV를 조립하는 기업이 핵심종(대기업)으로서 플랫폼(설계와 사양)을 제공하면, 핵심모듈인 패널 공급업체는 정밀박판유리와 백라이트 유닛을 부분품으로 제공 받아 제시된 설계와 사양에 맞는 패널을 생산하여 공급한다. 여기에는 약 120여개의 1차 부품 공급업체 및 다수의 중소기업이 틈새 종으로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각 모듈마다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기술이 존재하며, 모듈에 반도체, 화학소재 등을 공급하는 공급기들도 가치사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전자업종에서든 자동차 업종에서든 모듈 생산업체들은 모듈별로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기업들을 두고 있으며 플랫폼은 중층화된 거래네트워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 8>과 <그림 9>에서 보듯이 전자업종 내에서는 모듈 생산체제를 구성하는 납품업체들은 그 특징에 따라 분류된다. <그림 8>과 <그림 9>에서 중소기업과의 거래 안정성이란 거래의 지속기간으로 측정한 값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모듈생산 부품업체들 가운데 기술역량이 높고 거래의 지속성이 있는 업체들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높다. 이는 전자산업 내부의 산업생태계가 시장거래에 기반하는 단기적 관계가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계약관계로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김기찬의 분류로 보자면 소수 기술경쟁형, 지명발주형 협력기업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대기업들과 준 계열화된 협력기업들의 거래관계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이었으며 이와 같은 안정성이 중소기업의 공격적인 투자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모듈화의 진전은 한국 제조업의 또다른 특징인 자동화를 진척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 자동화는 대량생산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위에서 보았던 전자산업, 자동차산업 등 대규모의 소비시장에 형성되어 있는 분야나 범용강, 범용 석유화학 제품 등 자본집약적인 업종들에서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Levy & Kuo, 1991; 정준호, 2019). 작은 부품 단위들을 조립하는 미시적인 공정이 2차, 3차 하청 기업들에서 마무리되고 이를 1차 협력기업들이 모듈화 하면 최종재를 조립하는 단계에서는 일정한 단위로 만들어진 모듈을 결합시키는 것이 용이해진다. 한국의 대기업들에서 로봇의 활용 즉 자동화가 빠르게 진척될 수 있었던 것은 전단계의 모듈화가 최종재를 생산하는 과정으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엔지니어 역량을 토대로 공정을 자동화 하고 모듈단위의 부품을 조립함으로써 생산과정에 숙련의존도를 낮추면서 노동에 대한 사용자측의 통제력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적대적인 노사관계 속에서 생산현장에서 노동조합의 협력을 우회하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던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림 10>과 <그림 11>은 제조업 로봇밀도를 나타낸다. <그림 10>에서 보듯이 한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생산과정에서 로봇활용도를 급속하게 높였다. 2000년대 전 기간에 걸쳐 한국의 생산 자동화는 급속히 진행되었으며 2019년 현재 싱가포르와 함께 로봇밀도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과정에서 로봇의 활용은 두 측면에서 사용자측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첫째는 자동화는 로봇(고정자본)에 체화된 신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로봇 자체는 소프트웨어화된 알고리즘에 따라 운영할 수 있기에 설계역량이 뛰어난 엔지니어를 확보할 수 있다면 생산과정을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다. 더불어 작업속도의 통제, 제품 하자의 관리(불량율 하락) 등에서 인간노동의 활용보다 훨씬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자동화는 노동의 숙련 형성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노동집약도를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이는 짧은 시간 내에 생산성인 높은 선진국을 ‘추격’하는 데 유용했다.

