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운동의 위기와 공백,
    그럼에도 우리는 노동을 이야기해야
    [노동운동의 현실·과제·전망] 돌아보고 나아가자
        2021년 04월 02일 09:23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공공연맹 위원장을 지낸 양경규 전 레디앙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지금도 왕성하게 노동현장 등에서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양경규 전 대표가 노조 활동가들에게 던지는 세상 이야기인데, 그들만의 문제와 화두는 아니기에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부정기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

    철도노조 전국 지방본부를 돌며 진행한 8차례의 신임간부, 대의원 교육을 마쳤다. 주제는 노동운동의 현실과 과제, 전망! 주최 측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아는지라, 현장 간부들과 소통이 될까 싶은 걱정에 교육 요청을 주저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공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는 풀어 놓지 못하지만 몇 가지를 두서없이 옮겨 본다.

    1. 솔직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주제의 교육이 의미가 있을까, 노동운동 전체에 대한 고민이 과연 여러분들에게 있을까 의문입니다. 사업장 조합원의 임금과 근로조건만 여러분 머리에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싶지만 공공부문에서 가장 큰 노조인 철도노조에 희망을 걸어보며 이야기합니다.

    2. 노동운동은 도대체 무얼까요? 집회에서 세상을 바꾸자고 구호를 외치는 조합원들은 정말로 노동운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걸까요? 사람마다 다 달리 생각하는 노동운동,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나요?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기반으로 한 운동입니다. 그래서 사실 그 출발이 개량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량, 듣기 싫은가요? 노동운동의 계급성을 부정하는 것 같은가요? 그런데 누가 뭐라 해도 노동운동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먼저 챙기는 조합원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기업별노조가 중심인 우리의 노동운동은 훨씬 더 심할 수밖에 없고요. 세상에 어떤 조합원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조합에 가입하겠어요?

    그런데 이대로 세상이 굴러가도 그런대로 살만한 조합원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자구요? 그 정규직 조합원들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을 위해 연대하자구요? 한국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을 넘기 위해 상위 10%에 드는 조합원들과 총파업을 하자구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정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의 출발은 조합원의 이익이고, 노동운동의 본질은 개량운동이라는 것을.

    3. 그런데 참 고민입니다. 이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나마 제동장치를 걸고, 이윤보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은 노동밖에 없는데, 노동 없이는 상품도 없고 이윤도 없으니 자본이 지 마음대로 못하게 하려면 노동이 꼬장을 부리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 꼬장의 집단화가 바로 노동운동인데…. 그런데 그 본질이 개량이니 조합원만 챙기면서 세상은 나몰라라하면, 당연히 이윤만이 내 세상인 야만의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비정규직이 1000만이 넘고, 산재 왕국이 되고,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가진 나라가 되고, 상위 2만명의 소득이 627만명의 소득의 합과 같은 불평등의 세상이 되고, 여성노동자들은 더 열악해서 남성대비 평균임금이 64%밖에 안 되는 나라가 되고, 청년실업은 27%나 되고,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350만이나 되는 나라가 되는 것 아닌가요?

    귀족노조 소리 불편하지요? 참으로 그 입 다물라고 하고 싶지만 실제 민주노총 조합원의 상당수가 상위 10% 혹은 20%에 드는 노동자인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니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민주노총을 욕하고, 그러면 표가 되는 세상이 현실이 된 거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철도노조만 건재하면 되는가요? 노동운동이 이렇게 가도 철도노조는 괜찮을까요? 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게 될까요? 총파업을 하기는 해야겠습니다.

    4. 본질이 개량인 노동운동, 그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진 노동운동, 참 간격이 큽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해야 합니다. 일찍이 레닌이나 룩셈부르크 같은 사람들은 노동운동가들에게 너네가 개량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하나, 그래도 노동조합이 체제를 바꿀 유일한 집단이기도 하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노조활동 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대로 놓아두면 필연적으로 경제적 조합주의나 노조 만능론(생디칼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어서 자본주의의 관제고지가 될 수도 있으니 조합원들의 이익을 챙겨주되 세상의 문제와 늘 함께 하는 노동조합 좀 해달라고 했지요.

    그러니 간부 여러분! 노조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이 세상으로 나가게 좀 해주세요. 공장 담 밖의 세상도 보게 하고 지금 노동운동이 어디에 와 있는지 보게 하자구요. 그래야 조합원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이하에서는 조합 간부 교육 진행)

    5. 몇 가지 세상 이야기, 노동운동의 현실 이야기를 해보지요. 최저임금 1만원, 노동의 양극화 시대, 청년문제이고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사활을 걸어야 할 문제지요.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 이야기하면 중소자영업자들이 못살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건 모르겠고 노동자는 1만원 받아야 된다고만 주장하면 되나요?

    한국의 자영업자 규모는 우리 경제규모 여건상 적정규모가 100이라면 그 지수가 195 정도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 경제규모에 비해 자영업자가 2배가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IMF 이후 구조조정으로 밀려나고 비정규직 지옥이 되면서 일자리가 없어 한 집 건너 치킨집이 생기다보니 이리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6만 명이 줄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9만 명이 늘었다고 해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노동자를 해고한 거지요. 이렇게 이들도 낮은 임금을 따먹으며 연명하고 있는 꼴인데 최저임금 올리자 하니 갑갑해 하는 거지요.

    이렇게 자영업자 문제와 최저임금 문제는 동면의 양면 같은 노동문제이고, 계급문제이고 일그러진 세상의 문제입니다. 당연히 노동운동은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전략을 가져야 합니다. 노동운동이 카드 수수료 감면, 본사 납입금 인하 등을 같이 이야기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액션플랜은 없는, 그냥 양념같은 이야기로만 들리기도 하거든요.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최저 임금 1만원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을까요?

    최저임금도 안 되는 노동자가 350만이 되는 현실, 더구나 코로나로 자영업자의 삶이 무너지고 있는 조건에서 올해 최저임금은 어찌 될까요? 세상은 이렇게 복잡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걸 포기하면 그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만요.

    6. 요즘 공장 밖 세상에서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환경과 생태 문제입니다. 노동운동이 세상을 바꾸려면, 조금 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게 하려면, 세상과 소통해야 할 텐데요.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의 가장 큰 이슈인 환경과 생태문제에 대해 노동운동은 얼마나 관심이 있나요? 여러분 사업장에서 환경과 생태, 기후 위기 이슈는 얼마나 노동조합의 주요한 과제가 되고 있나요? 총연맹 선거 때 그 많은 후보 중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더라구요.

    생태와 환경문제는 코로나를 불러왔고 코로나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던져 주었습니다. 일자리 문제, 노동의 형태 등이 어떻게 변할지를 가늠하는 기회가 되었지요. 전 세계적으로 2억5천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는데 숙련직 혹은 전문직, 정규직은 그나마 멀쩡하게 살아남고 비정규직, 영세노동자의 일자리는 10% 정도 감소했다는 ILO의 통계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위기 때문에 4차 산업이 조기 시험대에 올랐다고들 하지요. 비대면, 원격근무가 당겨지고 있다고요. 그런데 원격근무도 상위소득층에서는 절반 가량이 가능해서 일자리가 유지되었으나, 하위 소득층의 노동은 불과 10%만이 가능하여 코로나 기간 동안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생태위기, 기후위기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피해를 준다는 통계들을 틈만 나면 접하게 됩니다. 세계 상위 1%의 부자들 6천만명의 탄소배출량이 하위 50%인 30억명의 탄소배출량의 2배가 된다고 하잖아요. 기후위기는 자본이, 그리고 부자들이 심화시키고 그 피해는 오롯이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되는 오늘의 세계, 기후위기는 더 심각한 양극화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기후계급이라는 말이 나오겠어요.

    그뿐인가요? 탄소위기 때문에 내연기관 자동차는 이제 세계 곳곳에서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대체적으로 2030년이면 각국이 금지한다는데 내연기관 중심의 우리 자동차산업, 몇 년 내에 자동차업계의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데 이쯤 되면 생태문제가 얼마나 긴밀하게 노동문제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지요. 나아가 전 인류의 위기, 사회의 위기이기도 하구요.

    이러한 기후위기의 본질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탐욕이거든요. 정부는 이걸 감당 못하고 허울뿐인 그린뉴딜을 내놓았고요. 이거 역시 막을 수 있는 힘은 노동에게 있는데 노동운동은, 여러분은 이것을 얼마나 심각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나요?

    단 몇 시간이라도 민주노총이 나서서 기후위기 총파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되나요…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공공연맹 위원장

    페이스북 댓글