    둘째는 자동화는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노동비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도록 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 노동운동을 ‘전투적 경제주의’로 요약된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경직적인 연공서열체계 하에서 인건비는 고정비용 항목이 되어 꾸준히 상승하는 구조이다. 경기 호황시기 제조업 가동률 상승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빠르게 상승시켰다. 한국의 노동시장 특성상 경기 불황기가 와도 기업의 파산 위기가 아니면 고용량의 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력은 가변자본이 아니라 고정자본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Itoh, 1990; Brenner, 2002)(3). 한국의 빠른 자동화-생산과정의 로봇 도입 확대는 이와 같이 고정비용화 된 노동력 사용을 줄이고 이를 기계로 대체하려는 사용자 측의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도 이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는데, 전투적 경제주의의 핵심 요소는 사업장 단위의 투쟁을 통해서 실질임금 상승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현재의 시점에서도 이는 여전히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다. 민주노총 설립 이후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가 만들어졌지만 대기업 노동조합 활동의 기본 단위는 여전히 기업별 노조 형태를 띠고 있으며 노조 지도부의 최고 목표는 ‘임단협 투쟁 승리’였다(조효래, 2005).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이 향상되면 노동조합은 투쟁을 통해 실질임금을 끌어올렸으며, 실질임금 상승은 다시 사용자측으로 하여금 자동화를 통한 노동절약적 기술진보를 이끌도록 했다. 세계시장 점유율의 증가하는 국면에서는 “자동화 – 생산성 향상 – 노동조합 투쟁 – 실질임금 상승 – 자동화 확대”의 순환고리가 형성된다. 한국 제조업 자동화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일반화시킨 ‘편향적 기술 진보(Biased Technical Progressive)’ 즉 미시적 단위에서 노동 절약적 기술 진보를 대표한다. 거시경제학의 균형성장 모형은 ‘고정자본 상승률=노동력상승률=부가가치 상승률’과 같은 지속상태를 가정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력을 절약하기 위해 고정자본 투자에 더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1인당 자본집약도는 꾸준히 상승한다.(윤소영, 2011)

    뒤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지만 자동화를 위한 설비투자 증가로 인해 기업 부가가치에서 이윤 몫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한다. 대기업의 경우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투쟁으로 노동자의 1인당 실질임금이 상승하더라도 고정자본에 의해 노동이 대체되거나 설비투자에 비해 신규고용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의 부가가치에서 노동의 몫인 노동소득분배율은 하락한다. 노동자 1인당 실질임금이 상승하더라도 생산성 상승률과 같은 비율로 오르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기업 노동자들의 ‘빠른 실질임금 상승’은 중소기업 노동자들과의 임금 격차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신규 고용 없는 설비투자 증가는 1인당 자본집약도를 상승시키며 빠른 노동생산성 상승으로 귀결된다. 이는 대기업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상승의 조건이 되지만 중소기업의 자동화 수준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며 노동생산성 역시 대기업 상승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대기업에 비해 임금상승의 절대액의 차이는 확대된다.

    필자의 이와 같은 주장은 여러 논자들이 노동소득분배율과 기업투자율과의 정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집계적 수준에서 이뤄지는 실증연구에 따르면 노동비용의 상승이 고정자본 소모를 더 많이 하도록 촉진함으로써 노동소득분배율과 설비투자 사이에는 정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나타난다.(황선웅, 2009; 홍장표, 2014b; 전병유·정준호, 2016) 임금비용 상승이 설비투자를 강제하는 것은 반박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설비투자는 오히려 개별기업 단위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을 하락시킬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표 1>이 보여주듯이 미시적 단위에서 기업 규모의 증가와 노동소득분배율은 뚜렷한 부의 관계를 나타낸다. 집계적 수준에서는 투자 증가가 연관산업 전체 고용의 확대로 인해 총부가가치에서 노동의 몫이 증가할 수 있지만, 개별 기업 단위에서는 그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개별 기업 단위에서 투자로 인해 노동소득분배율이 감소해도 집계적 수준에서 고용율 상승으로 인해 노동소득분배율은 상승할 수 있다. 노동소득분배율을 결정하는 것은 1인당 임금률의 변동뿐만 아니라 노동력의 양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소득분배율의 상승이 투자 증가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일반화시켜 기업활동이 그와 같은 메카니즘 속에서 작동한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계속>

    <각주>

    1. 경제학자 사무엘슨은 이를 ‘리카르도-마르크스-솔로 모형’ 경제성장론이라 요약한다.
    2. 불균등결합발전론은 거센크론의 ‘후발성의 이익’이나 허쉬만의 불균형 발전론과 일부 공명하는 측면이 있다(Gerschenkron, 1962; Hirschman, 1958). 다만 거센크론이나 허쉬만은 후발주자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경제 성장과 위기를 동시에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브레너, 캘리니코스, 스미스 등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불균등결합발전론과 이윤율의 경제학은 거센크론, 허쉬만 등과 일부 공명하지만 ‘성장과 위기’를 동시에 분석하는 보편적 분석틀로서 유용하다(Smith, 1999; Brenner, 2002; Callinicos, 2008; Foly, 2015; 윤소영, 2009).
    3. 필자는 ‘한국 노동력의 고정자본화’는 1960-70년대 일본의 초고속 성장기 노사관계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Itoh(1990)의 표현에서 빌어 왔다.
    필자소개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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